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거지의 문화사
한차오 루 지음, 김상훈 옮김 / 수북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사회사의 배경을 갖고 있는 학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들 대다수는 실지로 역사학에 대해 일종의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역사학은 이런 성격이어야 한다는 정형화된 틀을 이미 갖고 있다는 것인데, 그 틀에 의하면 역사학은 국가나 민족, 혁명이나 전쟁, 노동과 계급투쟁 등과 같은 거대하고 중요한 사건들에 대해 서술하면서 맥락을 잡아주고 미래를 위한 전망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 조한욱 지음 /책세상).

 

    읽으려고 구입해두고 아직 머리말밖에 읽어보지 못한 문고판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그런 "정형화된 틀을 이미 갖고 있"긴 나 또한 마찬가지라 [중국 거지의 문화사]라는 제목을 들었을때 의아함과 호기심이 한꺼번에 생긴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거지의 문화사라.. 대체 거지에게 문화라고 할 만한 것들이 있으며, 거기에 덧붙여 "史"로 기록될 만한 어떤 요소가 있기나 한 것일까 하는 의문.

 

     "글을 시작하며"에서부터 종종 등장하는 "본 연구는~"이라는 표현 때문에 솔직히 겁을 잔뜩 먹고 읽기 시작한 책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학술적이라 못 알아들을 이야기만 잔뜩 실려있으면 어떡하나 싶어서.. 하지만 그런 걱정 때문에 이 책 펼쳐들기를 주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걱정 할 필요가 없는 책이라고 미리 얘기해주고 싶다. 글쓴이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법이 무척 흥미로워서 역사에 대한 별반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중국의 "거지"문화 전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특히 "19세기 초부터 1949년 인민 공화국이 건립될 때까지"(p19)의 기간에 대해 더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거지"는 비단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밥을 빌어먹고 사는 사람을 지칭하는 데 한정적으로 사용되는 말이 아니다. "거지"를 중국사회의 하류를 형성하고 있는 고정적이거나 일시적인 "유랑민"을 지칭하는 좀 더 넓은 의미를 갖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전체 여덟 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는 거지의 문화를 다양한 각도로 살펴보고 있다. "온갖 경멸을 받지만 중국에서 직업으로서 국걸의 역사는 아주 길다. 특히 도시에서 더 그러하다."(p41).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추측했을 때 거지로서의 생활은 불편하고 자존심이 상하는 얼른 벗어나고 싶은 상황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2년만 빌어먹으면 현령하고도 안 바꾼다."(p60)는 어떤 거지의 발언이나, 일반 근로자 이상의 수입을 벌어들이곤 했다는 거지들의 이야기를 볼 때 꼭 그렇지만은 아닌 듯. 오히려 책을 통해 본 중국의 거지들은 조직에 의해 뒷받침되는 막강한 권력(거지로서의 권력?)을 가질 뿐만 아니라, 그닥 비참해보이지도 않으며 스스로가 비참하다고 여기지도 않은 모습이었다. 상황에 떠밀린 마지못한 거지들도 분명 존재했지만 자발적인 거지가 상당수였다는 사실이 무척 놀라웠다.

 

    또한 "다른 직업들처럼 거지 또한 조상신"(p100)이 있었으며, 그런 조상신으로 여겨지는 인물들은 중국사에서도 꽤나 유명한 진 문공(중이), 송 태조 조광윤, 복수의 화신으로 여겨지는 오자서, 명 태조 주원장 등이라는 사실 또한 놀라웠다. 꿈보다 해몽이라던가...?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괴롭히고, 그 몸을 지치게 하고, 그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그 생활을 곤궁하게 해서는 행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하느니라, 이것은 그의 마음을 담금질해서 참을성을 길러주어 일찍이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p109)라는 맹자의 말에 감화를 받았다는 중국 거지들의 낙천적인 태도는....?!

 

    거지로 오랜 세월을 보냈지만 만년에는 거지생활로 모은 돈으로 학교를 세웠다는 중국 거지계의 모범적이고 신화적인(?) 인물 우순의 이야기(p283)는 오히려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의 사후 제작되었다는 그의 전기적인 영화와 마오쩌둥의 문화혁명과 관련된 이야기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버린 역사의 물줄기를 보고 있는 느낌이었고...

 

   "현재 하고 있는 이 작업이 무명인들과 소외된 사람들을 역사에 남게 하는 대과업에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p9)는 글쓴이의 바람은 다른 사람들에겐 몰라도 최소한 나에게만은 전달되었음을 알리며. 흥미롭게 읽은 책 잠시 덮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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