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관음의 탄생 - 한국 가부장제와 석굴암 십일면관음
김신명숙 지음 / 이프북스(IFBOOKS)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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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된 이야기 속에서 몇 가지 마음에 들어오는 요소들을 골라내어 이리 뒤집어 보고 저리 살피며 요런 식으로 보면 어떨까, 저렇게는 못 보는 걸까 생각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해서, ‘여성 관음의 탄생이란 제목의 책에 흥미를 느꼈었다.

 

그런데, 동아시아 여기 저기를 훑으며 고대에 있었을 여신신앙이 가부장제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밀려났다가 가부장적인 힘이 센 종교 중 하나인 불교 안에서 어떻게 통합되어 관음이란 모습으로 이어져 내려왔는지를 찬찬히 살피는 내용을 따라가는 과정이 그닥, 흥미롭거나 재미 있지가 않았다.

 

읽으면서 내내 왜 그러지? 고대 여신들의 근원을 자료를 들어 확실친 않지만 이렇게 저렇게 보건대 충분히 이럴 수 있다는 이 얘기가 왜 내게는 얄팍하게 느껴지고 와닿지 않지? 하다가. 아하! 내 이유는 찾을 수 있었는데.

 

저자의 관심사와 내 관심사가 일치한 측면은 있을 수 있는데 그 관심사를 탐색하고 드러내는 방식이, 저자의 궁금증과 그 궁금증을 해결하고 확장하려는 흐름이 아니라 이것 봐 미약하지만 여기 증거가 있잖아, 여기에도 있다니까 하며 계속해서 확실치는 않지만, 자료가 많지 않지만, 이라는 수식을 붙이며 사실 확인을 넘어서지는 않는 방식으로 서술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런 방식은 내게, 기존의 학문 세계에 자기 주장을 맞춰보려는, 세상에서 여성이 대해지는 방식에 문제의식을 느꼈다면서, 그러나 이렇게나 오랜 시간 그들의 방식으로 굳어진 틀로 이야기하는, 소위 배운 여성들의 흔하디 흔한, 내가 보기에는 방법 선택의 오류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신화와 설화에 잠깐씩 등장하는 여성들의 근원을 찾아내어 오, 이런 할매도 있었구나, 싶은 얘기들에 흥미가 생겼다가도, 어차피 다 추측인 걸 이렇게 근거와 증거에 매일 이유가 있었나, 좀더 풍성하고 다양한 상상력을 펼치는 게 더 신나고 재미졌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읽는 내내 새록새록 솟아나곤 했다.

 

변산반도 일대에 개양할미라는 이름의 여신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다는 것, 이름을 알 수 없는 백제의 거인 여신 이야기가 있다는 것, 신라에도 서술성모란 이름의 여신이 수호신이었을 거라는 추측, 그 옛날에 부족을 이끄는 여성 제사장이 존재했을 가능성, 왕에게 종속된 왕비로만 존재하지는 않았을 알영이라는 여성 등을 거론한 것은 흥미로웠지만, 그들에 대해 피와 살을 더한 상상력을 조금 더 발휘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가 스러지곤 했던 것 또한 아쉬운 점 중 하나였다.

 

고대에는 여성의 역할이나 힘이 지금과 같이 허약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런 당시의 현실이 다양한 여신들을 존재케 했을 것이며, 그때의 그 힘을 오늘에 되살려 보자는 저자의 주장에 대해 그 취지는 동의하면서도 다른 질문이 계속 생겼는데, 저자의 시도에 딴지를 걸려는 것이 아니라 증거를 대서 이것 봐 저것 봐 이럴 수 있다니까, 라고 주장하는 방식은 그의 전제에 동의하는 사람까지도 그게 사실이라서 뭐 어떻다는 거지? 라는 대응을 먼저 하게 하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런 생각이 드는 까닭은 독자인 내가 증거와 팩트가 무엇을 설명하는가, 신화는 신화로서, 지금 여기의 우리가 우리 방식으로 이해하고 내 삶에 적용하면 되는 것인데, 라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일 테지만.

 

물론 흔치 않은 자료들을 애써 찾아내어 여신과 관음과 오늘의 여성들의 삶을 엮어보려는 시도 자체는 환영할 일이고, 내 생각과는 다른 방식으로 노력하는 여성들이 있어야 하기도 하므로 미약하나마 학문적 토대를 쌓는 일에서부터 여성의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싶은 독자들에게는 읽어볼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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