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하는 순간부터

이별은 이미

진행되기 시작한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겐

집착하게

되는 것들이

 

하나 둘씩

늘어만 갔다.

 

 

                                                                                         - 박은아 '불명증'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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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척이 들려왔다. 사람들이 오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지하철 역에서 왠 젊은 불량배가 나에게 잭 나이프를 들이댔다. 주위의 승객들은 아무런 간여도 하지 않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런 공격은 재수 없으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 정도로만 여기는 것 같았다.

나는 내 목숨을 구하기 위한 반사적 행동으로 외투를 활짝 열어 젖혔다. 나를 공격하던 자는 내 알 몸 정도가 아니라 한창 팔딱 거리고 있더 내 혈관과 대부분의 장기를 보았으리라.

그는 비틀거리다가 스스로 허물어져버렸다. 그러자 구경꾼들이 그를 도우러 와서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렇듯 세상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사람은 누가 폭력을 당하는 광경은 견뎌내지만, 어떤 사람이 자기들과 다르다는 것은 참지 못한다.

구경꾼들은 공격당한 나를 돕기보다 공격자를 살피는 데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문득 그들에게도 나의 기이한 모습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그들의 반응은 턱없이 과도했다. 나는 가까스로 몰매를 모면했다.

그들은 내 모습에서 그들 자신의 이면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 인간이 순전한 정신적 존재가 아니라 살아움직이는 살덩이자 갖가지 빛깔의 기관들 속에서 이상한 액체들을 순환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활동하는 장기들의 집합체 이기도 하다는 것을 상기했으리라. 말하자면 나는 살가죽을 한두 꺼풀 벗기고 보면 우리 인간의 모습이 진정 어떠한지를 그들에게 일 깨워준 셈이다. 내 모습은 하나의 진실이지만, 아무도 그것을 정면으로 바라볼 준비가 되있지 않았다.

최초의 승리감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는 이제 부터 내가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로 받아들여질 것인지를 깨달았다. 나는 사람들의 배척을 받는 천민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못한 한낱 괴물일 뿐이었다. 

 

 

                                                                                   - 나무 <투명피부> 中 (56p~59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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