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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김관오 옮김 / 아르테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처럼 철학교사를 오래 하다 보면 이런 글을 쓰고 싶을 법 하겠다. 작가의 사유가 연령대와 경제적 배경이 완전히 다른 두 인물에게 딱 반으로 쪼개어져 할당되었다.
-인용할만한 멋진 구절이 많다는 게 소설의 덕목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내게는 아닌데.(거기다 이 소설에서 펼쳐지는 장광설들은 내게 전혀 '멋지게' 다가오지도 않았는데)
-다도와 오스 야스지로의 영화, 일식, 일본 가옥구조에 대한 찬사는 반갑기는 커녕 불편하다.
-많은 이들이 프랑스에 문화적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프랑스산이면 뭐든 시크하고 힙하다 외치는 이들을 보면서 한탄할, 자문화의 노회함에 질려버린 프랑스인이 정착한 곳이 겨우 '동양' 숭배라면, 프랑스 숭배자들이랑 얼마나 다른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지 의문이다.
- 스스로 정신적으로 고고하다고 믿는 자들의 판타지. 자기들끼리는 알아보고 정신적 교감이 가능할것이라 철썩같이 믿는 이들의 판타지. 관념 우월주의.
-르네는 왜 자꾸 자신이 다독가라는 것을 악착같이 숨기려 드는겨. 자신의 독서 편력이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르네의 모습은 르네의 의도라기 보다는 수위라는 정체성에 완전히 집중한 작가의 서투른 환기법으로 보여.'여러분도 아다시피, 수위는 책을 읽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믿잖아요. 여러분은 그렇게 믿어왔잖아요!!! ' 라고 들이대고 있지만 이건 전적으로 책 애호가인 저자만이 가지고 있던 편견일수도 있다.
-그리고 결말에서 왜 르네를 죽이냔 말이다. 친구를 얻게 되어 행복해진 르네를 왜 죽여버리냔 말이다. 저자는 4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관통하여 '아비투스'의 해체을 꾀하려는 듯 보아지만 실은 자신이 지녀온 편견을 고스란히 고백하는데 모든 지면을 할애하는 듯 보인다. 기껏 잘살고 고민없는 프랑스 좌파들을 비난하다가 결말에서 르네를 죽여버리는 저자의 의도는 대체 무엇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