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와 죽은 자 1
제라르 모르디야 지음, 정혜용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기업을 사고 팔면서 더이상 그 안에 있는 노동자들의 생산력이 목적이 아니라 기업이 갖고 있는 기술력이나 차액이 목적이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국가간의 장벽이 높아 생산한 물건을 모두 자국 내에서 팔아치워야 했던 시대에는 드물었던 일이지만, 국가 간 자본의 이동이 용이해지고 "투자"라는 어휘의 의미가 생산을 통한 이윤이라기 보다는 금융 이윤 쪽을 의미하게 된 이후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몇 년간 이런 일들이 많아졌다. 언론들은 그들의 "투자"행위로 인한 국가적 손실에만 주목했지만, 오히려 더 주의깊게 바라보아야 하는 부분은 그들이 투자의 대상으로 삼은 대상이 수백, 수천명의 사람들의 삶의 기반이 되는 기업, 혹은 공장이라는데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신문에서 이야기하는 수백 수천억의 수치에 의해 호도되는 것은 그들의 자유로운 경제행위가 상당부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반을 갉아먹는 것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각자의 의지와 생활,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구조조정, 매각, 매입은 적색과 청색으로 표시된 장부 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이 되는 중앙 언론이 상위 1%의 이익을 위한 시각으로 우리의 생각을 조형하고 있는 지금은 이미 우리 자신이 인간이 추상화되고 반대로 수치가 구체화된 이미지로 살아남는 세계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 예를 들어 파업이 일어난다고 해도 우리가 알 수 있는 정보의 대부분은 그들이 어떻게 불법적인 파업을 했고, 이것이 민생에 끼친 다소 과장된 영향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들이 어째서 거리로 나왔는지, 그들이 어째서 회사의 로비를 점거했는지, 그들이 어째서 폭력적인 행동을 취하게 되었는지, 아무도 우리에게 이야기해주지 않고 자신의 일이 아닌 이상 우리의 누구도 그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소설의 인물들은 오히려 아이러니 하다. 공장을 살리고자 하는 것은 오히려 노동자들 쪽이다. 그들은 폭력적인 파괴자가 아니라 공장과 기계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그들의 삶의 기반이며, 생활 그 자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 경찰, 기업 등은 모두 다르게 반응한다. 통념적으로 공장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공장을 공중분해 시키고자 하고, 역시 통념 상 파괴자에 가까움 파업 세력이 공장을 지켜나가고자 하는 모습은 아주 아이러니 하면서도 동시에 굉장히 현실적이다. 추상적으로 인지되어 온 세상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돌려놓는 이런 측면이 900페이지에 이르는 긴 소설의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한다. 적어도 신자유주의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는 것에 있어서는 새로운 시대의 고전이 될 수 있을 만큼 생생하다. 역동적이고 치열하지만 동시에 나약한 그들의 모습이 조만간의 우리에게서도 보일 것 같아 두려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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