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이야기 -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강의
이영훈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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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강의”라는 부제에서 보이듯이, 탈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한국 현대사를 다뤘던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박지향·이영훈 등 엮음, 책세상, 2006.)을 대중 강의 형식으로 읽기 쉽게 축약한 책이다. 저자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 직후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과정을 탈 민족주의적·실증주의 경제사적 시각에서 재조명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지배적인 역사인식·사회인식 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민족주의의 문제점을 크게 다음의 두 가지 지점에서 비판하고 있다.


첫째, 민족주의는 과거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부적합하다. 저자는 이 책의 1부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이 우리가 흔히 인식하고 있듯이 구체적인 실체를 가지고 고대로부터 연속적으로 이어져 온 개념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민족이란 이른바 ‘상상의 공동체’로서 민족국가가 형성되는 근대라는 특정한 시기에 만들어진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상의 공동체’를 역사를 이해하는 인식 틀로 삼을 경우, 과거사를 실증적으로 분석할 수 없으며 역사를 단지 규범적·당위적으로만 파악하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둘째, 민족주의는 한국 사회가 미래로 나아가는데 저해되는 요소이다. 민족주의란 “근본주의적 열정과 감성의 체계”로서 민족이라는 ‘전체’를 위해 개별 인간을 끊임없이 자발적-강제적으로 동원하고 희생할 것을 요구한다. ‘개인’이 아니라 ‘국민’으로서, 자신의 자유가 아니라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민족주의의 전체주의적 속성은 오늘날 인류 문명의 가장 기본적 요소라 할 수 있는 개인의 자유, 인권과 같은 개념들을 더욱 성숙시키는데 방해가 된다.


위와 같은 민족주의의 문제점들은 구체적으로는 역사에 대한 왜곡된 인식으로 나타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 책의 2부와 3부를 통해 조선 후기에서부터 시작하여 대한민국의 건국에 이르기까지 근현대사의 주요 쟁점들인 자본주의 맹아론, 식민지 수탈론, 식민지 근대화론, 친일파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 그리고 건국 과정을 둘러싼 상이한 해석들(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민족 분단의 고착화’로 파악하느냐, 아니면 ‘근대 민족국가의 수립’으로 이해하느냐에 따라 나뉘는)에 대해 실증적인 분석을 시도한다. 그리고 이러한 실증적 분석을 통해 민족주의적 역사인식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나아가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사실 저자는 이른바 ‘뉴라이트’ 계열의 대표적인 학자로 학계를 포함한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많은 오해와 비난을 받아왔다. 이 책은 그러한 항간의 오해를 풀기 위한 나름의 적극적인 시도인 셈인데, ‘대중 강의’ 형식의 쉬운 문체 역시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편집 역시 일반 독자들로 하여금 이른바 ‘뉴라이트’ 계열의 탈 민족주의적 역사인식에 대한 그동안의 오해를 불식시키고, 그들의 논지를 잘 이해할 수 있게끔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1부에서는 민족주의적 역사인식의 허구성과 한계를 먼저 비판한 다음, 2부와 3부에서 한국근현대사의 주요 쟁점들을 통해 대립되는 주장들을 꼼꼼하게 반박함으로써 탈 민족주의적 역사인식의 필요성을 보다 분명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당대의 사진자료나 유행가 가사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점 역시, 기존의 역사서보다 대중성이라는 측면에서 강점을 보이는 지점이다.


물론 이 책은 주된 논지나 사실(史實)에 대한 이해의 측면에서 논쟁거리 역시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저자는 곳곳에서 개인의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 등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그러한 것들을 억압한 이승만 정권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하고 있다. 당대의 역사적 현실에서는 ‘반공’을 통한 ‘나라세우기’가 매우 시급했으며, 이승만 정권은 비록 독재와 숱한 폭력과 억압을 동원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적 모순은 저자가 말하고 있는 ‘자유 민주주의’가 인민들 스스로 그것을 이해하고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일단 반공을 통해 체제를 지키고, 일정한 역사적 과정(산업화)이 진행된 이후에야 얻을 수 있는 일종의 ‘부산물’ 같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사와 민주주의에 대한 저자의 이러한 이해는 나아가 개발독재를 옹호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사적 측면에서의 학계의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인 학자인 허수열은 일제 강점기 이루어진 경제개발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통해,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 지속적으로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논쟁거리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현 시점에서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뚜렷하게 부각된다. 여전히 민족주의가 다른 가치들을 모두 억누를 정도로 지나치게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현실에서, 실증적 연구를 기반으로 한 저자의 날카로운 분석은 ‘민족’이라는 이름 아래 명확한 근거 없이 상식처럼 당연시되던 주장들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어떻게 역사를 이해해야 할 것인가라는 고민을 다시금 환기시킨다. 역사에 대한 인식의 문제는 단순히 과거 사실에 대한 지식의 영역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떠한 가치관을 가지고 어떤 미래를 상상하고 만들어 나갈 것인가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비록 저자의 주장에 다 동의하지는 못하더라도, 이 책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충분히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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