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않을 이야기 - 팬데믹 테마 소설집 아르테 S 7
조수경 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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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푸른>은 점염병 탓에 원래의 일자리를 잃고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화자가 나온다. 전염병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은 이제 꿈도 꿀 수 없다. 심지어 손끝과 발끝이 푸르게 변하는 변종까지 등장한다. 변종에 걸린 것을 알게 되면 물류센터마저 쫓겨날까봐 아니, 물류센터 자체가 문을 닫게 될까봐 화자는 손끝 발끝에 파운데이션을 바른다.

🧷"누구하나 발생하면 회사 문 닫는거야." 라는 식의 협박 아닌 협박. 바로 어제도 대형 게임회사에 확진자가 나와 회사 전체가 문을 닫았다는데, 생각하보면 그런일이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다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지 않은가? 경제논리를 위해 개인의 건강은 무시되고 침묵해야 한다. 어쩌면 전염병이 더 무서운 것은 개인에게 침묵을 강요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다.

📝 <특별재난지역>은 처절할 정도로 현실적인 소설이다. 초기 확진자가 가장 많이 나왔던 곳-청도가 배경이다. 청도에 사는 일남 가족은 전염병이 아니어도, 가뜩이나 삶이 버겁다.

🧷중심화자인 일남에게 전염병은 그저 '우한'에서 발생한 남의 나라 이야기이다. 일남의 주변엔 걱정해야 할 일들, 챙겨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전염병은 너무 멀고 어깨에 이고 진 가족들은 너무 많다. 일남 가족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무기력하고 무능력하다. 그나마 딸 상희는 똑부러지는 듯한데, 더이상 엄마의 착한 딸 노릇을 안한다고 "거리두기"를 하자고 한다. 손녀 가영은 전염병보다 더 무서운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이다. 사실 세상엔 이야기할 것도 논의해야 할 것도 많은데... 어쩐지 2020년은 전염병이라는 것에 모두 매몰되어 버린 것 아닌가, 싶다. 우린 너무 많은 사건들을 지나쳤다. 전염병 때문에.

🧷<특별재난지역>을 읽을 때, 한가지 불편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가영이 디지털성범죄에 노출되었을 때, 아이의 성기 부분을 묘사하던 장면. 꼭 그렇게까지 자세히 성기의 모습을 묘사했어야했을까? 그 부분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여자아이의 성기를 떠올렸을 독자들과 실제 그런 일을 겪었을지도 모르는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조금 더 '나이스'한 묘사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어쩌면 일부러 불편함을 느끼라고 노골적인 묘사를 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내게는 잘 먹혀들지 않았다. 확실히 불쾌하기만 했고, 작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만들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두痘>는 시골분교로 발령을 받은 진화가 여자 아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전염병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왜 여자아이들에게만 전염병이 돌까. 더이상 말을 붙이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 가능할것이다.

🧷사실대로 말하면, 이 소설에 대해서는 어떤 말을 하는 것이든 조심스럽다.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말하기 어렵다. 왜 하필 이라는 의문이 읽는 내내 떠오른다. 설정의 문제, 배경의 문제... 각자 읽어보고 판단하시길. (나 역시 판단보류)

📝<쓰지 않을 이야기> 속에는 가족을 죽이는 소설을 자주 쓰는 소설가가 있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지만, 소설은 무언가의 반영이기도 하다. 뭐하는 사람인지 모를 아버지는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자 드디어 집안에 들어왔다. 웃기는 얘기지만, 전염병 덕에 온 가족이 모였다. 화자는 계속해서 가족의 유랑같은 삶을 복기한다. 무언가 희한한 가족이긴 하다. 기괴하긴 한데, 그게 이 가족의 매력인가 싶기도 하다.

🧷이 소설에는 그나마 멀쩡한(?) p가 등장하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화자와 전혀 맞지 않는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런데도 p와 결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화자를 보면 뜨악한다. 엄마 아빠와 비슷한 삶을 살지도 모르겠군, 그런 생각이 들면 어김없이... 이 소설 속 삶은 계속 도돌이표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전염병도 도돌이표, 인생도 도돌이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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