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콜리 펀치>에서의 재기발랄하지만 따뜻한 느낌을 잊지 않고 있다. 이번 책은 연작소설이다. 6편의 소설이 실려 있고 앞 소설에서 등장한 인물이 다음 소설의 주인공이 되는 느슨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오리배]의 신지영은 택시를 타고 가다 사고를 당하게 되는데 [심야의 질주]에선 신지영과 함께 죽음을 맞는 택시기사 해남의 이야기가, [세상의 끝]은 오래전 해남의 택시에 치여 죽은 혜수와 지우, [아홉번의 생]에선 뒷 소설[영원의 소녀]의 주인공이 키운 3번째 삶의 고양이가 주인공인 식이다. 이렇 듯 그저 스쳐 지나갈 것이라 예상했던 만남이 어느 순간에선 생의 결정적 계기를 가져다 줄 수 있음을, 오늘 내 옆을 스치듯 지나가던 사람도 자신의 삶에선 오롯한 서사를 지닌 주인공이겠구나싶어 새삼 놀랍고 낯선 기분에 젖어들었다. 여기 1마리 고양이를 비롯한 5명의 인물은 모두 죽었다. 책은 그 죽음에서부터 시작된다. 6편의 주인공은 모두 생과 죽음의 경계에서 자신의 인생을 곱씹어본다. 그들이 똑같은 생을 살지 않았듯 소멸되지 못하는 이유 또한 같지 않다. 왜 떠나지 못하고 하염없이 머무는 걸까. 어쩌면 살아있는 동안엔 깨닫지 못했지만 가장 원했던 소망, 염원때문 일지도 모른다. 이유야 다르지만 그 속성은 비슷하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그런 것들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염원을 이룬 그들이 홀가분하게 떠나는 순간들이 아름답고 애틋해서 한줄 한줄 오래 들여다보았다. [아홉번의 생]의 고양이는 5번째의 생에서 선인장을 만나 사랑을 했지만 헤어졌다. 죽고 태어나길 반복하면서 드디어 아홉번째 생에 선인장을 다시 만나게 된다. 긴 윤회의 굴레를 마주하며 그는 깨달았다.p205 사랑을 무엇이라고 정의해 버리는 순간, 사랑은 순식간에 작아지고 납작해진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가 해야 할 일은 사랑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저 수천만의 행운이 겹쳐 만들어낸 오늘을 최대한 즐기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 유한한 생에서 의심없이, 아낌없이 사랑하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길 것. 작가는 그런 걸 말하고 싶었나보다. 책 표지 그림이 그런 좋은 곳이려나. 모두 좋은 곳에 머물길.📍서평단 활동으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