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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경성 - 근대 조선을 들썩인 투기 열풍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봉관 지음 / 살림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구한말 조선"이란 시기를 생각할 때 머릿속에는 언제나 국치의 이미지 만 가득하다. 정치중심으로 기술된 국민교육의 국사 만 접한 탓이다. 그러나 전문적인 학자가 아닌 교양독자의 수준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역사적 순간은 국가나 민족의 가장 영광된 순간에 치중되어 있다. 그나마도 단발적인 사건기술에 지나지 않아 역사란 사건의 연속이라는 착각 속에 빠지기도 쉽다. 그러나 역사에는 흥망과 성쇄가 같이 있기 마련이고, 특정 사관에 의거해 경중이 가려진 몇 개의 사건 만으로는 당대라는 큰 틀을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때로 진실은 가장 추악하거나 사소한 부분에서 들여다 보이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럭키경성-그리고 이 학자의 다른 몇 권의 책은- 교양역사 부문에 있어 꽤나 단 비 같은 책이다.
전봉관씨가 기술하는 구한말-근대의 조선은 그동안 우리가 읽어왔던 구한말과 다르다. 그의 책 안에는 분명 열강의 틈에서 고군분투하는 조선과 봉건과 서구가 접하는 경계에서 요동치는 사회, 그리고 그것을 배경으로 이승의 진흙탕에서 뒹구는 사람들이 있다. 그 개개인들이 어떻게 시대의 풍운아가 되었는지 들여다 보는 것은 추상적 어휘로 설명을 나열하는 것 보다 더 생생하게 당대를 전달한다. 나진에 부는 땅투기 열풍이나 풍운아 반복창에 관한 글에서는 당대에 이미 꿈틀거리던 자본의 이면에 무릎을 탁 치게 되고, 이하영의 출세기에서는 사회 전환기의 신분 요동을 생각하게 된다. 전봉관씨의 책에서 보이는 구한말의 조선이란 이미 공맹 만 찾던 시대도 아니고 아무 것도 없이 모던 만 따르던 시대도 아닌 이미 시대의 화신인 개인들이 어느 때 보다도 급변하던 20세기를 체현하던 공간이다.
구한말 조선은 현대 한국의 여명이었다는 점에서 이미 커다란 역사적 중요성을 갖지만 그에 비해 우리가 아는 바는 극히 적다. 어쩌면 국사책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 수록된 탓일 수도 있고-입시에 포함되는 부분이 줄어드니까-, 이야기해 봐야 국가에 대한 애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한국사에 큰 관심을 갖지 않는 나 개인의 착각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하튼 간에 전봉관씨의 새 책은 그것을 특별하게 만드는 비범한 요소를 많이 갖고 있다. 그의 기술이 주는 재미가 시오노 나나미에 비견될 만 하다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판단이지 만) 사관의 정치성에 있어서는 훨씬 높은 점수를 줄 만 하다. 지금은 영웅의 시대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