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게임 - 그들이 중산층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콘유 3부작
박해천 지음 / 휴머니스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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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역사는 어쩌면 아파트의 역사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식민지 경험과 그에 이어진 참혹한 전쟁이 남긴 정신적․물질적 폐허 위에서, 아파트는 그야말로 온 나라 사람들이 ‘근대화’에 대한 일념 하나로 도시 곳곳에 쌓아올린 거대한 철골 콘크리트 구조물이자, 동시에 사람들의 욕망 위에 세워진 장대한 ‘콘크리트 유토피아’였다.


저자 박해천이 『아파트 게임』을 통해 살펴보려 하는 것은 바로 그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의 서사이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조금 특이한 글쓰기 방식을 취하는데, 이른바 ‘비평적 픽션’이 그것이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저자의 시선은 대상과 거리를 둠으로써 ‘아파트’라는 구조물이 어떤 형태로 사람들의 삶의 형태와 의식에 영향을 주었는지, 그리고 그 구조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욕망이 어떤 형태로 변화하고 확산되어 ‘현재’에 이르렀는지 관통한다.


전작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욕망의 대상이었던 ‘아파트’의 의인화를 통해 자기 삶(아파트의 역사)을 스스로 말하게 하는 방식을 취했다면, 『아파트 게임』은 욕망의 주체인 도시 중산층의 시선을 통해 그 욕망의 구조와 역사를 하나하나 짚어간다. 대표적인 중산층 세대이자 베이비부머 세대인 1955년(2장)과 1962년생(3장)의 시선에서 정치 격변, 경제호황, 아파트 건설이라는 일련의 흐름ㅡ그 자체로 대한민국의 역사인ㅡ은 각 세대가 경험했던 도시(공간)의 모습과 사건(시간)을 중심으로 재구성되며, 마침내 그들의 자녀 세대인 1990년대(4장)와 2000대(5장)로 회귀한다. 이렇게 재구성된 일련의 과정은 마치 ‘소설가 구보 씨’처럼 시대를 반복해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파국의 현장을 드러낸다. 1930년대(박태원), 1970년대(최인훈), 1990년대(주인석)를 되풀이 하며 살았던 ‘소설가 구보 씨’의 시선처럼, 『아파트 게임』에서는 ‘아파트’로 상징되는 ‘중산층’의 단란하고 행복한 삶을 꿈꿨던 이들의 삶을 돌아본다. 그것은 ‘평수’ 또는 ‘지역’으로 대표되는 아파트의 숫자들과, 그 이름 아래 대출이자, 사교육비, 대학등록금, 명예퇴직 위기를 감내해야 하는 삶, 혹은 극심한 취업난과 비정규직 문제, 아파트 가격 폭등이라는 무거운 짐을 진 채 호황의 기억만을 자기 위안 삼아 상품으로 소비하는 삶뿐이다. 아파트로 상징되는 욕망이 낳은 이 끔찍한 영원회귀.


그렇다면 이 끔찍한 비극을 끊어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더 이상 탄원은 없다, 돌파하라!”고 일갈한다. 부동산 신화가 더 이상 중산층의 행복한 삶을 대변해주지 못하는 저성장 시대라는 현실에서, 여전히 아파트가 그리고 아파트로 상징되는 욕망이 주인 행세를 계속하는 사회는 구성원들에게 어떠한 행복도 보장해 주지 못한다. “폭등에 대한 기대감이 역병처럼 번졌다면, 폭락에 대한 공포는 피할 길 없는 후유증이지 않은가?”(64~65쪽) 저자가 던지는 일갈처럼,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신화는 결국 행복이 아니라 공포가 만연한 사회를 남겼다. 그리고 이러한 신화는 2000년대 후반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확산된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에도 이 땅에서 여전히 그 신화적 힘을 잃지 않고 있다. 결국 이 책은 눈앞의 파국을 보면서도, 애써 그것을 외면하는 이들의 시선을 하나의 질문 앞에 분명히 마주하게 만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둘 중 하나다. 지옥에서 벗어나든지, 아니면 영원히 반복하든지.




덧붙이기.

디자인 전공자답게 저자의 글쓰기 전략은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비평, 픽션, 사진, 도표 등 다양한 방법으로 구성되었다. 즉, 이 책에서 디자인은 단순한 껍데기가 아니라, 저자의 의도를 보다 선명하게 가시화하기 위한 방법이다. 전작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이런 점을 살 살렸다. 애초에 학문 간 통섭을 목적으로 디자인에 힘을 준 자음과 모음의 '하이브리드 총서' 시리즈 중 하나로 기획되어, 전체 디자인을 저명한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인 workroom에서 맡았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아무튼<아파트 게임>은 이런 지점에서 아주 조금 아쉬움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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