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시대 - 인문.사회 담론의 전성기를 수놓은 진보 논객 총정리
노정태 지음 / 반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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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류의 역사를 금, 은, 청동, 철의 네 시대로 구분했다고 한다. 황금의 시대에서 철의 시대로 이행할 수록 세상은 더욱 혼란스러워졌고 인류는 점점 타락했다. 심지어 헤시오도스는 『일과 날』에서 '이 시대가 오기 전에 죽거나, 이 시대에 끝난 후에 태어났어야 했다'고 자조했다. 그리고 현세는 바로 그 철의 시대였다.


2.

그런데 사실 헤시오도스는 이 네 시대 사이에 한 시대를 더 끼워넣었다. 바로 '영웅'의 시대다. 반인반신인 이들은 인류와 완전한 '철의 시대'로 접어들기 전에 빛나는 무용담을 남기며 활약했던 이들이었다. 요컨대 『논객시대』의 노정태가, 『안티조선 운동사』의 한윤형이, 그리고 이들과 인식을 같이 하거나 같이 했던 많은 이들(민주당-열린우리당 혹은 진보정당을 지지했던)이 목격했던 것은 바로 현세, 즉 '완전한 철의 시대(?)'가 오기 직전 영웅들이 활약하던 바로 그 때의 장면들이었으리라.


3.

1987년 이후, 한국 사회는 1997년 IMF를 맞기 전까지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황금기를 누렸다. 물론 이 시기는 동시에 (물질적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의미에서도) 세계를 지탱하던 거대한 축 중 하나가 무너져 내린 시기이기도 했지만. 이 시기에 누군가는 '역사의 종언'을 얘기했으나,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만큼은 그 어떤 시기보다 역동적인 에너지가 태동한 시기였다. (이렇게 보면 가끔씩 세계를 움직이는 시계와 한반도를 움직이는 시계는 서로 조금 엇갈린다는 생각이 든다.)


4.

그러나 영웅담은 대개 영웅의 죽음으로 끝이 난다. 헤라클레스도, 이아손도, 아킬레우스도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그리고 그렇게 영웅들이 모두 죽고난 후에야 비로소 현세(철의 시대)가, 인간들의 시대가 열린다. 영웅들은 그들 나름의 재간으로 자신의 운명을 꾸려갔고, 긍정적인 의미에서든 부정적인 의미에서든 오늘의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몫이다.




p.s. 

아르고 원정대랄지 어벤저스랄지, 아무튼 내로라하는 논객들이 총출동했던 '안티조선운동', 바로 그 현장에 있었던 탓일까? 논객들에 대한 서사시를 읊는 노정태의 문장은 날개를 단 듯하다. 어쩌면 가장 큰 애증의 대상일 진중권에 대한 평을 보자.


"하지만 진중권이 '다 이루었다'고 생각했던 최소한의 진보는 대단히 허약한 뿌리를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토양이 유실되어 뿌리가 드러나고 가지가 말라붙고 나무가 땅에 쓰러지는 과정에서, 진중권이라는 '진보 논객'은 결국, 본인이 비판했던 다른 논객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판단과 선택을 해야만 했다. 인정하자. 숱한 '야권 단일화'의 정치적 도박 끝에, 이제 한국 정치판에서 제3세력으로서의 진보정당은 의미 있는 중량감을 보여주지 못한다. 이런 구도 속에서 진중권 역시, 자신이 '야권 이산' 중 한 명으로 판단된다는 사실을 이제는 애써 부정하지 않는다. 이른바 범야권이 진중권에게 바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개 잡고, 닭 잡는 일"일 뿐이다. 진중권이 디오게네스로서의 존재 미학을 주장한다 한들, '진보'의 위치를 차지한 범야권은 백정 노릇을 계속 요구할 따름이다. 우리의 디오게네스는 한국 사회로부터 체류형을 선고받았지만, 그 디오게네스가 박근혜에게 추방형을 선고하는 일은 실로 요원해 보인다." (96~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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