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확인 홀
김유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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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펜의시간>으로 2021년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한 김유원 작가님의 두번째 장편소설이다.
이야기는 희영이 낯선 이로부터 쪽지를 받으며 시작된다. '블랙홀' 세 글자가 적힌 쪽지를 보며 희영은 어린시절을 떠올린다. 작은 시골마을, 희영과 은정은 서울에서 전학 온 필희와  단짝이 된다. 얼마 뒤 필희의 어머니와 은정의 아버지가 함께 마을을 도망치듯 떠났고 마을은 물론 필희와 은정의 사이 또한 금이 가게 된다.
희영의 마을 은수리에는 저수지가 있다. 그날 이후로 좀 처럼 마음을 잡지 못하는 필희와 함께 희영은 마을 저수지를 찾게 되고, 저수지 안쪽 깊은 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까만 구멍을 발견하게 된다. 희영이 던진 돌이 공중에 떠 있다가 가루가 되어 까만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된 필희는 다음날 감쪽같이 사라지게 되고, 필희가 그 구멍 속으로 들어갔을거라 생각한 희영은 평생을 자책하며 살아가게 된다. 애초에  자신이 구멍을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희영의 이야기를 필두로 미정(희영의 이웃)-순옥(필희 엄마)-필성(필희 동생)-정식(필성의 일 관계자)-찬영(희영의 남편)-혜윤(찬영 병원의 직원)-은정의 각 8명의 화자가 그날 필희의 실종을 이후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옴니버스식 구성인 셈이다. 곳곳에 발견되는 미확인 홀이 환영인지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미정, 정수, 찬영, 혜윤은 그 일을 함께 겪었던 것은 아니지만 희영과 필성의 주변인물로써 그들 또한 자신만의 검은 구멍을 안고 사는 인물들이다. 이 책은 보통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어떤 사건의 '이후'를 다룬다.  아픔을 겪은 인물들이 그 후 어떤 식으로 삶을 살아냈는지,  서로의 면면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며 살아가는지를 그야말로 적절한 온기를 담아 담백하게 써내렸다. 그러니까 각자가 안고 사는 이 검은 홀은 그 크기와 깊이는 다를지언정 그것들이 무관하지 않으며 오히려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서로를 이해하고 구함에 인색하지 않기를. 서로의 끊어진 줄 끝을 잇는 또 다른 끈이 되어주길 .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과 섬세한 심리묘사가 인상 깊었다. 마음에 콕 박히는 문장들이 많아 문장들을 따로 추려내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다. 오래 간직하고 싶은 소설을 만났다.

#밑줄긋기

p113 살다보면 한꺼번에 잃는 것 같아도,살아보면 어떤 걸 완전히 잃기까지는 여러 단계가 존재한다고, 그러므로 완전히 잃지는 않을 기회 또한 여러 번 있다고. 때로는 잃지 않겠다는 의지가 상실을 막아주기도 한다.

p135 그래서 필성은 언니도 다른 실을 구해 박음질했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그럴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박음질하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어떤 사람은 대롱대홍 매달린 기분으로 평생을 살기도 한다는 걸 몰랐다.

p150 매미가 울면 매미를 봐야죠. 매미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잖아요. 저러다가 미쳐서 죽는 거라고요.

p182 나는 거의 모든 걸 이해받으며 살았어. 내가 잘나거나 좋은 환경을 타고 나서는 아니야.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것만 말하고 살아서 그래. 이해받는 건 내 문제가 아니더라고 , 상대의 문제지. 그러니까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말은 굳이 할 필요가 없어. 알아. 이해받지 못해도 뱉어 내야 살 수 있단 말도 있단거. 그래 내 삶엔 행운이 따랐어. 반드시 이해 받아야 하는 것들이 대부분 상대의 이해 범위 안에 있었거든. 자네는 그렇지 않았잖아.

p229 찬영은 지금 한 사람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로 낮고 좁은 온실에 웅크리고 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바늘 하나가 지나갈 정도로 아주 작은 구멍을 등으로 막고 있다. 그렇게 지킨 게 자신의 안온이었단걸 어젯밤 깨달았고 , 자신이 막고 있는 구멍의 크기가 얼마나 작은지는 방금 알았다.

P317 뭔가를 보고싶어하는 사람이 자살할 확률은 낮다. 정말로 위태로운 사람은 자기 안에서 답을 찾으려는 사람이다.





📌서평단 활동으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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