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탈나흐트 - 대학살의 전주곡
마틴 길버트 지음, 김세준 옮김 / 플래닛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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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간은 아래로 떨어졌도다. 인류는 비웃음거리가 되었도다. 그 땅에는 진리도 동정도 자유도 없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은 오로지 이스라엘의 집을 모욕하고 파괴하느라 여념이 없구나."(마틴 길버트, 크리스탈나흐트, 플래닛, 156쪽)

1938년 11월 10일. 온 독일을 휘몰아치며 종일 지속된 광기와 폭력은 그 자체로도 가장 잔혹한 범죄이자, 인류사를 통틀어 자행된 죄악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것이라 할 ‘홀로코스트’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이른바 ‘수정의 밤(Kristallnacht)'이라 불리는 이 하루 동안 수만 명의 유대인들이 체포되어 강제수용소로 보내졌고, 90여 명이 살해되었으며, 가게며 오랜 역사를 가진 회당들까지 공격받고 불탔다. 그들이 폭력과 증오의 대상이 된 데에는 그 어떠한 합리적인 이유나 근거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은 단지 그들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자행되었으며, 더욱 끔찍한 것은 이러한 중범죄에 다수의 독일인들이 적극적으로 가담하거나 암묵적으로 동조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조직화된 나치당원이 아니라 그야말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으며, 상당수는 평소 자신의 마을에서 이웃인 유대인들과 함께 어울리며 지냈다. 그런데 왜, 어떻게 지극히 평범했던 이들이 불과 하룻밤 사이 마치 악마에게 홀린 듯이 집단적인 폭력과 증오의 광기에 휩싸여버린 것일까? 

‘수정의 밤’ 당시 벌어진 광기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크리스탈나흐트》의 저자 마틴 길버트는 그날의 사건이 단순히 우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지적하고 있다. 히틀러와 나치당이 정권을 잡은 이후 이전까지 존재하던 반유대주의 정서는 더욱 치밀하게 조직화되었고, 1차 세계대전의 패전 이후 지속된 경제공황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감과 불만들은 반유대주의를 가속화시키는 연료의 역할을 했다. ‘수정의 밤’ 사건은 6년여에 가깝게 지속된 치밀한 차별과 박해의 정점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통찰은 매우 타당하다. 다만 이러한 견해는 지나치게 사람들의 수동적인 측면만을 강조한 지점도 있다. ‘수정의 밤’과 그 이후 독일 사회에 만연했던 유대인에 대한 증오와 광기는 수동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인 측면이 있었다. 그들은 10년 넘게, 그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일상적’으로 한 인종을 핍박하고 학살하고 증오했다. 선과 양심을 끝까지 지켰던 소수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서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은 바로 ‘수정의 밤’으로 상징되는 인류사 속 죄악들의 책임주체가 단순히 광기어린 소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죄악의 근원, 그 책임이 히틀러나 괴벨스, 나치당에게만 있다면, ‘수정의 밤’이나 ‘홀로코스트’와 같은 사건들은 인류사에 있어서 일회적인, 특수성을 가진 사건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비극적이게도 이러한 폭력과 광기는, 특히 합리적 이성과 과학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근대와 현대에도 빈번하게 그 모습을 나타냈다. 러시아 키시뇨프의 대학살, 프랑스 드레퓌스 사건, 레이시즘, 오늘날 팔레스타인에서 역할만 바꾸어 되풀이되는 폭력... 인류 역사의 어두운 부분들인 이러한 사건들은 모두 특수하고 조직화된 소수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범한 이들의 지지에 의해 강력하게 뒷받침 되었다. ‘수정의 밤’이나 ‘홀로코스트’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했던 이들 역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살인과 방화를 즐기는 악마나 적극적인 인종주의자가 아닌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갑작스런 증오와 히스테리가 평소에는 온화하기 그지없는 대중들을 완벽하게 사로잡은 것처럼 보였다. ...(중략)... 나는 우아하게 차려입은 여성들이 손뼉을 치며 들떠 소리 지르고, 품위 있어 보이는 중산층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보여주는 걸 보았다.”(38쪽)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집단적 폭력과 증오의 광기, 즉 악은 어디서 기원하는가? 한나 아렌트는 2차 세계대전의 전범인 아이히만의 재판을 다룬 저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인류 최악의 범죄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의 악마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단지 약간의 어리석음과 무책임함, 그리고 올바른 것에 대한 사유의 무지에서 기인함을 지적했다. 악은 다름 아닌 선의 부재, 다시 말해 선에 대한 무지와 실천성-책임의식의 부재이다. 그들은 진실로 자기의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고통 받는 유대인들을 본 어린 자녀의 물음에 답하는 한 어머니의 무지를 보라! “저들은 사람이 아니란다. 저들은 유대인이지.”(257쪽) 
따라서 우리가 ‘수정의 밤’이라는 참혹한 역사를 통해 배워야 하는 것은, 단지 그러한 죄악의 책임을 일부에게 전가한 채 박제(剝製)하여 전시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과거의 역사가 남겨주는 겸허한 교훈은 인류는 끊임없는 반성, 즉 선에 대한 자각과 실천의지 없이는 누구나 언제든지 악을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극단적인 그날의 밤에 목숨의 위협을 감수하면서까지 윤리와 도덕을 지켜냈던 이들은 인류가 어떻게 악에 맞서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일을 해야만 하오.”(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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