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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 가치에 대한 탐구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 지음, 장경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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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한 달여 사이 몇 십만원의 책을 사들였지만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은 책, 그자체만으로 21세기 한국 출판시장에 역사적 상징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A5 판형의, 780페이지 분량의 그것도 양장제본의 책이 18,000원의 가격에 책정될 수 있었다는 건 '가치에 대한 탐구'를 부제로 단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의 주제가, 본질이 물리적 현상체와 완전히 합일된, 현재 시점에선 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기이한 '사건'으로 기록되지 않을까 싶다.

( '문지'의 과감하면서도 무모한 시도였을테고 이제 막 책을 끝낸 한 명의 독자로서 다분히 그들의 시도에 박수를 보내지만 왠지 난 '문지'의 이런 도전이 고스란히 재정적 부담으로 연결되는 건 아닐지 조금은 염려스럽기도 하다.)  

 

문학과 철학의 만남,

은 결국 어색한 귀결로 막을 내린 듯 싶다. 실제 정신병의 이력을 갖고 있는 저자(화자)와 열한 살짜리 아들과의 모터사이클 여행이라는 문학적 틀과 철학(관념론)적 주제는 마치, 와인잔에 막걸리를 담아 마시는 것처럼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여행기로서의 문학과 삶·가치에 대한 철학적 논증으로서의 이론을 분리시켜 읽는다 할지라도 , 낯선 지명과 단편적인 대화 그리고 부자 간의 단절적 관계로 점철된 여행의 풍경은 한 편의 서사로서도 큰 빛을 발하지는 못하는 듯하다. 더우기 500쪽을 넘어 후반부로 내달리며 서사로서의 이야기는 점점 훨거워지는 대신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철학적 주제들이 상당한 지면을 차지하면서부턴 오히려 그런 문학적 장치들이 독서의 흐름을 방해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결국 600페이지 전후로는 아예 건너뛰고 책을 읽는게 오히려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진실에 접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오직 인식이란는 것을 용인하는 순간 우리는 근대로 접어든다"<주체의 해석학, 16P>
 

책의 후반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대 자연철학자(소피스트)들의 대립, 변증법과 수사학의 논쟁부분을 읽으면 읽을수록 피어시그가 말하는 '질(Quality) '선' '덕' '아레테' 등 현대인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삶의 가치가 푸코가 주장했던 '자기배려'와 완전히 동일한 개념이란 생각이 들었다. 단지 '자기배려'의 한 부분이었던 '자기인식'이 '데카르트의 순간' 또는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에서처럼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진'이 소피스트들의 '선'을 압사시키면서 서양(세계)의 역사는 주체와 객체로 이원화된 세상으로 분리된다. 그 세상에서 주체는 '합리적 이성'이라는 수단을 통해 '객체'를 완전히 인식했을 때에만 진정한 '진리'에 도달 할 수 있다는 개념이 수천년간 지속된다.

물론 합리적 이성은 과학적 발전과 기술문명의 진보를 가져다 주었지만 동시에 무언가의 상실도 가져온다. 

파이드로스는 소로의 책에 나오는 한 구절을 기억해냈다. "당신이 무언가를 얻게 되면 반드시 무언가를 잃게 된다." 인간이 변증법적 진리의 측면에서 세상을 이해하고 지배할 힘을 얻게 되는 순간 그가 상실한 것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라는 점을 이제 그는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인간은 자연 현상을 조작하여 힘과 부에 대한 자신의 꿈을 장대한 규모로 실현하는 것을 가능케 한 과학적 능력의 제국을 건설했다. 하지만 이를 위해 인간은 마찬가지로 장대한 규모의 제국인 이해의 제국을 희생하게 되었다. 세계의 적이 아니라 그 일부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이해력을 상실케 된 것이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674쪽>
  

거의 40년 전에 출간 된 책이고 전세계 600만이 넘는 독자가 읽었을 뿐더러 역자는 "사서 보든 빌려 보든 베껴 보든 빼앗아 보든 훔쳐 보든!"하라 강변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점점더 삶의 '질'로부터 멀어지는듯 하다. 교환적 수단으로서의 화폐가 물질성을 초월하여 '지고의 선'으로 변모해가는 21세기에 다소 신비주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질'과 '선' 또는 '가치에 대한 탐구'라는 심오한 주제는 마치 길거리를 거닐다 누군가 자신을 붙들고 '도를 믿으시나요'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처럼 조금은 뜨악하고 이물스럽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모든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들이 그러하듯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은 한 번 읽고 팽개쳐버릴 류의 책은 분명 아니다. 공학적 기술로부터뿐 아니라 일상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는 직장으로부터 사회로부터 결국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점점 '소외'되어가는 시대의 흐름을 역류할 순 없을지라도 잠시나마 그 흐름을 멈추고 내가 서있는 세상을, 스스로를 다시금 성찰해볼 수 있는 유용한 지침이 될 수 있는 책이다. 피어시그처럼 '모터사이클'이나 역자처럼 '오디오' 등을 관리할 순 없을지라도 보다 중요한 자신을 관리할 수 있을 실용적 연장이 될 수 있는 책이 바로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이 아닐까 싶다.

 blog.naver.com/redneck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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