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용기 - 피해자와 가족, 상담자를 위한 안내서
엘렌 베스.로라 데이비스 지음, 이경미.이원숙 옮김 / 동녘 / 200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계급, 민족, 인종, 이념, 종교..... 역사의 진보와 '거대 담론'이 우리의 삶을 규정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상당 부분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당수의 여성들에게 가장 큰 질곡으로 남아있는 것은 -특히 어린 시절에 겪은- 성폭력의 경험이다. 최초로, 그리고 가장 충격적으로 세상으로부터 배신당하고, 그 배신이 반복될 수 있다는 각인을 가진 상태에서 '과민'하지 않고 '대범'하게 산다는 것을 불가능하다. ('여자가 왜 그렇게 남자들을 다 적으로 돌리고, 친절과 호감의 표현에도 과민반응하느냐'는 말을 하는 남자를 보면 때려 주고 싶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마찬가지로 그런 남자를 때려 주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때리는 대신에 이 책을 읽으라고 권하는 게 어떨까? 이 책을 다 읽기 전에는 말대꾸를 하지 않겠다고 딱 잘라 말하는 거다.)

개인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다면, '보편적 인간의 해방'과 '보편적 인간에 대한 분석'과 역사와 노동과 민족에 대한 이야기들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개인의 상처를 돌봐주고 그 상처를 다시 헤집어놓지 않도록 노력하는 사회가 아니라면, 다른 부분에서 아무리 진보적이라도, 그 개인에게는 여전히 지옥이다. 게다가 그 개인은 정말 개인이 아니라 숨겨져 있는 다수의 집단이다. 우리는 왜 어린이 근친 성폭력을 비롯한 성폭력에 대해 드러내기를 꺼리는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며 그 거대한 상처와 그 상처를 공동으로 치유하는 여성들의 위대함에 압도되었다. 어린이 성폭력 문제를 작은 것이라고 치부하는 사람에게는 당장 이 책을 읽으라고 말하고 싶고..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여전히 성폭력 문제가 작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는.. 다시는 말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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