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른 한 살의 독신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서른 한 살+ 독신+ 여성 이라는 한국 사회의 3대 질환을 다 갖고 있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하나 더하기 하나 더하기 하나가 애초에 셋이 아니라 다섯이라고 천연덕 스럽게 이야기하는 것 처럼, 세 가지 조건이 같이 있으면 당사자는 당장에 꽤 심각한 병리적 상황에 놓이고 만다.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인구센서스의 위험군(서른한살독신여성군)으로 분류되어 버린 여성들은 그래서 더욱 힘들어진다. 젊음을 강요하고(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래서 결혼을 요구하고(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래서 결혼과 동반된 사회적 은퇴를 요구하는(여성이라는 이유로) 사회라는 앞뒤 꽉 막힌 고용주에게 대항하면서 살기에는 서른 한 살의 정치력은 약하고, 경제력은 어정쩡하다. 직장이 있다면 결국은 두 눈 멀고, 두 귀 막고, 입조차 막은 채로 평범한 서른 한 살의 직장인 보다 더 비굴하게 사는 수 밖에 없다. 더욱 무서운 것은 주변에서 서른 한 살의 독신여성을 나병환자인 양 호들갑을 떨며 취급하는 것으로 인해 당사자 자신도 스스로를 위험상태로 분류한다는 것이다. 아직 음식이 있을 때 먹을 수 있는 것을 먹자 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젊은 시절의 자신과는 무관한 마지막 타협을 시도할 수 밖에 없고 딜이 성공한다면 천천히 여성을 잃고 "아줌마"가 되어갈것이다. 장님귀머거리벙어리인 비전문 정규직. 하지만 우리가 천덕꾸러기 취급하는 그들은 서른 하나라는 나이로 인해 너무나 많은 것이 설명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캐리 브레드쇼의 구두 상자 속에 숨겨진 카드 영수증도 생각할 수 있다. 적절히 타락하고 현실감을 갖기 시작하지만, 십 년 전의 젊음을 망각하지 않은 경계인으로서 그들은 꽤 좋은 소설적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왜곡된 방식으로 이야기되거나 혹은 무시되어 왔다는 것은 조금은 이상한 일이다.

 

정이현씨의 소설의 강점은 여기에 있다. 스토리도, 문장도 "특별히"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음에도 사람들을 사로잡는 것은 서른 한 살의 미혼 직장여성을 그려내는 리얼함이다. 사실상 도서 시장을 주도한다고 보아도 좋은 2-30대 여성의 구매력에도 불구하고 출판계는 그들의 현실은 상당히 간과해오지 않았나 싶다. 잡지는 그들에게 늘씬하고 쿨한 소비를 강요했고, 소설은 그들에게 동화를 선사했지만, 여전히 서른의 그녀들은 소비될 뿐 주체의 자리에 서지는 못했다. 하지만 정이현씨는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중간에 놓인 그들의 욕망을 소소한 일상 속에서 적절히 잡아내고 있다. 온통 욕망으로 가득찬 볼거리로 전락한 여성도 아니고, 공주가 되는 꿈에 사로잡힌 여성도 아닌, 월요일이면 자전이 멈추기를 바라며 출근시간대의 만원 지하철에서 불편한 자세로 까만 창 밖을 바라보며 녹초가 되는 세 명의 여성은 이 소설의 주된 독자층 자신의 모습이다. 이 소설이  몇 없는 한국현대문학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라는 것은 2006년을 살아가는 여성이 얼마나 자신의 이야기를 갈망하는가를 이야기하는 증거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서른 한 살의 여성은 사실 패배자 라기 보다는 경계인으로 정의되어야 옳다. 경제활동인구에 편입된다는 꿈에 사로잡힌 사회초년생에서 벗어나 본격가치생산계층의 가장 낮은 곳에 임하는 사람들. 사실상 군대나 다름없는, 민주주의는 개뿔도 없는 타락한 세상을 자신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나 동시에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사람들. 그들은 반드시 가치를 생산해야만 하는 사회에 수혈되는 젊은 피 여야만 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소설 속의 누군가처럼 파릇파릇하지 못하고 칙칙한 나이든 "여자"로 정의되거나  도매금으로 넘겨야 할 "여동생"으로 취급된다. 같이 아득바득 살고자 하는데도 단순히 여성이라는 이유 만으로 패배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더군다나 자신의 노력으로 쌓아가는 커리어와는 상관이, 오로지 자연의 노화과정에 의해 불가항력으로 패배할 수 밖에 없다. 동안이니, 나이보다 젊으니 하는 말로도 그들의 패배는 가려지지 않는다. 아직도 세상의 절반은 유전자의 아주 일부가 다르다는 이유로 전혀 다른 인종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냥 소설일 뿐인 이 소설은 그냥 소설이지만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