전출처 : 게으름뱅이_톰 > 음식이 사회를 건강하게 할 수 있다
음식국부론
우석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음식, 그것은 경제학이고, 철학이며, 동시에 하나의 예술이다. 그리고 생활이기도 하며, 이제는 또 다른 의미의 행복 그리고 식구들에 대한 전혀 다른 차원의 사랑이기도 하다. 아울러 음식은 정부가 좀처럼 알려주지 않는 음모를 깨닫게 해주는 일종의 정의의 혁명 같은 것이기도 하다. (60쪽)

<한미 FTA폭주를 멈춰라>의 저자의 또 다른 책. 경제학자인 저자가 강력하게 세상에게 전하는 음식이야기는 <음식국부론>이다. 군주나 공화국이 섬세한 살림을 통해서 사람들을 부유하고 행복하게 만듦으로써 세상을 낫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전제로 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그대로 빌린것이다. 경제학의 관점으로 음식을 바라보는 지금의 상황은 더 이상은 먹을 수 있는 것은 다 감사한 존재가 아니다. 맛 혹은 안전이라는 관점이 함께 존재 할 수 없는 이상하고 위험한 시대인게다. 저자는 국가가 부강해진다는 것은 시스템과 함께 문화와 제도와 그를 뒷받침하는 기반이 튼튼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음식이란것은 분명 문화일진대, 한 사회의 구성원이 무엇을 먹어야 할지 모르고, 먹어도 탈나지 않을 음식을 공급할 수도 없을 때 그 나라의 행복과 힘은 무의미하다고. 그래서 국민소득이라는 숫자에 휘둘려 살림도 식생활도 되돌아보지 못하는 이 땅의 사람들은 '여성성'의 의미를 결코 알 수 없다고. 하여 여성의 눈으로 들여단 본 경제학의 출 발은 음식국부론에서 찾을 수 있다고 전한다.

먼저 우리가 자주 먹게 되는 음식들은 믿을 수 있는지 말한다.
중국집의 쫄깃한 면발은, 반죽할 때 한 웅큼씩 집어 넣는 중국 가성소다에서 나오고, 그 쓴 맛을 감추기 위해서 한 국자씩의 조미료가 들어간단다.(49쪽) 조미료 보다도 가성소다에서 난 기함했다. 알면 알 수록 미친 세상이다. 우유 많이 먹어야 골다공증 안 생긴다고 의사들도 아무렇지 않게 권한다. 그런데 우유는 대표적인 산성음식이고, 체내의 pH를 유지하게 위해 알칼리 성분인 칼슘등을 소모해야만 한다. 우유를 소화시키려면 결국 우유의 칼슘은 물론이고 체내의 칼슘까지도 써야만 한다.(68쪽) 게다가 발육촉진제, 항생제, 방부제 사료로 키워지는 소 아니던가.
말 많은 쇠고기. 귀족들만의 음식이던 쇠고기 스테이크를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에게 싸게 대량 공급했던 것이 스코틀랜드와 북미대륙 생태계는 물론,버펄로, 인디언들을 멸종에 이르게 했고, 덤으로 골프라는 스포츠도 만들어냈다.(75쪽) 물론 대표적인 산성음식이며, 도축 6개월전에 집중적으로 먹인 옥수수 사료로 생긴 지방을 두고 고급이라고 아우성치는 꼴이다.

벌레도 잘 타지 않아 농약 불안감도 없는 콩은 그 자체로는 완전식품. 하지만 시장의 콩과 콩제품이 모두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두부나 콩나물처럼 가공하면서 무엇을 넣었는지 확인 할 길은 없다. 미국산 콩은 거의 대부분 유전자조작 식물이고. 당신이 집어든 두유는 국산콩을 만들었는가? 두부의 포장지에 쓰인 소포제, 응고제가 무슨 뜻인지 아는가? 방부제를 넣었을 확률이 훨씬 높은 대형회사의 두부가 더 안전한게 맞을까?

수입쌀은 맛이 있네 없네, 싸네 비싸네, 학교 급식에 쓰네 마네.....이 시끄러운 쌀. 한국, 아프리카 국가들에 돈을 꿔 주고는 그 돈으로 자국의 잉여농산물을 사도록 한 미국의 원조법. 덕분에 미국은 먹지도 않는 자포니아 품종의 쌀을 농가 보조금까지 지급하며 재배토록했고, 피원조국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국제 시세보다 4배 비싼 쌀을 사 먹는다. 더불어 거대 종자 회사와 곡물거래 회사, 화학품 회사들의 농간으로 특정 약품에서만 발아하는, 혹은 특정 병충해에 취약하게 만들며 동시에 자사의 병충해 약까지 만들어 파는 요지경 속의 종자회사 등에 전세계인의 주식인 쌀의 운명이 잡혀있다.(92-107쪽)

저자는 이 땅의 정부는 농업을 공업취급하는 정책을 폈었고, 이제는 그나마도 농업포기 정책을 휘몰아치듯 실행하고 있고, 정작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는 관심도 없다고 말한다. 관행농(화학농)을 하지 않는 유기농가를 지원은 커녕 타박주던 정부다. 저자는 그 시스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생협에 주목한다.우리나라 유기농의 비중은 전체 생산량의 2%를 넘지 못한다. 그 작은 시장마저도 개인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정부도 아니고, 백화점도 대형할인점도 아닌 '영세'한 개인들의 모임인 생협은 오히려 안전하고 고급스러운 제품을 유통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음식재료는 생협에서 구하는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생협은 더불어 소비 윤리와 정신건강도 튼튼하게 만들어 주는 구실을 한다.

저자가 말하는 생협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신뢰를 기반으로 만나는 트러스트 시장이라는 것.즉각적이고 단기적인 계약이 아니고 믿음을 근거로 하는 장기계약이다. 유기농 매장과 대형 할인매장의 유기농 코너와는 다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때그때 싼 물건만을 매입하거나, 전량 매도를 조건으로 '꺾기'를 해서 생산자를 밟는 매장에 비해 생협의 공급 조건은 생산자에게 유리한  안정적 물량의 장기계약이다. 단기계약으로는 수요를 예측할 수 없고, 생산계획이라는것도 세울 수 없다.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가 아닌 회원의 소비이므로 안정적인 소비 패턴을 갖기 때문이다.


유기농이 몸에 좋다니까 여기저기 유기농매장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지만, 전체 2%밖에 되지 않는 공급이 충분히 이들 매장을 충족시키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소비의 측면으로만 운영하게 되는 유기농매장에서 생산자를 배려한 계획과 공급이라는게 있을 리가 없다. 유기농에 주목할 것이 아니고, 유기농 생산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생협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자본에 의해 좌우되는 하이엔드 시장으로 바뀔 수 있는 위험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 생협에 가입해서 유기농 식단을 꾸리는 시장에 참여한다면 좋은 진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문제는 있다. 2%의 유기농이라는 안전판을 어떻게 키워갈 것인가. 유기농의 특성상 기계와 약에 기댈 수 없기 때문에 공장에서 물건 찍듯, 어느날 갑자기 생산량을 늘릴 수는 없는 문제다. 또한 수요는 어떻게 늘릴 것인가. 여기에 대한 답으로는 학교 급식과 병원, 단체, 군대등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학교급식에 대한 우리 농산물 요구는 거세지고 있지만 통상부는 무역마찰을 우려한다고 반대하고 있어 지방자치 단위로 조례를 제정한 경우에도 아직 시행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내 아이가 미국산 쇠고기국에 미국산 통조림옥수수 샐러드와, 조미료 듬뿍 넣은 반찬을 먹고 있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약하지만 아토피를 경험했던 녀석이라 학교를 보내지 않아야 할까 좀 오바하며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없었으므로 여전히 오늘 돈까스, 내일 미트볼 식단에 반강제 우유를 매일 먹고 온다.

농업을 포기한 이 땅에서 앞으로의 10년은 어떻게 진화할까?
정말 소수 생협회원만으로 근근히 버티게 되는 유기농만 남게 될지, 혹은 자본에 유린된 하이엔드 시장이 될지 알 수 없다. 사실 이미 여러 생협들이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고 있다. 무엇을 위해 생산 이력을 기록하는지, 왜 매장을 경쟁적으로 개장하는지 알 수가 없다. 왜 자꾸 대형유통을 흉내내고 있는지, 가끔은 그 움직임에서 절망하기도 한다.

오늘날 한국에서의 음식은 칼로리와 비타민과 맛으로 승부한다.(130쪽) 고칼로리 고단백의 서양 식단을 권장하고, 모자랄지도 모르는 영양은 비타민제로 보충하며, 집에서 만든 음식보다는 역시 조미료 한 수저씩 들어있는 얄팍한 맛의 외식을 더 선호하고 있다. 가끔 난 농담처럼 말한다. 맵고 짜고 달고 기름지기만 하다면 음식은 잘 팔린다고. 그게 이 땅의 외식이니까. 매운 걸 잘 먹지 못하고, 기름진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우리가족은 딱히 외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장소가 없다. 그저 귀찮아서 혹은 몸이 아파서 한 끼를 때운다는 심정으로 먹게 되는게 외식이다. 조미료가 혀로 느껴질 정도로 듬뿍 넣고, 무슨 에센스까지 넣어서 눈물 나도록 맵게 만들고,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달고 기름진 음식들. 그럴싸한 인테리어와 달콤한 음식에 혹해서 몇 번 간 패밀리 레스토랑들도 뻔하다. 냉동식품을 데우기만 했을것이 분명하고, 주방도 패스트푸드점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소문도 들었고, 무슨 근거로 매겼는지 알 수 없는 음식값도 맘에 들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툴툴거리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건 거의 없다. 귀찮고 힘들어도 안전한 음식을 먹을양이면 생협 식재료들로 내가 만드는 수 밖에 없다. 혹은 안전하지 못하지만 입맛을 대충 달래주는 편한 외식을 택할 수 있다. 어느 것도 맘에 들지 않는다. 손하나 까딱하기 싫거나, 힘든 날에도 내가 챙겨야 하는 식구들이 있는 법이다. 아니, 건강하고 멀쩡한 날에 누군가를 만나서 점심을 함께 사 먹을 수도 있는 일이다. 아니 하루 세 끼를 모두 집에서 해 먹는다해도, 집 밖에 있는 가족들은? 그 때마다 독일지도 모르는 음식을(혹은 음식을 가장한 그 무엇을) 먹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할 짓이 못 된다.
내게 안전한 음식점을 알려달라.그런 음식점이 없다면 내게 그런 음식을 해 달라. 그것도 아니라면 그대도 생협에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정말로 시스템이 올바르게 진화하는지 봐 달라.

그리고 내가 아직 풀지 못한 숙제들을 해결해 주십사.
수입 유기농산물을 믿어도 좋은지. (난 풀무원을 믿을 수가 없다)
한 개 1200원 하는 애호박, 시장에 가면 3개 천원에 파는 현실에서, 중산층의 먹거리 놀음이라고 비난받기 쉬운 생협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지.또한 기업화하고, 자본의 논리가 이미 침투 해 버린 현재의 생협들에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지.

(당신이 음식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생협이라는 공동체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이 책은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단지 몸에 좋은 음식이니 먹어햐 한다는 논리보다 훨씬 크고 넓고 깊은 안목으로 사회를 보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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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민족, 민족주의, 그리고 '상상의 공동체'

작년에 내한한 바 있는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에 관한 몇 가지 자료들을 인용-정리하고자 한다. 나의 관심은 조금더 문학적인 차원에서 러시아 민족주의 혹은, '러시아에서의 네이션과 소설(Nation and Narration)의 문제'란 테마에 놓여 있지만, 사전정지작업의 일환으로 앤더슨의 민족주의 비판적 문제제기에 관한 국내외의 논란(민족주의 vs 탈민족주의)도 얼마간 정리해보고자 하는 것. 물론 그걸 일거에 정리할 만한 역량을 나는 갖고 있지 않으며 대신에 몇 가지 자료를 인용-정리해놓는다.

그러고 몇 시간... 집앞에 있는 PC방을 놔두고 볼일 때문에 나왔다가 5분쯤 거리에 있는 PC방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예상대로 초딩들이 진치고 있는지라 공기가 훨씬 낫다(집앞 PC방은 한 시간만 죽치고 있어도 옷에 담배 냄새가 밴다). 집에 인터넷을 깔기 전까지는 아무래도 백수파보다는 초딩파에 붙어지내야겠다. 흡연/끽연 문제에 있어서 나는 백수들보다는 초딩들과 더 강한 연대의식, 공동체의식을 느낀다... 

갑작스레 베네딕트 앤더슨 얘기를 꺼내게 된 건(물론 작년봄 그가 강연차 내한했을 때도 몇 마디 거들려다가 그만두긴 했었다) 어젯밤에 문득 호미 바바가 편집한 'Nation and Narration'(Routledge, 1990)을 꺼내들고 서문을 읽게 되었기 때문이다(러시아 국민문학 발생의 문제에 관한 생각을 좀 진전시켜보자는 속내에서. 러시아에서도 이 주제와 관련한 책들을 한두 권 구해왔었다), 그런데 거기 제일 처음 인용되는 문장이 바로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가 아닌가. 다행히 박스에 들어가 있지 않은 국역본을 바로 서가에서 꺼내들었다. 몇 년전에 개정판 원서(1991; 초판은 1983)를 구하려다가 못 구한 적이 있는데(대출중이었던가) 이 참에 구해서 읽어보기로 마음먹고(사실 앤더슨의 기본 아이디어 자체는 이미 제목 자체에 기입돼 있기도 하지만, 여러 소개/해설들을 통해 잘 알려진 것이기도 하다).

책을 열자마자 '감사의 말씀'에 나오는 첫문장. "독자들도 알아보겠지만, 민족주의에 대한 나의 사고는 에릭 아우얼바흐, 발터 벤야민 그리고 빅터 터너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5쪽) 그러니까 <상상의 공동체>를 읽기 전에 예비적으로 좀 읽어줘야 하는 책이 아우얼바하(아우얼바흐; 아우어바흐)의 <미메시스>, 벤야민의 <일루미네이션>(<조명>), 터너의 <제의에서 연극으로>(현대미학사, 1996) 등인 것. 전공상으론 가장 가까운(아마도 개인적인 면식도 있을 듯한데) 문화인류학자 터너의 책으로 앤더슨이 참조하고 있는 책은 'Dramas, fields, and metaphors : symbolic action in human society'(Cornell University Press, 1974)이지만, <제의에서 연극으로>에서도 그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간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번째 문장. "이 책을 준비하면서 나의 형인 페리 앤더슨과 안토니 바네트, 스티븐 헤더의 논평과 조언으로부터 크게 도움을 받았다." '뉴레프트지' 편집장으로도 유명한 맑스주의 이론가 페리 앤더슨은 사실 베네딕트 앤더슨보다 일찍 국내에 소개되었고 훨씬 잘 알려져 있다. 한데, 페리는 베네덱트의 형이 아니라 동생이다(베네딕트가 36년생이고, 페리는 38년생이다). 물론 영어 단어 brother는 형/동생을 가리지 않지만, 이 경우에 '나의 형'이라고 옮긴 것은 오역이다. 아주 사소하지만(앤더슨 집안 문제이니까), 번역본에 대한 신뢰에 약간 금이 간다(이런 건 그냥 사실 확인만 해보면 되는 것인데). 본문에서 이 금이 더 벌어지지 않기를 바랄 밖에(한데, 그런 사소한 오역은 12쪽에서도 나온다. 홉스봄의 책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가 <1788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로 잘못 옮겨졌다. *확인해보니까 원서 자체의 오타이다). 아래 사진은 앤더슨가의 형 베네딕트와 동생 페리. 

 

형 베네딕트가 훨씬 나이들어 보이는 것은 사진 자체가 비교적 최근의 것이기 때문이다. 작년 봄 방한시에 찍은 것이니까. 그때의 인터뷰 기사 두 건을 옮겨온다. 동아일보와 한겨레의 것이다. 내가 더 집어넣은 이미지들도 있다.  

동아일보(05. 04. 26) “20세기 민족주의는 19세기 민족주의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 21세기 민족주의는 기존의 민족주의와 전혀 다른 ‘돌연변이 민족주의(mutant nationalism)’가 될 것입니다.” 민족주의가 근대의 문화적 산물이라는 학설을 체계화한 베네딕트 앤더슨(69) 미국 코넬대 명예교수가 한국을 처음 찾았다. 그가 1984년 발표한 ‘상상의 공동체: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는 에릭 홉스봄의 ‘만들어진 전통’과 함께 민족 또는 민족주의가 근대에 정치적 목적에 따라 재구성됐음을 정교하게 이론화한 저서로 꼽힌다.

-앤더슨 교수는 한국동남아연구소와 서강대 동아연구소의 공동 초청으로 24일 방한해 26일 서강대 김대건관에서 ‘동남아의 부르주아 과두제’를 주제로 특별강연한 뒤 출국했다. 25일 저녁 그를 만나 최근 동북아에서 거세게 일고 있는 민족주의의 파고(波高)와 관련해 앞으로 민족주의의 전개방향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민족주의는 21세기에도 번성할 겁니다. 민족주의는 이제 우리 몸을 보호해주는 피부 같은 존재가 됐어요.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공동체를 유지해주니까요. 문제는 국내외 갈등상황만 발생하면 이 피부가 벌겋고 크게 부풀어 오른다는 데 있습니다.”

-동북아에서는 민족주의의 파고가 높게 일고 있는 반면 유럽연합(EU)에서는 민족주의를 넘어선 통합의 움직임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그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독일출신의 라칭거 추기경이 (베네딕토 16세)교황이 됐을 때 영국신문에서는 ‘나칭거’(나치+라칭거의 합성어)라는 제목을 뽑을 정도로 민족주의는 모든 나라에 뿌리 깊게 잠복해 있습니다. 지금 민족주의적 성향이 가장 두드러진 나라가 바로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란 점도 이를 증명해요. 동북아의 민족주의 강화현상에도 자본주의화를 택함으로써 혁명의 정통성을 상실한 중국 정부의 국내 정치적 불안감이 깔려있습니다.”

-중국에서 태어나 베트남 유모에게서 자라고 아일랜드 국적으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앤더슨 교수는 19세기와 20세기에 민족주의가 정복과 팽창의 형태로 나타났다면, 21세기 민족주의는 오히려 분열과 해체, 응축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족국가의 확립이 국경선의 성역화로 나타나면서 1960, 70년대 이후 영토를 넓힌 민족국가는 없지만 구소련이나 유고연방처럼 오히려 영토가 나눠지는 경우는 늘고 있어요. 중국 인도와 같은 다민족국가도 이런 움직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겁니다.”

-그는 지구화의 흐름 속에 본토가 아니라 해외에 거주하는 민족구성원들에 의해 민족주의가 근본주의화하는 문제도 지적했다.

“아일랜드 본토에서는 아일랜드의 세계적 축제인 ‘성 패트릭 데이’에 동성애자들의 참가를 진작에 허용했지만 미국 뉴욕과 필라델피아의 아일랜드 인들은 전통에 어긋난다며 절대 허용하지 않습니다. 중국의 대만 공격을 가장 거세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중국 본토인이 아니라 미국의 화교들입니다. 힌두교 근본주의 본부가 있는 곳은 인도가 아니라 영국 런던이죠.”

-앤더슨 교수는 이러한 ‘원거리 민족주의’에는 과거에 대한 자부심과 집착이 숨겨져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민족주의와의 행복한 동거를 위해서는 미래지향적 시각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겨레(05. 04. 27) “동남아시아에서 90년대 사회 개혁 움직임이 거세게 일어났지만 거의 성공하지 못했다. 동남아 사회의 중산층을 이루는 화인들이 개혁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 민족주의 연구의 권위자 베네딕트 앤더슨(69) 미국 코넬대 정치학과 명예교수는 26일 오후 서강대에서 한국동남아연구소와 서강대 동아연구소 주최로 열린 ‘동남아의 부르주아 과두제’ 강연에서 ‘도발적’인 문제제기로 말문을 열었다.

-앤더슨 교수는 70년대까지 군부나 우파의 독재정권이 집권해 온 동남아 나라들이 80년대 이후 민주화와 개혁을 추진했지만, 중산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화인(거주국의 국적을 취득한 화교)들이 공적인 문제에 무관심하기 때문에 개혁이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민주화나 개혁이 성공하려면 고등교육을 받고 경제력이 중산층이 나서야 하는데, 동남아 화인들은 경제적 성공에만 치중할 뿐 정치나 공적 영역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에서 주로 농사를 짓던 화인들은 자연재해나 아편전쟁 등의 정치적 변화를 계기로 동남아 각 지역에 정착했으나, 현지 문화에 동화하지 못해 현지의 사회·정치적 문제가 ‘내 일’로 다가오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칸 영화제에서 <열대병>(2004년)으로 심사위원상을 받은 타이 영화감독 아피차퐁 위라세타쿤이 정작 타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도 이와 연관시켜 설명했다. 타이의 민족주의적 문화나 정신을 표현한 작품에 화인들이 동질감을 느끼지 못해 투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동남아 화인들이 각 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예컨대 인도네시아 화인 인구는 3.5%에 불과하지만 전체 상장기업 시가총액의 73%에 이르는 지분을 갖고 있다. 말레이시아나 타이, 필리핀 등에서도 소수의 화인들이 전체 민간 자본의 50% 이상을 갖고 있다.

-화인들에게 부가 집중되면서 집권세력과 화인들의 관계는 자연스레 상호보완적으로 발전해 갔다. 화인들은 세금으로 집권층의 재정을 채워줬고, 집권층은 이들의 경제활동을 보장해 줬다. 화인들의 유교적 가부장 문화와 동남아 나라들의 압제적 권력구조가 비슷한 것도 이들이 정치 개혁에 나서지 않는 한 이유라고 앤더슨은 덧붙였다.

-앤더슨 교수는 대표적 저서 <상상의 공동체: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성찰>(1983년)에서 민족의 개념을 ‘본래 제한되고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되는 정치공동체’라고 규정해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리고 최근에 동아일보 게재됐던 신용하 교수의 탈민족주의론 비판. 신교수는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의 권위자이며, (당연하지만) 대표적인 민족주의 옹호론자이다. 그의 기본입장은 '제국주의적 민족주의'와  '민족해방적 민족주의'를 구별하고 이 둘을 동일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그러니까 일제의 침략적 민족주의와 한국의 저항적 민족주의는 같지 않다는 것). 따라서 섣부른 민족주의 비판은 목욕물과 함께 아이까지 내다버리는 격이라는 게 신교수의 비판이다.    

동아일보(06. 03. 04) 민족은 상상 속에서 만들어 낸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배우고 믿어 왔듯 우리의 존재를 규정하는 근원이자 완성일까. 민족주의의 권력 지향성과 배타성 등 부정적 측면을 지적하며 탈(脫)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움직임이 최근 몇 년 사이에 국내 학계에서 확산돼 왔다. 탈민족주의자들은 민족은 상상에 의한 허구라고 주장한다. 반면 민족은 허구가 아닌 실재하는 공동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에 따라 민족주의와 탈민족주의를 둘러싼 학계의 논쟁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신용하(愼鏞廈) 한양대 석좌교수가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는 국내 학계의 탈민족주의 움직임에 대해 포문을 열고 나섰다. 일제하 독립운동사를 주로 연구해 온 신 교수는 한국사회학회 학회지 최근호에 실린 논문 ‘민족의 사회학적 설명과 상상의 공동체론 비판’에서 탈민족주의 이론의 고전으로 꼽히는 베네딕트 앤더슨 미국 코넬대 명예교수의 대표 저서 ‘상상의 공동체: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1984년)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신 교수가 최근 왕성하게 영역을 넓혀 가고 있는 국내 탈민족주의 진영의 학자들을 직접 거명하진 않았지만 이들을 겨냥한 것은 분명하다. 신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내 논문을 계기로 탈민족주의 진영의 학자들과 일대 논쟁을 벌이고 싶다”고 밝혔다. 앤더슨 교수는 <상상의 공동체>에서 ‘민족’이란 개념이 유럽의 식민지였던 아메리카 대륙에서 백인 이주민의 후손(크리올료)들이 유럽 본토인과 다른 자신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면서 발명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 후 민족 개념이 유럽과 제3세계로 퍼져 나갔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신 교수는 민족은 공동의 언어·혈연·문화공동체라는 객관적 요소에 민족의식이라는 주관적 요소가 더해져 공고해진 실체라고 반박했다. 객관적 요소들로만 형성된 민족을 ‘즉자(卽自)적 민족’이라고 한다면 주관적 요소인 민족의식이 더해진 민족을 ‘대자(對自)적 민족’이라 부를 수 있다는 것. 그런데 ‘상상의 공동체론’은 주관적 요소인 민족의식에만 주목한 나머지 ‘즉자적 민족’을 부인하고 있다는 게 신 교수의 지적이다. 신 교수는 “앤더슨 교수가 ‘상상’이란 표현을 통해 민족을 허위의식, 허구,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몰고 갔다”며 “‘상상의 공동체론’을 약소민족의 해방 투쟁에 적용하면 실재하지도 않은 ‘상상물’을 해방시키기 위해 투쟁한 우스꽝스러운 것이 된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이어 “‘상상의 공동체론’은 오늘날 제3세계의 민족해방, 민족통일, 민족국가 건설과 발전을 비판하고 부정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이론적 도구를 제공할 수 있으나 사실에서 이론을 정립하는 경험적 사회과학으로서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맹비판했다. 신 교수는 민족을 ‘에스닉 그룹(ethnic group)’의 일환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비판했다. 에스닉 그룹은 다민족국가인 미국에 적용될 수 있는 ‘문화와 관습의 하위공동체’로서, 민족 형성 이후에 다른 지역에 이민한 탓에 민족의 특성이 많이 해체 소멸돼 가는 정태적 공동체라는 것. 반면 민족은 한 사회의 다수집단의 언어·지역·혈연·문화의 공동체로서 형성돼 발전되어 가는 동태적 문화공동체라는 게 신 교수의 설명이다.

-신 교수는 민족주의를 크게 ‘제국주의적 민족주의’와 ‘민족 해방적 민족주의’로 구별해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국주의적 민족주의는 과거 서구 제국과 일본처럼 다른 약소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빼앗고 억압하는 민족주의이고, 민족 해방적 민족주의는 피압박 민족들이 제국주의의 침략에 저항해 민족의 자유와 해방,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민족주의를 말한다. 그는 “제국주의적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 논리를 그대로 적용해 민족 해방적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사회과학 방법론의 기초인 유형화를 소홀히 한 잘못된 비판”이라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제국주의 침략 아래 신음하는 자기 민족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생명을 바친 행동이 민족주의 문필가들의 선동에 속아 존재하지도 않는 ‘상상물’에 생명을 바친 어리석은 행동이란 말인가”라고 반문하며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가 아니라 ‘실재(實在)의 공동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하는 기자의 보충기사로 탈민족주의론자들의 견해를 정리하고 있다.

■ 脫민족주의자 주장은 한국의 민족주의는 일제강점기의 가혹한 시련을 견뎌내며 광복과 건국, 근대화와 통일이라는 거대담론을 이끌어 온 견인차였다. 최근에는 세계화의 거센 물결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으로서 민족주의를 외치는 현상이 강화되면서 한국의 민족주의가 더욱 번성하고 있다. 탈민족주의자들은 이러한 민족주의를 “현대의 신화”라고 지적하며 성역화된 민족주의의 이면에 감춰진 권력지향성, 배타성, 집단성, 가부장성 등을 폭로한다.

 

 

 

 

국내의 탈민족주의 담론을 주도하는 학자로는 임지현(林志弦·역사학) 한양대 교수가 첫손에 꼽힌다. 임 교수는 1999년 <민족주의는 반역이다>라는 도발적 저서를 통해 이념으로 기능해 온 민족주의를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식민시대 민족이 국가의 공백을 채워 주는 절대적 신화였다면 광복 이후에는 남북 양쪽에서 모두 권력 유지를 위한 대중 동원 수단으로 쓰였다고 주장하며 민족주의와의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영훈(李榮薰·경제사) 서울대 교수도 탈민족주의를 주장하는 대표적 학자다. 이 교수는 ‘민족’이라는 말이 러-일전쟁 이후 일본에서 수입된 것이고 백두산을 ‘민족의 영산’으로 신격화한 것도 근대의 산물일 뿐이라며 ‘민족주의는 반(反)지성적 신화’라고 맹공을 퍼붓는다.

박지향(朴枝香·서양사) 서울대 교수도 빼놓을 수 없는 논자. 탈민족 담론의 고전으로 꼽히는 영국의 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만들어진 전통>을 번역한 박 교수는 민족주의를 절대적 가치로 내면화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라고 비판한다.

철학가 탁석산(卓石山) 씨도 <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한다>라는 저서에서 한국에서 ‘민족’은 구한말이나 일제강점기처럼 국가 건설이 불가능했던 시기 국가의 대체물로 만들어진 상상의 공동체였던 만큼 국가 수립 이후에는 ‘시민’으로 대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의 시위 모습이다. 끝으로 마지막 자료는 교수신문에 기고된 김봉률 교수의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 비판"(05. 12. 21). 강조는 나의 것이다.

-이안 와트가 18세기 중엽에 '소설의 발생'을 강조하는 것은 18세기 중엽에 소설이 발생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1958년에 <소설의 발생>(열린책들, 1988)이 출간될 때 소설 발생이 제도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2차 대전 후 미국은 영국을 능가하는 자본주의 진영의 종주국으로 짧은 역사와 전통의 부재라는 특유의 미국적 콤플렉스를 해소하고자 했는데 소설과 관련해서 이루어지는 장르정치학 역시 그 작업의 일환이다. 더 나아가 콤플렉스 해소에 멈추지 않고 근대 민족주의가 미국에서 기원했다는 주장과 함께 소설 역시 미국에서 발생했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근대성의 기원을 전유하려는 전도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과정이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와 낸시 암스트롱과 레오나드 텐넨하우스의 <상상의 청교도>(The Imaginary Puritan)에서의 민족주의와 소설의 미국적 전유에서 잘 나타난다.

-근대 영국 자본주의에서 소설이 발생했다는 와트의 명제가 일단 미국에서 제도화되면 두 가지 현상이 생긴다. 첫째는 소설 기원의 문제가 일반 소설의 기원인가 아닌가에 대한 의문과 서구 근대 소설의 기원이 과연 근대 영국에서 일어났는가 아닌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는 은폐, 배제되고 당연히 소설은 근대 영국에서 발생한 것으로 전제된다. 둘째는 영국과 미국의 관계가 전도된다. 영국에서 기원이 되는 소설이 리얼리즘이고 미국에서 기원이 되는 소설이 로망스라는 전도된 관계는 언제든지 영국 기원설을 미국이 전유하게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암스트롱과 텐넨하우스가 1992년 '상상의 청교도'에서 주장한 ‘소설의 미국 기원설’은 미국적 예외주의를 논리로 내세운다. 소설의 근대영국 기원설이 유럽문학의 전통에서 하나의 예외라는 영국적 예외주의에서 출발했다면 미국적 예외주의 역시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문제의식은 “영국문화가 식민지적 환경 속에서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준 반면 식민지의 글쓰기가 대서양을 가로질러 영국으로 되흘러 갔을 때 일어났던 것을 탐색해보려고 하는 학자들은 거의 없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들이 보기에 “소설은 무엇보다 최초로 유럽적 장르가 아니고 오히려 식민지 경험을 동시에 기록하고 기록했던 장르”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식민지에서 영어(English) 정체성의 새로운 토대를 창조했던 인쇄문화라는 것이다.

-미국 내에서도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런 주장이 있기 위해서 그 전사로서 있어야 되는 것이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이다. 앤더슨이 강조하는 것은 민족이 상상의 공동체라는 것보다 미국이 근대 민족주의가 최초로 기원한 나라라는 것이다. 그는 개정증보판 서문에서 자신의 이러한 주장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주목받지 못한 것에 분개하면서 “현 세계의 모든 중요한 것은 유럽에서 기원하였다는 기만에 익숙한 유럽 학자들에” 반기를 들고 “민족주의가 신세계에서 발원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나의 원래 계획의 일부였다”(13-4)고 주장한다. 이처럼, 아메리카 대륙, 특히 미합중국에서 발원한 민족주의가 유럽으로 건너가 언어 민족주의를 유발시켰다는 것은 소설이 미합중국에서 발생해서, 기원의 소설로 주장되는 영국의 <파멜라>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과 같은 논리구조를 이루고 있다.

-앤더슨의 쇼비니즘은 근대 서구소설의 기원과 관련해서 중요한 언문일치와 민족의 문제에 관한 고찰에서 잘 드러난다. 앤더슨에 의하면, 16세기에 서구사회에서 이윤을 위한 지방어 서적의 대량 출판은 다양한 방언들을 소수의 표준어로 활자화함으로써 가능하게 되었다. 그 결과 동일한 지방 활자어 서적을 읽는 독자들은 다른 지방 활자어를 읽는 사람들과 구별되는 유대를 상상하고 의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언문일치가 종교개혁, 자본주의, 절대주의 시대의 지방행정어 등에 의해서 이루어졌다하더라도 수많은 방언들이 난립해 있었고 이를 차츰 해소하여 민족의 경계를 정할 정도의 독점적 언어의 지위를 차지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활자어로 보고 있다. 이 활자어들은 신문과 소설을 통해 나타난다. 그는 “사회적 유기체가 동질적이고 공허한 시간을 통해 달력의 시간에 맞추어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것은 역사를 따라 앞으로(혹은 뒤로) 꾸준히 움직이는 견실한 공동체로 민족을 생각하는 것과 정확히 비유가 된다”고 하면서 민족의 기원과 소설의 기원을 동일시하고 있다. 앤더슨의 인쇄에 대한 강조는 민족과 소설을 함께 묶어 상상의 실재로 만드는데 있다.

-그런데 그에게 상상의 공동체는 민족만이 아니다. 중세 제국도 종교적 “상상의 공동체”이고 세계사적 조건에서 자본가도 “본질적으로 상상의 기반 위에서 결속력을 성취한 최초의 계급”이다. 자본가 계급을 결속시키는 것 역시 앤더슨에게는 활자어로 소설과 신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논리대로라면 근대적인 것 뿐 아니라 모든 것이 상상의 산물이 된다. 그런데 그가 상상의 공동체로서 민족을 형성하는데 활자어로 된 소설과 신문의 역할을 중점적으로 놓은 것은 일종의 문화적 기술주의이다. 문화의 물질성을 밝힌다는 것이 문화가 물질성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전도된 분석방법을 쓰고 있다.

-앤더슨에 따르면, 초기 서적시장은 라틴어를 아는 소수 엘리트를 겨냥하였으나 인쇄술이 발달하여 16세기 초에 이미 ‘기계제 재생산’의 시대에 들어서서 인쇄자본가들은 대량출판에 눈을 돌렸다. 이미 16세기에 인쇄가 상상의 공동체를 매개할 수 있는 수준에 와 있는데 왜 하필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인쇄만이 최초로 상상의 공동체를 형성케 하여 민족됨(nationness)을 먼저 자각하게 했을까? 앤더슨은 인쇄된 자국어물들은 단지 “절대주의 전제정”을 중앙화의 도구로 제공했을 뿐이고 어떤 “원형적 민족적 충동”도 없었으며 “백성들에게 언어를 체계적으로 부과한다는 생각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절대주의 체제에 대한 필자와의 인식의 차이를 드러내지만, 무엇보다도 민족됨이 공화국의 문제임을 주장하기 위한 예비과정이다.

-그는 언어와 종교의 공통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전쟁을 했던 크리올과 본토인의 차별의 문제로 전환한다. 앤더슨은 근대 민족국가의 구체적 형성이 결코 특정 활자어가 결정적으로 도래한 것과 동일한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의식적으로 스스로를 민족이나 공화국이라 정의한 1776년에서 1838년 사이에” 나타난 새로운 정치실체인 미국에서 최초의 민족됨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의 “민족됨”의 주장은 민족과 국가라는 두 가지 뜻을 지닌 nation을 혼용하여 반증 회피의 수단으로 삼는다. 사실상 이들이 자각한 것은 민족됨이 아니라 국가의 형성 필요성이었으며, 또한 북미 독립운동을 한 13개 식민주의의 많은 지도자들은 노예를 소유한 부자 농업가들로 사실상 인디언이나 흑인 노예 그리고 프랑스나 스페인계의 일반인들과는 다른, 거의 봉건시대 영주들과 비슷한 지위를 지닌 자들로 근대적 민족의 범주와는 다르다.

-그는 인도를 동인도회사령으로 삼은 것을 예로 들면서 17세기 이후의 해외영토 정복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는 민족주의 이전 시대의 것”으로 정리한다. 그런데 해외 식민지 정복은 선박의 건조나 군대, 엄청난 경비 등으로 인해 국가적 지원체계가 꾸려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고 따라서 절대주의 체제나 그 이후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민족주의의 시원을 식민지 본국으로부터 차별을 당하는 크리올의 반항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또한 그것을 모방하여 유럽이 민족주의체제로 나아갔다는 전제 아래 입헌군주제나 절대주의 체제에서의 민족국가의 문제를 배제하였다.

-암스트롱과 텐넨하우스가 제기하는 문제는 '파멜라' 이전에 글쓰기 능력만을 지닌 평범한 여성의 육체를 중요시하는 소설들이 영국 내에서 없다고 할 때 이런 󰡔파멜라󰡕의 전통은 어디서 왔는가하는 것이다. 그들은 귀족에 대한 담론과 보통 사람에 대한 담론이 소설에서 분기하는 지점은 영국적 미국인인 메리 롤란드슨(Mary Rowlandson)이 쓴 <되찾은 포로>(The Redeemed Captive)(영국판 1682)에 있다고 보고 영국 산문의 원천이 되는 것은 17세기 말과 18세기 동안 북 아메리카 식민지들에서 씌어진 포로 서사라고 한다. 이들에 따르면, 17세기 인디언 포로서사에서 장르가 증식되고 분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롤란드슨은 납치된 몸으로 신세계에서 영국을 대표한다. 그는 인디언 즉 비영국적 문화 가운데서 문자해독의 힘을 보여준 영국여성으로서 영국적 미국의 경험이 되는 원천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영국적인 것을 생각해야 되기 때문에 이들 포로서사가 독자들에게 영국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바꾸길 요구하는 데 그것은 문자해독능력 곧 영어를 읽고 쓰는 능력의 문제이다. 특히 프랑스 혁명기 동안 프랑스 인들은 영국인 등장인물에 위협이 되었지만 후기의 포로서사에서 영국인 개인을 유럽 태생의 남녀와 구별해주는 것은 영어에 대한 문자해독능력이었다. 이렇게 해서 “영어”는 영국적인 것의 핵심이 되고 식민지에서 근대 국가의 탄생 문제와 결합한다.

-식민지 모국인 영국에서 독립할 때 민족의 문제에서는 언어를 배제했지만 독립한 이후 민족의 문제에서는 영어 활자어가 상상의 공동체를 형성했다는 앤더슨과, 인쇄된 영어로 씌어진 포로서사가 최초의 소설이라는 암스트롱과 텐넨하우스는 소설과 신문을 통해 인쇄된 영어를 내세움으로써 유럽대륙과 아시아를 배제하고 급기야 영국을 배제하고 자신들이 민족주의와 소설의 기원을 전유하는 장르정치학의 놀라운 귀결을 보여준다.

김봉률 교수의 글은 '쇼비니스트' 앤더슨에 대한 흥미로운 비판을 담고 있는데, 이에 대한 판단은 <상상의 공동체>을 읽어본 후에 내리도록 하겠다(원서를 오늘 입수했다). 한데, '민족'이 비록 '상상의 공동체'라 하더라도 실감나는 공동체인 것만은 분명하다...

06. 3. 15 - 16.

P.S. 베네딕트 앤더슨 이전에 민족주의 연구에 있어서 최고 권위자는 한스 콘(1891-1971)이었다. 국내에는 그의 <민족주의>(삼성문화재단, 1974), <민족주의시대>(박영사, 1975), <근대 러시아, 그 갈등의 역사>(심설당, 1981), <19세기 유럽 민족주의>(탐구당, 1990) 등의 번역/소개돼 있고, 내가 학부시절에 읽은 것도 그런책들이었다. 앤더슨이 내세우는 것은  이러한 민족주의 연구 접근법에 있어서 자신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평가는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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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水巖 > 한글날에 생각나는 책들


한글날에 생각나는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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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신교의 미국주의, 그 식민지적 무의식에 대하여


김진호 | 󰡔당대비평󰡕 편집주간․목사


1. 후발대형교회적 신앙과 미국주의

한국교회의 대형화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독보적이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교회 대형화’의 문제가 비단 양적 현상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현실적 규모에 관계없이 대형화는 거의 모든 교회가 갖는 ‘선교적 욕망’의 대상으로 실재한다. 지금은 좀 덜하기는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많은 교회들이 매주 발행하는 주보의 표지에 교회 이미지를 실었다. 이때 그 교회 이미지는 자신들의 예배터인 실재 공간이라기보다 자신들이 동일시하고 있는 대형화된 상상적 가공물인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공간의 상상적 동일시를 통해 대형 교회의 신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은연중에 표상되어 있는 것이다. 또 “(교회) 부흥하세요” 같은 말이 인사말이 될 정도로 신앙언어에서도 대형 교회에 대한 욕망은 일상화되었다. 요컨대 ‘대형 교회’는 교회의 규모에 관계없이 일반적인 한국 기독교 신앙제도의 주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대형 교회적 신앙은 힘에 대한 동경과 숭배를 신앙화한 결과이자 원인이다. 이때 힘에 대한 신앙적 욕망은 한국 기독교의 미국에 대한 선망과 겹친다. 이러한 겹침의 역사적 배경과 함의를 살피는 것이 이 글의 과제다.
그런데 대형화된 교회의 신앙제도는 최근 두 가지로 분화된 양상을 띤다. 하나는 1960년대 이후, 특히 1970년대와 1980년대 전반기의 한국 근대화과정에서 급성장한 교회의 신앙제도와 연관된다면, 1980년대 후반 이후 급부상한 교회의 신앙제도와 연관되는 현상이 다른 하나다. 이 글에서는 이 두 유형의 교회를 각각 ‘선발 대형 교회’와 ‘후발 대형 교회’라 부르겠다.
이렇게 두 가지 이념형으로 유형화할 수 있는 대형교회간의 차이를 보여주는 일련의 사태들이 최근 벌어지고 있다.
담임목사직 세습, 2003년 이후 수차례에 걸친 대규모 반공・친미적 (시청) 집회, KBS와 MBC TV의 기독교 비판 프로들에 대한 기독교도들의 부적절한 방식의 항의, 아프간・이라크전쟁에 대한 교회의 친미・호전적 태도, 비민주적 권력독과점 관행의 제도화에서 기인한 갈등이 각각의 약한 고리를 통해 표출된 영락교회와 광성교회 사태, 남아시아 해일 재앙에 대한 김홍도 목사의 발언 등, 사회적으로 부정적 이미지로 비쳐진 일련의 사태들은 선발 대형 교회적 유형의 신앙이 일반대중의 인식과 불화를 일으킨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KBS 제1TV의 <특별기획. 한국사회를 말한다>의 2004년 10월 2일자로 방영된 ‘선교 120주년, 한국교회는 위기인가?’, 󰡔한겨레21󰡕 536호(2004.12.2)의 커버스토리 <성도들이여 봉기하라>, 󰡔시사저널󰡕 790호(2004.12.16)의 커버스토리 <순복음교회, 헌금의 비밀>, 그리고 시사격월간지 󰡔아웃사이더󰡕 12호(2003.4)의 커버스토리 <한국 개신교 다시 보기> 등, 한국의 주요 대중매체들이 기획한 기독교에 대한 심층적 비판들은 한결같이 선발대형교회의 문제적 행보에만 주목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는 이 유형의 한 가운데 있는 신앙 기구다.
한편 기독교의 어떤 사회적 행보들은 커다란 반발을 초래하지 않고, 더 섬세하게 사회의 논쟁 지평 속에 우파적 관점으로 개입해 들어가곤 한다. 문화적 영역에서 기독교적인 보수주의적 윤리관을 통한 사회개입에 방점을 둔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이하 기윤실)와 정치적 차원의 개입을 지향하는 ‘기독교 사회책임’ 등, 이른바 ‘기독교 NGO’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한국기독교개혁운동’, ‘공의정치 실천연대’, ‘학원복음화 협의회’ 등은 기독교사회책임의 외곽단체로서 인적, 재정적 지원 기구의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꼭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런 기구들은 후발 대형 교회를 가능하게 했던 사회문화적․정치적 신앙관과 연속적이며, 그 주체들도 깊은 연관성이 있다.
이들(선발 대형 교회든 후발 대형 교회든)은 종교적으로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보수적이며, 미국에 대한 선호와 신앙 간의 괴리를 상대적으로 덜 체감한다는 점에서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동시대 한국 근대성과의 호응 차원에서 양자는 극명하게 대조된다. 선발 대형 교회 유형의 신앙이 오늘날 한국사회의 ‘지체된 근대성’의 전형을 보여준다면, 후발 대형 교회 유형은 우리 시대의 합리성과 보다 잘 부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사회의 정치지형이 보수주의가 압도하는 가운데, 개발독재시대의 합리성에 더 적합한 분파와 민주화시대의 합리성에 더 강한 호소력을 지닌 분파간의 갈등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고 한다면, 교회적 신앙간의 대립구조는 그러한 양상의 신앙적 버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교회의 보수주의는 정치지형보다 훨씬 더 우편향적이라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여기서 길게 얘기할 수는 없지만, 전자가 돌진적 성장(rush-to growth) 나는 이 시기가 양적 측면에 과도한 비중이 두어진 형태의 발전전략의 시대라는 점에서, 한스 랜스버그의 rush-to development 개념을 rush-to growth로 수정하고 있는 김대환의 지적에 동의한다. 김대환, 「돌진적 성장이 낳은 이중 위험사회」, 󰡔계간 사상󰡕 (1998 가을) 참조.
시대의 한국 근대성과 맞물리는 시기에 양적으로 급성장한 교회적 신앙 유형이라는 점과 후자가 민주화시대의 한국 근대성과 부합하면서 양적으로 급부상하였다는 점에서 양자의 차이를 읽는 사회적 맥락을 조명할 수 있다. 민주화시대는 과거 권위주의시대와는 다른 방식의 위기를 내포한다. 특히 내가 주목하는 것은 ‘시대의 야만이 은폐되면서 작동’하는 메커니즘이 민주화시대의 주된 특징이라는 점이다. 바로 이처럼 후발 대형 교회의 외양은 세련되고 부드러운 듯하지만, 그 담론들을 들여다보면 폭력적인 요소들이 그 존재의 축을 이루고 있다.
내가 여기서 대형 교회 신앙의 두 유형에 관해서 얘기한 것은, 최근 널리 확산되고 기독교(의 선교)의 위기에 관한 논의에 개입하고자 해서이다. 선발 대형 교회가 기독교를 과대대표하고 있는 것처럼 인식되는 상황에서 교회의 사회적 위상은 급속도로 실추하고 있는 형편에 있다. 비기독교측은 고사하고, 천주교와 개신교의 설문조사들 가톨릭대학교 인간학연구소의 '근현대 100년 속의 가톨릭교회’ 연구프로젝트 일환으로 발표된 원고인 박문수의 「2003 한국천주교의 사회적 역할과 근대화 기여에 대한 국민의식조사 결과에서 나타난 한국 천주교회의 경쟁력과 선교・사목적 과제」(www.minjungtheology.net/의 ‘월례포럼’ 43번)와 한신대학교 학술원 신학연구소의 󰡔한국 개신교와 한국 근현대의 사회 ․ 문화적 변동󰡕 (한울아카데미, 2003)를 참조하라.
조차 한국의 주요 종교들 가운데 가장 신뢰도가 낮은 집단으로 한결같이 개신교가 지목되고 있다는 점은 이러한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욱이 민주화가 진전되고 소비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개인적 주체화가 강화되는 현재의 맥락에서 몰개인적인 공동체적 주체성을 과도하게 주장하는 신앙은 또 다른 차원에서의 위기를 드러내는 요소다. 그것은 교인 충성도의 현저한 약화로 나타났다. 집회 출석률, 전년 대비 헌납 비율, 목회자나 장로 등 교회 지도자에 대한 존경도 등이 낮아지거나, 적어도 성장이 멈추어 있다. 또 가장 개인주의적인 세대인 청(소)년층이 사라져가고 있는 추세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분명 기독교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에 기반을 둔 위기론은 절반의 진실만을 담고 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교회의 존재방식과 관련해서 보면 위기론은 아직 현실이 아니다. 실제로 한국 역사에서 개신교는 대중보다는 권력에 대한 배려를 우선시함으로써 존속・발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이나 장관, 국회의원 등 한국의 정치엘리트 집단 가운데 개신교도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사실은 바로 그것을 단적으로 시사한다. 지난 16대 국회의원 가운데 개신교와 천주교 신자의 비율은 전체의 60%에 달한다. 인구 대비 기독교인 수가 30%를 넘어본 적이 없고,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 호감도가 언제나 그리 높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기독교의 사회적 지위의 요체는 대중의 지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 접근성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컨대 대중사회의 지지도가 그다지 높지 않더라도 권력에 대한 접근성이 현저히 높은 집단이라는 점에서 기독교는 자신의 주장을 의제화하고 제도화하는 강력한 능력을 담지한 세력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기독교사회책임’ 같은 도덕적 지명도나 의사표현의 합리성이 높은 집단이 기독교의 정치세력화를 도모하는 현상의 전면에 나섰다는 점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이 기구에는, 부패와 오명으로 얼룩진 한기총의 지도자들과는 달리, 존경과 신망을 한 몸에 받는 교계의 명망가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CBS(기독교방송)가 지난1월 24~25일 신학대 교수, 종교 담당 기자, 목회자, 평신도 등 500명을 대상으로 행한 한국 교회의 과거・현재・미래의 대표적 지도자를 묻는 전화여론조사에 의하면, 한경직, 옥한음, 오정현이 각각 1위로 선정됐다. 또 미래의 지도자 2위는 전병욱이 차지했다. 오정현(사랑의 교회 목사)은 기독교사회책임의 공동대표이며, 전병욱(삼일교회 목사)은 지도위원이다. 그리고 현재의 지도자 5위에 랭크된 김진홍(두레교회 목사)은 공동대표의 한 사람이다. 옥한음(사랑의 교회 원로목사)도 조만간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밖에 손봉호(동덕여대 총장), 서경석(조선족 교회 목사), 김일수(기윤실 공동대표), 윤경로(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 이동원(지구촌교회 목사), 이중표(한신교회 목사) 등 신망이 높은 보수적 인물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보듯 근본주의적 기독교 보수세력의 정치개입은 ‘정치의 (근본주의적) 도덕화’를 낳을 우려가 있다. 정치가 (근본주의적으로) 도덕화된다는 것은, 민주적 의사소통 과정보다 ‘원리’에 준거한 정치행위가 강화된다는 것을 뜻한다.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질서로 양분된 세상에서 선을 배타적으로 대표하는 도덕의 존재란 그것을 둘러싼 모든 논쟁과 대화를 중단시킨다. 그러므로 이런 사회에서 합의는 공론을 통하기보다 감정 편향적이고 도그마적 신념에 좌우되는 경향을 띠게 된다. 특히 9.11사태에서 비롯된 일련의 미국 사회의 합의 양상은 매우 강한 도그마적 편향을 보이고 있다. 임성호, 「도그마와 컨센서스 사이―테러시대의 미국 민주주의」, 󰡔계간 사상󰡕 (2002 봄) 참조.
이러한 도그마적 합의의 핵심에 있는 부시 미 대통령이 근본주의적 종말론을 신봉하는 ‘메시아적 군사주의자’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김지석, 󰡔미국을 파국으로 이끄는 세력에 대한 보고서󰡕 (교양인, 2004), 74~81쪽 참조.

더욱이 정치의 도덕화는 국제정치적 차원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실행되고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특히 제리 폴웰(Jerry Falwell)이 창설한 근본주의적 기독교 우파 정치조직인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는 낙태, 아동, 여성, 음란비디오 등에 관한 숱한 보수주의적 입법을 주도하였는데, 이들의 신앙적 신념은 바로 도덕적 절대성에 기반을 둔 도그마적 태도에 준하고 있다. 백찬홍, 「기독교우파와 미국의 보수정치에 대한 소고」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2002년 9월 포럼 원고(www.minjungtheology.net) 참조

몇 년 전 ‘기윤실’ 등이 주도한 대중음악이나 영화의 음란성에 대한 보수주의적 개입도 위와 같은 미국의 근본주의적 도덕관과 다르지 않다. 김진호, 「문화 십자군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과 기독교의 윤리―‘성찰 없는 신앙 윤리는 예수로부터의 이탈’」, 󰡔교수신문󰡕 208호(2001.8.27) 참조.
그런 점에서 인적, 신앙적 차원에서 기윤실과 깊은 연계성을 맺고 있는 기독교사회책임도, 비록 아직까지는 정치적인 보수주의에 경도된 듯하지만, 조만간에 도덕의 정치화를 일상 속에서 강화하는 태도를 취할 것이 예상된다. 여기서 ‘일상화’ 현상은 근본주의적 도덕의 정치 문화를 고착화하고 제도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될 때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체감되는 이러한 정치 문화를 거의 불편해하지 않게 되며, 따라서 문제의식을 느끼는 감수성이 퇴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대중사회에 대한 ‘무례함의 제도화’를 뜻한다. 그것은 타자화된 존재를 사회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조직적으로 배제하는 틀이다. 동시에 타자를 생산하는 체계이다. 권위주의시대는 이러한 무례함의 제도화를 통해 사회적 동력이 추동되던 시대였다. 반면 민주화시대는 그것을 지양하려는 사회적 욕망에 의해 발진되었다. 백성이 아닌 시민으로 주체화되었고, ‘양(羊)’이 아닌 ‘성도’로 주체화되었으며, 식솔이 아닌 가족으로 주체화되었다. 한데 민주화는 ‘그 이후의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힘과 그것을 막는 힘의 격전의 장이다. 비시민, 비성도, 비가족 등의 주체화와 타자화의 대립이 민주화의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이때 민주화된 사회의 무례함의 제도화는 이들을 타자화할 뿐 아니라, 그 메커니즘을 은폐함으로써 작동한다. 내가 여기서 민주화 사회의 은폐된 야만에 대해 얘기한 것은 기독교의 정치의 도덕화가 바로 야만을 은폐하면서 작동하게 하는 계기가 되리라고 우려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 개신교의 미국주의를 다루려는 이 글의 주제와 관련해서, 이러한 기독교적 ‘무례함의 신앙’은 힘의 숭배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 무례함의 신앙이 포교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힘’이다. 선교 대상을 압도하는 힘이 수반되어야만, 그 대상인 대중의 삶의 틀, 그 고통의 언어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녀/것)를 자기의 삶의 틀 속에 끌어들이는 것이 가능하다. 한국 개신교가 그토록 맹목적인 친미주의를 신앙의 내적 언어로 이해하게 된 것도 (선교 종주국인 미국의) ‘힘에 대한 선망’을 신앙으로 오인한 결과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신앙은 사실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북미와 독일에서 각각 출간된 두 권의 문제작 클라우스 벵스트의 󰡔로마의 평화―예수와 초대 그리스도교의 평화 인식과 경험󰡕 (한국신학연구소, 1994)와 리차드 호슬리의 󰡔예수와 제국―하느님나라와 신세계 무질서󰡕 (한국기독교연구소, 2004)는 이 주제에 관해 가장 돋보이는 저술에 속한다.
은 팍스아메리카나와 팍스로마나가 담론 구조상 등가물이라는 점을 논증함으로써 힘을 숭배하는 무례함의 신앙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를 보였다. 특히 리처드 호슬리는 미국판 힘의 종교인 팍스아메리카나가 형성되는 과정이 미국적 기독교인 근본주의 신앙의 형성 과정과 긴밀히 맞물리고 있음을 주장한다. 위의 책의 ‘에필로그’ 참조.

나는 다음 절에서 한국의 ‘힘 숭배 신앙’이라 할 수 있는 대형교회 신앙의 뿌리에는 미국식 힘의 종교인 근본주의 신앙의 이식과정에서(특히 해방 전후기) 식민지적 무의식으로 고착화된 ‘부적절한 모방’ 호미 바바는 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방식으로 추구된 ‘모방’ 전략이 식민지 피지배자들에게서 굴절되면서 지배전략을 교란시키는 탈식민주의적 효과를 설명하는 개념으로―'적절한 모방(mimicry)'에 대비되는―‘부적절한 모방(mockery)’이라는 용어를 고안해낸다. 그런데 고모리 요이치는 일본이 제국주의 서구에 대한 부적절한 모방의 결과 또 다른 제국주의 세력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고 주장한다(󰡔포스트콜로니얼󰡕 <삼인, 2002> 참조). 나는 고모리 요이치에 의존하여 이 용어를 쓰고 있다.
이 있었음을 말하고자 한다. 이러한 부적절한 모방의 결과, 한국적 근본주의 신앙은 은연중에 미국적 이상과 하느님 나라의 이상을 동일시하며, 나아가 내・외부에서 타자화된 대상에 대한 식민화를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또 하나의 제국주의적 신앙의 심성적 틀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이다.


2. 한국개신교의 미국주의, 그 심성사적 배경(식민지시대)

구한말과 식민지시대에 개신교는 선교사들의 압도적인 영향력 아래 있었다.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변동이 급속하던 시절에 가족의 생명이나 재산을 보호하거나 신분 상승을 위한 근대적 자산을 획득하는 데 보다 유리한 조건을 얻고자 하는 삶의 전략으로 많은 사람들은 선교사들의 우산 속으로 자발적으로 들어갔고 그들의 ‘법’에 순응하였던 것이다. 김상태, 「평안도 기독교 세력과 친미엘리트의 형성」, 󰡔역사비평󰡕 45 (1998 겨울) 참조.
한데 선교사들의 절대다수가 미국인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개신교는 출발부터 미국 기독교에 대한 의존성이 매우 높은 집단이었다. 특히 전체 선교사들의 과반수에 달하는 미국 북장로회 출신 선교사들의 신학적 성향은 본국 교회보다 훨씬 전투적인 근본주의적 경향을 띠었다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1929년 미국 북장로회는 프린스턴 신학 세미너리의 교수로서 반근대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인 전투적 근본주의 신학운동을 주도했던 메이천(J.G. Machen)을 제명했다. 그런데 조선에 파견된 북장로회 소속 선교사들은 1938년 조선장로교 총회에서 이를 정죄하지 않았다. 또 메이천파 신학자인 박형룡이 일종의 종교재판 심문관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데는 선교사들의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인 비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강인철은 이들의 신앙관을 ‘종교적 민족주의’라고 표현한다. 강인철, 󰡔한국기독교회와 국가・시민사회. 1945~1960󰡕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3), 89쪽.
19세기 말 미국 복음주의연맹의 총무였던 스토롱(J. Strong) 목사는 그러한 미국적 선교의 과제를 전 인류의 ‘앵글로색슨화’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흥수, 「교회와 민족・민족주의」, 󰡔기독교사상󰡕 (1990.3).
선교가 신앙적 동일화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여기에는 ‘인종주의적 동일화’가 수반되어 있다는, 잘 알려진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된다. 그런데 이러한 인종적 동일화 담론에는 ‘인종적 타자화’가 내재되어 있다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호미 바바, 「모방과 인간」, 󰡔문화의 위치󰡕 (소명출판, 2002) 참조.

기독교 구원관 속에는 결코 신성화될 수 없는 존재의 ‘가상적 신성화’라는 관점이 함축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미국적 근본주의 신앙은 결코 인종적으로 동일시될 수 없는 미개한 종족이 포교를 통해 신성한 인종으로 가상적인 변모를 가능케 한다는 확신을 수반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상적’이라는 데 있다. 즉 ‘동일화’는 포교의 주체(선교사)가 대상에게 주는 선물이며, 그 대상은 선교사를 자신보다 개화한 존재로 여기는 순간 ‘개화’라는 옷을 덧입게 되는 것이다. 이때 덧입음이라는 것은 차별화가 내재함으로써 동일화가 수행되는 것을 나타내는 수사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포교 대상은 결코 닮을 수 없다는 인식 속에서 선교사를 선망하며 모방한다. 이렇게 ‘식민지적 무의식’은 선교 담론 속에 내재화되며, 그 속에는 인종주의가 작동한다. 요컨대 기독교적 구원관과 서구의 인종주의는 담론구조상 등가물이며, 미국의 근본주의 속에는 기독교 신학에 대한 인종주의적 재해석이 포함되어있는 것이다. 한국 근본주의 신학운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전투적 근본주의자인 J. G. 메이천도 예외 없이 인종주의적 편견을 갖고 있었다. 죠지 마르스텐, 󰡔미국의 근본주의와 복음주의 이해󰡕 (성광문화사, 1998), 226쪽.

조선에서 미국계 선교사들의 통제는 매우 철저했다. 특히 종교 엘리트 집단인 목회자 형성 메커니즘은 철저하리만큼 선교사들에 의해 장악되어있었다. 재정은 물론이고, 교수임용, 교과내용, 학사행정 등에까지 절대적인 권한이 선교사들에게 위임되어있는 형편이었다. 선교사들보다 더욱 선교사적인, 아니 보다 더 완고한 신앙을 대표한 박형룡은 1930년대에 󰡔신학지남󰡕(평양신학교 신학논문집)에 기고된 김재준의 논문들을 사상 검진하면서 그의 주장에 이른바 자유주의적 색채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것(즉 용이주도하게 숨겨야 했던 것)은 선교사들의 사상통제가 그만큼 심했기 때문이라고 진술한다. 장동민, 「1930~1950년대 한국장로교회에서의 소위 ‘자유주의’ 해석의 문제―송창근・김재준의 신학을 중심으로」, 󰡔한국기독교와 역사󰡕 6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7), 194쪽.
게다가 종교재판을 통해 담론상의 이질적인 것들을 지속적으로 배제함으로써 조선 기독교에 대한 그들의 장악력은 넘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선교주체 중심적인 교회구조는 내부의 동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식민지적 무의식은 피선교국 엘리트들로 하여금 열정적으로 선교사들을 모방하게끔 한다. 아니 오히려 더욱 ‘순수한 동일시’를 열망하게 한다. 이 점에서 메이천파들의 정결주의는 가히 편집증적이다. 이른바 ‘창세기 모세 저작 부인 사건’, ‘아빙돈 성경 주석 사건’ 감리교 선교 50주년을 기념하여 유형기 목사의 책임 편집으로 번역 출간한 아빙돈 단권 주석서를 박형룡이 근대비평을 사용한 책이라고 정죄함으로써 장로회 총회가 이를 문제시하고 번역자들에게 공개사과를 요구한 사건.
등 근대 신학적 시선으로 볼 때는 논란할 가치도 없는 것들을 정죄하고 추방하는 사건의 주역은 메이천파 조선 엘리트들이었으며, 또 교회에서 여권(女權) 문제 같은 근대적 상식 또한 치리와 배제의 대상이 된 것도 바로 이들의 광적인 복고적 순수주의에 대한 선망과 모방의 산물이었다. 조선 기독교의 메이천 파 수장인 박형룡은, 당시 메이천 파의 본거지였던 미국의 프린스턴 신학 세미너리에서도 부분적으로 허용하고 있던 근대비평 방법에 대해 전면적으로 거부하면서, 자신에 의해 근대주의적 신학을 수용했다는 혐의를 받는 이들을 가차 없이 정죄했다. 심지어 박형룡 자신조차 유학 시절 프린스턴 신학 세미너리에 제출한 논문에서도 근대비평을 부분적으로 포용했다. 장동민, 위의 논문, 194~202쪽 참조.
근본주의적 신앙의 모방 행위는 이와 같이 모방 대상을 과도하게 흉내내게 마련이며, 더욱 전투적인 성향을 드러낼수록 선교사들로부터 신임을 받았다.
이런 사정은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지속적으로 협력해왔던 선교사 중심적인 조선 주류기독교가 신사참배 건으로 당국과 불화하고 선교사들이 추방되는 사태에 직면해서도, 선교사 중심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신앙태도가 별반 변화되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해준다.
‘신사 참배’는 근본주의 일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조선 기독교에서 엄청난 사건이었다. 근본주의적 신앙의 시선에서 신사 참배란 논란의 여지없이 종교적 정결에 치명적인 흠집을 내는 것이었다. 전시동원체제로 치닫던 1930년대 후반 정세에서 식민지 당국과 조선 기독교는 서로 막다른 길에서 마주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일로 인해 물적으로나 심성적으로 의존해왔던 선교사들이 강제 추방되고, 적지 않은 조선의 엘리트들이 실형에 처해졌다. 투옥된 70여 명 가운데 20여 명만이 감옥문을 살아서 걸어 나올 수 있었다니, 그들이 겪은 고통이 어떠했는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런데 그에 못지않게 고통스러운 것은 근본주의적 신앙으로 무장한 대다수 기도교도들의 상처였다. 근본주의적 신앙을 포기할 수도 없지만, 대다수는 자기 신앙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그것을 허용해야 했다. 그런데 그것은 아프다고 말할 수 없는 상처였다. 오직 말할 수 있는 자는 목숨을 각오하고 저항한 이들뿐이다. 근본주의 신앙은 이런 상황에서 타협한 자들에게 고통을 표현할 언어를 제공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언어를 빼앗긴 상처는 트라우마로 남으며, 트라우마는 기억의 상실을 낳는다. 고통을 회피하려는 무의식의 언어인 망각은 고통을 다른 것으로 치환함으로써 새로운 기억의 구성에 개입한다. 그렇지 않으면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같은 고통중독성 병증으로 나타나고야 말 것이다. 한데 문제는 트라우마에 의한 치환된 기억은 많은 경우 ‘적을 생산’함으로써, 그리하여 그들에게 고통을 전가함으로써 자신의 고통을 해소한다는 데 있다. 내가 보기에 해방 이후 한국 기독교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서 바로 이 점은 매우 중요한 심성사적 배경이 된다.


3. 해방 후 한국기독교의 미국주의―부적절한 모방으로서의 식민지적 무의식

일제 말기 조선 기독교의 주류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서북지역의 기독교였다. 전체 개신교 신자의 60% 정도가 평안도와 황해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었으며, 선교사들의 지역분할 선교정책인 ‘네비우스 정책’에 따라 이 지역은 장로교 지역에 속하였다. 따라서 서북지역의 장로교회가 당시 한국 기독교의 주류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전투적 근본주의가 가장 극성스러웠던 지역 또한 서북지역이었다.
그런데 신사 참배 문제로 선교사들이 추방되고, 1938년 근본주의의 아성인 평양신학교가 무기휴교에 들어가고, 그 이론적 지주인 박형룡 등이 만주로 망명하게 되자, 형식상 서북 중심적 기독교는 무너진 듯이 보였다. 이 틈에 1939년 서울에서 건립된 조선신학교는 근본주의 신학과 선교사들에게서 벗어나 현대적이고 자주적인 신학과 교회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처럼 보였다.
이 학교의 건립에 핵심 역할을 한 김재준은 5개조로 된 일종의 ‘신학교육 매니페스토’를 발표하였는데, 󰡔한신대학 50년사󰡕 (한신대출판부, 1990), 21~22쪽.
거기에는 근대적 신학을 여과 없이 소개하고 교수가 학생의 사상을 억압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학문의 자유’에 관한 신념이 들어있다. 나아가 “분쟁과 증오”를 일삼는 종교재판식의 감성을 조장하는 신학이 아닌 “신앙과 덕성에 활력을 주는 신학”을 추구한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이것은 논리와 의사소통보다 힘과 권력으로 사고를 통제하는 미국계 선교사와 근본주의 신학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이것은 필경 그 자신은 인식하지 못했겠지만 그 속에 조선 기독교도들의 심성에 내장된 식민주의적 무의식을 향한 우려가 내포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해방 직후부터 표면화된 선교사와 근본주의적 신학의 반격은 한국 기독교의 주축은 여전히 서북‘식’의 기독교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증한다. 여기서 서북‘식’ 기독교라는 표현을 쓴 것은 식민지시대부터 이미 그러한 신학이 초지역적 함의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1947년에 비서북 출신이 다수인 조선신학교 학생들이 먼저 김재준의 신학교육 이념에 문제를 제기하여 총회에 진정서를 낸 것은 그릴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곧바로 서북 출신 메이천파가 주축이 된 종교재판이 사태를 이어갔다.
북한 지역에서 공산주의자들과 충돌한 후 대거 월남한 서북 출신 기독교도들이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38선 이남지역에서 기독교의 헤게모니 세력이 될 수 있었는지, 나아가 남한 사회 전체를 주도하는 세력의 하나가 될 수 있었는지 이해하는 데는, 이제까지 이야기한 식민지시대부터 고착화된 선교사 중심적인 서북식 기독교의 신앙적 헤게모니라는 배후를 염두에 두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 앞장의 말미에서 언급한 신사 참배의 트라우마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정결주의적 근본주의 신앙과 신사 참배 강압에 승복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경험 간의 모순을 체험해야 했던 범서북 기독교 신자들의 트라우마는 해방 직후 월남하기까지 서북 출신 기독교도들이 좌파 정권에 의해 탄압받았던 경험을 마치 자신의 경험처럼 일반화함으로써 고통스러운 기억을 전이시킬 출구를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우면서도 말할 수 없었던 기억을 다른 이들에 대한 증오라는 강력한 체면 효과를 지닌 기억으로 치환함으로써 ‘말할 수 있는 것’으로 전이시키는 무의식적 작용이 그들의 트라우마를 ‘자가 치료’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신사 참배 거부 건으로 투옥되었다가 해방 직후 출옥하게 된 이들을 지칭하는 ‘출옥 성도’라는 이름의 십자군들은 그러한 기억의 치환을 위한 적절한 계기를 제공해준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극한의 고통을 감내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배타적인 도덕적 정당성을 담지한 존재로서 받아들여졌다. 그것은 그들의 거부 행위의 의미에 대한 모든 토론의 중단을 의미한다. 친일 잔재의 청산이라는 국면적 대의를 업고서 그들과 그 지지자들은 식민지시대에 모든 교회는 죽었다고 선언하고 고강도의 교계 정화를 부르짖는다. 이른바 ‘교회 재건운동’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상황은 모든 기독교도들이 이 재건운동이 제기한 게임의 룰 속에 말려들지 않을 수 없는 근거를 설명해준다.
그동안 잘 은폐되어왔던 트라우마가 바야흐로 발광할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출옥성도들의 광적인 활동으로 말미암아 무의식 속에 은폐되어온 상처가 도졌다. 근본주의적 신앙을 가진 자들로서는 피할 수 없었던 신사 참배자라는 자학적 오명을 벗기 위해선 ‘악마’의 등장이 필요하다. 자신들의 배신이 얼치기 악마의 모습이라면, 그것과는 비할 수 없는 진정한 악마, ‘악의 축’이 필요했다. 그 무시무시한 괴물을 향해 모든 ‘성도’들이 단결하여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악마 말이다. 초기 그리스도교 운동에서 ‘이스카리옷 유다’의 출현이나 영국 빅토리아조 시대의 드라큘라의 출현 등 역사 속에서 나타난 ‘절대 악마’ 담론은 바로 악마를 요구했던 그 시대의 고통에 대한 기억의 치환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시기에 김재준 탄핵 등 숱한 이단 심판들이 재개된 것은 악마에 대한 시대적 열망과 부합한다. 그러나 진정한 악마는 앞서 말한 것처럼, 서북 출신 기독교도들의 체험을 자기 체험으로 내재화함으로써 비로소 출현한다. ‘반공’은 이 시기 근본주의적 기독교의 상흔에 대한 자가치료의 필요에서 요청된 무의식적 기억의 치환 현상의 결과인 것이다. 해방정국에서 많은 전투적 반공단체들의 면면을 보면 개신교도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두드러진다. 또 기독청년 면려회, 서북연합회, 영락교회 청년회 및 대학생회, 서북학생총연맹 등 전투적 반공주의적인 성향의 개신교 단체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많은 경우 당시의 반공적 테러리즘에 적극적으로 관여되어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반공과 근본주의 신앙 간의 ‘행복한 만남’을 위해 또 한 가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미국의 등장이다. 근본주의적인 조선의 기독교도들이 동경해마지 않던 선교사들의 모국인 미국 군대가 한반도에 진군한 것이다.
일제 식민지 정부를 대체한 미 군정청은 자신의 가장 우호적인 협력자를 기독교에서 찾았음이 분명하다. 해방 당시 미국인과의 접촉을 경험했던 거의 유일한 집단은 기독교, 특히 개신교 신자들이었다. 또 적지 않은 이들이 선교사들에 힘입어 미국으로 유학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그들은 영어를 할 줄 아는 극소수 사람들에 속했으며, 더구나 미국에 가장 우호적인 집단 또한 개신교 신자였기 때문이다. 당시 다시 내한한 선교사들은 이들을 군정 당국에 소개해주었다. 강인철에 의하면, 강인철, 「한국 개신교교회의 정치사회적 성격에 관한 연구. 1945~1960」 (서울대 박사학위논문, 1994)의 ‘개신교 신자의 국가기구 내 분포’ 참조.
1945년 10월 5일 미 군정청이 임명한 한국인 행정관 11명 중 6명(목사 3명)이 개신교 신자였다고 한다. 또 1946년 12월부터 1947년 8월까지 군정청에 의해 임명된 한국인 고위관료 가운데 50% 이상이 개신교 신자였다. 지방 고위 공직자들의 경우 비율(30% 이상)은 상당히 줄지만 인구대비 기독교 신자의 비율(0.52%)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았다. 한편 김상태는 다른 관료들 외에 통역 요원에 관한 정보를 약술하고 있는데, 흥미롭게도 그들은 국내 정치세력의 동향을 군정 당국에 소개해 주면서 좌파계열을 폄하하고 우파의 역할을 실제보다 부풀리곤 했다고 한다. 김상태, 「평안도 기독교 세력과 친미엘리트의 형성」, 198쪽.
아마도 그렇다면 식민지시대 일제의 부역자였던 중하급 관료들을 군정 당국에 소개한 주요 장본인들이 기독교도였다고 추론하는 것이 그리 무리한 상상은 아닐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과정은 한국 기독교와 미국의 상호신뢰 관계를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그것은 미시적 차원에서는 쌍방향적이었겠지만, 거시적으로는 일방향적 소통이었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그들에게서 미국은 하느님 나라의 역사적 현실태에 가까운 것으로 기억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양의 한 목사는 일본의 무조건 항복 소식 이후 미군의 국내 진군을 기다리면서 그들을 ‘구원의 천사 미군’이라고 불렀다. 반면 바라지 않던 소련군이 진주한다는 소식을 접하자 낙망감과 항전의 마음을 가다듬는다. 이것은 미국과 소련을 경험하기 전에 이미 이 두 나라에 대한 선망과 적대가 신앙관으로 고착되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상태, 위의 논문, 195쪽에 인용된 황은규, 「8.15 해방과 평양의 교계」, 󰡔기독교계󰡕 창간호 (1957.8)의 글 참조.
요컨대 한반도에서 미국의 시선은 한국 기독교의 시선이었고, 저들의 위기는 곧 자신의 위기였다. 저들이 추구하는 세상에 대한 열망 또한 자신들의 것으로 내재화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미국계 선교사들에 대한 무의식적 식민의식은 미군정으로 전이되고, 선교사들의 신앙적 메시지는 군정 당국의 사회적 메시지로 환원될 수 있었다. 그것은 신앙의 하느님 나라와 현실의 유토피아로서 미국이라는 상상적 동일시가 그들의 신앙구조 속에 의미화의 코드로서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파간의 반목과 갈등 그리고 분열이 가속화되던 시절, 반공과 친미라는 두 개의 고리는 기독교 각 교파간의 거대한 심성적 연결망이었다. 1949년 당시 최대 교파이던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가 연합하여 ‘합동찬송가’를 만든 것은 그러한 차이 속의 공감이라는 또 다른 예이다. 여기에는 미국 기독교인들이 자기 정체성의 상징으로 여기는, 백인 우월주의가 들어있는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를 포함하여, 미국 대부흥운동기의 수많은 복음성가들이 대대적으로 수록된다. 전체 수록곡의 60%가 미국 복음성가에서 유래하였다.
이것은 한국 기독교를 결속시키는 신앙적 정체성이 어떤 양상을 지녔는지를 읽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준다. 정경(正經, Canon)에 대한 편집증적 집착을 가진 근본주의적 신자들에게 근본주의적 신앙운동의 가장 핵심적 주장은 ‘성경의 무오설’에 대한 확신이었으며, 그것은 근대 신학의 역사비평적 성서 해석에 대한 저항의 맥락에서 제기된 것이다. 그것은 ‘성서(Scriptura)’를 단일 배타적 ‘정경(Canon)’으로 받아들인 고대 유대교와 기독교의 편집증의 근대적 버전에 속한다. ‘정경’의 신앙사와 근대성에 관하여는 김진호, 「탈정전적 성서 읽기의 모색」, 󰡔반신학의 미소󰡕 (삼인, 2001) 참조.
‘정통 찬송’이라는 집착은 정경 못지않은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근대적 비평을 둘러싼 종교재판들처럼 찬송가의 채택 문제도 식민지 시대부터 지속적인 배제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었다. 이것은 한국 개신교가 당시 한국 사회에서 가장 미국적인 감성의 공간이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위에서 ‘출옥성도’ 중심의 교회 재건운동이 촉매제가 되어 신사 참배의 트라우마가 공산주의라는 신앙적 악마를 발명하게 됨으로써 거대한 ‘신앙적 공통감각’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말했는데, 실은 한국 교회사를 다루는 텍스트들은 한결같이 이 시기를 각 기독교 세력간의 분열과 반목의 시대로 기억한다. 게다가 1945년 해방 이후 사회적․이념적 갈등의 폭발적 양상에서 시작되어 1950년에 전면전으로 발전한 ‘한국전쟁’의 비극적 체험을 겪어내면서, 극도의 불안과 공포 상황에서 신비주의적 소종파 운동들이 크게 확산되었다. 물론 수많은 기독교계 소종파들의 탄생도 이 시기에 있었고, 그들은 기성의 제도종교들을 격렬하게 비판하면서 탄생했고 성장했다. 김흥수, 󰡔한국전쟁과 기복신앙확산 연구󰡕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9) 참조.
그럼에도 내가 위에서 한국 기독교의 거대한 동질성에 대해 논한 것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 요소들의 네트워크를 말하기 위함이다.
신사 참배의 트라우마를 자극한 출옥성도들의 활동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공산주의라는 악마의 발명 그리고 이러한 악마의 발명을 가능케 했던 미군정 당국과의 긴밀한 유대라는 네트워크의 배후에는 원인이자 결과이고, 과정을 가능케 한 요소인 근본주의 신앙이 놓여있다. 이것은 선교사들, 특히 미국 선교사들의 신앙이었다. 그런데 그들을 모방하려는 식민지적 무의식은 흰 무명 바지저고리를 입은 조선 사람이 서양 중절모와 선글라스를 낀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부적절한 모방’을 초래했다. 한국적 근본주의는 이렇게 탄생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은 미국주의를 미국인보다 더욱 호들갑스럽게 추구하고 모방하려는 신앙적 욕망을 낳았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이 힘의 숭배 신앙이 교회의 제도 속에 깊숙이 스며들게 된 것이다.


4. 미국주의로서의 힘 숭배 신앙을 넘어서

한국의 대표적 대형 교회의 담임목사이고 ‘한기총’의 임원인 한 개신교 목사는 서울시청 앞 광장 한가운데서 친미 집회를 열면서, 10만이나 되는 한국 개신교 신자들 앞에서 영어로 기도했다. 근본주의적 신앙관에 따르면 기도는 하느님과 기도자간의 내밀한 대화, 아니 청탁이다. 그런데 개신교는 내밀한 기도를 공중 앞에서 하는 신앙제도를 발전시켰다. 물론 실상은 기도자와 청중 그리고 신과의 3자 대화라고 하는 게 타당하다. 그런데 그는 영어로 기도했다. 10만의 청중보다 보지도 듣지도 않을 태평양 건너, 그리고 미국을 횡단하여 끝에 있는 백악관의 누군가와 더 내밀한 관계를 맺고 싶은 욕망을 은연중에 드러낸 셈이다. 그런 심성의 사람이라면, 어쩌면 신이 영어 기도를 더 잘 들어준다고, 적어도 무의식적으로는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신은 미국인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는지도......
교회학교에서 어린아이들에서 하느님을 그리라고 하면 대개 흰 수염이 길게 난 할아버지를 그린다. 그들에게 신은 남성이고 노년의 사람이다. 신앙적 무의식은 이렇게 여성과 연소자를 내부식민지화하는 보수주의적 인식론을 동반한다. 그리고 아마도 위의 목사에서 볼 수 있듯이, 하느님은 미국 시민, 아니 이 세계의 권력자와 오버랩되어 기억될지도 모른다.
최근 이러한 식민화된 신앙은 많은 이들에게 조롱 대상이 되고 있다. 민족주의는 그것을 읽어내는 감수성을 강화시켰다. 그런데 후발 대형 교회적 신앙에서 친미성은 노골적이지 않다. 그들의 맹목적이지 않으려는 균형 잡힌 태도는 도처에서 볼 수 있다. 그들은 민족주의적 감시의 망을 무사히 투과시킨 신앙적 미학을 제도화하는 데 성공하는 듯이 보인다. 그래서 이들의 행보는, 선발대형교회의 그것과는 달리,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지지를 얻고 있다. 대중을 배려하는 듯한 신앙의 제도가 효력을 발휘한 덕이다.
그런데 ‘기윤실’이나 ‘기독교사회책임’ 등 기독교 NGO의 행보에서 보이는 것은, 대중과 대화하기보다 여전히 대중을 계도하는 훈장의 포즈를 유지하려 한다는 것이다. 다만 회초리(심판 담론)로 위협하는 대신, 너그러운 훈장의 모습이 외부로 드러나고 있는 것만 다를 뿐이다. 문제는 이들의 의제가 무수한 소수자를 타자화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는 담론이라는 점에 있다. 여성을 포함한 성적 소수자에 대해 가부장적 가족주의의 도덕을 판단의 잣대로 내세우며, 낙태 문제를 고려할 때 계층이나 성적 평등의 문제를 간과한다.
대중에 대해 배려하지 않는 태도 속에서 그들은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의제 형성 능력과 실행 능력을 통해 그것들을 위로부터 제도화하려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기독교사회책임’의 국면적 지향점은 양대 보수정당의 합리적 보수주의를 연대하게 하여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시킬 대통령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1980년대 이후 미국의 근본주의적 기독교도들의 정치세력화를 흉내낸 것에 다름 아니다.
비록 국제정치 등에서 노골적으로 친미적 태도를 취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이러한 민족주의적 신앙은 미국의 근본주의적 신앙의 부적절한 흉내내기, 그 무의식의 식민화를 보여준다. 아래를 배려하기보다 위를 선망하고 모방하는 것, 그리고 아래를 계도하고 자신을 모방하게 하려는 것. 이것은 그들의 신앙이 곧 힘에 대한 신앙임을 의미한다.
그들의 힘의 신앙은 바로 근본주의 속에 내장된 미국주의의 소산이고, 그들의 그 모방은, 아니 그 부적절한 모방은 남아시아 해일에 대한 한 목사의 발언처럼, 내․외부의 소수자에 대한 식민화를 욕망하는 신앙의 내적 메커니즘이다. 이제 미국은 노골적 친미성으로 표현되기보다는 힘의 숭배 신앙으로 모방된다. 그것은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타자에게 힘의 주체가 되고 싶어 하는 ‘부적절한 모방’, 바로 그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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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신교의 미국주의, 그 식민지적 무의식에 대하여


김진호 | 󰡔당대비평󰡕 편집주간․목사


1. 후발대형교회적 신앙과 미국주의

한국교회의 대형화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독보적이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교회 대형화’의 문제가 비단 양적 현상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현실적 규모에 관계없이 대형화는 거의 모든 교회가 갖는 ‘선교적 욕망’의 대상으로 실재한다. 지금은 좀 덜하기는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많은 교회들이 매주 발행하는 주보의 표지에 교회 이미지를 실었다. 이때 그 교회 이미지는 자신들의 예배터인 실재 공간이라기보다 자신들이 동일시하고 있는 대형화된 상상적 가공물인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공간의 상상적 동일시를 통해 대형 교회의 신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은연중에 표상되어 있는 것이다. 또 “(교회) 부흥하세요” 같은 말이 인사말이 될 정도로 신앙언어에서도 대형 교회에 대한 욕망은 일상화되었다. 요컨대 ‘대형 교회’는 교회의 규모에 관계없이 일반적인 한국 기독교 신앙제도의 주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대형 교회적 신앙은 힘에 대한 동경과 숭배를 신앙화한 결과이자 원인이다. 이때 힘에 대한 신앙적 욕망은 한국 기독교의 미국에 대한 선망과 겹친다. 이러한 겹침의 역사적 배경과 함의를 살피는 것이 이 글의 과제다.
그런데 대형화된 교회의 신앙제도는 최근 두 가지로 분화된 양상을 띤다. 하나는 1960년대 이후, 특히 1970년대와 1980년대 전반기의 한국 근대화과정에서 급성장한 교회의 신앙제도와 연관된다면, 1980년대 후반 이후 급부상한 교회의 신앙제도와 연관되는 현상이 다른 하나다. 이 글에서는 이 두 유형의 교회를 각각 ‘선발 대형 교회’와 ‘후발 대형 교회’라 부르겠다.
이렇게 두 가지 이념형으로 유형화할 수 있는 대형교회간의 차이를 보여주는 일련의 사태들이 최근 벌어지고 있다.
담임목사직 세습, 2003년 이후 수차례에 걸친 대규모 반공・친미적 (시청) 집회, KBS와 MBC TV의 기독교 비판 프로들에 대한 기독교도들의 부적절한 방식의 항의, 아프간・이라크전쟁에 대한 교회의 친미・호전적 태도, 비민주적 권력독과점 관행의 제도화에서 기인한 갈등이 각각의 약한 고리를 통해 표출된 영락교회와 광성교회 사태, 남아시아 해일 재앙에 대한 김홍도 목사의 발언 등, 사회적으로 부정적 이미지로 비쳐진 일련의 사태들은 선발 대형 교회적 유형의 신앙이 일반대중의 인식과 불화를 일으킨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KBS 제1TV의 <특별기획. 한국사회를 말한다>의 2004년 10월 2일자로 방영된 ‘선교 120주년, 한국교회는 위기인가?’, 󰡔한겨레21󰡕 536호(2004.12.2)의 커버스토리 <성도들이여 봉기하라>, 󰡔시사저널󰡕 790호(2004.12.16)의 커버스토리 <순복음교회, 헌금의 비밀>, 그리고 시사격월간지 󰡔아웃사이더󰡕 12호(2003.4)의 커버스토리 <한국 개신교 다시 보기> 등, 한국의 주요 대중매체들이 기획한 기독교에 대한 심층적 비판들은 한결같이 선발대형교회의 문제적 행보에만 주목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는 이 유형의 한 가운데 있는 신앙 기구다.
한편 기독교의 어떤 사회적 행보들은 커다란 반발을 초래하지 않고, 더 섬세하게 사회의 논쟁 지평 속에 우파적 관점으로 개입해 들어가곤 한다. 문화적 영역에서 기독교적인 보수주의적 윤리관을 통한 사회개입에 방점을 둔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이하 기윤실)와 정치적 차원의 개입을 지향하는 ‘기독교 사회책임’ 등, 이른바 ‘기독교 NGO’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한국기독교개혁운동’, ‘공의정치 실천연대’, ‘학원복음화 협의회’ 등은 기독교사회책임의 외곽단체로서 인적, 재정적 지원 기구의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꼭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런 기구들은 후발 대형 교회를 가능하게 했던 사회문화적․정치적 신앙관과 연속적이며, 그 주체들도 깊은 연관성이 있다.
이들(선발 대형 교회든 후발 대형 교회든)은 종교적으로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보수적이며, 미국에 대한 선호와 신앙 간의 괴리를 상대적으로 덜 체감한다는 점에서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동시대 한국 근대성과의 호응 차원에서 양자는 극명하게 대조된다. 선발 대형 교회 유형의 신앙이 오늘날 한국사회의 ‘지체된 근대성’의 전형을 보여준다면, 후발 대형 교회 유형은 우리 시대의 합리성과 보다 잘 부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사회의 정치지형이 보수주의가 압도하는 가운데, 개발독재시대의 합리성에 더 적합한 분파와 민주화시대의 합리성에 더 강한 호소력을 지닌 분파간의 갈등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고 한다면, 교회적 신앙간의 대립구조는 그러한 양상의 신앙적 버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교회의 보수주의는 정치지형보다 훨씬 더 우편향적이라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여기서 길게 얘기할 수는 없지만, 전자가 돌진적 성장(rush-to growth) 나는 이 시기가 양적 측면에 과도한 비중이 두어진 형태의 발전전략의 시대라는 점에서, 한스 랜스버그의 rush-to development 개념을 rush-to growth로 수정하고 있는 김대환의 지적에 동의한다. 김대환, 「돌진적 성장이 낳은 이중 위험사회」, 󰡔계간 사상󰡕 (1998 가을) 참조.
시대의 한국 근대성과 맞물리는 시기에 양적으로 급성장한 교회적 신앙 유형이라는 점과 후자가 민주화시대의 한국 근대성과 부합하면서 양적으로 급부상하였다는 점에서 양자의 차이를 읽는 사회적 맥락을 조명할 수 있다. 민주화시대는 과거 권위주의시대와는 다른 방식의 위기를 내포한다. 특히 내가 주목하는 것은 ‘시대의 야만이 은폐되면서 작동’하는 메커니즘이 민주화시대의 주된 특징이라는 점이다. 바로 이처럼 후발 대형 교회의 외양은 세련되고 부드러운 듯하지만, 그 담론들을 들여다보면 폭력적인 요소들이 그 존재의 축을 이루고 있다.
내가 여기서 대형 교회 신앙의 두 유형에 관해서 얘기한 것은, 최근 널리 확산되고 기독교(의 선교)의 위기에 관한 논의에 개입하고자 해서이다. 선발 대형 교회가 기독교를 과대대표하고 있는 것처럼 인식되는 상황에서 교회의 사회적 위상은 급속도로 실추하고 있는 형편에 있다. 비기독교측은 고사하고, 천주교와 개신교의 설문조사들 가톨릭대학교 인간학연구소의 '근현대 100년 속의 가톨릭교회’ 연구프로젝트 일환으로 발표된 원고인 박문수의 「2003 한국천주교의 사회적 역할과 근대화 기여에 대한 국민의식조사 결과에서 나타난 한국 천주교회의 경쟁력과 선교・사목적 과제」(www.minjungtheology.net/의 ‘월례포럼’ 43번)와 한신대학교 학술원 신학연구소의 󰡔한국 개신교와 한국 근현대의 사회 ․ 문화적 변동󰡕 (한울아카데미, 2003)를 참조하라.
조차 한국의 주요 종교들 가운데 가장 신뢰도가 낮은 집단으로 한결같이 개신교가 지목되고 있다는 점은 이러한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욱이 민주화가 진전되고 소비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개인적 주체화가 강화되는 현재의 맥락에서 몰개인적인 공동체적 주체성을 과도하게 주장하는 신앙은 또 다른 차원에서의 위기를 드러내는 요소다. 그것은 교인 충성도의 현저한 약화로 나타났다. 집회 출석률, 전년 대비 헌납 비율, 목회자나 장로 등 교회 지도자에 대한 존경도 등이 낮아지거나, 적어도 성장이 멈추어 있다. 또 가장 개인주의적인 세대인 청(소)년층이 사라져가고 있는 추세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분명 기독교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에 기반을 둔 위기론은 절반의 진실만을 담고 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교회의 존재방식과 관련해서 보면 위기론은 아직 현실이 아니다. 실제로 한국 역사에서 개신교는 대중보다는 권력에 대한 배려를 우선시함으로써 존속・발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이나 장관, 국회의원 등 한국의 정치엘리트 집단 가운데 개신교도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사실은 바로 그것을 단적으로 시사한다. 지난 16대 국회의원 가운데 개신교와 천주교 신자의 비율은 전체의 60%에 달한다. 인구 대비 기독교인 수가 30%를 넘어본 적이 없고,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 호감도가 언제나 그리 높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기독교의 사회적 지위의 요체는 대중의 지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 접근성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컨대 대중사회의 지지도가 그다지 높지 않더라도 권력에 대한 접근성이 현저히 높은 집단이라는 점에서 기독교는 자신의 주장을 의제화하고 제도화하는 강력한 능력을 담지한 세력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기독교사회책임’ 같은 도덕적 지명도나 의사표현의 합리성이 높은 집단이 기독교의 정치세력화를 도모하는 현상의 전면에 나섰다는 점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이 기구에는, 부패와 오명으로 얼룩진 한기총의 지도자들과는 달리, 존경과 신망을 한 몸에 받는 교계의 명망가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CBS(기독교방송)가 지난1월 24~25일 신학대 교수, 종교 담당 기자, 목회자, 평신도 등 500명을 대상으로 행한 한국 교회의 과거・현재・미래의 대표적 지도자를 묻는 전화여론조사에 의하면, 한경직, 옥한음, 오정현이 각각 1위로 선정됐다. 또 미래의 지도자 2위는 전병욱이 차지했다. 오정현(사랑의 교회 목사)은 기독교사회책임의 공동대표이며, 전병욱(삼일교회 목사)은 지도위원이다. 그리고 현재의 지도자 5위에 랭크된 김진홍(두레교회 목사)은 공동대표의 한 사람이다. 옥한음(사랑의 교회 원로목사)도 조만간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밖에 손봉호(동덕여대 총장), 서경석(조선족 교회 목사), 김일수(기윤실 공동대표), 윤경로(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 이동원(지구촌교회 목사), 이중표(한신교회 목사) 등 신망이 높은 보수적 인물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보듯 근본주의적 기독교 보수세력의 정치개입은 ‘정치의 (근본주의적) 도덕화’를 낳을 우려가 있다. 정치가 (근본주의적으로) 도덕화된다는 것은, 민주적 의사소통 과정보다 ‘원리’에 준거한 정치행위가 강화된다는 것을 뜻한다.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질서로 양분된 세상에서 선을 배타적으로 대표하는 도덕의 존재란 그것을 둘러싼 모든 논쟁과 대화를 중단시킨다. 그러므로 이런 사회에서 합의는 공론을 통하기보다 감정 편향적이고 도그마적 신념에 좌우되는 경향을 띠게 된다. 특히 9.11사태에서 비롯된 일련의 미국 사회의 합의 양상은 매우 강한 도그마적 편향을 보이고 있다. 임성호, 「도그마와 컨센서스 사이―테러시대의 미국 민주주의」, 󰡔계간 사상󰡕 (2002 봄) 참조.
이러한 도그마적 합의의 핵심에 있는 부시 미 대통령이 근본주의적 종말론을 신봉하는 ‘메시아적 군사주의자’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김지석, 󰡔미국을 파국으로 이끄는 세력에 대한 보고서󰡕 (교양인, 2004), 74~81쪽 참조.

더욱이 정치의 도덕화는 국제정치적 차원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실행되고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특히 제리 폴웰(Jerry Falwell)이 창설한 근본주의적 기독교 우파 정치조직인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는 낙태, 아동, 여성, 음란비디오 등에 관한 숱한 보수주의적 입법을 주도하였는데, 이들의 신앙적 신념은 바로 도덕적 절대성에 기반을 둔 도그마적 태도에 준하고 있다. 백찬홍, 「기독교우파와 미국의 보수정치에 대한 소고」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2002년 9월 포럼 원고(www.minjungtheology.net) 참조

몇 년 전 ‘기윤실’ 등이 주도한 대중음악이나 영화의 음란성에 대한 보수주의적 개입도 위와 같은 미국의 근본주의적 도덕관과 다르지 않다. 김진호, 「문화 십자군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과 기독교의 윤리―‘성찰 없는 신앙 윤리는 예수로부터의 이탈’」, 󰡔교수신문󰡕 208호(2001.8.27) 참조.
그런 점에서 인적, 신앙적 차원에서 기윤실과 깊은 연계성을 맺고 있는 기독교사회책임도, 비록 아직까지는 정치적인 보수주의에 경도된 듯하지만, 조만간에 도덕의 정치화를 일상 속에서 강화하는 태도를 취할 것이 예상된다. 여기서 ‘일상화’ 현상은 근본주의적 도덕의 정치 문화를 고착화하고 제도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될 때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체감되는 이러한 정치 문화를 거의 불편해하지 않게 되며, 따라서 문제의식을 느끼는 감수성이 퇴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대중사회에 대한 ‘무례함의 제도화’를 뜻한다. 그것은 타자화된 존재를 사회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조직적으로 배제하는 틀이다. 동시에 타자를 생산하는 체계이다. 권위주의시대는 이러한 무례함의 제도화를 통해 사회적 동력이 추동되던 시대였다. 반면 민주화시대는 그것을 지양하려는 사회적 욕망에 의해 발진되었다. 백성이 아닌 시민으로 주체화되었고, ‘양(羊)’이 아닌 ‘성도’로 주체화되었으며, 식솔이 아닌 가족으로 주체화되었다. 한데 민주화는 ‘그 이후의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힘과 그것을 막는 힘의 격전의 장이다. 비시민, 비성도, 비가족 등의 주체화와 타자화의 대립이 민주화의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이때 민주화된 사회의 무례함의 제도화는 이들을 타자화할 뿐 아니라, 그 메커니즘을 은폐함으로써 작동한다. 내가 여기서 민주화 사회의 은폐된 야만에 대해 얘기한 것은 기독교의 정치의 도덕화가 바로 야만을 은폐하면서 작동하게 하는 계기가 되리라고 우려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 개신교의 미국주의를 다루려는 이 글의 주제와 관련해서, 이러한 기독교적 ‘무례함의 신앙’은 힘의 숭배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 무례함의 신앙이 포교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힘’이다. 선교 대상을 압도하는 힘이 수반되어야만, 그 대상인 대중의 삶의 틀, 그 고통의 언어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녀/것)를 자기의 삶의 틀 속에 끌어들이는 것이 가능하다. 한국 개신교가 그토록 맹목적인 친미주의를 신앙의 내적 언어로 이해하게 된 것도 (선교 종주국인 미국의) ‘힘에 대한 선망’을 신앙으로 오인한 결과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신앙은 사실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북미와 독일에서 각각 출간된 두 권의 문제작 클라우스 벵스트의 󰡔로마의 평화―예수와 초대 그리스도교의 평화 인식과 경험󰡕 (한국신학연구소, 1994)와 리차드 호슬리의 󰡔예수와 제국―하느님나라와 신세계 무질서󰡕 (한국기독교연구소, 2004)는 이 주제에 관해 가장 돋보이는 저술에 속한다.
은 팍스아메리카나와 팍스로마나가 담론 구조상 등가물이라는 점을 논증함으로써 힘을 숭배하는 무례함의 신앙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를 보였다. 특히 리처드 호슬리는 미국판 힘의 종교인 팍스아메리카나가 형성되는 과정이 미국적 기독교인 근본주의 신앙의 형성 과정과 긴밀히 맞물리고 있음을 주장한다. 위의 책의 ‘에필로그’ 참조.

나는 다음 절에서 한국의 ‘힘 숭배 신앙’이라 할 수 있는 대형교회 신앙의 뿌리에는 미국식 힘의 종교인 근본주의 신앙의 이식과정에서(특히 해방 전후기) 식민지적 무의식으로 고착화된 ‘부적절한 모방’ 호미 바바는 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방식으로 추구된 ‘모방’ 전략이 식민지 피지배자들에게서 굴절되면서 지배전략을 교란시키는 탈식민주의적 효과를 설명하는 개념으로―'적절한 모방(mimicry)'에 대비되는―‘부적절한 모방(mockery)’이라는 용어를 고안해낸다. 그런데 고모리 요이치는 일본이 제국주의 서구에 대한 부적절한 모방의 결과 또 다른 제국주의 세력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고 주장한다(󰡔포스트콜로니얼󰡕 <삼인, 2002> 참조). 나는 고모리 요이치에 의존하여 이 용어를 쓰고 있다.
이 있었음을 말하고자 한다. 이러한 부적절한 모방의 결과, 한국적 근본주의 신앙은 은연중에 미국적 이상과 하느님 나라의 이상을 동일시하며, 나아가 내・외부에서 타자화된 대상에 대한 식민화를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또 하나의 제국주의적 신앙의 심성적 틀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이다.


2. 한국개신교의 미국주의, 그 심성사적 배경(식민지시대)

구한말과 식민지시대에 개신교는 선교사들의 압도적인 영향력 아래 있었다.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변동이 급속하던 시절에 가족의 생명이나 재산을 보호하거나 신분 상승을 위한 근대적 자산을 획득하는 데 보다 유리한 조건을 얻고자 하는 삶의 전략으로 많은 사람들은 선교사들의 우산 속으로 자발적으로 들어갔고 그들의 ‘법’에 순응하였던 것이다. 김상태, 「평안도 기독교 세력과 친미엘리트의 형성」, 󰡔역사비평󰡕 45 (1998 겨울) 참조.
한데 선교사들의 절대다수가 미국인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개신교는 출발부터 미국 기독교에 대한 의존성이 매우 높은 집단이었다. 특히 전체 선교사들의 과반수에 달하는 미국 북장로회 출신 선교사들의 신학적 성향은 본국 교회보다 훨씬 전투적인 근본주의적 경향을 띠었다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1929년 미국 북장로회는 프린스턴 신학 세미너리의 교수로서 반근대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인 전투적 근본주의 신학운동을 주도했던 메이천(J.G. Machen)을 제명했다. 그런데 조선에 파견된 북장로회 소속 선교사들은 1938년 조선장로교 총회에서 이를 정죄하지 않았다. 또 메이천파 신학자인 박형룡이 일종의 종교재판 심문관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데는 선교사들의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인 비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강인철은 이들의 신앙관을 ‘종교적 민족주의’라고 표현한다. 강인철, 󰡔한국기독교회와 국가・시민사회. 1945~1960󰡕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3), 89쪽.
19세기 말 미국 복음주의연맹의 총무였던 스토롱(J. Strong) 목사는 그러한 미국적 선교의 과제를 전 인류의 ‘앵글로색슨화’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흥수, 「교회와 민족・민족주의」, 󰡔기독교사상󰡕 (1990.3).
선교가 신앙적 동일화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여기에는 ‘인종주의적 동일화’가 수반되어 있다는, 잘 알려진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된다. 그런데 이러한 인종적 동일화 담론에는 ‘인종적 타자화’가 내재되어 있다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호미 바바, 「모방과 인간」, 󰡔문화의 위치󰡕 (소명출판, 2002) 참조.

기독교 구원관 속에는 결코 신성화될 수 없는 존재의 ‘가상적 신성화’라는 관점이 함축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미국적 근본주의 신앙은 결코 인종적으로 동일시될 수 없는 미개한 종족이 포교를 통해 신성한 인종으로 가상적인 변모를 가능케 한다는 확신을 수반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상적’이라는 데 있다. 즉 ‘동일화’는 포교의 주체(선교사)가 대상에게 주는 선물이며, 그 대상은 선교사를 자신보다 개화한 존재로 여기는 순간 ‘개화’라는 옷을 덧입게 되는 것이다. 이때 덧입음이라는 것은 차별화가 내재함으로써 동일화가 수행되는 것을 나타내는 수사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포교 대상은 결코 닮을 수 없다는 인식 속에서 선교사를 선망하며 모방한다. 이렇게 ‘식민지적 무의식’은 선교 담론 속에 내재화되며, 그 속에는 인종주의가 작동한다. 요컨대 기독교적 구원관과 서구의 인종주의는 담론구조상 등가물이며, 미국의 근본주의 속에는 기독교 신학에 대한 인종주의적 재해석이 포함되어있는 것이다. 한국 근본주의 신학운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전투적 근본주의자인 J. G. 메이천도 예외 없이 인종주의적 편견을 갖고 있었다. 죠지 마르스텐, 󰡔미국의 근본주의와 복음주의 이해󰡕 (성광문화사, 1998), 226쪽.

조선에서 미국계 선교사들의 통제는 매우 철저했다. 특히 종교 엘리트 집단인 목회자 형성 메커니즘은 철저하리만큼 선교사들에 의해 장악되어있었다. 재정은 물론이고, 교수임용, 교과내용, 학사행정 등에까지 절대적인 권한이 선교사들에게 위임되어있는 형편이었다. 선교사들보다 더욱 선교사적인, 아니 보다 더 완고한 신앙을 대표한 박형룡은 1930년대에 󰡔신학지남󰡕(평양신학교 신학논문집)에 기고된 김재준의 논문들을 사상 검진하면서 그의 주장에 이른바 자유주의적 색채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것(즉 용이주도하게 숨겨야 했던 것)은 선교사들의 사상통제가 그만큼 심했기 때문이라고 진술한다. 장동민, 「1930~1950년대 한국장로교회에서의 소위 ‘자유주의’ 해석의 문제―송창근・김재준의 신학을 중심으로」, 󰡔한국기독교와 역사󰡕 6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7), 194쪽.
게다가 종교재판을 통해 담론상의 이질적인 것들을 지속적으로 배제함으로써 조선 기독교에 대한 그들의 장악력은 넘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선교주체 중심적인 교회구조는 내부의 동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식민지적 무의식은 피선교국 엘리트들로 하여금 열정적으로 선교사들을 모방하게끔 한다. 아니 오히려 더욱 ‘순수한 동일시’를 열망하게 한다. 이 점에서 메이천파들의 정결주의는 가히 편집증적이다. 이른바 ‘창세기 모세 저작 부인 사건’, ‘아빙돈 성경 주석 사건’ 감리교 선교 50주년을 기념하여 유형기 목사의 책임 편집으로 번역 출간한 아빙돈 단권 주석서를 박형룡이 근대비평을 사용한 책이라고 정죄함으로써 장로회 총회가 이를 문제시하고 번역자들에게 공개사과를 요구한 사건.
등 근대 신학적 시선으로 볼 때는 논란할 가치도 없는 것들을 정죄하고 추방하는 사건의 주역은 메이천파 조선 엘리트들이었으며, 또 교회에서 여권(女權) 문제 같은 근대적 상식 또한 치리와 배제의 대상이 된 것도 바로 이들의 광적인 복고적 순수주의에 대한 선망과 모방의 산물이었다. 조선 기독교의 메이천 파 수장인 박형룡은, 당시 메이천 파의 본거지였던 미국의 프린스턴 신학 세미너리에서도 부분적으로 허용하고 있던 근대비평 방법에 대해 전면적으로 거부하면서, 자신에 의해 근대주의적 신학을 수용했다는 혐의를 받는 이들을 가차 없이 정죄했다. 심지어 박형룡 자신조차 유학 시절 프린스턴 신학 세미너리에 제출한 논문에서도 근대비평을 부분적으로 포용했다. 장동민, 위의 논문, 194~202쪽 참조.
근본주의적 신앙의 모방 행위는 이와 같이 모방 대상을 과도하게 흉내내게 마련이며, 더욱 전투적인 성향을 드러낼수록 선교사들로부터 신임을 받았다.
이런 사정은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지속적으로 협력해왔던 선교사 중심적인 조선 주류기독교가 신사참배 건으로 당국과 불화하고 선교사들이 추방되는 사태에 직면해서도, 선교사 중심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신앙태도가 별반 변화되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해준다.
‘신사 참배’는 근본주의 일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조선 기독교에서 엄청난 사건이었다. 근본주의적 신앙의 시선에서 신사 참배란 논란의 여지없이 종교적 정결에 치명적인 흠집을 내는 것이었다. 전시동원체제로 치닫던 1930년대 후반 정세에서 식민지 당국과 조선 기독교는 서로 막다른 길에서 마주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일로 인해 물적으로나 심성적으로 의존해왔던 선교사들이 강제 추방되고, 적지 않은 조선의 엘리트들이 실형에 처해졌다. 투옥된 70여 명 가운데 20여 명만이 감옥문을 살아서 걸어 나올 수 있었다니, 그들이 겪은 고통이 어떠했는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런데 그에 못지않게 고통스러운 것은 근본주의적 신앙으로 무장한 대다수 기도교도들의 상처였다. 근본주의적 신앙을 포기할 수도 없지만, 대다수는 자기 신앙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그것을 허용해야 했다. 그런데 그것은 아프다고 말할 수 없는 상처였다. 오직 말할 수 있는 자는 목숨을 각오하고 저항한 이들뿐이다. 근본주의 신앙은 이런 상황에서 타협한 자들에게 고통을 표현할 언어를 제공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언어를 빼앗긴 상처는 트라우마로 남으며, 트라우마는 기억의 상실을 낳는다. 고통을 회피하려는 무의식의 언어인 망각은 고통을 다른 것으로 치환함으로써 새로운 기억의 구성에 개입한다. 그렇지 않으면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같은 고통중독성 병증으로 나타나고야 말 것이다. 한데 문제는 트라우마에 의한 치환된 기억은 많은 경우 ‘적을 생산’함으로써, 그리하여 그들에게 고통을 전가함으로써 자신의 고통을 해소한다는 데 있다. 내가 보기에 해방 이후 한국 기독교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서 바로 이 점은 매우 중요한 심성사적 배경이 된다.


3. 해방 후 한국기독교의 미국주의―부적절한 모방으로서의 식민지적 무의식

일제 말기 조선 기독교의 주류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서북지역의 기독교였다. 전체 개신교 신자의 60% 정도가 평안도와 황해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었으며, 선교사들의 지역분할 선교정책인 ‘네비우스 정책’에 따라 이 지역은 장로교 지역에 속하였다. 따라서 서북지역의 장로교회가 당시 한국 기독교의 주류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전투적 근본주의가 가장 극성스러웠던 지역 또한 서북지역이었다.
그런데 신사 참배 문제로 선교사들이 추방되고, 1938년 근본주의의 아성인 평양신학교가 무기휴교에 들어가고, 그 이론적 지주인 박형룡 등이 만주로 망명하게 되자, 형식상 서북 중심적 기독교는 무너진 듯이 보였다. 이 틈에 1939년 서울에서 건립된 조선신학교는 근본주의 신학과 선교사들에게서 벗어나 현대적이고 자주적인 신학과 교회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처럼 보였다.
이 학교의 건립에 핵심 역할을 한 김재준은 5개조로 된 일종의 ‘신학교육 매니페스토’를 발표하였는데, 󰡔한신대학 50년사󰡕 (한신대출판부, 1990), 21~22쪽.
거기에는 근대적 신학을 여과 없이 소개하고 교수가 학생의 사상을 억압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학문의 자유’에 관한 신념이 들어있다. 나아가 “분쟁과 증오”를 일삼는 종교재판식의 감성을 조장하는 신학이 아닌 “신앙과 덕성에 활력을 주는 신학”을 추구한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이것은 논리와 의사소통보다 힘과 권력으로 사고를 통제하는 미국계 선교사와 근본주의 신학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이것은 필경 그 자신은 인식하지 못했겠지만 그 속에 조선 기독교도들의 심성에 내장된 식민주의적 무의식을 향한 우려가 내포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해방 직후부터 표면화된 선교사와 근본주의적 신학의 반격은 한국 기독교의 주축은 여전히 서북‘식’의 기독교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증한다. 여기서 서북‘식’ 기독교라는 표현을 쓴 것은 식민지시대부터 이미 그러한 신학이 초지역적 함의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1947년에 비서북 출신이 다수인 조선신학교 학생들이 먼저 김재준의 신학교육 이념에 문제를 제기하여 총회에 진정서를 낸 것은 그릴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곧바로 서북 출신 메이천파가 주축이 된 종교재판이 사태를 이어갔다.
북한 지역에서 공산주의자들과 충돌한 후 대거 월남한 서북 출신 기독교도들이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38선 이남지역에서 기독교의 헤게모니 세력이 될 수 있었는지, 나아가 남한 사회 전체를 주도하는 세력의 하나가 될 수 있었는지 이해하는 데는, 이제까지 이야기한 식민지시대부터 고착화된 선교사 중심적인 서북식 기독교의 신앙적 헤게모니라는 배후를 염두에 두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 앞장의 말미에서 언급한 신사 참배의 트라우마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정결주의적 근본주의 신앙과 신사 참배 강압에 승복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경험 간의 모순을 체험해야 했던 범서북 기독교 신자들의 트라우마는 해방 직후 월남하기까지 서북 출신 기독교도들이 좌파 정권에 의해 탄압받았던 경험을 마치 자신의 경험처럼 일반화함으로써 고통스러운 기억을 전이시킬 출구를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우면서도 말할 수 없었던 기억을 다른 이들에 대한 증오라는 강력한 체면 효과를 지닌 기억으로 치환함으로써 ‘말할 수 있는 것’으로 전이시키는 무의식적 작용이 그들의 트라우마를 ‘자가 치료’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신사 참배 거부 건으로 투옥되었다가 해방 직후 출옥하게 된 이들을 지칭하는 ‘출옥 성도’라는 이름의 십자군들은 그러한 기억의 치환을 위한 적절한 계기를 제공해준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극한의 고통을 감내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배타적인 도덕적 정당성을 담지한 존재로서 받아들여졌다. 그것은 그들의 거부 행위의 의미에 대한 모든 토론의 중단을 의미한다. 친일 잔재의 청산이라는 국면적 대의를 업고서 그들과 그 지지자들은 식민지시대에 모든 교회는 죽었다고 선언하고 고강도의 교계 정화를 부르짖는다. 이른바 ‘교회 재건운동’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상황은 모든 기독교도들이 이 재건운동이 제기한 게임의 룰 속에 말려들지 않을 수 없는 근거를 설명해준다.
그동안 잘 은폐되어왔던 트라우마가 바야흐로 발광할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출옥성도들의 광적인 활동으로 말미암아 무의식 속에 은폐되어온 상처가 도졌다. 근본주의적 신앙을 가진 자들로서는 피할 수 없었던 신사 참배자라는 자학적 오명을 벗기 위해선 ‘악마’의 등장이 필요하다. 자신들의 배신이 얼치기 악마의 모습이라면, 그것과는 비할 수 없는 진정한 악마, ‘악의 축’이 필요했다. 그 무시무시한 괴물을 향해 모든 ‘성도’들이 단결하여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악마 말이다. 초기 그리스도교 운동에서 ‘이스카리옷 유다’의 출현이나 영국 빅토리아조 시대의 드라큘라의 출현 등 역사 속에서 나타난 ‘절대 악마’ 담론은 바로 악마를 요구했던 그 시대의 고통에 대한 기억의 치환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시기에 김재준 탄핵 등 숱한 이단 심판들이 재개된 것은 악마에 대한 시대적 열망과 부합한다. 그러나 진정한 악마는 앞서 말한 것처럼, 서북 출신 기독교도들의 체험을 자기 체험으로 내재화함으로써 비로소 출현한다. ‘반공’은 이 시기 근본주의적 기독교의 상흔에 대한 자가치료의 필요에서 요청된 무의식적 기억의 치환 현상의 결과인 것이다. 해방정국에서 많은 전투적 반공단체들의 면면을 보면 개신교도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두드러진다. 또 기독청년 면려회, 서북연합회, 영락교회 청년회 및 대학생회, 서북학생총연맹 등 전투적 반공주의적인 성향의 개신교 단체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많은 경우 당시의 반공적 테러리즘에 적극적으로 관여되어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반공과 근본주의 신앙 간의 ‘행복한 만남’을 위해 또 한 가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미국의 등장이다. 근본주의적인 조선의 기독교도들이 동경해마지 않던 선교사들의 모국인 미국 군대가 한반도에 진군한 것이다.
일제 식민지 정부를 대체한 미 군정청은 자신의 가장 우호적인 협력자를 기독교에서 찾았음이 분명하다. 해방 당시 미국인과의 접촉을 경험했던 거의 유일한 집단은 기독교, 특히 개신교 신자들이었다. 또 적지 않은 이들이 선교사들에 힘입어 미국으로 유학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그들은 영어를 할 줄 아는 극소수 사람들에 속했으며, 더구나 미국에 가장 우호적인 집단 또한 개신교 신자였기 때문이다. 당시 다시 내한한 선교사들은 이들을 군정 당국에 소개해주었다. 강인철에 의하면, 강인철, 「한국 개신교교회의 정치사회적 성격에 관한 연구. 1945~1960」 (서울대 박사학위논문, 1994)의 ‘개신교 신자의 국가기구 내 분포’ 참조.
1945년 10월 5일 미 군정청이 임명한 한국인 행정관 11명 중 6명(목사 3명)이 개신교 신자였다고 한다. 또 1946년 12월부터 1947년 8월까지 군정청에 의해 임명된 한국인 고위관료 가운데 50% 이상이 개신교 신자였다. 지방 고위 공직자들의 경우 비율(30% 이상)은 상당히 줄지만 인구대비 기독교 신자의 비율(0.52%)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았다. 한편 김상태는 다른 관료들 외에 통역 요원에 관한 정보를 약술하고 있는데, 흥미롭게도 그들은 국내 정치세력의 동향을 군정 당국에 소개해 주면서 좌파계열을 폄하하고 우파의 역할을 실제보다 부풀리곤 했다고 한다. 김상태, 「평안도 기독교 세력과 친미엘리트의 형성」, 198쪽.
아마도 그렇다면 식민지시대 일제의 부역자였던 중하급 관료들을 군정 당국에 소개한 주요 장본인들이 기독교도였다고 추론하는 것이 그리 무리한 상상은 아닐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과정은 한국 기독교와 미국의 상호신뢰 관계를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그것은 미시적 차원에서는 쌍방향적이었겠지만, 거시적으로는 일방향적 소통이었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그들에게서 미국은 하느님 나라의 역사적 현실태에 가까운 것으로 기억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양의 한 목사는 일본의 무조건 항복 소식 이후 미군의 국내 진군을 기다리면서 그들을 ‘구원의 천사 미군’이라고 불렀다. 반면 바라지 않던 소련군이 진주한다는 소식을 접하자 낙망감과 항전의 마음을 가다듬는다. 이것은 미국과 소련을 경험하기 전에 이미 이 두 나라에 대한 선망과 적대가 신앙관으로 고착되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상태, 위의 논문, 195쪽에 인용된 황은규, 「8.15 해방과 평양의 교계」, 󰡔기독교계󰡕 창간호 (1957.8)의 글 참조.
요컨대 한반도에서 미국의 시선은 한국 기독교의 시선이었고, 저들의 위기는 곧 자신의 위기였다. 저들이 추구하는 세상에 대한 열망 또한 자신들의 것으로 내재화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미국계 선교사들에 대한 무의식적 식민의식은 미군정으로 전이되고, 선교사들의 신앙적 메시지는 군정 당국의 사회적 메시지로 환원될 수 있었다. 그것은 신앙의 하느님 나라와 현실의 유토피아로서 미국이라는 상상적 동일시가 그들의 신앙구조 속에 의미화의 코드로서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파간의 반목과 갈등 그리고 분열이 가속화되던 시절, 반공과 친미라는 두 개의 고리는 기독교 각 교파간의 거대한 심성적 연결망이었다. 1949년 당시 최대 교파이던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가 연합하여 ‘합동찬송가’를 만든 것은 그러한 차이 속의 공감이라는 또 다른 예이다. 여기에는 미국 기독교인들이 자기 정체성의 상징으로 여기는, 백인 우월주의가 들어있는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를 포함하여, 미국 대부흥운동기의 수많은 복음성가들이 대대적으로 수록된다. 전체 수록곡의 60%가 미국 복음성가에서 유래하였다.
이것은 한국 기독교를 결속시키는 신앙적 정체성이 어떤 양상을 지녔는지를 읽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준다. 정경(正經, Canon)에 대한 편집증적 집착을 가진 근본주의적 신자들에게 근본주의적 신앙운동의 가장 핵심적 주장은 ‘성경의 무오설’에 대한 확신이었으며, 그것은 근대 신학의 역사비평적 성서 해석에 대한 저항의 맥락에서 제기된 것이다. 그것은 ‘성서(Scriptura)’를 단일 배타적 ‘정경(Canon)’으로 받아들인 고대 유대교와 기독교의 편집증의 근대적 버전에 속한다. ‘정경’의 신앙사와 근대성에 관하여는 김진호, 「탈정전적 성서 읽기의 모색」, 󰡔반신학의 미소󰡕 (삼인, 2001) 참조.
‘정통 찬송’이라는 집착은 정경 못지않은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근대적 비평을 둘러싼 종교재판들처럼 찬송가의 채택 문제도 식민지 시대부터 지속적인 배제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었다. 이것은 한국 개신교가 당시 한국 사회에서 가장 미국적인 감성의 공간이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위에서 ‘출옥성도’ 중심의 교회 재건운동이 촉매제가 되어 신사 참배의 트라우마가 공산주의라는 신앙적 악마를 발명하게 됨으로써 거대한 ‘신앙적 공통감각’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말했는데, 실은 한국 교회사를 다루는 텍스트들은 한결같이 이 시기를 각 기독교 세력간의 분열과 반목의 시대로 기억한다. 게다가 1945년 해방 이후 사회적․이념적 갈등의 폭발적 양상에서 시작되어 1950년에 전면전으로 발전한 ‘한국전쟁’의 비극적 체험을 겪어내면서, 극도의 불안과 공포 상황에서 신비주의적 소종파 운동들이 크게 확산되었다. 물론 수많은 기독교계 소종파들의 탄생도 이 시기에 있었고, 그들은 기성의 제도종교들을 격렬하게 비판하면서 탄생했고 성장했다. 김흥수, 󰡔한국전쟁과 기복신앙확산 연구󰡕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9) 참조.
그럼에도 내가 위에서 한국 기독교의 거대한 동질성에 대해 논한 것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 요소들의 네트워크를 말하기 위함이다.
신사 참배의 트라우마를 자극한 출옥성도들의 활동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공산주의라는 악마의 발명 그리고 이러한 악마의 발명을 가능케 했던 미군정 당국과의 긴밀한 유대라는 네트워크의 배후에는 원인이자 결과이고, 과정을 가능케 한 요소인 근본주의 신앙이 놓여있다. 이것은 선교사들, 특히 미국 선교사들의 신앙이었다. 그런데 그들을 모방하려는 식민지적 무의식은 흰 무명 바지저고리를 입은 조선 사람이 서양 중절모와 선글라스를 낀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부적절한 모방’을 초래했다. 한국적 근본주의는 이렇게 탄생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은 미국주의를 미국인보다 더욱 호들갑스럽게 추구하고 모방하려는 신앙적 욕망을 낳았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이 힘의 숭배 신앙이 교회의 제도 속에 깊숙이 스며들게 된 것이다.


4. 미국주의로서의 힘 숭배 신앙을 넘어서

한국의 대표적 대형 교회의 담임목사이고 ‘한기총’의 임원인 한 개신교 목사는 서울시청 앞 광장 한가운데서 친미 집회를 열면서, 10만이나 되는 한국 개신교 신자들 앞에서 영어로 기도했다. 근본주의적 신앙관에 따르면 기도는 하느님과 기도자간의 내밀한 대화, 아니 청탁이다. 그런데 개신교는 내밀한 기도를 공중 앞에서 하는 신앙제도를 발전시켰다. 물론 실상은 기도자와 청중 그리고 신과의 3자 대화라고 하는 게 타당하다. 그런데 그는 영어로 기도했다. 10만의 청중보다 보지도 듣지도 않을 태평양 건너, 그리고 미국을 횡단하여 끝에 있는 백악관의 누군가와 더 내밀한 관계를 맺고 싶은 욕망을 은연중에 드러낸 셈이다. 그런 심성의 사람이라면, 어쩌면 신이 영어 기도를 더 잘 들어준다고, 적어도 무의식적으로는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신은 미국인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는지도......
교회학교에서 어린아이들에서 하느님을 그리라고 하면 대개 흰 수염이 길게 난 할아버지를 그린다. 그들에게 신은 남성이고 노년의 사람이다. 신앙적 무의식은 이렇게 여성과 연소자를 내부식민지화하는 보수주의적 인식론을 동반한다. 그리고 아마도 위의 목사에서 볼 수 있듯이, 하느님은 미국 시민, 아니 이 세계의 권력자와 오버랩되어 기억될지도 모른다.
최근 이러한 식민화된 신앙은 많은 이들에게 조롱 대상이 되고 있다. 민족주의는 그것을 읽어내는 감수성을 강화시켰다. 그런데 후발 대형 교회적 신앙에서 친미성은 노골적이지 않다. 그들의 맹목적이지 않으려는 균형 잡힌 태도는 도처에서 볼 수 있다. 그들은 민족주의적 감시의 망을 무사히 투과시킨 신앙적 미학을 제도화하는 데 성공하는 듯이 보인다. 그래서 이들의 행보는, 선발대형교회의 그것과는 달리,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지지를 얻고 있다. 대중을 배려하는 듯한 신앙의 제도가 효력을 발휘한 덕이다.
그런데 ‘기윤실’이나 ‘기독교사회책임’ 등 기독교 NGO의 행보에서 보이는 것은, 대중과 대화하기보다 여전히 대중을 계도하는 훈장의 포즈를 유지하려 한다는 것이다. 다만 회초리(심판 담론)로 위협하는 대신, 너그러운 훈장의 모습이 외부로 드러나고 있는 것만 다를 뿐이다. 문제는 이들의 의제가 무수한 소수자를 타자화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는 담론이라는 점에 있다. 여성을 포함한 성적 소수자에 대해 가부장적 가족주의의 도덕을 판단의 잣대로 내세우며, 낙태 문제를 고려할 때 계층이나 성적 평등의 문제를 간과한다.
대중에 대해 배려하지 않는 태도 속에서 그들은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의제 형성 능력과 실행 능력을 통해 그것들을 위로부터 제도화하려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기독교사회책임’의 국면적 지향점은 양대 보수정당의 합리적 보수주의를 연대하게 하여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시킬 대통령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1980년대 이후 미국의 근본주의적 기독교도들의 정치세력화를 흉내낸 것에 다름 아니다.
비록 국제정치 등에서 노골적으로 친미적 태도를 취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이러한 민족주의적 신앙은 미국의 근본주의적 신앙의 부적절한 흉내내기, 그 무의식의 식민화를 보여준다. 아래를 배려하기보다 위를 선망하고 모방하는 것, 그리고 아래를 계도하고 자신을 모방하게 하려는 것. 이것은 그들의 신앙이 곧 힘에 대한 신앙임을 의미한다.
그들의 힘의 신앙은 바로 근본주의 속에 내장된 미국주의의 소산이고, 그들의 그 모방은, 아니 그 부적절한 모방은 남아시아 해일에 대한 한 목사의 발언처럼, 내․외부의 소수자에 대한 식민화를 욕망하는 신앙의 내적 메커니즘이다. 이제 미국은 노골적 친미성으로 표현되기보다는 힘의 숭배 신앙으로 모방된다. 그것은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타자에게 힘의 주체가 되고 싶어 하는 ‘부적절한 모방’, 바로 그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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