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 - FTA의 지구정치경제학
홍기빈 지음 / 녹색평론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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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11년 11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이 한국 국회를 통화했다. 그러나 협정이 체결되고 국회에 통과하기까지 벌어졌던 수년간의 다난한 과정(시민들의 격렬한 반대 시위에서부터 여야 국회의원들의 물리적 충돌까지)은 비준동의안이 통과된 현 시점에서도 결코 쉽게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FTA란 무엇이며, 어떠한 점이 문제가 되어 이렇게 끝없는 논란을 낳는 것일까?


경제학자 홍기빈이 2006년에 쓴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는 바로 위와 같은 의문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은 바로 FTA에서도 가장 논쟁거리가 되는 ISD(Investor-State Dispute), 그러니까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인데, 저자는 이 조항이야말로 FTA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이자 대표적인 독소조항 중 하나로, 이것이 한국 사회와 경제에 중대한 피해를 끼칠 수 있다고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2020년의 한국 그리고 2003년의 체코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는 FTA 체결 이후 한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상의 파국에 대해 서술하면서 시작한다. 2020년, 세계적인 미디어 재벌 루퍼스 머독, 그리고 그와 손잡은 국내의 한 가공의 인물에 의해 한국의 방송계가 좌지우지 된다. 그들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방송도 서슴지 않고, 막대한 재력을 동원하여 공중파 방송에 손을 뻗치는 등 점차 방송계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키워나간다. 그러나 그렇게 세력을 키워나가던 그들은 어느 순간, 경영권을 둘러싼 다툼을 벌인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그들이 벌인 다툼의 불똥은 한국 정부에게 튄다. 경영권 다툼에서 패한 머독이 한국이 여러 나라와 FTA 조약을 체결할 때 합의했던 ISD 조항을 활용해 한국정부에게 막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다. 여러 나라의 법원에 중재재판을 건 머독은 마침내 한 곳에서 승소를 거두게 되고, 한국 정부로부터 막대한 배상금을 손에 넣게 된다.


위 사건은 단지 FTA의 단점을 극대화하여 가공한 것이라고 생각될지 모른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가상의 사건’은 단순히 최악을 가정하여 구성된 완전한 가상의 시나리오가 아니라 실제 2003년 체코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체코의 충격적인 사례가 한-미 FTA가 체결된 미래의 한국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ISD의 문제점에 대해 ISD의 배경(2장)과 정의(3장), 진행과정(4장)을 살펴보고, 구체적인 사례들(5장)을 통해서 그 폐해를 고발한다.


FTA 체결, 경쟁력 있는 미래가 아니라 파국의 열쇠가 될 수 있다


저자는 특히 ISD로 대표되는 무수한 독소조항들에 대한 고려 없이 진행되는 FTA가 자칫 ‘주권 양도’라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책의 5장에서 다루고 있는 국제적 대기업과 FTA 체결 국가들 사이에 벌어진 숱한 소송들은 수자원이나 환경 및 폐기물, 공공서비스나 경제 정책과 같은 공공의 영역들마저 무차별적으로 대상화하고 있다. 즉, 국제적 대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일국의 공익을 해치는 행위도 서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실제로 발생한 이러한 사건들의 예처럼 FTA 체결은 단순히 경제의 영역이나 국가경쟁력의 문제로만 파악할 수 없다. FTA는 바로 일반 시민들의 삶, 그리고 일국의 주권과 공공의 영역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6장에서 호주 국민들이 ISD를 철폐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우리나라 역시 ISD와 FTA에 대해 “그것은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식으로 설익은 낙관론을 펼칠 것이 아니라, 파국을 피해가 위해서 그것들을 반드시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7장).


2006년 그리고...


이 책은 한-미 FTA가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던 2006년에 출간되었다. 6년이라는 시간만 놓고 볼 때, 어쩌면 이 책은 “팜플릿[sic] 정신”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시쳇말로 ‘한물간’ 것으로 여겨질지 모른다. 하지만 서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정권이 바뀌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2012년에도 여전히 FTA를 둘러싼 논란은 현재형이다. 특히 노무현 정부 시기 상대적으로 묻혀 있던 ISD 문제는 이명박 정부 들어 주요 쟁점으로 표면에 부상하고 있다.


ISD와 FTA의 문제는 저자의 말처럼 단순히 정부 그리고 일부 경제학자들에게만 맡겨두고 손 놓고 있을 문제가 아니다. 바로 “우리가 먼저 주체가 되어 ...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인간과 자연이 온전하게 더불어 살아가는 삶 등에 대해 먼저 판단”(212~213쪽)할 필요가 있는 문제이다.


이 책이 갖는 장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는 정치인이나 경제학자뿐만 아니라 경제나 법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일반 시민들 역시 독자층으로 포함한다. 저자는 경제학자임에도 불구하고 흡사 소설처럼 흥미진진한 문체를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한 만큼, 이 책은 충실한 개념 설명을 하고 있으면서도 일반인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ISD가 구체적으로 어떤 폐해를 가지고 있는지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지점에서 ‘팜플릿[sic]’으로서 이 책이 갖는 의미는 현재에도 여전히 유용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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