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
질 들뢰즈 지음, 이진경 외 옮김 / 인간사랑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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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알고 있듯이, 이 책은 [에티카]의 주석서이다. 물론 에티카의 주석서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스피노자의 전 저작을 두루 막라하면서(들뢰즈의 취미?이자 특기이기도 하지만) 들뢰즈 자신의 사유로 전유하고 있다. (누가 그랬지?) "스피노자는 들뢰즈의 성부이다". 에티카가 기하학적 편재로 쓰여진 만큼, 이 책 역시도 그와 유사한 체계로 쓰여져 있다. 

스피노자의 기획이 그러했듯이, 들뢰즈는 이 책을 통해, 그리고 그 전의 베르그송과 니체를 경유하면서도 마찬가지였지만, '1=여럿'의 마법적 공식을 재확인시켜준다. 특히 스피노자의 독해 자체, 혹은 스피노자의 논리를 충실히 재현하고픈 사람들에 의해서 많은 오해와 비판을 받은 '둔스스코투스'의 '형상적 구별'이라는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다양체 개념을 좀 더 쉽게 이해하도록 만들어준다.  

 상당부분 [에티카]의 논의에 충실하지만 중간중간에 스피노자의 논의를 진척시킴으로써, 딱딱한 [에티카]로 다가가지 못했던 스피노자의 사유를 새롭게 조명해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에티카]를 다시 읽을 욕망을 불러일으켜 준다는 점에서 놀라운 책이다.  

들뢰즈의 전 저작이 다 그러하지만, 특히 이 책은 처음부터 상당히 꼼꼼한 독해를 하지 않으면 촘촘한 개념들의 얼개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쉽게 접근하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다. 어떤 방식으로든, 한번의 통독을 하고 난 후, 부분들로 파고 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특히 3부는 우리에게 현실의 실천적 삶에 대한 무한한 이론적 긍정과 토대를 마련해준다. "모든 실존양태의 완전함"이라는 진술은 끊임없이 장애를 만들어내고, 결핍을 생산함으로써 '슬픈 정념과 그에 따른 욕망'을 자극하는 '자본주의- 국가'가 작동시키는 여러 기획들을 전복시킬 수 있는 이념적 토대를 제공한다.  글을 읽고 나면 우리 신체를 가로지르는 '부족함', '불완전함' 등의 부정적 개념은 자연스럽게 일소된다.

부분적으로는 이성에 대한 스피노자의 정의, 사회에 대한 개념, 집단지성과 그 잠재적 역능의 강화라는 테제들은 너무도 중요하다. 이 글은 관계론과 구성주의 어느 한 측면에 집착해서 읽고 어느 한 쪽을 강조하기 보다는, 오히려 이 두 측면을 아우르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무방할 것같다. 

단, 이 책을 통해서 직접적인 실천을 위한 슬로건을 확인하려 한다면, 그러한 의도에 의한 독해는 권하고 싶지 않다. 읽는 내내, 이 책은 너무도 거대한 우주론적 기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일상의 구체적인 슬로건을 찾기 보다는, 현실의 움직임을 반추하는 거울로, 혹은 그 바닥을 새롭게 정초하는 실마리로 쓰일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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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빡123 2012-02-02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부좀 하셨나보네요 ㅋㅋ
 
질 들뢰즈 경성대문화총서 23
토드 메이 지음, 이윤성 옮김 / 경성대학교출판부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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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현대의 여러 사상들 가운데 들뢰즈 사유의 위치를 아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들뢰즈의 사유를 나름대로 소화하면서 알기 쉽게 정리하고 있다. 철학을 단지 '학문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강한 우리의 지적 풍토에서, 들뢰즈의 철학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를 새롭게 고민하게 만들어주는 저작이다. 

  몇가지 흠이 있다면, 일단 출판사 자체의 무성의함을 들 수 있겠다. 책 전체에서 편집과정에서 기초적으로 걸러져야 하는 오 탈자의 수가 부지기수이다. 심지어는 문장의 맥락이 깨지는 부분도 있었다.  

  또 한가지는 번역상의 문제이다. 들/가의 책들이 거의 대부분 번역이 되어 있고, 그에 대한 논의가 어느 사상가보다도 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역자는 자의적(?)인 번역 용어를 택하고 있다. 가령 vertual의 경우 현재 대부분의 역서에서는 '잠재적'으로 번역함에도 불구하고(이는 현실(태), 가능(태), 실재 등의 용어와 관련해서 들뢰즈 사상의 핵심적인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는 '가상적'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하여 역자의 그 어떤 설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와 같은 부분을 수정한다면, 들뢰즈를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 상당히 유용한 책이 될 것이며, 들뢰즈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내용은 상당히 좋으나, 번역과 편집은 다소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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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와 철학 들뢰즈의 창 1
질 들뢰즈 지음, 이경신 옮김 / 민음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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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뢰즈의 저작인 [니체와 철학]은 포스트모던 혹은 후기구조주의를 열어젖힌 시조라 할 수 있는 니체를 새롭게 살려내고, 니체와 더불어 각자가 서로를 넘어서는 영역에서 ‘니체의 들뢰즈 되기’와 ‘들뢰즈의 니체되기’가 만들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들뢰즈가 서술한 여타의 저작과 마찬가지로 이 텍스트 역시 어느 부분이 니체의 주장이고 어디까지가 들뢰즈의 주장인가를 구분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이거니와, 들뢰즈가 항상 주장하듯이 그다지 의미있는 작업이 아니다. 오히려 역자가 역자후기에서처럼, 이 텍스트는 들뢰즈-니체의 저작이며 이 둘 ‘사이’의 ‘되기’의 생성물이다.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는 이미 당대에서 역사적으로 진행되어온 다양한 철학적 담론의 허구성과 그 철학들이 가진 권위를 전복시키는 역할을 했으며, 이러한 그의 사유는 후기구조주의가 기존의 담론체계를 해체해가는 방법론적 기원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해체론의 중심에 있었던 데리다의 경우에서처럼, 니체의 원용은 기존의 모든 것을 해체하는 것에서는 효과적이었으나, 그 해체의 작업이 진행될수록 자신의 존립근거조차 해체해야 하는 난점에 봉착함으로써 모든 것을 붕괴시키는 파국으로 치닫는 결과를 낳았다. 이에 비해 들뢰즈는 기존의 수많은 철학자들이 만난 니체와 달리, 해체를 넘어 새로운 생성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2.

 [니체의 철학]은 가장 먼저 니체의 계보학을 통해 존재하는 모든 것의 차이를 복권시킨다. 들뢰즈-니체에 따르면 자명하게 존재하는 가치나 보편적 가치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가치는 구체적인 행위자, ‘누구’의 가치이다. 그리고 그러한 ‘누구의 가치’에 대한 평가가 바로 ‘우아함과 저속함, 우아함과 비루함, 우아함과 몰락’의 ‘가치평가’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우리가 자명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그 기원에 있어서 구체적인 대상들이 만들어낸 차이에서 기원하는 것일 뿐, 그 가치가 본래적으로 담지하고 있는 ‘가치’는 없다. 오히려 당연한 것 또는 본질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가치들은 구체적인 대상들의 차이에 의해서 산출된 ‘평가’일 뿐이다.




아름다움이 무엇이고 정의로움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혹은 누가) 아름답고 무엇이(혹은 누가) 정의로운지를 묻는 것은 원초적 본질의 입장 그리고 변증법에 대립하는 소피스트적 기술의 전부를 함축하는 완성된 방법이다.(145쪽.)




  이와 같은 들뢰즈-니체의 질문 방식은 ‘가치 그 자체의 본질’ 혹은 어떤 가치의 본질이란 무엇인가를 추구했던 플라톤의 이데아적인 접근방식과 정확히 반대되는 것이다. 가령 플라톤은 ‘선의 이데아’, ‘선 자체’가 무엇인가를 탐구해 갔다면, 들뢰즈-니체의 방식은 ‘누구의 선인가?’를 집요하게 찾아들어간다. 따라서 이와 같은 질문의 방식은 초월적인 ‘보편 개념’에 대한 비판이자 구체적인 삶과 실재적인 실존의 방식에 대한 가치평가이며, 다양한 차이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가치의 가치’의 창조가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치 자체를 평가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기존의 가치목록을 만들었던 칸트의 ‘사심없음’과, 객관적 사실에 기초해 가치를 평가했던 공리주의자들은 모두 현실의 비판을 포기하고 타협했거나 현실의 불합리를 보증한 인간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철저하게 현실이라는 내재성에 근거한 들뢰즈-니체의 사유방식은 어떤 의미에서 오히려 유물론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들뢰즈-니체의 방식에 의하면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삶을 평가할 수 있는 절대적인 외재적 준거들은 붕괴하며, 오직 중요하게 남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삶의 방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 

  니체의 개념인 ‘권력의지’는 통상적인 의미의 권력을 갈구하거나 바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기서 권력의지는 존재 자체의 본성이며, 존재하려는 힘을 전개하려는 욕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리학에서 영감을 받은 개념인 권력의지는 차이나는 힘들을 서로 융합시키면서 힘들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변이 혹은 생성을 이끌어 나가려는 의지로 이해할 수 있다. 권력의지는 어떠한 주체에 귀속되는 의지가 아니라(주체를 둘러싼 수많은 문제점을 생각해 보라.), 비주체적이고 전인격적인 역동적인 의지이다. 그러므로 힘과 결부된 권력의지의 작동은 어떠한 외재적 준거나 목적도 상정되지 않는 순수 내재적 개념이라 할 수 있으며, 그 결과 여기에서 산출된 생성은 그 어떠한 외부적 잣대로부터도 자유롭다.(화산의 폭발은 나쁜가? 아니면 비도덕적인가?) 아울러 권력의지는 하나의 주어진 실체도 아니며, 항상 변화하고 생성하는 과정에서만 존재하는 것일 뿐, 이 변이의 흐름과 생성의 과정 너머에 존재하는 실재는 아니다.




권력의지는 미분적인 동시에 발생적인 힘의 계보학적 요소이다. 그것은 관계 속에 놓여 있는 힘들의 양적 차이와 동시에 그 관계 속에서 각각의 힘에 귀결되는 성질이 유래하는 요소이다.(103쪽.)




  권력의지로 드러나는 힘들의 결합에는 항상 우월한 힘과 열등한 힘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힘들의 결합 혹은 힘들의 관계가 만들어 내는 것이 신체이다. 여기서 들뢰즈-니체는 신체를 이루는 두 힘 중, 열등한 힘을 반응적 힘(부정)으로 그리고 우월한 힘을 적극적(능동적, 긍정) 힘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힘들의 관계는 신체를 구성하는데, 그 신체는 적극적 힘들, 긍정의 힘이 지닌 권력의지만으로 드러나며, 반응적 힘들, 부정은 적극적 힘에 굴복함으로써 스스로의 역능을 상실한다(오직 긍정만이 신체를 구성한다).

  따라서 신체는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는 무한한 역능 자체이면서도 지금까지 계속하여 의식보다 열등한 것으로 파악되어왔다. 이에 비해 그(들)는 의식보다 신체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의식은 항상 자신의 외부와 관련된 의식이며, 외부의 권력에 의한 타협물이며 동시에 반응적 힘들의 의식이다. 오히려 우리는 외재성에 기원하는 의식이 아니라 철저하게 내재적인 힘들의 관계에 기인하는 신체에, 그리고 이 신체를 이루는 지배적인 힘인 적극적인 힘에 주목해야 한다.

  들뢰즈-니체는 의식을 강조해온 지금까지의 사유를 부정한다. 의식=반응적 힘들은 그들 스스로를 부정하고 항상 지배적 힘과 타협하면서, 원한과 복수를 불태운다. 그리고 이러한 타협과 복수에 찬 원한은 새로운 생산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작동 방식을 보존하면서 어떠한 변화도 허용하지 않는 무의 의지를 생산한다. 이러한 원한이 내면으로 향한 것이 바로 가책인데, 원한에서 비롯된 가책, 책임성, 죄의식 등의 강조로 점철된 역사가 기독교의 역사이며, 노예의 의식에 손을 들어주는 변증법의 역사이다. 특히 이(들)은 변증법의 원리가 원한에 가득 찬 반응적 힘들의 집합이 적극적 힘들을 질식시키는 서사를 기획함으로써 새로움, 생성,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을 봉쇄하며, 모든 존재들을 원한의 구렁으로 함몰시켜 간 원흉이라고 비판한다.

  

4.

  니체는 이러한 권력의지의 작동방식이자 긍정적 힘들의 존재 원리로 영원회귀를 설명한다. 이때 영원회귀는 불교적인 윤회나 동일한 것으로의 반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영원회귀는 끊임없이 도래하는 순간, 즉 영원히 지속되는 카이로스적 시간 속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권력의지의 작동이자, 긍정의 작동 원리라 할 수 있다. 현재는 지나감과 도래함이 공존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간 자체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하나의 축이자 요소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영원한 현재 속에서 권력의지는 부정에 의해 지속되는 진리, 존재, 동일자 등의 어떤 초월적 요소와도 무관하게 항상 긍정만을 선택하며, 이러한 긍정의 연속된 선택이 바로 영원회귀의 원리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영원회귀 속에서 동일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영원회귀 속의 동일성은 되돌아오는 것의 속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차이나는 것을 위해 되돌아오는 상태이다. 그래서 영원회귀는 하나의 종합으로, 즉 시간과 그것의 차원들의 종합, 다른 것과 그것의 재생산과의 종합, 생성과 자신을 생성으로 긍정하는 존재의 종합, 이중적 긍정의 종합으로 간주되어야만 한다.(101쪽.)




  영원회귀는 오직 차이만을 생성하며, 영원회귀 속에서 모든 차이는 유쾌한 생성, 생성의 존재(영원한 불변의 존재가 아니라)만 남는다. 그리고 영원회귀는 모든 부정의 정신을 일소해버린다. 지속되는 현재의 이행 속에서 부정은 새로움을 만들어 낼 수 없으며, 따라서 부정 자체는 스스로 소멸하거나 ‘부정의 부정’을 통한 긍정으로의 전환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니체가 ‘생성에는 죄가 없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이다. 마찬가지로 들뢰즈-니체가 말하는 ‘이중긍정’이란, 오직 긍정만이 존재이며 이 긍정에 대한 긍정만이 끊임없이 생성하는 이행의 존재를 구성한다는 의미이다. 이에 반해 부정은 허무주의적인 ‘무의의지’만을 가지며 따라서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한다.

  권력의지와 영원회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면 최소한의 이해로 접근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진리, 당위, 도덕으로, 양심, 죄의식, 가책으로 표상되는 수많은 초월적 개념이 지닌 음험함을 벗어나 사유할 수 있는가? 매 순간 순간 머리가 아니라 신체의, 사유 이전의 신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가? 이와 관련해서 끊임없이 ‘현재’로만 제시되는 삶에서 항상 최선의, 오직 긍정의 삶만을 살 수 있다면, 우리는 다음 생에서 이와 다른 삶을 선택할 것인가?




5. 

  포스트주의의 다양한 사유들이, 그리고 세계화라는 일련의 흐름들이 우리를 훑고 지나간 오늘날 모든 단단한 것은 먼지처럼 날아가 버린듯하다. 또 표면적으로 모든 차이들이 허용되고, 모든 다양한 것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토피아가 도래한 듯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더 다채로워지고 더욱 더 풍요로움을 구가하는 자유의 평화시대를 맞이했고, 그 속에서 행복해지고 있는 것일까?

  오히려 현실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와, 그에 따라 굶을 수 있는 자유, 발언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허용한 것이 아닐까? 노동자들은 직장을 잃을 수 있는 자유와, 기업은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자유와, 지식은 자신의 지적 생산물이 현실과 그 어떠한 연대를 맺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누리는 것은 아닐까. 그 자유를 만끽하면서, 그 자유를 열망하면서 우리 스스로 부정으로 가득 찬 이 세계의 구조를 더욱 강력하게 재생산하는 것은 아닐까. 유명했던 비틀즈의 맴버였던 존 레논은 이미 오래 전에 혀를 빼물고 이렇게 노래를 불렀다.




상상해 봐요. 천국이 없다고 생각해 봐요.

하려고만 하면 그다지 어렵지 않을 거에요.

발 밑에는 지옥이 없고 머리 위에는 하늘만 펼쳐져 있다고.

상상해 봐요 모든 사람들이 오늘 밤을 위해 살아간다고.




국가가 없다고 상상해 봐요. 그다지 어렵진 않을 거에요.

신념을 위해 죽이지도 않고 죽일 일도 없고, 또 종교마저 없다고 상상해 봐요.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간다고 상상해 봐요.

나를 몽상가라고 하겠지요.

하지만 나만 이런 꿈을 꾸는게 아니랍니다.

(……)




하지만 어쩌면 이것은 상상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이며 삶의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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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게 연애하기... 일상에서 도망다니기... 아니 세상을 도망시키기.... 즐기기 ㅋㅋ
그 어떤 장르로 무언가를 재단하지 말기. 술 깨는 날 무거운 발바닥이 땅에서 부유할 때 읽혀지는 책들... 지독한 연애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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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20세기- 화폐, 권력, 그리고 우리 시대의 기원
조반니 아리기 지음, 백승욱 옮김 / 그린비 / 2008년 12월
35,000원 → 31,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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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
앙리 베르그송 지음 / 서광사 / 1998년 10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540원(3%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18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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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 모친살해, 그리고 창조성 : 멜라니 클라인
줄리아 크리스테바 지음, 박선영 옮김 / 아난케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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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미셸 푸코 지음, 박정자 옮김 / 동문선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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