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깊은숨
김혜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평점 :
📖작가의 특이한 이력이 눈에 띈다. 국내에서 요가 지도자 과정을 이수한 뒤 인도에서 아쉬탕가 요가를 수련하고 요가철학을 공부했다. 소설집 제목 <깊은 숨>은 그런 일련의 과정에서 영감을 얻어 가져온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종 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작품에서도 간간히 요가는 주요 소재로 쓰인다.<가만히 바라보면>에서 요가강사가 화자로 등장하며 <비터스윗>은 실제 작가가 인도 요가학교를 다닐때 썼다고 한다. 그 외 <오지않은 미래>,<아버지가 없는나라>,<모니카> 등의 단편들도 작가가 실제 외국에서 거주하며 썼다거나, 등장 인물들이 주로 한국이 아닌 타지에서 겪게되는 상황들 그러니까 익숙한 생활 반경이 아닌 곳, 혹은 그런 상황에서 발생하는 충돌과 갈등이 주요 내용이다. 그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혼란스럽지만 낯선 감각들 속에서도 삶은 지속되고 '깊은 숨' 은 그렇게 한 발 나갈 수 있는 작은 원동력이자 쉼일지도. 전반적인 소설의 분위기 또한 차분했다.
개인적으론 마지막으로 실린 <코너스툴>이 가장 인상깊었다. 같은 공간에 있고 함께 얼굴을 마주보며 이야기하지만 속 깊은 대화한다거나, 취향과 가치관의 결이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스툴은 등받이와 손잡이가 없는 서양식 의자라고 한다. 권투 선수는 링위에서 싸우다가 3분이 지나면 돌아가는 자리가 바로 코너스툴이다.
동네 책방의 강연자와 책방주인으로 만나게 된 이오진과 박호산은 취향과 감성의 결이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간간히 연락을 주고 받으며 교류를 나누게 되지만 박호산은 유부남이었고 그로 인해 두 사람은 멀어지게 된다. 22년이 지난 후 박호산의 딸 예지가 문단의 주목을 받는 작가로 등단하게 되고 오진은 예지에게 그 이후(이 이야기가 찐임)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달라는 긴 이야기를 하게 된다.
P305 사람들의 이목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단 한 순간이라도 혐오적인 시선과 차별대우를 받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니? 나는 그저 나와 같은 사람을 사랑하고,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을 뿐인데, 내가 왜 그런 차별과 혐오를 견뎌야 하니?(이하생략)
호산의 코너스툴이 되어주고 싶었던 오진 역시 호산의 코너스툴이었을 것이다. 오진의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밑줄긋기
P45. 높은 성에 있는 성은 수려한 불빛으로 인간을 매혹하고 , 성에 이르는 길은 추위와 어둠에 묻혀 있으니 이 역설의 길을 나아가는 인간의 생애는 참으로 비루하기 짝이 없었다.
P139. 그래, '나'라는 존재는 어느 누구에게서 발생한 게 아니고 어느 누구에게 속해 있지도 않았어. 나는 그저 존재할 뿐이지. 마치 그날 바라본 친어머니의 눈처럼, 그 속에 담긴 하나의 영혼처럼, 나는 그저 존재하고 있어. 내가 잃어버린 퍼즐 조각은 나의 친부도 친모도 아닌, 나 자신이었어. 내가 찾아야 할 존재는 오직 나 자신뿐이라는 진실."
P291. 그런데 제가 읽는 소설 속 인물들은 진짜 자기 감정을 보여주고, 진짜 자기 자신을 이야기했어요. 제가 알고 싶은 삶과 인간에 대한 진실은 오직 소설 속에만 있었고, 그래서 저는 점점 실제보다 허구의 세계에만 집착하며 살아오게 된 것 같아요.
P303.내가 비록 그 사람이 살아가는 세계의 링이 되어주지 못하지만 , 그곳의 구석자리인 코너스툴만큼은 되어주고 싶었어.
📌하니포터활동으로 책을 제공받아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