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존재
이석원 지음 / 달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진정한 인간사 가장 큰 고통은 후회요.” (〈서유기〉선리기연 中)


슬프게도, 많은 깨달음은 대개 한두 걸음 늦게 온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아마 우리는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태생적으로 후회하도록 생겨먹은 것이 인생이요 사람인 것을. 때문에 우리는 좌절을 맛볼 때마다 많은 후회를 한다. 나도 많은 후회를 했는데, 대체로 사랑을 잃을 때마다 습관적으로 찾아왔다.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인 이석원의 산문집 보통의 존재는 그의 다섯 번째 앨범 《가장 보통의 존재》와 함께, 내가 후회할 때마다 많은 위로가 되어주었던 책이다. 하지만 그 위로는 단지 형식(가식)적인 따뜻함이 묻어나오는 소위 '감성팔이'가 아니다. 이석원 식 '위로'는 오히려 사랑에 대한, 좀 거창하게 말하면 타인과의 소통에 대한 어떤 절망적일 정도로 현실적인 인식에서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결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모든 사랑은 결국 소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서로를 특별하게 생각했던 연인도 결국은 서로에게 ‘보통의 존재’로밖에 기억될 수 없다는 것, 우리가 이러한 '진실'을 마주하게 될 때 느끼는 절망감... 아마 어떤 이들은 사랑에 대한 이러한 태도가 지나치게 시니컬하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랑과 이별을 경험해 본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이라면(죽을 때까지 단 한 번의 사랑도 경험하지 못하거나, 첫사랑 단 한 사람과 아주 애틋한 사랑을 나누는 소수의 경우는 제외하자) 이 말이 갖는 의미에 대해 좀 더 침착하게 되새길 것이다.


“우리는 사랑했다. … 하지만 슬프게도 서로를 갉아먹는 햄스터가 되었다.” (본문 248~249쪽) 


바로 이러한 까닭으로 그의 글과 노랫말에는 막연한 희망보다는 체념과 자조의 정서가 흐른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그의 그런 체념과 자조의 정서에 심취할수록, 공허함이나 절망이 아니라 이상한 따뜻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는 것이다. 여느 때와 같이 이별 후 공허함과 절망감에 심취해 지내던 어느 무렵, 나는 그 이유에 대해 문득 깨달았다. 사랑이 시간에 의해 퇴색되고 절망이라고 생각한 현실에 마주했을 때, 나도 그리고 당신도 후회를 할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우리가 누군가와 사랑했던 그 ‘순간’만큼은 서로에게 진실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그 ‘순간의 영원함’이 더욱 빛날 수 있도록,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설령 사랑이 끝나는 순간이 온다 하더라도, 연인과 사랑을 했던 그 시간, 그 사실만큼은 결코 후회하지 않을 수 있도록. 


결국 이것은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 것이냐 하는 태도의 문제다. 끝을 알기에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인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순간들로 우리 삶을 채워나갈 것인가? 니체의 전언. "네가 지금 살고 있고, 살아왔던 이 삶을 너는 다시 한 번 살아야만 하고, 또 무수히 반복해서 살아야만 할 것이다. ... 너는 이 삶을 다시 한번, 그리고 무수히 반복해서 다시 살기를 원하는가?" 우리가 절망 앞에 섰을 때조차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 있다면, 다시 말해 이별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눈앞의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면, 아마 그 끝이 어떻든 간에 우리의 삶은 후회와 절망 대신 무수히 빛나는 ‘순간의 영원함’들로 따뜻하게 채워져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