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으로 다시 쓰는 옛이야기
지현 외 지음 / 이프북스(IFBOOKS) / 2020년 7월
평점 :
품절


오래된 이야기 뿐일까. 세상에는 '그'들이 쓴 글과 책과 '그'들이 그린 그림과 '그'들이 만든 영화와 '그'들이 만든 노래들로 넘쳐난다. 자연스럽게 주위에 널려 있는 그 많은 작품들에 손을 뻗어 읽고 듣고 보며 빠져들다가 어느 사이엔가 마음이 삐걱거리는 시점이 도래하고, 되짚어보면 이야기 속 누구에게도 나를 이입하기가 불편해지는 서사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가부장제가 만연한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세상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나 하는 호기심이 가득한, 이 세상 어디에 자신을 두어야 하는지 명확히 알고 싶어지는 여성이라면 특히. 


다른 모든 문화 콘텐츠처럼 옛이야기에도, 오래된 가부장 문화의 속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주인공은 대개가 남성 혹은 남아들, 내용은 그들의 모험담, 등장인물 중 여성은 거의 없거나, 있어도 남주인공을 해치거나 돕는 정도의 역할에 머문다. 남주인공을 해치는 역할로, 여성으로'만' 변신하는 '구미호'가 자주 등장한다. 


여성, 여자 아이가 주인공이면? 무조건 자기 희생이 주제가 된다. 심청이가 그렇고, 콩쥐가 그렇고, 바리데기가 그렇고. 아니면, 너무나 억울한 피해자. 아무 것도 모른 채 운명이 시키는 대로 이리 저리 밀리다 죽음에 이르러 귀신이 되고서도 강자에게 하소연 하는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장화홍련이 그런 이야기의 대표급이 되겠다. 


<페미니즘으로 다시 쓰는 옛이야기>의 저자들은, 살아오면서 겪은 자기 경험을 토대로, 오랫동안 의문을 가진 옛이야기에 다른 형식을 부여하고 다른 등장인물을 개입시켜 적어도 여성들이 읽기에 더 마음이 쏠리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다. 길동에게는 그와 견줄 역량이 있는 누이가 있었고, 콩쥐에게 팥쥐 엄마는 실은 누구보다 품이 넓고 단단한 새 엄마였으며, 선녀에게는 자신의 아픈 생을 마음으로 같이 산 딸이 있었다는 설정들.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세상이 왜 내게 이 모양 이 꼴로 덤벼드는가, 의문이 들다가, 화가 나다가, 때로 무섭기도 하고, 하지만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이야기가 더 많이 필요하고, 그런 이야기를 시작하는 여러 방식의 시도 중 하나로 이 책은 의미가 있다. 


옛이야기란,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어떤 틀 속에, 그 이야기를 토대로 자신의 마음을 집어넣어 새롭게 이야기를 만들어낸 사람들과 그 이야기에 호응하는 사람들 덕에 현재까지 내려온 이야기이기도 하니, 어쩌면 더 많은 여성이 더 많은 이야기들을 더 많이 바꾸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래 전에, 백설공주 이야기를 흑설공주 이야기로 바꾸어 책이 나왔을 때 반가웠으나 그런 식의 이야기 바꿈이 그 한 시기로 끝났다는 기억을 갖고 있다. 이번에는, 이 책을 기점으로 우리가 아는 더 많은 이야기들이 더 새로운 방식으로 탈바꿈하여 나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여성의 마음에 더욱 기껍게, 세상에 널리 퍼진 오랜 이야기들을 다시 되짚고 깊이 살피고 시원하게 뒤집는 작업을 하는 이들이 더 많이 나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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