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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史 - 현대 역사학의 거장 9인의 고백과 대화
마리아 루시아 G. 팔라레스-버크 지음, 곽차섭 옮김 / 푸른역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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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역사는 문학과 한몸이었지만, 덜 오래 전 역사는 역사였고, 오늘 날 역사는 다시 문학과 가까워진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탐史'라는 제목이 기이하기는 하지만, 매력적이다. 대담집이니 만큼 만만찮은 배경과 사전 지식이  함축되어 있을 터, 지레 겁을 먹었지만, 그러나 페이지는 예상보다 수월하게 넘어간다. 대화라는 형식 때문일까?

그러나 대담을 글로 옮긴 후 하나의 책으로 엮어내고, 또 그것을 번역한 책의 성격은 아무래도 모호하기 마련이다. 누군가에게는 많은 시사점을 던져줄 수도 있지만, 나처럼 의심 많은 입문자에게는 알맹이 없는 호사일 수 있다. '탐史'라는 제목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지나친 넘겨짚기일까? 

대담의 질문자는 질문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각 역사가에 따라 질문 내용을 변주한다. 역사에 대한 기원적 태도에서부터 메타 역사까지, 신념과 관점과 전망이 혼합된다. 그래서 시공의 수정구슬을 보는 듯하지만, 왠지 역점처럼 반복과 변주가 파편화되고, 참조의 성격을 넘지 않는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한 책의 역할로서 충분하겠지만.

'탐史'의 매력은 행간에서보다 이따금 책장을 덮고 곱씹어 볼 때 다가온다. 일대일의 대화와 고백이 아닌, 그들 역사가들끼리의 은밀하고 치밀한 난상토론. 새로운 역사학을 이끈 원로학자들 간의 열띤 논쟁에 대한 상상. 대저 그 내용을 혼자 재구성해 보기에는 불가능하여 상상에 그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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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신념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송경아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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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간병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간단한 수술이라고들 하지만, 어쨌든 아내는 통증을 견뎌야 했고, 링거 바늘을 내내 꽂고 있어야 했으며, 마취에서 깨어나길 기다려야 했다.

한 작가가 자신의 신념을 말하기까지도 녹록치 않은 순간과 과정을 통과해야 했을 것이다.

실패의 공포, 영감이라 믿었던 빗나간 상상, 기술에 대한 집착과 노동의 힘겨움.

그렇지만 이론도 비평도 자서전도 아닌 이 책에서 “신념”을 말하기까지 작가는 달리면서도 눈을 감지 않았을 것이다. 달콤한 경험을 함부로 위안 삼지 않았을 것이다. 실패를 단순히 기회로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강하면서도 단단하고 소박한 “신념”으로 내려앉기까지, 작업실 구석의 먼지가 뭉쳐지듯이 창밖의 풍경들이 리듬이 되듯 기다리고 기다렸을 것이다. 삶과 기술과 예술 사이에서 계속 움직이면서, 오직 멈추지 않는 글쓰기만이 작가로 하여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는 희열을 느끼게 해주었을 것이다.

작가는 말한다. “그러나 글을 쓰기 위해 인생을 살지 마라. 그렇게 산 인생은 인위적이고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완전히 다른 인생을 창조하는 것이 낫다!” 그리고 또 말한다. “당신 가슴 속에 있는 것을 써라. 결코 당신의 주제와 그에 대한 열정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당신의 금지된 열정은 글쓰기의 연료와 같다.”

글쓰기는 삶인가? 기술인가? 예술인가? 그 모두인가? 아니면 그 모두가 아닌가? 풀리지 않는 의문을 품은 채 병원을 나섰다. 아마 수술 부위를 얽어맨 실밥 같은 표정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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