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있었던 어떤 사건을 극적인 허구성이 없이 그 전개에 따라 사실적으로 그린 것”
다큐멘터리의 사전적 정의다. 이 정의에서 우리는 다큐멘터리가 특정한 대상(‘어떤’)을 특정한 형식(‘허구성 없이’)과 내용(‘사실적’)을 통해 그려낸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이것은 필연적으로 일련의 ‘관점’(그 대상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 어떤 내용을 어떤 형식으로 담을 것인지)을 상정한다.
휴머니스트의 <사람 사는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다큐멘터리 만화’를 표방한 책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책의 시선은 우리의 삶, 그리고 그 삶의 토대인 사회를 향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우리의 시선이 흔히 닿는 도심이나 번화가가 아니라 흔히 닿지 않는 곳(파업현장이나 철거현장, 다단계에서부터 도심 속 식물들에 대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을 속속 비추고 있다. 고시원과 헬스장, 다단계를 하는 젊은이의 삶과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들의 삶, 그리고 도심 속에 살고 있는 식물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사회 곳곳을 비치는 다양한 시선들은 단순히 몇 개의 관점을 우리에게 획일적으로 강요하기보다는 우리의 시야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보다 넓고 밝게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다큐멘터리 만화’라는 형식은 박인하가 2권 본문에서 말하고 있듯이 이는 근대만화의 덕목 중 하나였던 ‘계몽과 풍자’, ‘해학과 유머’를 다시금 동시에 담아내고자 하는 노력의 결실이기도 하다. 치밀한 현장 취재나 작가 개인의 경험이 녹아든 작품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바로 ‘지금, 여기’의 이야기를 보다 생생하게 경험하고 생각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여러 작품들 중에서도 2권에서 다단계에 빠진 이의 시선에서 청년들의 삶을 이야기한 박해성 작가의 〈열심히 살자〉와 임성훈 작가의 〈나의 애국…보수집회 답사기〉가 인상 깊었다. 〈열심히 살자〉에서 ‘다단계’ 빠져들게 되는 청년들의 불안은 그들이 ‘아픈 청춘’이라서가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 불안정성과 경제적 모순에 크게 기인한 것이며, 이것이 이들의 인간관계와 삶을 어떤 형식으로 어떻게 파괴하는지(작품 내에서 주인공의 다단계 ‘선배’인 정유진 PD의 대사ㅡ“무섭지 않니? 돈이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는 게.”)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임성훈 작가의 〈나의 애국…보수집회 답사기〉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해, 기지 건설을 찬성하는 보수단체들의 시위 현장 한복판에서 능청맞게 유머러스한 풍자와 비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작품 내에서 시선의 대부분이 광적이고 맹목적인 몇몇 캐릭터들의 묘사와 풍자에만 치우쳐 있는 것은 아쉽다. “대한민국에서 할아버지들이 이렇게 귀하게 대접받는 곳이 이런 곳 말고는 없구나라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이 대사에서 작가가 보여준 날카로운 시선처럼, 일부 극단적 캐릭터들이 아닌 시위에 참가한 ‘다수’의 목소리에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귀 기울였다면 내용적으로 더 풍부해지지 않았을까?
박인하, 신명환의 《당당한 현대사 만화》도 조금 아쉽다. 이승만은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한국 근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그런 이승만의 숙소와 행적, 발언들을 되짚음으로써 근대국가 대한민국과 국민들, 그리고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가진 (아마 브로델이 장기지속이라고 부를 법한) 내면적 전근대성을 지적한 점은 매우 날카로우나, 한편 그를 단순히 ‘권력’만을 탐해 친일파들을 이용한 ‘왕권지향’적 인물로 그린 것은 지나치게 단편적인 시선은 아닌가 싶다. 친일파와 친일관료(테크노크라트)는 그 정의에서부터 처벌 범주에 대해 해방정국 당시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고, 이승만의 초대 내각 역시 이시영(부통령), 이범석(국무총리), 조봉암(농림장관) 등 국내외의 독립운동가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또한 이승만을 위시로 한 남한 우파의 강한 ‘반공’ 이데올로기 역시 일제강점기 때부터 이어온 좌우파 독립운동가들 사이의 극심한 대립에서부터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역사를 바라보는 데에서는 필연적으로 ‘관점’이 있어야 하나, 하나의 ‘관점’이 놓칠 수 있는 다른 면에 대해서도 항상 생각해야 할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사람 사는 이야기》는 우리 사회 곳곳을 따뜻한 그리고 다양한 시선으로 비추는 책이다. 물론 이러한 형식에도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기적인 간행물이 아닌 이상, 연재만화들의 주제가 산발적인데다가 단편과 연재물이 혼재돼 있는 것은 자칫 독자의 집중력을 흩트릴 수 있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는 《십시일반》과 같이 한 권의 책에 하나의 특정한 주제(‘인권’)를 다루는 것이 아닌 이상, 보다 큰 틀을 지향할 때 일정 부분 감내해야 하는 부분인 것 같다. 또한 이 책은 훨씬 큰 장점과 많은 매력, 무엇보다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에 단점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넘음이 있다. 이 책이 앞으로도 꾸준히 출간되어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우리가 좀 더 넓은 시야로 자신의 삶을, 그리고 ‘우리’의 삶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