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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없는 불행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5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6월
평점 :
소망 없는 불행
페터 한트케의 어머니 자살 소식으로 이야기 서문을 연다. 어머니의 어린 시절부터 젊은 시절, 여러 번의 결혼과 자살까지 그리고 현재 시점까지 담담한 문체로 글이 쓰여있지만 서술자의 답답함과 약한 분노가 여실히 느껴진다.
그럼에도 글에서 강조되는 것이 있다. “자유 의지에 따라 사는 것”. 그리하여 한트케는 “맞아, 라고 나는 자꾸만 생각하며 내 생각들을 나 자신에게 조심스레 되뇌었다. 그거였어, 그거였어, 그거였다니까. 아주 좋아. 아주 좋아. 아주 좋다니까. 비행기를 타고 가는 동안 나는 그녀가 자살을 했다는 데 긍지를 느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라고 하며 어머니가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와 같이 살기 전 “그와 어떻게 같이 살 수 있을지 상상이 안 된다”며 ‘스스로를 위해’ 자살을 선택했다는 점에 긍지를 느낀다.
한트케 어머니가 살던 당시 자유 의지는 “괴물이나 하는 짓”이었고 자신의 감정이나 내력 따위는 보이지 않은 채 고성방가나 춤을 출 때만 잠시 보여주는 아주 은밀한 것이었다. 종교란 사람들에게 위안의 기능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종교 앞에서 그들을 죽어갔다. 자신의 삶 속에서 종교를 넣어 위안을 받고 종교를 동경했지만 결국 종교 앞에서 죽음에게 살해당했다. 어머니에게 종교는 그저 사물에 가까웠다. 믿는 구석도 없었으며 위안을 주는 것도, 귀여운 예수도, 상냥하고도 거룩한 마리아도 없었다. 오로지 ‘현재’에서의 삶의 중히 여겼다. 여기려고 노력했다.
가정폭력과 낙태로 얼룩진 젊은 시절과 가난은 그녀를 “형식적으로 완성된 궁핍”에 처하게 했다. 그녀는 하얀 얼굴을 가졌는데 그것은 고귀한 일을 하는 귀족집안의 딸이라서가 아니라 집안일이 아닌 다른 일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은 그녀를 가정 속에서 살게 했다. 했다면, 그랬더라면, 했었더라면.
꽤 많은 시간이 흐르고 그녀가 자기 주장을 하게 되는 시점이 오게 된다. 그러나 어머니는 스스로가 그것을 좋은 흐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책을 읽고, 정치에 관심을 가졌으며 자신의 관심사가 새로 생겼다. 특히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녀는 책을 읽으면서 자신과 책을 분리시켰다. 책은 대단하지만 난 그렇지 않아. 책은 나에 대해서 썼어, 그런데 나는 그렇지 못했어 어쩌고 저쩌고. 그럼에도 자의식을 가졌다. 그와 별개로 그녀는 자신이 늙었다는 점과 결코 조금 더 일찍 책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만을 자각한다는 현실만이 그녀 앞에 높여 있었다.
그녀의 자의식이 살아난 시점부터 그녀는 삶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자기 주장을 하기 시작하자 점차 땅에서 발을 떼기 시작한 것이다. 한트케는 어머니가 할 수만 있다면 “그녀는 간단히 죽어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너무 알고 싶은 것이 많았다.”며 당시엔 완전히 발을 떼지 않았다는 점을 알린다. 그녀의 병명엔 ‘신경쇠약증’ 따위가 붙여지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는 무지했던 지난 날을 그리워하다가도 사람들이 그녀를 알아봐줬음 하는 마음에 더 아픈 척을 하는 날이 지속되기도 한다.
그러다 아버지가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때 어머니는 자살을 결심하게 된다. “12월 1일이면 네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온다. 매일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그와 어떻게 같이 살 수 있을지 상상이 안 된다. 각자 다른 구석을 볼 테니 외로움은 그만큼 커질 거다.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아(...)” 어느 시점부터 어머니와 아버지는 다른 세계에서 살게 되는데 자신의 관심사를 넓히며 살아온 어머니에게 자신과 다른 세계에 사는 아버지가 급작스럽게 자신의 세계에 들어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컸을 것이다. 어머니는 유서에 “드디어 평화롭게 잠들게 되어 아주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썼지만 실상은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원한 것은 남편과 분리된 일상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일상에 전혀 도움은 안 되지만 관심은 가는 정치에 대한 관심과 후회만을 안겨주는 책에 대한 애정, 사람에 대한 애정을 두고 세상을 떠날 수 있었을리가 없다.
한트케는 어머니가 떠난 후 “아직도 밤중에 가끔 어떤 내적 충격에 깜짝 놀라서 눈을 뜨고는 공포 때문에 숨이 막힌 채 시시각각 내가 살아 있는 채로 부패되어 가는 것을 체험한다.”라고 서술한다. 아무리 그가 자신의 어머니가 자유의지로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였다는 점에 긍지를 느끼고 이러쿵저러쿵 난리를 쳐도 자식은 자식이다. 이야기의 말미에서 단순한 줄글 형식의 글로 어머니에 대한 회상을 적어놓았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아주 짙게 묻어나온 글들을 여러 번 읽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