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를 사랑한다 그리고 우리 한국사를 특히 사랑한다. 그 안에서도 굳이 택하자면 거시보다는 미시사에 치중하는 편인데, 어떤 한가지 사건이나 인물을 집중적으로 파헤치는 것에 유독 흥미를 느낀다. 아마 나는 타고난 스토커이지 싶다. 역사를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소설 장르 덕분이기에 역사소설은 그야말로 인물이나 시대를 막론하고 탐닉하게된다. 그런데 그것도 내 상황이나 근래에 본 사극에 따라 영향을 받기 마련이니, 작년부터 올해에 이르기까지는 왕이 못 된 세자들.. 특히 아버지에게 외면받았던 비운의 세자들에게 유독 마음이 쓰였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사도와 소현이다. 그러던 중 이 책 <소현>의 출간 소식을 접했다. 김인숙 작가는 한국 문단계에서 꽤 유명하고 보석같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작품이 내게는 처음인 여류작가였다. 사실 처음엔 사도세자로 착각하고 주문을 결심했었지만 도서 상세정보 페이지에서 이내 그 착각을 마냥 부끄러워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더 큰 호기심과 기대감이 조성되었으니 적어도 사도는 아버지가 아들을 죽였음이 분명하지만.. 소현 그는 정말이지 '오오 통재라..'는 표현에 딱 맞는 비운의 왕세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음으로 훗날 소현 대신 왕위에 오른 봉림(효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어쩌면 아버지와 형이 지녀야 할 무겁고도 가혹한 감정의 형벌까지도 모두 대신 짊어져야 했을 것이다. 나라는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에 왕으로서 잃을 수 없는 자존감들.. 그는 만인지상의 지위에 있기에 더욱 불행할 수 밖에 없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었을 것이다. 작가의 말에서 소개된 당시 정황이 잘 녹아든 MBC 드라마 <남한산성>. 어떻게든 영상을 구해서 한 번 보고싶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대목은 2장 도입부에서 펼쳐지는 시강원(청에 볼모로 잡혀있는 소현을 보필하던 기관, 본래는 왕세자의 훈육을 담당하던 전문 기관이다.) 대신의 이야기였다. 나는 이 부분이 마치 실존하는 사료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하여 더욱 소설에 몰입하게 되었다. 오죽하면 5월 6일에 작가의 모교인 연세대에서 진행된 특강까지 찾아가 이 소감을 전달했을까... -KBS에서 이 날 강연이 기사회된다고 들었는데 찾을수가 없다.. 흑 그렇담 이 격변의 난세 속에서 현명한 군주라면 주전론자와 주화론자의 대립 중 무엇을 택해야했을까. 단지 복수심으로 불태운 허무맹랑한 꿈이라고 치부하기에 효종의 북벌론은 정말이지 놓치기 아까운 사건이자 시대적 선택이 아닐까? 나의 이런 가치판단은 당시를 살지 않았던 배부른 자의 이기적인 이상주의일 뿐일까? 책을 덮을 무렵에는 이대로 이 책을 들고 서삼릉을 찾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바로 소현세자의 묘가 있는 조선의 왕릉터 중 하나다. 이번에 읽은 책 <소현>을 계기로 우리 한국사 중 내가 조선사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는 것에 다시금 확신 또한 할 수 있었다. 열 손 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하지만 참 우습게도 그 중 특히 아픈 손가락이 있듯이..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시대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은 헛점이 노출된 왕조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조선이 그리하리라. 절대로 그 기다림을 멈추지 않으리라. 그리하여 나의 모든 죄가 백성의 이름으로 사하여지리라. 아무것도, 결코 아무것도 잊지 않으리라.』며 읊조리던 소현의 조선을 감히 내가 꿈꿔본다. 비록 그는 이룰 수 없었지만, 우리 후대가 달성한 이 시점의 부국강병이 오래 전 젊은 나이에 소실되어버린 그의 영혼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길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