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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이 눈 뜰 때
장정일 지음 / 김영사 / 1992년 8월
평점 :
절판
삶이 통째로 어긋나버릴 뻔 했었던 군생활.
삭막한 그 곳에서도 도서관은 있었던지라 이 책을 발견하고 품에 꼭 안고 애지중지했었다.
물론 재미있게 읽었었지만 소설 내용은 기억나지 않고 시뻘건 펜으로 노트에 옮겨두었었던
인상적인 부분들을 옮겨본다.
나는 사람이 사람을 죽음으로 인도한다는 것 그리고 많은 인간관계 때문에 내가 죽는다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
저급하게는 호기심이나 명예욕으로 문학에 입문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애초부터 개인적 구원이라든가 사회적 정의와 같은 아주 고귀한 목적에서 문학을 시작한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나는 그 무엇보다 문학이 내 직업이 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문학이 자기 구원도 명예욕도 아닌 직업이라는 것은 다른 어떤 이유보다 고귀하게 느껴졌다.
이제 습작을 겨우 끝낸 소설가 초년생인 내게 소설이란 인생유전을 그리는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소설에 대한 확고부동한 또 하나의 믿음이 있으니 소설이란 거짓말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이 세상이 100퍼센트 거짓말로 이루어져 있다고 언제나 생각해왔고 그 가운데 10프로의 악의적인 거짓말이 살인을 일으키고 전쟁을 일으키며 아우슈비츠를 만든다고 생각해왔다. 나머지 90프로의 거짓말은 악의적인 거짓말과는 달리 무해하거나 도리어 그 거짓말 때문에 많은 문제들을 덮어주는 세상의 윤활유 같은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설은 그 악의 없는 거짓말의 가장 참다운 세계가 아닐는지. 소설가라면 깜짝놀랄 거짓말을 해야한다.
분명히 여호와의 증인의 영향이라고 여겨지는 이런 부유는, 그 신앙이 내게서 영혼과 윤회를 빼앗아 갔기 때문이다. 그 신앙의 중요 교리에 의하면, 선택받은 선민들만이 이 땅에 영원히 살게 될 뿐 거기서 제외된 자들은 영원히 지옥의 고초를 겪는 것이 아니라 온 곳으로 자연스레 되돌아간다는 것, 즉 아무런 의식없는 흙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여호와의 증인 교리 가운데 가장 매혹적인 그 부분을 철저하게 믿고 있는 나는, 내 삶이 영원이나 윤회로부터 완전하게 닫혀져 있다는 것을 깊이 존중하며 그 사랑이 단 한번의 생 속에서 여러겹의 삶을 살고 싶어하는 욕망을 붙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