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내 곁을 지나간 적도 없었고 내가 죽음 곁을 지나간 적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나를 비웃듯 죽음이 나를 스쳐지나갔고 그렇게 내 친구는 죽었다. 그렇게 한 줌의 재가 되었다. 결국 그 어느 교수가 말했듯 세상에 어떤 식으로 존재하기 위해서 그 애는 본인이 원했던 바다로 향했을 것이다. 근데 나는 바다를 싫어한다. 나는 바다가 너무 싫어서 모래 근처로도 안 가는 사람인데 그 애는 바다를 향해 내달린다. 그러니까 그 애는 나를 영원히 떠난 거다.

 

그 애가 죽었다는 걸 확인하고 다음 날 학교를 가는데 세상이 이상해 보였다. 어떻게 사람들은 인간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고 유지하는 걸까.

밤을 새고 학교를 가는 도중에 그 애와 함께 고민하다 쓴 예약 메일의 답장이 왔다. 그렇게 긍정적인 답변은 아니었고 또 답변자로부터 혼났지만 그 상황보다는 훨씬 긍정적이었다. 너는 뭐가 그렇게 조급해서 답장을 받기도 전에 떠난 건지, 그런 생각이 지워지질 않았다.

세상엔 수십억명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그 중 몇몇이 죽고 그와 동시에 새로운 사람들이 태어난다. 그렇게 인구 수는 유지된다. 그러니까 고작 내 친구 한 명이 죽었다고 달라지는 건 없는 거다. 사람들은 네가 죽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간다. 톱니바퀴 같은 세상 속 톱니 하나가 빠졌지만 곧 새로운 톱니가 끼워져 다시 세상은 굴러간다.

 

너는 날 두고 떠났지만 나는 네 선택을 비난할 생각이 없다.

나는 너를 충분히 이해한다.

우리는 어떻게 보면 상처로 이어진 인연이다. 좋은 일이 아니었지 않나. 그러니 이렇게 끝이 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조금 아쉽다. 우리는 함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격려하던 사이었는데 그런 발전적인 관계가 내 삶에서 사라졌다는 점이, 네가 내 삶에서 사라졌다는 그 사실이 나에겐 조금 힘든 일인 것 같다. 너는 그 직전에 뭐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그러다가도 나도 내가 정확히 무엇 때문에 힘든지 모르는데 너가 무엇 때문에 힘들었을지 생각하는게 우스워서 생각하는 걸 멈춘다. 우리는 동지였는데.

나는 여전히 담백하지 못하고 담백하지 못한 글을 남긴다. 아직도 속은 진흙탕처럼 모든 게 얽혀있고 또 볼썽사납다. 너에 대한 추도문만큼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남기고 싶다. 내 추도문이 너를 바다 끝까지 밀어넣지 않았으면 좋겠다. 바다가 된다는 것. 네가 한 모든 선택 중에 가장 바보같은 선택이길 바란다. 하지만 가끔은 찾아갈게. 우리는 생각보다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고 상처만 공유한 그런 바보같은 사이였으니까.

 

 

너는 일요일에 떠났는데 아직도 수요일이다. 지금 너는 어디를 내달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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