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명은 가족 - 어느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걸까?
류희주 지음 / 생각정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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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가족사’가 있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말이다. 백세 시대를 넘어 백오십세를 바라보는 시대에 이제 치매는 대표 노인질환이 되어버렸고, 한때 조발성 치매라고 불렸던 조현병은 강력범죄와 얽혀 보도되는 일이 잦다보니 대중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된 정신질환 중 하나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치매와 조현병에 특히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대중의 오해를 풀고 싶지도 하거니와... ‘병명은 가족’이라는 제목에 가장 적합한, 가족이라는 멍에 때문에 병이 더 깊어진 것처럼 보이는, 가족에서 도망치지 않고서는 병세가 호전되지 않을 것 같은 환자 철수가 바로 조현병 편에 등장한다. 심지어 철수의 가족들을 보고 있지만... 스릴러 소설을 읽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만큼 간담이 서늘해지는 느낌마저 든다.

🖍정신과에서 사용하는 약에 대한 설명이 매우 상세하다는 점, 진료비에 대한 부분도 가감없이 쓰여있다는 점, 각 질환에 따른 발생 메커니즘을 잘 설명하고 있다는 점(밝혀진 경우)에는 장점이 많은 책이다. 하지만, 제목에 충실한 책인가... 그것에는 약간 의문이 따른다. 물론, 5장 조현병까지만 해도 괜찮다. 그러나 6장 공황장애 편부터 저자의 노선은 다소 엉뚱해지는데... 그것은, “과연 불안이나 우울이 실제로 존재하는 질환”이긴 하냐는 거다. 여기서... 나는 기운이 쭉 빠졌다.

🖍실제로 그런 주장이 있기는 한가보다. 그러니까... 불안, 우울, 공황같은 증상이 제약회사에서 약을 팔기 위해 만들어낸 증상... 이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런 증상을 호소하는 수많은 환자들과 그런 증상으로 실제 죽음을 택하는 환자들은 대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저자는 불안을 실존의 문제와 연관짓는데, 그렇게 되면 철학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이니... 그건 거기까지 하고.

🖍나는 자살충동을 동반한 우울, 수면장애(이건 많이 좋아짐), 불안 등으로 11년 째 약을 먹고 있다. 나는 제약회사에서 만들어낸 가짜 증세에 놀아나고 있는 것일까? 있지도 않는 장애로 인해 한달에 3-4만원씩 하는 약값을 버리며 스스로 멍해지는 길을 택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 우울과 불안을 만들어 내는 게 내 안에 있는 #초자아 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가끔 기운이 빠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약을 조절하긴 했지만 11년 째 여전히 약을 먹고 있는 이유는, 약을 끊으면... 다시 죽기 위한 시도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 대한 판단은 유보해야 할 것 같다. 정신과 의사가 말하는 정신장애에 대한 책을 처음 읽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책의 저자는 주로 프로이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게 주류의 의견인지는 모르겠다) 도파민 학설에 대한 이야기는 읽은 적이 있으나, 불안이 존재하는가에 대해 전제자체를 부정하는 이야기는 읽은 적이 없다. 한번쯤 읽어볼만 하지만, 불안을 비롯한 공황, 우울에 대한 정보를 원한다면 추천하지 않는다. 치매, 조현병, 알코올중독 등은 상세하게 잘 설명되어 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쓰레기통에 쳐 넣고 싶은 것이 가족이다”... 톨스토이보다 기타노 타케시의 말이 더 와닿는 건 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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