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미안해 - 너무 늦기 전에 엄마와 화해하기
아이리스 크라스노우 지음, 박인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영원한 친구임과 동시에 갈등이 점차 고조되면서 철천지 원수가되는 엄마와 딸의 관계.  어머니와의 반복을 치유한 자신의 경험을 자연스럽게 풀어놓으면서, 그 사이사이에 저자가 미국 전역을 돌며 인터뷰한 100여 명의 딸들의 이야기 중 16명의 사례를 들려준다.

 

   <사랑, 미움, 그리고 깨달음> <어머니에 대한 환상 버리기> <어머니 끌어안기 > <사랑, 분노, 그리고 속병 > < 함께 늙어간다는 것> <죄책감, 슬픔, 그리고 화해 > <죽음 후의 재회> 라는 소주제들을 파트별로 나누어 16명 각각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그리고 늦기 전에 "엄마,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라고 어머니께 말하고 진정한 화해의 시간을 가질 것을 권하고 있다.

 

  나는 엄마 딸이다. 그래서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다. 우리는 같은 심장을 가졌으니까. (p7)

 

  엄마에 대한 나의 사랑이, 지금 이 순간 두려움을 느낄 만큼 깊어진 이 사랑이, 너무 늦게 나타났다. 2년 전 다리 절단 수술 후 엄마가 혼수상태에 빠져 힘들어 할 때에야 겨우 엄마를 사랑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의사와 세 명의 자식과 여덟 명의 손자들을 놀리기라도 하듯 죽지 않고 살아났다. 그래서 나는 나의 얘기 친구이자 술친구이자 나 자신과 운명이 연결된 존재인, 이 매력적이고 거부할 수 없는 엄마와 화해를 할 수 있는 약간의 보너스 시간을 갖게 되었다. (p8)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난 행복했으니까.” 어머니가 말한다. 어머니의 행복했다는 말은 어머니가 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p35)

  이들이 말하는 불평의 수위는 “귀찮아 죽겠어.”에서 “이러다 내가 죽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결국에 힘들게 얻은 결론은 모두 똑같았다. 바로 어머니에게 존재하는 어떤 끌어당기는 힘 때문에 딸들이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p74)

  

  어머니와 함께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어머니를 사랑한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바로 어머니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머니도 과거에는 딸이었고, 아내였으며, 어머니였다. 그리고 이것은 딸 역시 마찬가지다. (p162) 

  나는 이 책의 저자와 기타 등장인물들과는 달리 엄마와 아주 절친한 친구같은 사이로 지낸다. 어려서부터 줄곧 그래왔다. 그래서인지 소개된 인물들의 어머니와의 관계가 약간은 생소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세상에 단 한 분뿐인 소중한 엄마와 그렇게 지낼 수 있었는지.....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십분 이해가 갔다. 내게도 그런 가슴아픈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대상이 엄마가 아닌 아빠 ㅡ 나와 아빠와의 관계가 그리 악화된 이유는 여기의 등장인물들과는 다르다. 아빠가 내게 잘못을 해서가 아닌, 나 스스로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집은 부유하지 못했지만 마음 만큼은 즐겁고 화목한 우리 집이었다. 단지 친 할머니와 고모 둘이 문제였을 뿐. 우리 집에 불행의 불씨를 집어넣는 인물들이었으니. 아빠는 바보처럼 착하고 정이 많으신 분이셨다. 6。25때 나의 친할아버지를 여의고 집안 사정으로인해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고아원에서 지내셨어야 했다. 그러다 할머니께서 아빠를 찾아 데려가셨고 그 뒤로 학교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셔야 했다. 졸지에 가장 역할을 해야했으니까. 더불어 정에 목마른 사람이 되셨다. 그래서, 참으로 우리 식구들에게 최선을 다하셨고 애정을 쏟으셨다. 내게는 너무 벅찼나보다. 아니 내 성격에 문제가 있었던 게지. 아버지는 스킨쉽을 좋아하셨다. 머리를 쓰다듬고, 토닥여주시고... 하지만, 때때로 나는 거북했다. 나는 누가 내 몸에 터치하는 것이 싫었다. 엉덩이를 두드리는 것도 싫었다. 귀찮았다. 그래서 어느날은 아빠께 화를 냈다. 아빠는 이해하지 못하셨다. 그 뒤로 나는 아빠와의 거리를 두게 되었다. 나만의 벽을 쌓으면서... 한창 사춘기였을 때였으니까. 나는 그냥 나를 조용히 내버려두길 바랐었다. 그 뿐이었는데, 아빠도 그냥 애정표현을 하신 것이었는데 서로를 너무 이해하지 못했다. 그 때 시작한 감정은 아빠가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되었다. 아빠가 돌아가시는 줄도 모르고 참. 아빠가 말을 거시면 그냥 무시로 일관해 버렸다. 참 못된 딸이었다. 내 기분에 따라 친절했다 못됐다를 반복했다. 아빠가 중환자실에 입원해 계실 적에도 나는 뜻하지 못한 사건이 발생해서 병문안도 못갔었다.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는데 말이다. 오래지 않아 아버지는 하늘 나라로 가셨다. 그 뒤로 6개월 이상 매일같이 눈물로 하루 하루를 보냈다. 평범한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밥을 할 때도, 아빠가 나와 마주 앉았던 자리를 돌아볼 때도, 아빠의 채취가 뭍어있을 사소한 물건들을 볼 때도 모든 소소한 일상에서 아빠라는 존재가 떠올라 괴로웠다. 돌아가신 지금, 나는 더이상 아빠와 화해할 기회가 없다.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프다. ㅡ 라는 점이 달랐을 뿐.

 

  '이제는 아빠와 잘 지내봐야지. 아빠가 엄마와 좋은 추억을 남기셨던 제주도에 다시 가고 싶다고 하셨는데, 내가 그 여행을 하시도록 만들어 드려야지.' 등등의 생각을 하며 효도할 준비를 하고자 했는데 그냥 그렇게 떠나셨다. 망연자실 했다. 다른 사람은 다 죽어도 우리 아빠 만큼은 오래 사실줄 알았다. 아빠와 엄마는 10살의 나이차가 난다. 그런 점을 생각했다면 슬슬 준비했어야 할지도 몰랐다. 아빠는 환갑(올해가 환갑을 지내시는 해였다.)되기 2년전 그리고, 생신을 맞이하기 며칠 전에 너무 허망하게 가셨다. 생신이나 환갑이라도 치뤄드렸으면 내 고통이 그나마 덜 했을지도 모른다.

 

  한참을 고통에 휩싸여 있을 때, 아빠는 내 꿈에 세번 찾아오셨다. 책에서 다룬 <죽음 후의 재회>파트와 꼭 맞는 이야기다. 아빠께서 나를 용서하시고 위로하시고자 찾아오신 것일 수도 있고, 내 스스로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 꿈으로 나타난 것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나는 전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 번은 돌아가시고 몇주가 지나서 찾아오셨다. 나와 아빠의 추억이 서려있던 그 동네에서 아빠의 모습을 보이셨다. 아빠의 몸에선 후광이 비쳤다. 아마도 천국으로 가시게 되었나보다고 생각했다. 아빠를 사랑한다고, 아시냐고 내가 그랬던 것 같다. 그러자 아버지의 음성이 들렸다. "이젠 알지." 라고.. 그러면서 인자하게 웃어 주셨다. 매일을 눈물로 지내는 딸이 마지막 가시는 길에도 걱정되셨나보다. 두 번째는 그로 머지않아 또 꾼 꿈인데, 내가 지금 현재 살고 있는 집으로 찾아오셨는데 배가 고프시다고 하셨다. 그래서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했더니 차리지 말라시며 그냥 거실에 앉았다 가셨다. 나중에 엄마와 얘기를 했는데, 꿈에서 죽은 사람에게 밥을 차려주는 것은 자신도 저승길로 향하는 것이라고 그러셨다. 또 한번, 나를 배려하신 것이었다. 나는 몰랐다. 그런 내용을. 그리고 왜 아빠가 내가 차려드리는 밥을 거부하셨는지도. 엄마의 말씀을 듣고 보니 또 가슴이 미어졌다. 그렇게 너그럽고 인정 많으신 분을 너무 몰아세웠던 내 자신이 미웠다. 세 번째는 올 연초에 꾼 꿈에서 아빠와 재회를 했다. 집에 낯선 고양이과 동물 두마리가 있었는데 내가 현관 밖으로 내던지자마자 아빠가 가신다고 하셨다. 자세한 이야기는 하자니 길어서 하지 않겠지만, 꿈풀이 해준 분이 이르시길 '모든 불행을 고인이 장대 두 개로 짊어지고 가시니' 라고 말이다. 끝까지 나의 아빠는 못되게 굴었던 장녀를 그렇게 용서하시고,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라셨다.

 

  지금도 실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살아 생전에 잘 해드릴 것을..' 하는 생각만 날뿐. 아직도 철없이 부모님을 막대하고 제멋대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금 잘하라고 말하고 싶다. 아무리 미워도 돌아가시고 안계신 것보다 그렇게라도 살아계신 것을 감사하라고. 지금은 잘 몰라도 언젠가는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시기가 돌아가시고 난 후라면 나는 더이상 해줄 말은 없겠지만... 화해할 기회가 아직은 남아 있다는 것, 용서 받을 시간이 주어져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받은 일이다.

 

  부모님도 부모님이기 이전에 한 남자, 한 여자일 뿐이다. 나 자신이 완벽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그 분들이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부디 가슴으로부터 이해하고 용서하길 바란다. 돌아가시고 나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마지막까지 나의 이 권유를 무시한다면, 언젠가는 깨닫게 될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었던 일이고 어떤 불행을 자초하는지.

 

  혼자되신 나의 엄마가 가엽다. 그리고, 죄송스럽다. 비록 아빠는 돌아가시고 안계시지만, 아빠 몫까지 최선을 다해 엄마를 보살필 것이다. 좋은 추억도 만들어 드리고, 인생이 서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말이다. 그리고, 꼭 내가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것이다. 돌아가신 아빠도 힘껏 웃으실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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