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 


한나 아렌트는 덴마크의 소설가 이작 디네센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있어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 우리에게 말 걸고 위로를 해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소설을 만난다는 일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김애란은 이제 30대가 된 젊은 작가로 일찍이 전작 《달려라 아비》(2005)를 통해 많은 팬을 확보한 바 있다. 《침이 고인다》(2007)는 이후에 출간된 단편들을 모은 단편집으로, 이번 작품 역시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작가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2~30대를 주로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그녀의 소설 속에서 주인공들은 대개 사회와 타인들 사이에서 안정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부유한다. 그런데 바로 이것, 경제적인 결핍과 인간관계에서의 결핍의 문제는 바로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예외가 아닌 문제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 즉 ‘우리’들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그야말로 벼랑 끝을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다. ‘나’는 14평 남짓한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바람과 상관없이 학원 강사를 해야 하며, 심지어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생리 중임에도 운동회에도 나가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간신히 버티는 공간에 타인은 결국 방해꾼일 수밖에 없다(〈침이 고인다〉). 또한 이러한 현실에서 사랑하는 두 연인은 그 어떤 날보다 자신들이 주체가 되어야 할 크리스마스라는 시간에서조차 단지 주변자로 머물 뿐이다. 사랑을 확인하는 장소(공간)는 오히려 평소보다 (그리고 그 가치보다는 훨씬) 더 많은 가격을 지불해야 하거나, 2시간 마다 새로 주문을 해야만 간신히 머무를 수 있다. 즉, 오직 끊임없는 ‘소비’ 속에서만 유지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그조차 극심한 경쟁으로 얻기 어려운 경우가 태반이다. 결국 연인들은 어떠한 경우에든(소비 경쟁에서 이기든 지든) 충족감보다는 훨씬 큰 피로감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성탄특선〉). 

더욱 큰 문제는 이것이 단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지나가는 곳인 줄 알았던 장소를 몇 년이 넘도록 여전히 맴돌고 있으며(〈성탄특선〉), 무수히 많은 장소들을 전전하였음에도(“번역 아르바이트, 커피숍 서빙, 화장품 회사 홍보직, 잡지 교열, 논술 첨삭, 영어 과외…”, 208쪽) 여전히 자신이 있어야 할 장소는 불투명하다(〈기도〉). 이것은 그야말로 비극보다 더 ‘비극적’인 상황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 모두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며, 언제 끝나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존재 자체로, 그러니까 삶의 주체로 있을 수 없으며, 공간들의 부재-결핍 속에서 더욱 피폐해지고 파편화되며 고립되고 만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을 타개할 방법은 있는가? 즉, 다시 말해, 우리를 위로할 수 있는 것은 있는가? 아쉽게도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김애란은 이번 작품까지는 아직 불분명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 같다. 김애란의 소설 속의 ‘나’는 아직까지는 현실을 버거워하면서도 이내 자신의 좁은 공간 속으로 숨어들고 마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사내에게 문자를 보낼까 말까 보낼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보내지 않는다”(〈기도〉) 그러나 서두에 언급하였듯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 즉 ‘우리’의 목소리로 위로를 해줄 수 있는 소설을 만난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축복이자, 나아가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어떤 정서적 공간-토대 마련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을 생각할 때 우리는 여전히 ‘우리 세대의 소설’이 갖는 힘, 어떤 가능성을 포기할 수 없다. 아직까지 김애란은 젊은 작가라는 점, 또한 그녀가 ‘현실’의 문제에 대해 전작보다 깊은 고민과 무게감을 가지고 다루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우리는 여전히 '우리 세대'의 작가로서 그녀의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20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