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여행자
류시화 지음, 크리스토퍼 코어 그림 / 연금술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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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알게 된 건 사회 초년생일 때 였다. 일에 있어서 만큼은 누구보다 치열했던 내가 매일을 아둥바둥 하는 것이 안타까웠던지, 잠시 머무는 지구별에서 좀 더 느긋하게 여행을 즐기는 게 어떻겠냐고, 내가 존경하던 분이 권했었다. 임원이자 나의 상사였던 그가 열심히 일하는 부하 직원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았지만, 그 때에 나에게 깨달음을 주었던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 현재의 나에게도 커다란 새로운 감회를 주었다.

전 재산을 폭우에 쓸려 잃어버리고 나서도, 원래 가진 것이 없었으니 밑지지 않았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작가를 위로하던 친구 가네샤. 급하게 서두르며 잔돈을 챙기다 되려 일을 그르쳤고, 느려터진 인도인 노인의 지혜와 함께 얻게 된 망고주스 이야기. 내가 세상사를 통제할 수 없듯, 원숭이가 골프공을 멋대로 옮겼다면 그 곳에서 다시 경기를 시작하라는 영국인 골프장 규칙에서 저자가 배운 교훈.


나도 외국에 있을 때 마지막 회사에서 인도 비즈니스를 하긴 했지만, 그 와 상관없이 사석에서 만나 사귄 친구들 중 이상하게 인도인이 많았다. 그 중 동갑내기 친구 하나가 공을 치기로 약속해놓고 15분이나 늦은 적이 있다. 빗 속에서 기다림 끝에 썽이 잔뜩 나 소리를 지르던 나에게 그는 빙긋 웃으며, 너희 나라에서는 다들 시간을 칼같이 지키나보구나 정말 미안해, 라고 하던 어이없는 놈. 타지에서 힘들어하던 예민한 외국인 노동자였던 나에게, 너를 둘러싼 모든 세상사는 네가 바꿀 수 없는데 너는 그걸로 계속 힘들어 할 것이냐고, 차분한 영어로 웃으며 말하던 어이없는 놈.

물론 인도도 빈부격차가 극심하다. 한 끼에 40만원이 넘는 스테이크를 척척 사주던 뉴델리 출신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그 스테이크보다 이 동갑내기 친구가 따뜻한 우유를 손수데워 가루를 타 끓여주던 커피가 더 그리워진다. 류시화 작가가 매년 인도를 되찾았던 이유를 충분히 알 것 같다. 나는 비록 한국에 와 당일배송이 안된다고 울화통을 터뜨리는 보통의 한국인으로 이미 돌아왔지만, 류시화 시인의 책을 읽으며 그 때의 시간으로 그 부끄러운 마음으로 종종 되돌아간다.

치안을 이유로 여자 친구들이 인도를 가겠다고 하면 언제나 말려왔던 나다. 인도로 직접 떠나는 대신, 오랜 사색 끝에 가슴으로 풀어낸 이야기들의 세계로, 이 책과 여행을 떠나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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