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였던 그림자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쿠데타화의 광기속에 학살의 공포에 짓눌린 사람들.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죽음을, 아니면 죽음보다 더한 고통만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 모두가 공포에 질려있는 순간에 시인은 노래를 한다. 학살자들의 구타속에서도 꿋꿋이 노래하던 시인은 결국 쓰러지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광장의 시민들은 너나 할것없이 시인의 노래를 합창한다.

칠레의 피토체트 쿠데타 이후 모습을 그린 ‘산티아고에 내리는 비’ 의 한 장면이다. 중남미 국가 칠레는 1970년 최초로 선거를 통한 합법적인 방법으로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다. 인구의 90%가 소작농이고 주요 기간산업과 토지는 소수의 자본가와 외국계 독점회사 소유로 국민의 대다수가 절대빈곤의 시대에 어쩌면 그들의 선택은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냉전의 시기에 바로 미국의 코앞 쿠바가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고 중남미에 퍼지는 반미의 물결에 패닉상태였던 미국과 급작스레 주요 산업의 국유화로 기득권을 뺏긴 자본가들은 아옌데 정권을 인정할 수 없었고 결국 1973년 9월11일 피노체트를 필두로 한 일련의 군인들을 사주, 쿠데타로 아옌데 정권을 전복시키고 만다.

이후 몰아친 반동의 시기에 그들에 의한 사회주의자들과 민주주의자들, 지식인들, 양심적인 종교인들 그리고 군부를 지지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에 대한 테러는 경악의 수준이었다.

반혁명이후 학살당하거나 실종, 고문 투옥된 사람의 수는 국제 앰네스티 추산 2만 5천명이라고 발표한다. 이들의 살해수법 또한 비행기에서 떨어뜨려서 죽일 정도로 잔혹하기 그지 없는 모든 방법이 동원되었다.

1981년 체포되어 실종되거나 죽은 아들 딸들을 둔 어머니들이 머리에 하얀 스카프를 두르고 매주 목요일 산티아고 5월 광장에서 기도를 드리면서 칠레의 민주주의의 싹은 자라났고 혁명가의 신념보다 강한 모성은 결국 1990년 피노체트를 몰아내는 밑거름이 되었다.

하지만 피노체트는 민간정부와 협상으로 과거사를 정리했고, 스웨덴의 칠레 민주화 인사의 고발로 인해 영국법정에서 반인류 범죄혐의로 영국 법정에서 체포되었으나 결국 노령을 이유로 석방되었고 1996년 천수를 누리고 미국에서 사망한다.

1949년 칠레 태생인 루이스 세풀베다는 당시의 여느 지식인들처럼 살기 위해 칠레를 떠나 남미를 전전하다가 1980년 독일로 망명했고, 1997년 스페인에 정착한다. 1989년 살해된 브라질의 환경운동가 치코 멘데스를 모델로 쓴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을 발표하고, ‘멍청한 백인들’에 의해 파괴되는 아마존 밀림에 대한 묵직한 소재를 추리적 기법을 차용, 몽환적이면서도 정글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묘사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된다.

그의 신작 『우리였던 그림자』는 그가 젊음을 통과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한다. 30년전 5.18이 교과서속의 한 단락처럼 멀리 느껴지는 우리처럼, 엄혹한 시절을 보낸 그들 역시 머리가 허옇고 배가 나온 뒷방 늙은이 일 뿐이다. 혁명의 열정이 스러져간 자리에 남은 하얀재를 바라보는 늙은 투사들은 회환만이 가득하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이미 지나가버린 혁명의 시기의 가슴뛰던 젊음과 시절을 함께한 동지들을 대한 추억뿐, 점점 힘이 빠져가는 그들에게 당시에 전설적인 혁명가 ‘그림자’로부터 전언이 온다. 당시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던 자본가들을 강탈하여 혁명 자금으로 사용되었고, 쿠데타 시기에 급박하게 감춘돈이 아직도 숨겨져 있다고 같이 찾자는 연락이 온다. 모험에 대한 묘한 열정에 몇십년만에 칠레로 돌아온 그들에게 어이없게도 전설의 혁명가는 사고로 죽고 엉뚱한 룸펜 한 녀석이 굴러오면서 이야기는 한바탕 유쾌한 소동극이 되어가고, 한편으로 잼나는 오락영화같지만 그속의 그들이 회상하는 역사의 무게는 무겁다 못해 아릿할 정도이다.

 

....네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모두들 살도 많이 찌고 머리도 많이 벗어진 데다 또 수염도 하얗게 세어 버렸지만, 그들의 얼굴과 눈빛에선 여전히 과거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어때, 우리가 한번 해볼 텐가?」 가르멘디아가 물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네 사람은 잔을 힘차게 부딪쳤다. 어둠에 잠긴 산티아고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194p

 

소설의 마지막에 과거를 기억하겠다는 젊은 경찰의 고백은 어쩌면 그 시절과 화해하고픈 노작가의 바램일지도 모른다. 학살의 상흔이 남은 1980년대의 마르께스는 ‘백년동안의 고독’에서 ‘모두가 날아가고 돼지꼬리가 달린 아이가 이어가는 기형의 세대’를 이야기했지만, 한 세대가 흘러가 상흔이 조금은 가신 세풀베다는 조금은 웃고 싶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이 끝에 다다랐음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네. 우리 몸이 알아서 신호를 보내 주지. 우리가 제대로 사물을 인식하고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해주던 그 신기한 메커니즘, 뇌 말이네, 그것이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삐걱대기 시작한다네.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기억이 우리를 되살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게 되지. 그러다 보니까 기억은 우리가 떠올리려고 하는 과거를 점점 더 미화할 수밖에 없는 거야. 절대로 기억을 믿지 말게나. 왜냐하면 기억은 늘 우리 편이거든. 어떤 쓰디쓴 경험이나 몸서리 쳐질 만큼 끔찍한 장면이라도 기억 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모두 아름답고 달콤한 추억으로 둔갑하지. 악몽 같은 어둠의 세월도 기억이 스치는 순간 환한 빛의 세상으로 변할 정도니까. 이처럼 기억은 언제나 한 편의 소설을 만들어 내려고 하지. 230p

 

칠레의 역사는 묘하게 80년대를 헤쳐온 우리의 역사와 겹친다. 학살의 아픔을 딛고, 약하지만 누구보다 강한 모성의 힘으로, 조금 더 염치가 있었던 많은 이들의 힘으로, 독재는 물러났다. 결국 정의가 실현된 듯 하지만 학살자는 편안히 역사를 조롱하고 학살을 시행하고 옹호했던 이들은 결국 또 한편에서 아픔을 가진 사람들은 비웃는다. -그들을 용서할 마음이 없냐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 후유증에 시달리던 5.18 시민군은 ‘그 누구도 잘못을 빌거나, 용서를 구하지 않았는데 누구를 용서하느냐’고 반문했다 -어쩌면 끝까지 학살자를 응징한 이스라엘식의 복수가 정의의 실현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역사는 조금씩 조금씩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 전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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