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학자의 눈에 비친 두 얼굴의 한국어 존대법
김미경 지음 / 소명출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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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언어공동체에 속해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모국어의 내적형식에 따라 그들의 체험을 소화하고, 그에 상응하여 사유하고 행동하게 된다 


-레오 바이스게르버 (Leo Weisgerber, 1929)



우리나라의 갑질 문화 기저에 무엇이 있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단 기간에 급성장한 개발도상국의 물질만능주의, 소비자가 왕이라는 사고방식, 좁은 땅 덩어리 대비 높은 인구밀도로 치열한 경쟁을 유발하는 사회, 대체로 급한 성미의 사람들. 그런데 이러한 경제, 사회, 지리적 요인 이외에 타국과 구별되는 언어 문화에도 이유가 있음직하다.


엄격한 위계질서로 기장과 부기장이 제대로 소통하지 못했고 이것이 사고로 이어졌다고 1997년 대한항공 801편의 추락에 대해 일부 외신은 보도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의 원전사고에 대한 평가도 상 하급자 간의 복종형태, 다시 말하면 유교에서 기인한 강한 서열문화,가 요인이 되었다는 맥락에서 비슷했다. 대개 사고의 원인은 복합적이기에 단언할 수 없지만, 적어도 쌍방향의 커뮤니케이션이 부재한 사회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시사한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어떠한 인간관계에서도 나이, 학벌, 지위 등의 정보를 바탕으로 화자와 청자의 서열이 매겨지고 이를 바탕으로, 특히 이 중에서도 나이 중심으로, 소통한다. 선배, 형, 누나, 오빠, 선생님 등 윗 사람을 지칭하고 존대하는 수 많은 형태의 표현에 반해 아랫사람은 그저 동생으로 통용되며, 철저히 윗사람 위주로 관계가 흘러가는 것이 당연한 우리 사회. 화자와 청자 뿐 아니라 대화 속 주체와의 관계까지 사회적으로 서열화하고, 이를 반영한 존대법으로 말해야 하는 우리의 화법.

언제나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는 우리나라의 언어 속 복잡한 존대법 만큼이나 하대법이 발달했다는 것, 존대법은 이렇게나 이율배반적인 어법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배웠다. 몇 십년을 나고 자란 이 나라의 익숙한 언어 규칙이 나의 사고까지 지배해 왔음을, 한국의 상명하달식 줄 세우기 문화가 한국어로 인해 한국인들에 고착화 되었음을 책을 읽을수록 실감했다.


우리나라 대통령과 외국 수장을 차별하거나, 권력자에만 직함을 붙이는 언론의 행태를 꼬집은 3장이 가장 통쾌했다. 아울러 청자에 대한 공손함을 빙자한 과잉존대가 궁극에는 청자에 대한 화자의 책임전가라는 분석이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영어학 박사인데 한국어법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과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안목이 좋다. 외국 생활도 하고 나름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이 있지만 그간 이런 모순에 대해 특별히 생각하지 못했던 내 자신도 신기하다. 이제라도 한국어라는 우물에 갇혀 온 나의 편협한 사유를 넓혀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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