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내가 있었다
(사)일하는여성아카데미 지음 / 이프북스(IFBOOKS)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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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 

일상에 치여 매일을 어찌 보내는지 가늠하지 못하는 세월을 살다가 어느 날 문득 기회가 되어 글을 쓰게 되었을 때, 그는 얼만큼 자신과 제대로 마주하며 글을 쓸 수 있을까. 

타인의 이야기를 세심히 듣고 글을 쓰거나,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깊이 살피며 글을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시대에 그런 글쓰기 중 한 가지가 책으로 엮여져 나왔을 때 그 책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그 곳에 내가 있었다> 는 한때 노동운동을 했거나 여전히 노동운동을 하고 있는 여성들이 글쓰기 모임에서 썼던 글들 중 아마도 각자가 선별한 글을 모아 엮은 책이다. 자신의 노동운동사를 기억나는 대로 적은 글도 있고, 어떻게 하다가 노동운동에 발을 내딛게 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춘 글도 있고 아버지, 어머니와의 관계에 비중을 둔 이야기들도 있다. 

개인의 경험이어서 사소하달 수도 있지만 그들이 지나온 어느 시기가 평범하고 소소한 개인의 삶을 송두리채 바꿀만큼 역사의 소용돌이와 맞물려서 개인사이지만 평범하지만은 않은 경험들이 담뿍 담겨 있는 글들이 많다. 노동, 역사, 세상의 흐름 등에 마음을 두어 살아온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주로 강물에 비유하는가 싶은 글들 역시 여러 편 눈에 띄었다. 

어느 한 시기에,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떠밀리듯 어느 자리에 이르러 그 자리를 내내 지키며 살아냈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대체로 그런 시기를 지나온 사람들이 썼고, 그래서 그들만의 공통점이 묻어나는 글들이 많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너무 큰 얘기에 묻혀버린 그때 그 시절 당신의 마음은 어땠는가, 다시 묻고 싶어지는 글들도 여러 편 보였다. 무슨 일이 있었고 그때 어떤 일을 겪었고만 건조하게 적힌 글들 속에서 그래서 그 사건들 속에서 당신이 추구했던 그 큰 마음들 속에 분명 두렵고 아프고 왜소했을 당신 마음은 어땠을까 궁금해지는 글들. 

책에 실리지 않은, 아마도 더 많이 써냈을 그들의 글 속에 그런 이야기도 담겨 있을 테지, 내가 읽지 않아서, 내 눈에 띄지 않아서 그런 과정이 없었을 거라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니. 치유 글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쓴 글들이어서 어쩌면 더 깊고 내밀한 마음이 드러난 글들은 굳이 더 공개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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