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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평점 :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거대한 비극을 지극한 사랑의 관점에서 재조명한 작품이다. 작가는 70여 년 전의 학살을 단순한 과거의 기록으로 두지 않으며 현재까지 이어지는 생생한 통증과 기억으로 복원해낸다.
1. 눈보라 속에서 되살아난 통증
소설 속 문장들은 차가운 눈(雪)을 닮았다. 주인공 경하가 마주하는 고통은 단순히 타인의 역사가 아니라, 독자의 살갗에 닿는 시린 감각으로 전이된다. 작가는 학살의 현장에서 아이들의 얼굴을 덮었던 눈송이와 지금 우리의 뺨에 닿는 눈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이러한 ‘기억의 연결’을 통해 비극은 박제된 과거가 아닌 현재 진행형의 아픔이 된다.
2. ‘작별하지 않음’의 윤리
세 여성(경하, 인선, 어머니 강정심)을 관통하는 핵심은 작별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다. 이는 고통스러운 과거를 잊고 안락한 일상으로 도망치기를 거부하는 행위다. 인선의 어머니는 수십 년간 가족의 흔적을 찾아 헤매며 과거를 현재로 살아낸다. 작가는 망각이라는 편리한 길 대신, 뼈가 시린 추위 속에서도 죽은 이들의 손을 끝까지 놓지 않는 것이 살아남은 자의 숙명이자 가장 깊은 사랑임을 보여준다.
3. 연약한 생명과 연결된 우리
소설 속에 등장하는 앵무새 ‘아마’처럼 연약한 존재들은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는 우리의 감각을 상징한다. 빛이 사라지면 잠드는 새처럼, 우리 역시 타인의 상처에 응답하기를 멈추는 순간 인간으로서의 존재 의의를 상실한다. 한강은 우리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연결망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운다.
4. 슬픔이 사랑으로 승화되는 순간
결국 이 소설은 거대한 폭설 속에 묻힐 뻔한 존재들을 위해 세운 집요한 기록이다. 지옥 같은 역사 속에서도 우리가 여전히 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작별하지 않기로 마음먹는 순간 죽은 자들이 우리의 숨결 속에서 다시 살아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제주도의 붉은 흙 아래 묻힌 이들에게 보내는 가장 아름다운 답신이며, 고통을 끝내지 않고 사랑으로 껴안으려는 사람들을 위한 등불과도 같다. 우리는 여전히 눈보라 속에 서 있지만, 작별하지 않는 마음들이 모일 때 비로소 겨울은 봄을 향해 길을 내어준다.
소설 리뷰 원문 보러 가기
https://blog.naver.com/artjak/224219672038
다섯 살의 내가 K시에서 첫눈을 향해 손을 내밀고 서른 살의 내가 서울의 천변을 자전거로 달리며 소낙비에 젖었을 때, 칠십 년 전 이 섬의 학교 운동장에서 수백 명의 아이들과 여자들과 노인들의 얼굴이 눈에 덮여 알아볼 수 없게 되었을 때, 암탉과 병아리들이 날개를 퍼덕이는 닭장에 흙탕물이 무섭게 차오르고 반들거리는 황동 펌프에 빗줄기가 튕겨져 나왔을 때, 그 물방울들과 부스러지는 결정들과 피 어린 살얼음들이 같은 것이 아니었다는 법이, 지금 내 몸에 떨어지는 눈이 그것들이 아니란 법이 없다.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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