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드라 - 제국과 다중의 역사적 기원 아우또노미아총서 15
마커스 레디커.피터 라인보우 지음, 손지태.정남영 옮김 / 갈무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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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롤레타리아는 괴물이 아니었으며 통일된 문화적 계급도 아니었고 인종이 아니었다. 이 계급은 익명, 무명이었다. .. 이 프롤레타리아트는 땅이 없고 수탈을 당한 계급이었다. .. 이들은 이동적이었으며, 대서양을 가로질러 존재했다. .. 이들은 여성과 남성을 포함했으며 모든 연령대를 포함했다. .. 이들은 다수였고 여럿이었으며 그 수가 점점 증가하였다. .. 이들은 협동적이었으며 노동을 담당하였다. 일자의 숙련노동이 아니라 다수의 집단적 힘이 가장 강력한 에너지를 산출하였다. 이들은 잡색이었는데, 누더기를 입고 있었기도 하고 외모가 각양각색이기도 하였다. .. 이들은 광대들 혹은 촌뜨기들을 포함하였다. 이들은 계보학적 통일성이 없었다. 이들은 서민적이었다. 이들은 속어, 변말, 은어, 혼합어에서 온 독특한 발음, 어휘, 문법으로 자신의 말을 하였다. 일터, 거리, 감옥, 무리, 부두에서 온 말이었다. 이들은 그 기원, 움직임, 의식에 있어서 행성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프롤레타리아는 자기활동적이며 창조적이었다. 이들은 살아있었고 현재도 살아있다. 이들은 늘 움직인다.-514-516쪽

전 인류의 세 친구 : 올로다 에퀴아노, 리디아 하디, 토머스 하디는 1790년 8월에서부터 1792년 2월까지 런던, 커벤트 가든..에서 함께 살았다. .. 이 세 친구들은 흙냄새나는 공유지로부터의 분리의 경험을 공유하였으며 그래서 시장에서 상품을 사거나 아니면 찌꺼기음식을 찾아야 했다. 그들 중 누구도 돈을 많이 벌지 못했으며, 물가는 상승하고 있었다. 그들은 물건들을 구하기 위해서 자리를 이동하기도 했지만 불안정한 삶을 살았다. 그들은 에드먼드 버크가 그 얼마전에 프랑스혁명에 대한 그의 비방에서 민중에서 붙였던 이름인 "돼지 같은 다중"에 속했다. 그들은 상류층의 눈에는 돼지들이었으며 게다가 잡색이었다. 올로다는 아프리카인이고 리디아는 영국인이며 토머스는 스코틀랜드인이었기 때문이다. .. 올로다는 농장노예였기도 하고 선원으로도 일했다. 리디아의 사회적 역할은 출산이었다. 따라서 그녀는 프롤레타리아였고 어머니였으며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었다. 토머스는 장인, 제화공이었다. 노예/선원, 프롤레타리아와 장인은-그들에게 경제적 유형들에 따라 거칠게 정체성을 부여하자면-친구들이었으며 1792년에 같이 자유를 찾으려 하였다.-518-519쪽

셋 모두는 공유지를 잃고 나서 그들의 노동의 가치가 감소되는 것을 보았다. 올로다는 대서양을 가로질러 그를 수송하는 노예수송선을 타고가면서 상인자본주의가 가하는 끔찍한 테러를 경험했다. 리디아는 런던에서 6번 임신을 하였는데, 런던에서는 모든 아이들의 74퍼센트가 5살이 되기 전에 사망하였다. 토머스는 캐런 무기제작소에서 벽돌공으로 일했다. 캐런함포는 불꽃이 튀고 석탄이 빨갛게타고 쇠가 녹는 화산같은 조건에서 생산되었다. ... 이렇게 수탈과 착취라는 공통의 경험에 기반을 둔 세 친구들은 방과 생각을 공유했다. 올로다는 영국 혁명의 반율법주의적 노예제폐지론으로 거슬러 올라가 밀턴의 [실낙원]을 통해 아메리카 노예제에 대한 그 자신의 경험을 표현했다. .. 리디아 하디는 다른 여성들처럼 노예제폐지운동에서 열심이었는데, 의회의 의원들에게 로비를 한다거나 노예제폐지론자들의 전국적 위원회의 회의들에 참가하는 방식이 아니라 교구의 공동우물이나 부엌 아궁이 앞에서 활약을 했다. .. 토머스 하디는 전개되고 있는 아메리카 혁명이 모든 정치적 논의의 주제인 때에 런던에 도착했다. -519-523쪽

잡색부대의 조직적`지적혁신에 영향을 받은 토머스는 '그의 마음은 항상 자유에 대한 사랑으로 이글거렸으며 그의 동포들의 고통을 민감하게 느끼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류 전체의 미래의 행복'에 대한 관심을 발전시켰다. .. 1792년 1월 <런던교신협회> 첫 모임 이후에 하디와 다른 창립자들은 스트랜드에 있는 벨이라는 선술집으로 가서 저녁을 먹었으며 '한 집에서 같이 살면서 모든 것을 공유하는 어떤 동포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렇듯 토론들이 처음 시작되던 때부터 <런던교신협회>는 공유지와 노예제를, 전자의 이상과 후자의 악행을 숙고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 4월에 하디는 이렇게 썼다. "한데 모이고 서로 소통하여 우리의 생각들과 결의들이 한 점에 모이도록, 즉 인간의 권리가 특히 이 나라에서 다시 수립되도록 할 절대적인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인간의 권리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이 작은 섬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흑과 백, 높고 낮음, 빈과 부를 막론하고 전 인류를 향해 확대된다."-523-5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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