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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ㅣ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1
이시다 이라 지음, 김성기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동경의 이케부쿠로역은 일일 유동인구가 일본 내 2위에 이르는, 가장 번화한 부도심 중의 하나이다. 주로 개발된 곳은 동쪽 출구와 서쪽 출구로 동쪽 출구가 낮의 얼굴로 각종 백화점 등 쇼핑 시설로 이루어 졌다면 서쪽 출구는 밤의 얼굴이라고 불리운다. "도시의 밤"에서 연상되는 모든 사건들이 그곳에서 일어난다.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는 밤의 얼굴을 한 젊은이들이 흘러드는 광장이다. 광장은 질서로부터 낙오된 사람들을 받아주기도 하고, 질서에 수용되지 못하는 도시의 욕망을 받아내기도 한다. 말하자면 도시의 이면이다.
그러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만화 에서 흔히 나타나는 것 처럼 그들이 도시의 대안적 질서를 예시한 다고 볼 수는 없다. 그들은 단순히 생산지향의 도시질서로부터 낙오된 자들이 헤쳐모인 집단일 뿐이며 도시에서는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약육강식의 동물적 질서에 순응하며 철저히 기존질서의 권력시스템을 유지할 뿐이다. 도시에 저항하는 자들이 아니라, 말하자면 기생자들이다. 그들이 먹고 입는 모든 것은 반항적 질서를 상징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자본주의의 산물 그 자체이다.
소설은 이케부쿠로 서쪽지역이라는 공간에 누아르적 영웅을 이식하고 있다. 당연히 이야기의 한 축은 폭력과 욕망, 그리고 이것의 극단인 죽음이다. 도시가 눈감고 망각하는 이런 사건들을 해결하는 주인공은 도시에 속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케부쿠로적 질서에 속하는 사람도 아닌 중간자로서 이케부쿠로의 토박이이면서도 반 쯤은 이방인이다. 그는 양쪽의 질서에 유동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질서에 따라 양쪽의 공간을 재편성한다. 그리고 그의 질서가 복잡한 법전이나 관습 따위가 아니라 단순히 "인간적 감정"이라는 것은 소설 내 그의 행위를 영웅적 행위인 것 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현대판 신화 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고리타분한 방식이다. 여전히 그들은 "무언가"에 철저히 순응하고 있다. 저자는 도시의 욕망, 이케부쿠로의 날것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낙오자를 흡수하지도 그들을 보호하지도 못하는 사회에 저항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단순히 이케부쿠로라는 다소 진부한 신공간에 기존의 신화를 펼쳐보이고 있을 뿐이다. 반항이 꿈꾸는 새로운 질서가 타락해버리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