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불지 않는 사람. 까불면 안 된다는 것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사람. 요새 우리 젊은 작가들이 쓴 건 잘 안 봐. 아무런 감흥이나 공감을 느낄 수가 없어. 사이버 공간에서 장난하는 것 같아."
위에 김훈의 말처럼 요즘 작가에는 해당하지는 않지만, 요즘 젊은 사람에는 해당되기에 까불지 않으려고 후기 제목을 그냥 <<강산무진>> 독자 서평으로 정했다. 그 전에 ‘한국 문학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 이나 '빗살무늬토기를 펴낸 직후 바로 문단의 큰 나무가 돼버린 사나이' 혹은 '개별자와 사물에 대한 미시적 접근 그리고 감각의 의미화 능력' 등 후기 제목을 잔뜩 멋들어지게 생각해 놨는데 김훈에 관한 예전 기사와 그의 말들을 떠올려 볼 때 제동이 걸려 부리나케 제목을 얌전히(?) 바꿔 놓았다.
김훈은 1995년 소방수의 죽음을 그린 첫 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를 발표한 이후 연달아 3개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렇게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 김훈의 첫 소설집 <<강산무진>>에는 장편을 제외한 2개의 문학상 수상작들을 포함해 총 8개의 단편이 실렸다. 그리고 8개의 작품을 모은 책의 제목은 조선 후기 화가 이인문의 그림 <강산무진도>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림 <강산무진도>는 작품 속에서 말하듯 '혼자서 가야 할 가없는 세상과 시간의 풍경'을 재현한다. 그래서 여기 모인 8개의 단편을 단단하게 묶는 작품이다. 표제작으로 어울릴 만하다. 그가 들려주는 삶은 <강산무진도>그림과 같다.
김훈을 떠올리면 우선 기름기가 빠진 간결한 문체부터 생각난다. 그래서 그를 '우리 시대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라고 부른다. 또한 김훈의 작품세계를 ‘심각한 위기의 순간에 그 상황을 판단하고 대응책을 강구하는 인간의 고독과 비애, 허무를 그리는 것’ 이라고 문학평론가 김인환 씨는 말한다. 이 말은 2004년에 나왔던 말인데, <<강산무진>>에 담긴 작품들에도 이 평이 여전히 적용되는 것을 보면 그의 작품은 계속해서 '허무'로 나가나 보다. 왜 그의 작품은 온통 '허무' 의 빛깔일까? 작가의 체험에 비춰 볼 때, 그의 유년을 지배한 전쟁의 폐허와 가난, 청년기를 관통한 독재의 암울한 기억이 허무주의로 세상의 허무에 맞서는 인간형을 탄생시킨 것이다.(2004, 경향신문)
그는 이번 책 출간에 앞선 기자들의 인터뷰와 2004년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 소감에서도 “황석영이나 조정래처럼 역사와 체제 전반에 대한 큰 눈을 갖지 못하고 자신의 내면밖에 보지 못한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강산무진>>에서 다루는 것은 모두 '나' 즉 개별자들에 관한 이야기뿐이다. 또한 그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개별자들의 연령대와 사건들은 김훈의 표현대로라면 '바스러져 가는 삶'에 대한 것들이다. 그리고 작품에서 그는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무덤덤하게 이야기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읽는 사람은 우울해진다. 각각의 소설을 읽어 나갈 때마다 접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하나같이 책을 덮고 외면하고 싶다. 이 소설집에는 인정하고 싶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담고 있으니까...
IMF 전 식품회사 사장 김장수는 직원이자 애인이었던 윤애를 공항까지 배웅하고 급히 공항에서 돌아오는 길에 미처 애상에 잠길 틈도 없이 사납금 구만오천원의 고지를 넘겨 벌어먹고 살기 위해 운전대를 잡아야 하고<배웅>, 화장품 회사 상무인 '나'는 아내의 죽음을 휴대폰 배터리가 떨어지는 하찮은 일에 비교하며 아내의 상중에도 여름 화장품 광고를 결정해야만 한다.<화장> '언니'는 남편 부조금과 피해 보상금을 시댁과 아들에게 빼앗기고 동생인 '나'는 남편과 같이 살아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해서 남편의 이혼 제의에 악다구니 없이 순순히 받아들인다.<언니의 폐경> 또한 아내와 이혼하고 혼자 사는 쉰일곱 살의 김창수는 은행에 가서 적금을 해약하고 저녁때는 주식을 처분하고 아파트를 파는 일련의 행동이 간암 판정 후 그가 할 수 있는 '정리'이다.<강산무진>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부모와 자식 간에도 살뜰히 돈 계산을 하고 이러한 돈 계산은 죽음 앞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더군다나 이혼이라는 힘든 상황에서도 아주 자연스러운 듯 감정 개입 없이 평범한 하루 일과처럼 이혼을 처리한다.
'내가 나이 들어 소설 속 주인공과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물음에 대해 <<강산무진>>의 해설을 한 신수정 주간은 '수락'해야 한단다. 인간이 힘든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초월'도 아니고 '인내'도 아닌 다만 그 상황을 '수락'할 뿐이라고... 그래서 이 수락을 통해 삶은 살 만한 것이 된다고 한다. 물론 작가는 한 술 더 떠 이럴 때 삶이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더럽혀지는 인간들이 아름답고, 더럽혀지지 않는 아름다움을 보면 신뢰가 가지 않아. 결국 살아 있다는 건 더러운 세계와 타협하고 흥정했다는 거지."(김훈) 그리고 '현실은 물질적 토대 위에 완성되는 것'이고.
그는 <<강산무진>>에서도 사람들이 입에 담기 꺼려하고 금기시하는 방뇨, 냄새, 월경, 성기 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있는 그대로 담박하게(?) 이야기 한다. 이 역시 작가는 추악하거나 온갖 더러운 것의 묘사야말로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과 인간의 아름다움을 입증하는 방법이란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 다양한 직업군이 등장한다. 택시 기사, 기업 임원, 등대장, 스님, 복서, 대학 교수 등 그가 기자 출신이란 점을 반영하듯 여러 직업군에 대한 묘사가 드러나 있다. 이러한 묘사가 소설의 사실성과 구체성을 높인다는데, 바로 직업에 대한 묘사 부분에서 화장품에 관한 설명과 준교사 시험을 봐서 시골 사립 중학교 교사가 되었다는 점은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좀 더 정확하게 실제처럼 묘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작가가 환갑을 바라보는 남자라서 화장품에 대한 언급 부분이 낯간지럽고 어색해서 그랬다거나 요즘 시대에 비춰 볼 때 준교사 2급 자격증만으로 시험없이 그냥 교장 면접만으로 아무리 시골학교라고 하더라도 임용될 수가 있나 하는 점에서 현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물론 준교사 시험 과목 역시 불만이지만.
그의 소설을 읽다보니, 김춘수의 시가 생각난다. <꽃>이라든가 <꽃을 위한 서시>라든가. 물론 장정일 시인과 신동집 시인이 섭섭하겠지만, 존재에 관한 탐구를 드러내는 시는 우선 김춘수부터 떠오르니 어쩔 수 없다. 김훈의 소설을 읽다 당신에 관한 언급이 나오는데, 그 부분을 말 그대로 소설 읽듯이 쭉 읽어 내려가다 보면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읽고 음미해야 '아, 이런 뜻이구나'라고 이해된다.
당신의 이름은 추은주(秋殷周). 제가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을 부를 때, 당신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린 그 사람인가요. 당신에게 들리지 않는 당신의 이름이, 추은주, 당신의 이름인지요. (중략)
저의 부름이 당신의 이름에 닿지 못해서 당신은 마침내 삼인칭이었고, 저는 부름과 이름 사이의
아득한 거리를 건너갈 수 없었는데, 저의 부름이 닿지 못하는 자리에서 당신의 몸은 햇빛처럼
완연했습니다. (<화장>, 54쪽)
그 남자를 '그'라고 부르려니까 지나간 입덧의 기억처럼 아무런 대상도 아니고 아무 사람도 아닌
것 같다. 그남자를 '그'라고 부르려니까 그 남자는 웬 남자이거나 저 남자이거나 한 남자처럼
느껴진다. (중략) 하는 수 없어서 '그'라고 정하고 나니까 '그'가 나하고는 사소한 인연도 없는
낯선 사물처럼 느껴져서 분하다. 하는 수 없이 그 남자를 '그이'라고 부르기로 정했다.
(<언니의 폐경>, 252-253쪽)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소설은 처음과 끝에 놓인 <배웅>과 <강산무진>이다. 우선, 이 두 작품이 담고 있는 시간을 보면, <배웅>은 오후 4시에서 새벽 4시, 저녁, 노을 속으로 잠기는 시간이고 <강산무진>은 저녁 일곱시 무렵이다. '왜 하필 이 시간대인거지? 두 작품에서 하강, 소멸, 죽음이라는 이미지가 시간을 통해 드러나는 걸까?'
또 <배웅>에서 윤애가 머무르는 공간은 '웰빙여관'이다. 라오스로 이민 간 남자와 결혼을 해서 캄보디아 접경 지역 외국인을 상대로 숙박업을 한다는 그녀는 오 년 전 김장수를 불편하게 했던 새하얗던 팔이 새까맣게 그을렸다. 그래서 김장수는 그녀의 그을린 팔을 보자 이제는 편해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공항에서 헤어질 때 장수의 요청에 윤애는 선글라스를 벗고 강한 햇볕에 눈이 상했다고 말하는데, 이 소설에서 '웰빙'은 그녀의 처지를 반어적으로 표현하는 듯했다. 과연 그녀가 웰빙의 낱말 뜻처럼 잘 먹고 잘 살고 거기에다 정신적 건강까지 누리고 있을까? 더군다나 그녀를 공항까지 데려다 주는 부분에서 장수는 그녀를 죽은 자를 상여에 실어서 장지까지 데려다주듯 세상의 끝에다 데려다주는 느낌이라고 표현한다.
<강산무진>에서는 간암 판정을 받기 전 '나'가 느끼는 증세를 묘사하는 부분이 아주 생생해서 내가 실제 경험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의사가 간암 판정을 하면서 '가족들과 마음을 합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은 곧 죽을 불치병으로도 찢어진 가족은 어떤 감동적인 눈물이나 화해없이 공항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합쳐지지 않음으로써 공허하게 들린다.
이러한 이야기의 전개로 볼 때, 그들의 앞으로 일어날 일도 독자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배웅>에서 저녁반 택시 운전 기사 김장수는 여전히 새벽 네시까지 교대 시간을 향하여 뛰고 또 뛰어서 사납금을 벌고 뛴 만큼만 벌어먹고 살 것이다. <강산무진> 역시 김창수가 가진 모든 돈은 결국 아들의 몫으로 고스란히 돌아가고 미국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요양시설에 입원하여 남은 생을 마감할 것이다.
<<강산무진>>을 읽으면서 가장 행복했던 것은 그의 단편 소설을 한 자리에 만나 한꺼번에 읽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한동안 그의 소설에 빠져 삶은 소멸해가는 것이고, 가족 관계에서도 돈이라는 문제는 어쩔 수 없구나 하면서 쓸쓸함을 매 작품이 끝나고 새로 시작될 때마다 느껴야 했지만. 그리고 그의 소설은 신문 기사 읽듯 빨리 읽을 수 있다.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더해진다. 네 번째 읽을 때는 앞서 읽었을 때 느끼지 못했던 점이나 이 점은 동의할 수 없다고 느껴지는 부분에서 동의할지도 모르겠다.
그의 이번 책을 통해 삶과 죽음의 가벼움, 초라한 사장의 모습, 폐경을 겪은 여성, 이혼한 여성, 자식에게 이용 당하고 아무 말도 못하는 어머니의 모습, 간암에 걸린 아버지의 모습, <뼈>에 등장하는 나이 든 대학원생의 모습 등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한겨레 신문에서는 '다양성 속에 통일성'이라는 말로 어떠한 상황에 대처할 때의 태도가 냉정하며 과묵하고 결코 요란을 떨지 않는다는 점에서 동일인처럼 보인다고 했다. 결국 나는 <<강산무진>>을 통해서 다양한 사람들의 한결같은 태도를 볼 수 있었다. 자신의 직업은 소설가가 아닌 '자전거 레이서'라는 김훈, 이번 소설을 통해 그가 더욱 좋아졌다.
끝으로, '왜 김훈은 너와 우리에 관한 소설은 쓰지 않는 걸까?'라는 물음에 대해서 그의 이번 <<강산무진>>출간에 맞춘 여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여운을 남겼다. 우리 역사의 치욕에 관해 생각해 둔 것이 있다는 그의 말때문에 차기작이 벌써 기대된다.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