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페미니스트
거다 러너 지음 / 평민사 / 1998년 9월
평점 :
절판


연속성, 집단 기억. 이 두 단어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아주 오랜 기간 머리 속에 강하게 남았다. 여성들은 자신들의 어머니, 할머니가 이루어놓은 그 어떤 사상도 연계받지 못하고 연장부터 다시 만들어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했다. 게다가 자신들의 자매와 어떠한 공동 작업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혼자 해내야 했다. 시지프스의 끝없는 반복노동처럼 여성들은 수천 년 동안 종적으로 단절되고 횡적으로 고립되어 단순한 남성중심성 비판도 '발전'시키지 못하고 그저 원점만 맴돌 뿐이었다.

남성들이 '내가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있었기 때문이다'라며 누적된 학문 체계를 나날이 발전시켜갈 때에도 여성들은 이 비극적인 순환 덫에 잡혀 있었다. 게다가 학문에 접근할 수 있었던 극소수의 조건은 매우 매우 까다로웠다. 귀족이고, 아버지가 학문을 하고 있어야 하며, 그가 여성의 학습에 호의적이어야 하고, 수녀가 되든지 독신이든지 해서 결혼에 묶이지 않아야 하고, 시간과 돈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혹은 남편이 자신보다 훨씬 나이 많은 학자이라면 과부가 된 후에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나마 서구에서의 일이다. 한국에서 여성들은? 생각할수록 절망적이다. 가부장제 사회 제도 때문에 여성의 재능과 인생이 소모되어 역사적으로 위대한 사상가나 체계 수립자가 나올 수 없었다는 문제 의식으로 장장 15년에 걸쳐 역사 속에서 탐구하여 이루어낸 과업이 담긴 여성학의 필독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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