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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를 위한 세계 SF 걸작선
아이작 아시모프 외 지음, 정영목, 홍인기 옮겨 엮음 / 도솔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근 2주 동안 읽었다. 역시 단편집은 주욱 읽어나가기 힘들다. 한 작품이 끝날 때마다 툭툭 끊어지는 호흡, 그리고 또다시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때의 시차 적응 때문에 진도 빼기 참으로 버거웠다. 어쨌든 근 800 페이지의 책에 대한 감상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 '마니아를 위한'이라는 말은 쪼오금 과장스럽다.
-> 차라리 '입문자를 위한'..이라는 느낌이 강한데? 책 첫머리에 있는 옮긴이의 말에도 '기계의 냄새보다는 사람의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작품들을 골라 실은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대로 SF라는 장르적 특성보다는 좀더 보편적인 감성에도 어필할 수 있는 작품들이 실린 듯. 개인적으로는 과학적인 엄밀함이 두드러지는 작품들을 좋아하기에 이 책보다 먼저 봤던 <하드 SF 르네상스 1>보다는 취향에는 맞지 않았다. (내가 '마니아'라는 것은 아니지만.. '마니아'라고 하면 보통 좀 어려운 것을 기대하지 않나?)
-. 각 작가들의 특징은 잘 대변하는 작품들인 듯.
-> 절반 정도는 처음 보는 작가들이어서 잘 모르지만 내가 전에 읽어봤던 작가들(하인라인, 렘, 르 귄, 아시모프 등)의 작품들은 모두 그 작가들의 스타일이 잘 살아있다. (렘은 역시 렘답게 슬랩스틱 코미디였다는... 처음엔 <사이버리아드> 외전인 줄 알았음) 내가 몰랐던 작가들도 아마 그 사람들의 대표작인 듯 하니 단편집의 장점 중 하나인 작가 맛보기는 괜찮았던 것 같다.
-. 읽다 보니 남성의 여성에 대한 폭력적 성향을 비판하는 글들이 꽤나 포함되어 있어서 상당히 놀랐다.
-> 이것은 마음에 들기도 하는 동시에 약간 불편한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은 역자가 어째서 이런 단편들을 많이 실은 것일까, 역자의 의도가 궁금하기도 했다. 이러한 페미니즘(?) 성향의 글이 수십 년 전에는 어떤 주류 혹은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었기에 그것을 보여주려고 넣은 것인지, 이 부분에 대해서 설명이 좀더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소설들 자체는 괜찮았다. 그 얘기인즉슨 그 소설들이 시사하는 바가 참으로 끔찍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 이 단편집에 실려 있는 키릴 불리체프의 <내가 당신들을 처음 발견했다>라는 단편의 아이디어는, 우연히도 읽은지 얼마 안되는 호시노 유키노부의 만화책 <2001 SPACE FANTASIA>를 생각나게 했다. 물론 시간 여행을 다룬 단편들(아시모프의 <죽은 과거>, 알프레드 베스터의 <모하메드를 죽인 사람들>, 앤터니 버제스의 <뮤즈>)을 보면서 폴 앤더슨의 <타임패트롤>이 생각난 것도 어쩔 수 없는 기시감. 물론 소재를 다루는 방식은 다 다르지만.. 유사 소재를 다루는 방식을 작가별로, 연대별로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인데 아직 그 수준이 되려면 한참 멀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