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꿈꾸는 구두 5만 켤레
남궁정부.이무용 지음 / 북클릭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책 표지가 참으로 밝은 분위기다. 장애라는 단어와 약간은 어울리지 않는 듯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덮고 나면 당연히 어울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보통의 평범한 한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장애인이 되면서 불행은 시작되고, 그 불행은 결국 행복으로 승화하기 때문이다. 책 겉을 둘러싸고 있는 띠지 안에 담겨있는 신말을 머리에 이고 환한 웃음을 보여주는 주인공의 사진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페이지 곳곳에 신발 사진과, 주인공의 환한 웃음을 담고 있는 사진, 구두 제작과정 사진 들이 실려있고 간략한 메시지들이 함께 실려있다.
내가 일해서 월급을 받는 곳은 구두를 직접 손으로 만드는 수제화점이었다. 하지만 어느 틈엔가 수제화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기성화에 밀려 사양산없으로 전락했다. (중략) 얇고 초라한 월급봉투를 받아들고 나와 동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술집으로 향했다. 한 푼이라도 알뜰히 집에 가져다 줘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당장 우울하고 씁쓸한 기분을 푸는 게 우선이었다. p.32~33
이날 주인공(남궁정부씨)은 친구들과 과거의 화려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술에 흠뻑 취했다. 집에 가려고 지하철을 탔으나 정신을 차리고 봤을 때는 신도림역이었다. 그의 집은 천호동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공장인 구파발과도 전혀 상관없는 역에 와 있는 것이었다. 그때 사람들에 밀려서 선로에 떨어졌고 (바로 정신을 잃었다.), 선로로 무섭게 달려드는 전철은 그의 오른팔을 집어삼켰다. 병원에 막 입원했을 때 그의 좌절감은 어떻게 표현할 수 없었다. 자신의 일평생이 오른손에 담겨 있었는데, 그 중요한 것이 하루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으니 말이다. 그대로 주저 앉을 수 없어 빠른 퇴원을 요구했고, 그로인해 오른팔의 많은 부분을 절단해야 했다.
사고 난 지 3일째 되는 날 왼손으로 면도를 시작했다. 살아야 했으니까. 나는 현실을 외면하는 대신 면도를 하며 과거를 쓸어 버렸다. p.43
가족들은 도서대여점을 운영해보라고 권했지만, 그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다 어느날은 의수를 맞추게 되었고, 의수를 찾으러 들른 의료보장구 가게 직원 장완석이라는 사람이 장애인용 신발을 만들어보라는 권유에 다시금 구두장로 돌아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쓴 경험을 몇번 맛보았다. 오른팔이 없어 온 몸으로 구두를 만들어야 했던 고통, 직원들에게 제 때에 월급을 주지 못하는 어려움, 믿었던 직원들이 배신하고 그간 정리해둔 자료들 갖고 달아난 일 등... 참으로 모진 시기를 겪어내야 했다. 하지만, 자신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으로 더욱 열심히 구두를 만든다. 주저 앉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런 그의 정성에 감복을 해서였을까, 차츰 손님들이 찾아오게 되고 그의 신을 신은 사람들은 행복해 했다. 또한, 매스컴도 타면서 유명세를 탔다.
돈과 관계없이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큰 기쁨을 준 것은 처음이었다. 그저 만들어서 많이 팔려고만 했던 지난 시절과는 전혀 달랐다.
"나이 마흔이 된 사람을 저렇게 애들처럼 웃게 만들 수 있는 일이라면 정말 좋은 일이 아닌가. 그런 일은 꼭 필요한 일이 아닌가.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 그게 나라면, 내가 이 일을 계속 해나간다면 나는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아닌가." p.113
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아냈다. 그리고 더욱 열심히 장애를 가진 분들에게 편한 신발을 신게 하고자, 조금 더 걷게 하고자 진심을 담은 구두를 만들었다. 마침내, 세창이라는 정형제화 연구소를 차리게 된다. 더욱 많은 장애인들이 편히 걸을 수 있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세창의 구두가 이 세상에 티끌만한 빛이라도 된다면 내 인생은 그것으로 충분하다.(p.232)' 고.
남궁정부님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면서 과거의 그분과 똑같은 의문을 품었던 과거를 떠올렸다. '나는 이렇게 착하게 사는데, 남에게 나쁜 짓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왜 이런 시련을 만나게 되는 걸까? 저렇게 못되게 굴어도 잘만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왜, 왜?' 라고 말이다. 지금은, 언젠가는 하늘도 내 마음을 알아줄 거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노력하며 살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한참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그의 저력이 참으로 위대해 보인다. 나에게 그런 위기가 닥치면 나는 어떻게 대응을 할까. 그저 세상을 원망하며 주저앉아 누군가 구제해주기를 바라고 살지는 않을까. 왼팔은 없지만 그 외에 모든 것은 다 있다며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그의 끈기와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이 책을 통해, 야박한 사람들의 마음과 따뜻한 마음을 모두 만나볼 수 있었다. 개중에 안그래도 어려운 사람을 시기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여 가슴이 에려왔다. 세상에 이처럼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만 있다면 참으로 살 만한 세상일텐데, 그래도 착한 사람만 있으면 심심할지도 모르니 못된 사람들의 투정 쯤은 귀엽게 봐줄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보다는 훨씬 나은 환경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 내가 세상에 투정을 부렸던 지난 기억들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앞으로는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용기가 솟아날 것 같다.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는 힘은 바로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라는 것을 깨닳았으니까. 앞으로도 구두가 필요한, 몸이 불편한 많은 분들에게 편하고 소중한 신발을 꾸준히 만드셨으면 좋겠다. 세창 정형제화 연구소도 더욱 번창하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