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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평점 :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을 대체 무슨 책이라고 정의해야 하나 혼란스러웠는데 인터넷서점 책 소개글에도 '짧은 말로 설명이 어려운 책'이라고 적혀 있어서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고 살짝 안심했다. 베스트셀러라는 이유로 부화뇌동해서 읽은 거라 무슨 책인지도 모르고 읽었는데 사실 책에 적힌 소개를 읽어도 감이 안 잡히기는 마찬가지다.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라니 그게 대체 뭐냐고... 그런데 또 읽고 나면 달리 이 책을 알기 쉽게 표현할 방법이 없겠다 싶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런 설명하기 어려운 책을 출판할 생각을 한 출판사가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반전이 거의 추리소설 뺨 치는 수준이라고 느꼈다. 독살 사건 부분도 그렇고, 우생학도 그렇고. (갑자기 우생학 이야기를 왜 이렇게 늘어놓지, 물고기는 대체 어디 간 거지 싶었음.)
처음에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학자의 전기라고 생각하며 읽었는데 갈수록 물고기와 거리가 멀어져서 왜 제목을 이렇게 지어 놓고 계속 다른 이야기를 하나 싶었다. 마지막에는 복선을 회수하는 느낌으로 잘 정리가 된다. 마지막 장과 에필로그에 저자가 이 책에서 하고 싶었던 말이 거의 다 정리되어 있다.
솔직히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팩트에 대해서는 100%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산어류' 비유 덕분에 대충 감은 잡을 수 있었다. 산염소, 산독수리, 산두꺼비, 산인간 등 산에 사는 모든 생물이 진화적으로 동일한 '산어류'라는 집단에 속한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라고. 현재 인류는 그와 비슷하게 바다에 사는 생물들을 '어류'라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범주로 묶어서 보고 있는 것이라고.
저자는 저자의 아버지가 '너는(인간은 그 누구도) 중요한 존재가 아니다'라는 말을 한 것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우리는 모두 각자 중요한 존재다'라고 반박하는데, 나는 '내가, 개개인이 전 지구적 관점에서 중요한 존재가 아닌 건 맞지 않나. 꼭 중요해야 할 필요가 있나' 싶긴 했다.
우생학 부분은 저자가 온 힘을 다해 매우 자세히 다루고 있는 만큼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불과 몇십 년? 몇 년 전까지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달까, 충분히 믿겨져서 무섭달까. 물고기를 넣지 않고 우생학만으로도 충분히 책을 쓸 수 있을 것 같다(아마 이미 많이 나와 있을 듯).
- 일단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고 나면 더 이상 그걸 제대로 바라보지 않게 된다.
- 성장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다.
-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는 것이다.
- 단어들을 늘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일러스트가 아주 독특하다. 내용과 찰떡궁합.
표준적인 판형이나 폰트가 아니어서 굳이?라는 생각은 했다.
언제나 그렇듯 베스트셀러는 읽고 나면 좋은 책이라는 건 알겠는데 베스트셀러까지 된 이유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시간 낭비는 아니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