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 이후 예술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41
이상빈 지음 / 책세상 / 200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필자는 ‘예술을 통한 수용소 극복’ 이라는 주제를 놓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수용소와 관련된 서구의 논의를 역사, 문학, 영화 방면의 담론을 통해 고찰하고 있다. 필자는 수용소 문제에 대한 연구에 가장 큰 장애가 되었던 것들 중의 하나가 ‘쇼아의 미학화’를 거부하는 담론이 지배적인 유럽의 분위기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지적 풍토를 의도적으로 무시한 채 그것의 가능성을 추구했다고 술회한다. 크게 ‘역사, 문학, 영화’ 로 나누어 논의하면서도 영화 부분에 소설이 등장하는 것은 필자의 전공이 불문학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또한 책의 말미에서 국내 문학계의 프랑스 문학에 대한 이해와 수용에 대한 태도를 비판하는 부분과 유대인, 유대교, 유대성에 대한 논의를 프랑스의 역사, 종교적 측면에 대한 광범위한 이해를 바탕으로 접근하는 것도 필자의 장점이 발휘된 부분이라 생각된다. 필자는 또한 수용소 문제에서도 물론이거니와 유대인 문제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전제되지 않은 서구의 현재에 대한 접근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수용소 문제를 이해함에 있어 역사에 대한 무지, 용어의 혼란스러운 사용에 대해 경계하며 친절히 개념 정리를 해 주는 친절함을 발휘하고 있다. 필자의 ‘개념정리’를 보기 전 ‘유대인 대학살’을 지칭하는 용어로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기껏해야 ‘홀로코스트’ 정도였다. 필자가 줄곧 사용하는 ‘쇼아’라는 단어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처음 접한 용어였다. 필자가 ‘제노사이드’, ‘홀로코스트’ 등의 용어를 제쳐두고 ‘쇼아’를 줄곧 사용하는 것은 필자의 정의대로 ‘유대인 학살이 갖는 독특한 성격, 다시 말해 ‘재현 불가능성’을 이 단어가 가장 잘 특징짓고 있다‘는 이유에서리라는 추측도 필자의 ’개념정리‘를 읽은 후에 할 수 있었다. ’제노사이드‘는 들어는 봤으나 그 정확한 의미는 몰랐던 터였고, ’최종해결‘, ’절멸‘ 은 ’나치 시대의 일상사‘에서 만났던 용어들이었다. 그리고 ’수정의 밤‘, ’벨디브 급습‘ 등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설명도 꼭 알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었다.

또한 눈에 번쩍 띄었던 부분은 ‘인종주의’에 관한 인용과 그와 관련된 필자의 주장이었다. ‘일반적으로 상상력과 심리학적 역할이 인종주의적인 사고를 살찌우며, 모든 형태의 인종주의는 상상적 재현인 개인적 또는 집합적 환상에 의거한다고들 한다.’ 라며 ‘인종주의적 표현이 종종 이론적 체계를 취하고 있을지라도 그것들은 이성적 사고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고 못 박고 있는 부분이 그것이다. 파시즘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인종주의’의 정체에 대해 생각해보며 또한 떠오른 것은 장정일의 ‘오해’와 ‘거짓말’ 론이었다. 필자가 인용한 부분에서의 ‘상상’과 장정일의 ‘오해’ 와 ‘거짓말’은 왠지 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보인다는 게 내 짧은 ‘상상’이 내린 판단이다. 장정일은 ‘오해’가 세상을 움직이는 중요한 동력이라 했으며 그는 ‘이 세상이 백퍼센트 거짓말로 이루어져 있다고 언제나 생각해왔고 그 가운데 십 프로의 악의적인 거짓말이 살인, 전쟁을 일으키며 아우슈비츠를 만든다고 생각해왔다’ 라고 했던 것이다.

필자는 수용소 문제에서 가장 규명하기 힘든 부분이 반유대주의의 역사라고 한다. ‘유대인의 존재가 반유대주의를 불러일으켰는지 아니면 상상 속의 반유대주의가 유대인의 존재를 규정해나갔는지를 밝혀내기란 쉽지 않다’ 고 한다. 이 문제는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와도 비슷한 문제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거대하고 쟁점이 뚜렷이 형성되는 이념의 기원, 뿌리에 대한 문제는 흥미롭기도 하고 동시에 난해하다. 그만큼 필자도 이 문제에 대해 딱히 결론을 제시하지는 않고 있는 듯 하다. 또한 반유대주의에 영향을 미친 것들을 언급하며 찰스 다윈은 ‘인간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적응, 발전해나가는 존재로 규정하며, 따라서 우생학적으로 열등한 종족은 도태되어야 한다’ 고 강조했다는데, 이는 내게 ‘다윈의 이론이 나치의 인종주의에 근거를 제공하고 정당성을 부여했던가?‘ 하는 조금은 충격적이고도 흥미로운 질문을 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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