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볼 밀리언셀러 클럽 106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남희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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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미 기다려 주겠어?
뭘 기다려요.
카스미는 경악하는 이시야마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뭐라니, 날 기다려 달라고.
기다려서 어떻게 하라고요? 당신은 지금 당장 나를 도와주지 않잖아요. 그러다면 의미가 없어요.
카스미는 고개를 저으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알수 없는 미래를 위해 뭔가를 기다리는 것, 난 할 수 없어요. 지금까지 한 적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아요. 내겐 언제나 지금밖에 없어요.
그렇군.
이시야마는 한숨을 쉬었다.
당신은 언제나 그랬어. -33쪽

마지막에 현관 옆의 옷방으로 향했다. 이 방은 그날 밤 이후 한 발도 들인 적이 없다. 카스미는 문에 귀를 기울였다. 안에서 이시야마와 자신의 헐떡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새로운 두 사람만의 세계라고 생각한 것은 그 순간뿐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그 때문에 살아왔던 것이다. 카스미는 문에서 귀를 떼며 처음으로 작은 오열 같은 걸 터뜨렸다. 이시야마가 보고 싶었다. 유카가 보고 싶었다. -133쪽

난 아무에게도 용서받지 못할 거야.
이시야마는 쓸쓸히 말했다.
난 그런 생각한 적 없어요.
카스미에게는 상대를 용서한다거나 용서받는다는 발상이 없었다. 카스미의 상대란 항상 자신뿐이다.
그래? 고마워. 어쨌든 난 유카를 찾을 때까지 기다릴 거고, 당신이 건강해지기를 기다릴거야. -233쪽

카스미는 해마다 8월이면 현지에 갔다.
"그렇습니까. 그럼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기쁜 마음, 마치 여행아라도 가는 듯이 말하는군. 카스미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설령 말한다 해도 이해받지 못할 위화감을 안에서만 끓어오르는 열처럼 주체하지 못했다. 그릴고 유카의 실종에 관계된 사람 모두 이 사건을 과거에 묻어 버리고 싶어한다는 것을 느꼈다. -333쪽

어서 오십시오. 저는 어떤 분도 거부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
"카스미 씨, 내 신자 가운데 이런 사람이 있어요. 벌써 칠순이 가까운 할머니인데,물론 나보다 연상이죠. 그 사라마에게 어째서 예수 그리스도를 좋아하는가 물었더니 백인 남자여서래요. 멋있기 때문이라는군요. 그래서 신앙을 갖게 되었대요. 그렇지만 난 그걸로 좋다고 생각해요. 아니, 어쩌면 그게 전부가 아닐까 싶어요. 사람이 사람을 동겨하거나 욕심내는 것 말이죠. 또 다른 신자는 남자인데 그리스도에게 사랑을 느낀다고 해요. 그래서 성경을 필사적으로 공부한대요. 멋있는 이야기죠?"
"선생님, 그렇지만 선생님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 종교라고 했잖아요. 외견에 이끌려 종교에 들어서는 건 이상하지 않나요?"
"이상하지 않아요. 보이는 것은 언젠가 소멸해요.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소멸하는 것이 슬프고, 허무해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을 생각해요. 마음이나 진실을요."
오가타의 손가락이 카스미의 가슴에 살짝 닿았다. 카스미는 눈을 감는다. 쾌락이라기보다 평안함이 그곳에 있었다.
"복숭가 같은 가슴. 허무한 육체.-433쪽

육체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어서 그것을 말로 전하려는 노력은 너무나 무력한 것이었다. 하물며 우쓰미는 말에 의지해 타인에게 뭔가를 전하고자 노력해온 인간도 아니다. 아니, 타인과 서로 이해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환상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4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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