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하게 살아야 한다고 누가 그러던가. 나는 탄력성이 좋지 못한 사람으로 한번 짓눌리면 쉽게 올라오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누가 나한테 말랑하게 살라고 그랬다. 말랑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살아야 말랑하게 산다는 것일까. 어떤 의도로 어떤 모습을 보고 나에게 말랑하게 살라고 했던 걸까. 나는 한번 아니라고 생각하면 끝까지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다. 융통성이 없는 그런 재미없는 사람. 융통성이 너무 없어 후회 따위 안 하고 살아야 좋은 삶이라고 생각했던 날도 있다. 근데 나는 후회 한번 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인데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너무나도 길어서 따분하고 불안하고 속이 불이 난 것만 같은 심정이다. 온 마음이 불밭이고 자명종을 든 토끼들이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그 속엔 바다를 헤매는 그 아이가 있다.
남들이 보기에 요즘 내가 영 집중을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듯한지 내가 그닥 안 좋아하는 교수님마저 오늘 수업이 끝나고 날 따로 불러서 요즘 무슨 일이 있냐며 물어보셨다. 많이 힘들어보이고 우울해보인다며. 그치만 교수님..... 그건 교수님의 과제가 너무 많아서 그랬고요 오늘 또 과제가 올라왔길래 표정관리가 안 됐던 거였어요. 물론 오늘만 그래서 그런 건 아니었을 것이다. 집중을 못한 건 내 잘못이지만... 아 생각할수록 너무 힘드네... 나도 바다로 가고싶구나.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너무 길다. 길다 길어. 앞으로 70년은 훨씬 넘게 살아가야만 한다. 우주에서 100년은 찰나와도 같지만 사람에게 100년은.... 다 지나고 보면 찰나와도 같겠지. 하지만 나는 우리의 인연이 영원할 것이라 믿는 어리석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인생이 100년이라고 생각하면 숨이 막히는 경험을 하곤 한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헤어질 인연들을 생각하면 더욱 숨이 막힌다. 내가 그 이별들을 다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 받아들이는 이별조차 이렇게 힘이 드는데?
우리는 우리의 인연이 영원할 것이라 믿는 어리석음을 겪는 경험을 한다. 우리의 삶의 궤적은 찰나와도 같아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순간에 잠시 운명과도 같은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서로를 떠나보낸다. 그것이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을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서로에게 최선을 다한다. 그런 어리석음을 버티면서도 우리는-혹은 나는-그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 삶의 궤적에서 네가 사라졌어도, 그럼에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살아야 하는, 그런 삶의 궤적을 그려야 한다는 것이 조금 힘들지라도 우리의 어리석음을 닦으며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앞으로의 삶의 궤적을 그리는 길이니.
바다로 또 바다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