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정치 막스 베버 선집
막스 베버 지음, 이상률 옮김 / 문예출판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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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정치막스 베버



 내가 생각하는 베버는 띵가띵가 놀면서 너무 똑똑해서 유명해진 학자 1이었는데 법학과 교수에 뭐에.. 한 게 많더라고요배신감 들긴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음어차피 내가 아는 베버는 지위 불일치 현상 설명하기 용이한 아저씨일 뿐리뷰 레츠꼬.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베버가 죽기 전에 강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낸 책으로 사실상 베버의 모든 생각이 집약되어 있는 내용이라고 보면 된다말로 한 걸 정리해서 책으로 냈기 때문에 목차도 따로 없고 그리 친절하지도 않다대충 추려보면 1. 정치란 무엇인지 2. 직업으로서의 정치란 3. 유럽의 정치사 4. 윤리 로 볼 수 있다일단 나는 이렇게 이해함.


 임의로 정한 1장에서는 국가와 정치 개념그리고 지배 정당성 유형에 대해서 논한다. 2장에서는 직업정치가 유형을, 3장에서는 유럽의 정치사인데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보면서 독일의 정치사에 대해 논한다마지막 4장에서는 정치 윤리에 대해서 논하는데여기서 내 개인적인 생각을 미리 밝히자면 4장의 경우 앞서 이야기하던 것과는 괴리가 있는 내용이었고 죽기 전에 강의한 내용치고 아쉽고 어렵게 느껴서 처음 책을 펼친 지 3달이 넘은 이 시점에도 글을 미적거리면서 쓰고 있다찾아보니까 제대로 이해하려면 플라톤부터 보고 그 다음에 칸트부터 다시 쭉 봐야 하는데 도저히 엄두가 안 남.


 이 책의 리뷰들을 검색해보면 1,2,3장까지 매우 잘 설명된 글들을 찾아볼 수 있다뿐만 아니라 기사에서도 정치인들이 이 책에 대해서 논하고 유우명한 교수들도 우리나라 정치에 대해 논하면서 이 책도 끼워서 얘기하고 있다당연하지만 이 책이 그만큼 의미있고 상당히 말이 되는 소리를 썼기 때문임직업으로서의 정치는 어쩌고저쩌고한국 정치는 어쩌고저쩌고그런데 1, 2, 3장 알고 싶으면 그냥 서치해서 보는 게 정신건강에 훨씬 좋다고 자부한다대신 4장은 서치해서 보면 안 된다나처럼 멍청하게 3달 동안 책 표지만 하염없이 바라보게 됨.


 베버가 말하길 윤리와 정치 이 둘은 수상한 관계를 맺어오고 있다일단 정치는 폭력이라는 수단을 갖고 있는 걸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얘 왜 폭력을 음흉하게 만지고 있지?’ 이러면서 다가가야 한다그런데 정치에게 있어 폭력이라는 수단은 자신을 존재하게 만들어주는 필수불가결의 요소다일단 윤리를 둘로 나누면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로 나눌 수 있다신념윤리는 선 수단후 목적책임윤리는 선 목적 후 수단신념윤리의 문제는 그대들이 생각하는 정의를 위해서라면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베버는 신념윤리를 따르는 사람은 세계의 윤리적 비합리성을 견뎌내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비합리적인 세계를 탄생시킨 게 바로 종교다정치 이놈이 폭력을 음흉하게 만지는 줄 알았더니만 그런 정치 뒤에서 그림자처럼 납작 숨은 게 종교였던 거지찾았다 내 세상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대 종 교. 여기서 잠깐 앞으로 돌아가면 볼 수 있는 게 베버의 탈주술화지배정당성 설명하면서 말한 세 가지정통적 지배카리스마적 지배그리고 합법성에 의한 지배베버는 앞에 두 과정을 지나 합법성에 의한 지배로 넘어오는 것을 탈주술화라고 보았다즉 베버가 말하는 근대 국가라 함은 탈주술화된 사회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정치랑 종교는 뗄래야 뗄 수가 없다그리스와 로마 같달까그래서 베버는 정치가 종교로부터 완전히 탈피할 때 비로소 근대사회에 진입할 수 있다고 보았다다만 여기서 문제는 진입한 순간부터 정치-정의는 사회에서 사라진다똑똑똑저 정의 찾으러 왔어요정의요그딴 거 없으니까 근대국가에서 나가세요!가 될 수도 있는 거임왜냐하면 근대사회로 진입하면 정치체계는 권력투쟁만이 중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누가 권력을 갖는가누가 이 세상을 돌아가게 (지배하게만들 것인가어쩌면 근대국가라고 한 게 관료제를 다른 시각에서 본 것일 수도 있는 것베버도 관료제적 국가가 근대국가의 특징을 일정 부분 갖고 있다고 인정한다.


 또 다른 문제는 종교가 없는 정치는 사람들을 강제할 수가 없다베버는 책임윤리에 대해서 강제적인 수단을 가지고 책임윤리의 길을 걸으면서 활동하는 정치행위에 의해서 추구되는 모든 것은 영혼의 구제를 위태롭게” 한다고 말한다합리적인 세계를 찾아서 왔더니 국가를 유지할 수가 없다베버는 강의 초반에 국가를 구성하는 세 가지를 말했다영토국민주권그런데 이 주권은 국민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그런데 합리적인 세계에서는 국민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게 없다그냥 국민과 지배체제그럼 다시 국민을 결집하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강제력을 이용해야 한다끊임없이 돌고 도는 딜레마에 직면하게 된다그래서 책임윤리와 신념윤리 사이에서 선을 잘 타야 한다는 거겠지만. (-> 이 단락은 그냥 내 맘대로 해석한 거라 베버 말은 아님요도통 무슨 소린지 계속 중구난방으로 흘러감제가 완전 말도 안 되는 거 쓴 거면 그냥 악플 ㄱㄱ그런데 결국 베버는 근대국가로 넘어가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투로 얘기하지 않았나요근대국가를 완벽하게 구현하기는 어렵다고 봤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면 근대국가 진입했다 싶으면 권력다툼이 시작될 수도 있으니까 그걸 경계하면서 근대국가를 이륙해야 한다는건가모르겠으묘.)


 이처럼 정치와 윤리는 특수한 관계를 맺고 있다정치에게 있어 윤리라는 존재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성스러운 윤리가 아닌 평행세계에 있던 윤리1-1이라고 보면 된다국가가 갖고 있는 정당한 강제력은 또다시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 낸다베버는 하나의 예시를 들고 와 이렇게 설명한다신념 투쟁가의 경우 추종자라는 인적 기구가 필요한데이때 그들에게 내적 및 외적인 포상을 약속해줘야 한다그러지 않으면 그 기구는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그 지도자의 성공 유무는 자신이 그들에게 지속적인 보수를 줄 수 있으냐 없느냐에 따라 달려있다추종자들의 마음속에 생성된 동기에 지도자는 자신의 운명을 기대야 한다베버는 추종자들의 마음에 어떠한 동기를 만들어내는 것을 윤리적으로 매우 야비하다고 보았다그러면서 그들이 갖는 그 믿음이란 결과적으로 권력에 대한 욕망을 윤리적으로 정당화라는 것에 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속물이들이나 기술자들의 판에 박은 상투어의 구성요소가 된다고 말했다추종자를 프롤레타리아의 성질로 바꿔 버리는 것이 성공조건의 하나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신념투쟁가의 추종자들이 권력을 얻게 되면 결국 아주 평범한 수록자층이 되어버린다.


 이러한 문제들을 방지하기 위해 정치를 직업으로 삼고자 하는 인간들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한다베버는 이러한 윤리적 역설을 의식해야 하며또 그 역설의 압력을 받으면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것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의식해야 한다라고 미래의 정치가들에게 조언한다또 자기 영혼과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구제하려는 사람은 이 일을 정치라는 수단을 통해서 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결국 정치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윤리적인 역설을 내재하고 있다정치가들은 관료가 아니다신념윤리와 책임윤리 그 사이에서 작두타기를 하면서 열심히 춤을 춰야 한다광대나 정치인이나 똑같다고 생각하는 입장에 있는 누군가는 어쩌면 나 정치인 일타강사 될지도?’라고 생각한다그러나 베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란 정열과 목측 능력을 동시에 갖고서 단단한 널빤지에 강하게 또 천천히 구멍을 뚫는 일입니다. ... 자기가 제공하고자 하는 것에 비해서 세계가 자기 입장에서 볼 때 너무 어리석거나 너무 야비하더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그 어떤 일에 직면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dennoch)!’라고 말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이런 사람만이 정치에의 소명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강의를 끝낸다이 얼마나 가슴 벅찬 말인가요어렵지만 아름다운 강의였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히 베버는 윤리 파트에서 얼버무린 부분이 있으며 이 부분은 결코 사회과학을 과학이라고 말하지 못하게 만드는 문제임은 자명합니다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이 부분은 칸트와 베버가 열심히 싸우는 수밖에 없습니다어쩔 수가 없어요저는 옆에서 관망할렵니다.


아참 왜인지 모르겠는데 을/은이 혼동되어 쓰인 문장이 몇몇 있음




베버 발표해야해서 컴터 뒤지다가 발견한 3년 전에 쓴 글... 어 기억 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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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사실 낙관론자다. ... 사실 그의 고집스러운 낙관론 속에는 격렬한 그 무엇이 있다그것은 절망과 맞서는 일종의 항구적인 투쟁이다벌써부터 기이하게 보이는 그 모습 속에서 우리의 시선을 끄는 가장 매혹적인 것은 바로 그 점이다우리의 이 같은 의견을 더욱 공고하게 해주는 것은 바로 니체의 그 엄청난 오만이다.


그나저나 시지프 신화 글 쓴 거 어디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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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황혼 대우고전총서 39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박찬국 옮김 / 아카넷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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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황혼


 

하나의 긍정, 하나의 부정, 하나의 직선. 하나의 목표.......

 

 할 건 많은데 하기 싫은 것들만 있어서 책만 많이 읽는 시기다.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새로운 종류의 일들이 있을 테지만 어쩌겠습니까, 해내야 하는 것을. 이번엔 우상의 황혼을 읽었고 카뮈가 영향을 받았다는 니체의 삶에도 드디어 관심을 가져보았다. 바로 알아보자.

 

 

 우상의 황혼은 공식적으로는 9장의 목차로 이루어져 있지만 (내가 임의로 설정한)4-1. 네 가지 커다란 오류90)까지 더하여 총 10~11장의 목차로 이루어져 있다. 다음은 목차이다.


0. 잠언과 화살

1. 소크라테스 문제

2. 철학에서의 이성

3. 어떻게 참된 세계가 마침내 우화가 되었는가?-오류의 역사

4. 자연에 반하는 것으로서의 도덕

 4-1. 네 가지 커다란 오류90)

5. 인류를 개선하는 자들

6. 독일인들에게 부족한 것

7. 어느 반시대적 인간의 편력

8. 내가 옛 사람들에게 빚지고 있는 것

9. 쇠망치는 말한다.


 위 목차에서 나는 1장 소크라테스 문제3장 어떻게 참된 세계가 마침내 우화가 되었는가?-오류의 역사를 중점적으로 이야기해 볼 예정이다.

들어가기에 앞서 개인적으로 이 글은 상당히 불친절하고 오만하고 싹바가지 없는 글이라고 생각했다. 알베르 카뮈가 어떤 글을 읽고 감명 깊게 니체를 본 건지 감이 안 잡힐 정도로 아 이 사람을..? 할 정도로 이해가 안 갔는데 3장을 보고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3장에선 플라톤을 비판하고 1장에선 소크라테스를 비판한다. 먼저 1장부터 살펴보자.

 

 

 니체는 아름다움을 표방하는 고대 그리스에서 소크라테스가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아이콘으로 떠올랐던 것은 고대 그리스가 쇠퇴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보았다. 변증법을 즐겨 쓴 소크라테스를 비판하며 소크라테스의 변증법을 복수에 지나지 않은 방법이라 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방법으로도 사람들을 매료시켰음에 주목하며 그가 아테네 사람들을 경쟁시킴으로서 그가 그 사회의 주인이자 "현저한 예"가 되었다고 말한다.

 

 특히 소크라테스가 사용한 변증법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하는데, 이를 천민이 갖는 원한의 표현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상당히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니체는 변증법에 대해 상당히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데 잘 살펴보면 변증법을 천민이 쓰는 것으로 보는 입장임을 확인할 수 있다. “변증법과 함께 천민이 올라서기 시작하는 것이다.” 또한 변증법과 유대인을 엮어서 서술하는데 역자는 이에 대해서 유대인들은 변론 외에는 의지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변증가였다는 의미다.”라는 설명을 추가해주었다. 이는 변증법이 약자가 사용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니체는 소크라테스를 데카당으로 여겼다. 죽기를 원했다는 이유로. 참 각박하다. 그렇다면 본인 스스로는 데카당이 아닌가? 뭐 알빠는 아니다만... 이미 쇠퇴하고 있던 고대 그리스를 더욱 쇠퇴하게 만든 소크라테스가 원하던 것이 죽음이라는 사실을 니체는 못마땅했던 것일까? 그럼 난 무슨 쌉엠지데카당가당스일 듯.

 

 소크라테스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자들 역시 데카당이라고 비난한다. 이는 7장 반시대적 인간의 편력에 나오는데 35-“데카당스 도덕에 대한 비판.” 이라 서술하면서 “‘이타주의적도덕은 아무 쓸모도 없으며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을 선택하지 않는 것은 결국 자신의 삶이 자신에게 이득이 되지 않으면 이는 곧 자신의 삶이 무의미 하다는 것을 의미하다는 것을 뜻한다고 난리친다. “가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삶은 무가치하다. .... 그러한 판단은 결국 엄청난 위험이 되며 전염성을 갖고 있다. .... 경우에 따라서는 멀리 수천년 후의 삶에까지도 해독을 끼친다.”

 기실 니체는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원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데카당이라고 비난한 것은 아니었다. 쇠퇴하는 고대 그리스에서 피어난 소크라테스의 씨앗이 현재 니체 시대까지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에 이를 혐오하는 것이다.

 

 

 3장 어떻게 참된 세계가 마침내 우화가 되었는가?-오류의 역사에선 플라톤의 이데아를 비판하며 자신의 세계를 정립한다. 여기서 카뮈의 세계관도 살짝 엿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플라톤의 이데아가 참된 세계라고 하나 도달 불가능하다면, 즉 기약할 수 없다면 과연 그것이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거짓이라고 규정하고 이데아를 실제라고 규정하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거짓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옳은가? 그냥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계, 발 딛고 있는 이 세계를 진정으로 인식하자.에서 끝나지 않고! 더 나아가서, 6, “우리는 참된 세계를 제거해버렸다. 이제 무슨 세계가 남아 있는가? 현상의 세계일까? ... 아니다! 참된 세계와 더불어 우리는 소위 현상의 세계도 없애버렸다!

 책에선 6번 문장 뒤에 괄호 치고 정오, 가장 짧게 그늘이 지는 순간, 가장 긴 오류의 끝, 인류의 정점. 차라투스트라의 등장이라는 글이 나온다. 그러니까 참된 세계가 사라지고 난 뒤 현실의 세계도 의미가 없어진 이 순간, 바로 이 정오의 순간에 차라투스트라가 등장한다는 건데.. 차라투스트라는 뭐지? 찾아보니까 또 뭔갈 읽어야 한다는 거 같은데 내가 과연 읽을 수 있을까... 아무튼...

 

 이와 유사하게 카뮈의 작품 속 정오혹은 정오의 시간이성은 사라지고 오직 감각만이 세계와 교통하게 되며 이 감각을 통해 시시각각으로 엄습해오는 의식의 투명함을 고정시키며 그것이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게하는 새로운 정신적 세계의 존재 가능성을 보여준다. 여기서 내가 차라투스트라를 알아야 뭔가 해결이 되겠지?

 아 그리고 한 가지 생각난 건데 이방인과 관련해서 수업을 하나 들은 적 있었는데 당시 수업을 가르치셨던 교수님이 정오의 이 시간에 대해서 설명하시면서 정오가 땅과 하늘이 가장 수직이 되며 그림자가 가장 짧아지는 시간이 되어 어쩌고 저쩌고 블라블라 설명하셔서 솔직히 아니 왜 이렇게까지 소설을 재미없게 만드는 거지?? 했는데.. 흠 다 이유가 있으셨군요 교수님.. 미안합니다. 그치만 그땐 정말 그게 싫었어요.

 

 

 그렇다면 니체와 카뮈의 차이는 무엇일까. 고착 니체의 저작 한 권을 읽고 이야기 하는 건 좀 웃기긴 하지만... 정확히는 니체와 카뮈의 정오의 시간의 차이는 어디서 나오기에 내가 카뮈에 더 이끌리는 것일까.

 

 

 일단 카뮈는 인간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자유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 한계가 반항이 가지는 힘이라고 주장한다. , 반항하는 인간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파괴할 권리를 요구하지 않는다.” 카뮈에게 정오는 부조리한 현실을 명료하게직시할 수 있는 시간이다. 정오는 그림자가 매우 짧게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며 인간들의 연대와 투쟁을 위하여 새로운 시대를 창조하는 시간인 것이다. 특히 반항의 개념이 니체와 구분되는데, 니체에겐 명랑함이 있다면 카뮈는 명랑하진 않으나 전적인 자유 대신 한계를 수용하는 반항이라는 점이 킥이라면 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니체.. 아직 너무 어렵다. 카뮈도 사실 아팠을 때 시지프 신화를 읽을 수 있게 되어서 좋아할 수 있는 계기로 삼게 된 거지 니체는 아직인 것 같고.. 아마 영원히 안 읽지 않을까 싶다. 바쁘고.. .. 니체? 일단 수염이 맘에 안 듦. 원색적인 비난 미안합니다. 그치만 너도 소크라테스 외모 지적부터 했잖아.

 

 

 밑에는 니체가 이 책 어딘가에 적어놓은 글이다. 재미있고 공감가는 내용이지만 여전히 의문은 들어서..

 

인간 각자에게 그의 특성을 부여하는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신도 사회도 부모도 조상도 각 개인 자신도 그의 특성을 부여하지 못한다. 하나의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 그가 이러저러한 특성을 갖고 있다는 것, 그가 바로 이러한 상황과 이러한 환경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이 없다. 각 개인의 숙명적인 본성은 이미 존재했었고 또 앞으로 존재할 모든 것의 숙명에서 분리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의도나 어떤 의지 혹은 어떤 목적의 결과가 아니다. 그는 인간의 이상또는 행복의 이상또는 도덕성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를 어떤 목적에 맞추려 하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다. ‘목적이라는 개념을 고안해낸 것은 우리 자신이다....”

 

 

이게 어디있었냐면.. 잘 기억이 안 나네요. . 요즘 12시에 자고 6시에 일어나는 삶을 살아서 그런지 벌써 3시라서 너무 졸리고... 미안미안댄스

 

 

아무튼 니체는 그럼.. 이 책만 읽어서 완벽하게는 모르겠지만 명량함을 간직한 채 인생을 긍정하며 살라는 건데... 너무 생각이랑 발언하는 거랑 좀 차이가 크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음. 왤케 치와와같지?

 

 

이 책의 주요 키워드를 뽑자면 뭐 비도덕주의자, 우상, 데카당 등등을 뽑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렵네요. 졸리고.. 언젠가 이 글을 고치거나 또 비공개를 하는 날이 매우 빠른 시일 내에 오겠지만 9900원을 내고 2번 읽은 내가 아까워서 뭐라도 일단 남겨 봅니다.

아무튼.. 앞으로 저에게 남은 토익토플텝스사조사 시험을 이겨내고 기말고사를 이겨내면 뭐.. 쉬지는 못하겠지만 11월이 지나면 뭔가 재밌는 책을 읽을 수 있겠죠

하여간에 저는 최근 20일간 5키로가 빠졌는데.. .. 기왕 빠지는 거 더 빠졌으면 좋겠네요 이상 니체 내용 너무 졸려서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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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없는 불행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5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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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없는 불행


 

 페터 한트케의 어머니 자살 소식으로 이야기 서문을 연다. 어머니의 어린 시절부터 젊은 시절, 여러 번의 결혼과 자살까지 그리고 현재 시점까지 담담한 문체로 글이 쓰여있지만 서술자의 답답함과 약한 분노가 여실히 느껴진다.

 그럼에도 글에서 강조되는 것이 있다. “자유 의지에 따라 사는 것”. 그리하여 한트케는 맞아, 라고 나는 자꾸만 생각하며 내 생각들을 나 자신에게 조심스레 되뇌었다. 그거였어, 그거였어, 그거였다니까. 아주 좋아. 아주 좋아. 아주 좋다니까. 비행기를 타고 가는 동안 나는 그녀가 자살을 했다는 데 긍지를 느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라고 하며 어머니가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와 같이 살기 전 그와 어떻게 같이 살 수 있을지 상상이 안 된다스스로를 위해자살을 선택했다는 점에 긍지를 느낀다.


 한트케 어머니가 살던 당시 자유 의지는 괴물이나 하는 짓이었고 자신의 감정이나 내력 따위는 보이지 않은 채 고성방가나 춤을 출 때만 잠시 보여주는 아주 은밀한 것이었다. 종교란 사람들에게 위안의 기능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종교 앞에서 그들을 죽어갔다. 자신의 삶 속에서 종교를 넣어 위안을 받고 종교를 동경했지만 결국 종교 앞에서 죽음에게 살해당했다. 어머니에게 종교는 그저 사물에 가까웠다. 믿는 구석도 없었으며 위안을 주는 것도, 귀여운 예수도, 상냥하고도 거룩한 마리아도 없었다. 오로지 현재에서의 삶의 중히 여겼다. 여기려고 노력했다.

 가정폭력과 낙태로 얼룩진 젊은 시절과 가난은 그녀를 형식적으로 완성된 궁핍에 처하게 했다. 그녀는 하얀 얼굴을 가졌는데 그것은 고귀한 일을 하는 귀족집안의 딸이라서가 아니라 집안일이 아닌 다른 일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은 그녀를 가정 속에서 살게 했다. 했다면, 그랬더라면, 했었더라면.


 꽤 많은 시간이 흐르고 그녀가 자기 주장을 하게 되는 시점이 오게 된다. 그러나 어머니는 스스로가 그것을 좋은 흐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책을 읽고, 정치에 관심을 가졌으며 자신의 관심사가 새로 생겼다. 특히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녀는 책을 읽으면서 자신과 책을 분리시켰다. 책은 대단하지만 난 그렇지 않아. 책은 나에 대해서 썼어, 그런데 나는 그렇지 못했어 어쩌고 저쩌고. 그럼에도 자의식을 가졌다. 그와 별개로 그녀는 자신이 늙었다는 점과 결코 조금 더 일찍 책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만을 자각한다는 현실만이 그녀 앞에 높여 있었다.


 그녀의 자의식이 살아난 시점부터 그녀는 삶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자기 주장을 하기 시작하자 점차 땅에서 발을 떼기 시작한 것이다. 한트케는 어머니가 할 수만 있다면 그녀는 간단히 죽어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너무 알고 싶은 것이 많았다.”며 당시엔 완전히 발을 떼지 않았다는 점을 알린다. 그녀의 병명엔 신경쇠약증따위가 붙여지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는 무지했던 지난 날을 그리워하다가도 사람들이 그녀를 알아봐줬음 하는 마음에 더 아픈 척을 하는 날이 지속되기도 한다.


 그러다 아버지가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때 어머니는 자살을 결심하게 된다. “121일이면 네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온다. 매일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그와 어떻게 같이 살 수 있을지 상상이 안 된다. 각자 다른 구석을 볼 테니 외로움은 그만큼 커질 거다.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아(...)” 어느 시점부터 어머니와 아버지는 다른 세계에서 살게 되는데 자신의 관심사를 넓히며 살아온 어머니에게 자신과 다른 세계에 사는 아버지가 급작스럽게 자신의 세계에 들어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컸을 것이다. 어머니는 유서에 드디어 평화롭게 잠들게 되어 아주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썼지만 실상은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원한 것은 남편과 분리된 일상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일상에 전혀 도움은 안 되지만 관심은 가는 정치에 대한 관심과 후회만을 안겨주는 책에 대한 애정, 사람에 대한 애정을 두고 세상을 떠날 수 있었을리가 없다.


 한트케는 어머니가 떠난 후 아직도 밤중에 가끔 어떤 내적 충격에 깜짝 놀라서 눈을 뜨고는 공포 때문에 숨이 막힌 채 시시각각 내가 살아 있는 채로 부패되어 가는 것을 체험한다.”라고 서술한다. 아무리 그가 자신의 어머니가 자유의지로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였다는 점에 긍지를 느끼고 이러쿵저러쿵 난리를 쳐도 자식은 자식이다. 이야기의 말미에서 단순한 줄글 형식의 글로 어머니에 대한 회상을 적어놓았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아주 짙게 묻어나온 글들을 여러 번 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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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 2025-04-23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유의지가 곧 자살을 뜻하는 것은 아님
 
여행의 이유 (개정증보판)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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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OO아 선생님에게 항상 즐거움과 위로를 줘서 고마워,3잘 보내고 대학생 돼서 즐거운 여행가길....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고3생활 가운데 있길 기도하며 2020.02.06.


**쌤 잘 지내고 계시나요,전 안타깝게도 부처님의 은혜와 함께하고 있습니다근데 전 부처님이랑 좀 더 잘 맞는 거 같더라고요하나님과는 이제 쫑났습니다. 그래도 이 책 선물해주신 건 정말 감사해요.

여하튼

교환학생 다녀온 걸 조금 정리하는 겸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겸 글을 써본다.


 교환학생을 가기 전 전공교수님은 학문적인 부분보다도 경험에 좀 더 방점을 두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셨는데 이 때문인지 여행만을 위해선 가기 어려운 곳을 몸이 안 좋더라도 꾸역꾸역 갔는데 그런 여행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특히 시칠리아와 루흐마항이 많이 생각난다.

젊은 시절에 얻을 수 있는 경험이란 소중한 부분임에 틀림없다김영하 작가가 그랬듯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의 언어와 말투만으로도 파악할 수 있는 온정과 친절함이 있으며 그들이 동양인인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등 그러한 경험들을 어른이 되고 그나마 감정이 생경하여 새길 수 있을 때 얻고 온다.

 교환학생을 갈 땐 조부모로부터의 해방,부모로부터의 해방을 꿈꾸며 갔고 실제로도 잠시나마 해방을 맛보기도 했다엄마가 나에게 옮기는 그 불안으로부터 해방되니 내가 원래도 이렇게 잘 사는구나를 알게 되기도 하고 가벼운 인연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다시 발견하기도 한다하지만 결국 나는 물질적으로 조부모님과 부모님으로부터 해방되지 않았으며 여전히 가벼운 인연에도 아쉬워하는 마음을 안고 원래 있던 곳으로 애써 되돌아가려는 한 사람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릴 때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상상을 자주 했다책에서 나오듯리셋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었던 거다.  “삶이 부과하는 문제가 까다로울수록 나는 여행을 더 갈망했다.그것은 리셋에 대한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교환학생이 확정된 이후 병원을 다니게 되면서 그 무렵부터 교환학생을 가는 것을 두려워했다작가는 달아나는 것도 택해봐야 한다고 했지만 나의 경우 병원을 다님으로써 나의 방황의 끝이 보이는 듯한 기분이 들어 교환학생을 간다는 것이 다시 나의 방황의 시작을 알리는 것 같아 두려웠다.

 나는 카뮈의 무덤이 있는 루흐마항에 갈 정도로 카뮈를 좋아하지만 그의 사상-사상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과는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 것 같다는 예감이 나를 덮친다아낌없이 삶을 소진시키며 살아간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삶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현재는 무엇인가.그것은 내가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미래는 포기하고 현재에 집중하자고 생각했고.” 나는 여행을 하면서도 여전히 미래에 대한 걱정을 안고 다녔다그리고 그쯤 계엄이 터졌고 그렇게 전공에 대한 애착이 수직하락하던 시점이었다뭐 그렇다고 후회하는 건 아니다다시 돌아갔어도 난 걱정을 했을 것이고 애정이 떨어졌을 것이며 다시 정신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내가 교환학생 신분으로서 할 수 있었던 건 열심히 발표하고 토론하고 공부하기그리고 많은 여행을 통해 새로운 기억을 얻기..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근데 내가 미래를 포기하고 현재만 산다그건 너무나도 무책임한 일 아닐까나는 이제 스물 넷이고 이미 휴학을 했으며 징징거릴 나이도 지났다부모로부터 벗어나기도 이미 그른 시점에서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것과 미래에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이건 죽을 때까지 내가 안고 가야 할 애착 고민들이다.

 그럼에도 나에게 이러한 경험을 안겨준 부모님께 감사하다새로운 감정과 새로운 친구들을 알게 되었고 특히 교환학생을 함께 갔던 친구들이 정말 좋은 사람들이라 내 애착 인간 군상들에 추가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치있던 경험인 듯하다나는 정말 좁고, 심지어 그리 깊지도 않은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사람인데 추구하는 바와 다르게 나는 붙임성도 좋은 편이며인간관계 관리를 큰 무리없이 해내는 사람이다그러나 기질적으로 그리 외향적인 사람은 아닌 편이라 많이많이 지치고 힘들기에 항상 인간관계를 최소화하며 살아가려고 한다그럼에도 내 레이더망에 들어오는 나의 애착 인간들.......내가 많이 좋아한다.

 

 여하간에 교환학생을 돌아오고 난 뒤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는데 그리 얘기하고 싶지 않은 일도 최근에 있었다나는 앞서 얘기했듯이 교환학생을 다녀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첫 번째로 있었고 교환학생으로서 외국에 있을 당시에는 내 미래에 대한 걱정을 두 번째로 했고 마지막으로는 한국 학교에 돌아와서 다시 내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는 시간을 갖는 중이었는데 그런 일이 최근에 생기고 나선 좀 다시 방황하는 길을 걷는 중인 듯하다그런데 참 웃긴 게 고등학교 3학년 때-그때도 참 힘들어하던 때였는데-맨 마지막 장에 색깔까지 칠하면서 줄쳐놓은 부분이 있었다


그렇게 헤어져 영영 안 만나게 되는 이도 있다.인간이든 동물이든 그렇게 모두 여행자라고 생각하면 떠나보내는 마음이 덜 괴롭다.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환대했다면,그리고 그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아마도 이때 분명하게도 선생님과의 헤어짐이 슬펐기에 이 구절을 색칠까지 하면서 줄 쳤을 것이다. 2025년인 지금도 애써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려고 한다다만 한 가지 달라진 점은 당시엔 헤어짐에 서툴렀지만 5년이 지난 지금은 이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은 있지만 그렇게 힘들지 않다는 점이다물론 지금과 분명히 다른 상황이지만, 지금은 그때처럼 같은 하늘 아래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움도 결국에 시간에 희석되고 언젠가 새로운 만남이 과거의 만남을 추억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는 점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다는 게 다행인 점이 아닐까 싶다덤블도어가 해리포터에게 해준 말이 기억나는데,위대한 마법사에게 죽음이란 그저 또 하나의 모험이라는 게 그나마 위안되는 점이다징징거리지 말고 방황도 그만하고 그만 슬퍼하고 온전하게 나의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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