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학 과목 교과서와 참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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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커뮤니케이션론
데이비드 헤셀그레이브 / 생명의말씀사 / 1999년 4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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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이 읽으면 좋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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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나는 건 당연해!
미셸린느 먼디 지음, R. W. 앨리 그림, 노은정 옮김 / 비룡소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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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세계지도책
DK 편집부 엮음, 브라이언 델프 그림, 강미라 옮김 / 대교출판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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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들어주는 아이-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고정욱 지음, 백남원 그림 / 사계절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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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난 개미야
스티브 파커 지음, 연진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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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파란여우 > [퍼온글] 권정생의 삶과 문학

<몽실언니>와 <강아지똥>의 작가 권정생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제 일이다. <강아지똥>은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국민동화이고, <몽실언니>는 언젠가 TV 드라마로 방영된 바 있어서 나처럼 직접 책을 읽지 않은 독자에게도 낯설지 않다. 하지만 내가 가장 강한 인상을 받은 것은 오래전에 읽은 한국일보의 '문학기행' 연재 가운데 <몽실언니> 편이었다. 그걸 옮겨놓으려고 하다가 곁다리로 오마이뉴스의 인터뷰기사까지 옮겨온다(작년 가을 한겨레의 기사는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168507.html). '권정생의 삶과 문학'이란 거창한 타이틀을 달았지만 사실 선생의 사진 한 장만으로도 그건 다 웅변되는 듯하다. 나머지는 사설이다.  

국민일보(07. 05. 18) 몽실언니’ 작가 권정생씨 타계

‘몽실언니’의 작가인 아동문학가 권정생씨가 17일 지병으로 타계했다. 향년 70세. 고인은 20대부터 만성심부전, 결핵 등으로 오랜 기간 투병했으며 최근 3∼4년간 병세가 악화돼 작품 활동을 접고 요양을 해오다 16일 입원했었다.

1937년 일본 도쿄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고인은 광복 직후인 1946년 외가가 있는 경북 청송으로 귀국했지만 가난으로 인해 가족들과 헤어져 어렸을 때부터 나무장수, 고구마장수, 담배장수 등을 전전했다. 이후 경북 지역을 떠돌다 67년 안동시 일직면 조탑동에 정착하여 그 마을 교회 문간방에서 살며 종지기가 되었다.

69년 동화 ‘강아지 똥’을 발표해 월간 ‘기독교교육’의 제1회 아동문학상을 받으며 동화작가의 삶을 시작한 그는 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무명저고리와 엄마’가 당선되었고, 75년 제1회 한국아동문학상을 받았다. 80년대 초부터 교회 뒤 빌뱅이언덕 밑에 작은 흙집을 짓고 살았다.

그의 작품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자연과 생명, 어린이, 이웃, 북녘 형제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깜둥바가지, 벙어리, 바보, 거지, 장애인, 외로운 노인, 시궁창에 떨어져 썩어가는 똘배, 강아지 똥 등 그가 그려내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힘 없고 약하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을 죽여 남을 살려냄으로써 결국 영원히 사는 그리스도의 삶을 작품 속에 그려냈다.

‘몽실언니’ 외에도 ‘점득이네’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 시집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 ‘무명저고리와 엄마’, 수필집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 ‘우리들의 하느님’ 등이 있다. 84년 출간된 ‘몽실언니’는 현재까지 60여만 부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아동문학계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았다. 제1회 기독교 아동문학상(1969), 제22회 새싹문학상(1995) 등을 수상했다.



유족은 없으며 장례는 6·15 민족문학인협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가 공동 주관하는 민족문학인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빈소는 안동병원, 발인은 20일 오전 9시, 장지는 생가가 있는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이다.(정철훈 기자)

한국일보(00. 05. 22) [문학기행](28) 권정생 소년소설 '몽실언니'

소년 소설 ‘몽실언니’는 1984년 초판이 나온 이후 42판을 거듭 발행했다. 소년들이 너나없이 국·영·수나 디지털로 내몰리는 시대에 ‘몽실언니’의 성공은 놀라운 문학현상으로 꼽힌다. 그리고 소년소설 ‘몽실언니’를 읽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소년이 아니라 50대를 넘긴 초로의 독자들이라는 것은 당연한 현상으로 보인다.

언니, 오빠, 아버지, 어머니처럼 인간의 생물학적 관계를 지칭하는 모국어에서는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의 힘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모국어 호칭들 속에서는 그 운명의 힘 만큼의 슬픔과 아름다움이 숨어있다. 언니는 어머니보다 가깝고, 오빠는 아버지보다 가깝다. ‘몽실언니’는 아직도 어린 거지 ‘언니’가 삶과 시대의 고난을 자신의 생애 속으로 받아들여가면서 이 세상의 ‘언니’로 넓어져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인간은 어떠한 지경에서도 삶을 부정할 수 없고, 이 세상의 선과 악은 어느 편의 것이 아니라 끝끝내 개인의 것이며, 이념과 총칼로 무장한 욕망의 충돌 속에서 참혹하게 부서져가면서도 인간은 그 역사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이 몽실이의 언니된 마음이다.

‘몽실언니’는 비참과 불행의 연속이고, 그 소설 안에서 아무런 행복한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몽실언니’는 결국 해피엔딩이다. ‘몽실언니’의 배경은 어느 특정한 마을과 산천이라기보다는 작가 권정생의 생애이다. 그의 한 평생의 가난과 외로움은 가히 설화적이다. 그리고 지어낸 이야기만 같은 그 설화적 고통은 지난 한 세기 동안 수많은 한국인들의 현실이었다. 이 시대는 이미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떠한 상처가 남아있는가를 되돌아보려고 하지 않지만, 많은 할머니들이 울면서 이 소년소설을 읽는다.

작가 권정생은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동 산비탈 아래 토굴 같은 흙집에서 혼자 산다. 이 흙집으로 오기 전에는 마을 교회 문간방에 기거하면서 교회 종지기 노릇을 했다. 신장결핵으로 34년 동안 주머니로 소변을 받아낸다. “한달 생활비가 5만원이면 좀 빠듯하고 10만원이면 너무 많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작가 권정생을 “억수로 착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외로운 노인이나 슬픈 일을 당한 할머니들이 그를 찾아와 하소연도 하고 넋두리도 한다. 술집 아줌마들이 자신의 고통으로 ‘몽실언니’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오기도 한다. 마을 할머니들이 모여서 ‘몽실언니’를 읽는다. 글을 잘 읽고 눈이 밝은 할머니가 소리내서 읽으면 다른 할머니들은 숨죽여가며 듣는다. ‘몽실언니’는 이제 소년소설이 아니다.

권정생은 1930년대에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 노무자의 아들로 도쿄 호마찌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몽실언니’는 그 빈민가에서 살았던 가엾은 아이들의 모습이라고 권정생은 말했다. 그는 보릿고개가 고통스러웠던 1946년 봄에 외가가 있던 경북 청송으로 돌아왔다. 먹을 것이 없어서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는 어렸을 때 나무장수, 고구마장수, 담배장수를 했고 여러 가게의 점원 노릇을 했다. 온 나라에 결핵이 퍼져있었다.

객지에 돈벌러 나갔던 아이들이 결핵에 걸려 고향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아이들은 이내 빨간 피를 토하며 죽었다. 그는 늑막염, 폐결핵, 방광결핵, 신장결핵으로 온 몸이 망가져갔다. 대구, 김천, 상주, 문경을 떠돌며 걸식을 했고, 때때로 산길에 쓰러져 혼절했다. 1967년에 지금 사는 조탑동 마을로 돌아와 정착했다. 그는 기자에게 자신의 생애의 일들을 상술하기를 거절했다. “제발 날 좀 힘들게 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그래서 그의 전기적 사실에 관한 기술은 그가 이미 글로 발표한 내용을 넘지 못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의 비참과 구걸에 대한 사실적 기술이 아니라 그가 “그때 나는 따뜻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라고 말하고 있는 대목일 것이다. 그리고 이 대목이 아마도 소설 ‘몽실언니’의 발단이고 귀결인 것으로 보인다.

몽실이는 ‘거지’로서 해방된 조국에 돌아왔다. 언니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어렸지만, 어린 몽실이가 어른들의 언니 노릇을 해낸다. 소설 속에서 몽실이는 살강마을(안동군 임하면, 현재는 수몰됨)에 살다가 단지 밥을 얻어먹기 위해 남편을 바꾸는 어머니를 따라서 댓골마을(현 안동시 화목리)로 간다. 몽실이의 언니됨은 살강마을이나 댓골 마을이나 다 똑같은 마을임을 아는 데 있다. 아늑한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행복이 아니다. 똑같이 아름답고 똑같이 쓸쓸한 마을이었다. 감나무와 대추나무도 똑같다. 친아버지와 새아버지도 다 똑같이 불쌍하고 외로운 아버지들이었다. “어느 쪽이 김씨 아버지이고 어느 쪽이 정씨 아버지인지 잘 가려내지 못할 때가 많았다. 어쩌면 둘은 닮은 데가 많았다. 어머니 밀양댁도 정씨 남편에게 죽도록 얻어맞았었다. 술 취하고 때리는 것이 둘이 똑 같았다”라고 소설은 적고 있다.

몽실이의 그리움 속에서 죽은 친어머니와 새 어머니는 언제나 포개져서 떠오르고, 배가 다른 동생들과 씨가 다른 동생들이 다 몽실언니의 동생들이다. 그렇게 해서 몽실언니의 삶은 행복을 쫓아가는 삶이 아니라 고난 속으로 넓어져가는 삶이다. 몽실언니는 절름발이 걸음으로 절룩거리지만 그 언니는 구걸의 깡통을 차고서도 그 시대의 편가르기와 야만성을 넘어서서 개인의 도덕성에까지 절름거리면서 걸어간다.

‘몽실언니’의 가장 힘세고 아름다운 대목은 그 마지막 페이지들이다. 몽실이는 양공주 노릇을 하는 언니들의 방문 앞에 놓인 미군들의 군화를 노려보면서 흩어져간 동생들을 찾아내기로 결심한다. “몽실이는 그 시커먼 구두를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싸늘한 밤하늘, 거기 어두운 곳에 별들이 반짝였다. 몽실은 이빨이 부딪치도록 몸을 떨었다”라고 소설은 적고 있다.

소설의 지리적 배경인 댓골마을은 지금은 다들 떠나고 두 집만 남았다. 땅 이름도 화목리로 바뀌었다. 이 마을 박명하(61)씨는 대구에서 건설노동일을 하다가 IMF 초기에 실직하고 다시 인기척 없는 고향으로 내려와 빚더미에 짓눌려가며 농사를 짓고 있다. “6·25때 이 마을에 피난민들이 몰려들었다. 거지 아이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 아이들이 지금 내 또래들이다. 피난민들이 밥을 해먹으면 폭격기들이 연기를 보고 쫓아와서 기총소사를 했다”고 박씨는 말했다.

이 마을의 또 다른 주민은 박정하(64)씨다. 다섯 살 때 홍역 끝에 실명했다. 박씨는 고아원에서 자라난 김문희(50)씨와 결혼해서 세 자녀를 두었다. 박씨는 아내와 아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손으로 더듬어서 안다고 말했다. 그가 전하는 처자식들의 생김새는 눈뜬 사람이 보아도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김씨는 200평 밭농사로 앞 못보는 남편을 섬기고 세 자녀를 길렀다. 첫째 딸은 부천에서 공장에 다니는데 이미 애인이 생겼고, 둘째 딸은 안동대학교 3학년이다. 막내아들은 입영영장을 받았다. 김씨는 소설 ‘몽실언니’를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이 나라 산천 구석구석에 힘세고 아름다운 ‘몽실언니’들은 너무나도 많다. 작가 권정생은 “깡통을 차고 헤맬 때도 인간이 아름다워서 눈물겨웠다”라고 말했다.

■ 권정생 연보

▲1937년 일본 도쿄 출생·1946년 귀국

▲1967년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동에 정착, 이 마을 교회 문간방에서 기거하며 종지기 일을 함

▲동화 ‘강아지 똥’으로 등단

▲동화집 ‘사과나무밭 달님’ ‘짱구네 고추밭 소동’ 소년소설 ‘몽실언니’ ‘초가집이 있던 마을’ 장편동화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등

■ '몽실언니' 줄거리

몽실이네는 해방 후 외국에서 돌아온 거지 가족이다. 아버지 정씨는 날품을 팔았고 어머니 밀양댁은 구걸질을 했다. 밀양댁은 남편을 버렸다. 밀양댁은 몽실이를 데리고 댓골마을 김씨한테 시집갔다. 김씨는 밥걱정은 안 했다. 밀양댁은 새 남편한테서 동생 영득이를 낳았고 새 아버지 김씨는 몽실이를 구박했다. 몽실이는 새 아버지의 폭력으로 절름발이가 되었다. 몽실이는 다시 친아버지 정씨한테 갔다.정씨는 남의 집에서 머슴으로 얹혀 살고 있었다. 정씨는 북촌댁한테 새 장가를 들었다. 북촌댁은 가냘프고 착한 여자였다. 북촌댁을 딸을 낳고 굶어 죽었다. 난리통에 태어났다고 해서 새 아기의 이름은 ‘난남이’로 지었다.

전쟁이 터졌고, 정씨는 군대로 끌려갔다. 마을에 인민군이 들어왔다. 인민군들은 마을 사람들을 마구 죽였다. 그러나 인민군들 중에는 마을사람들을 보호해주는 착한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은 다 착해질 수 있는 것이며, 어느 편은 다 나쁘고 어느 편은 다 좋은 것이 아님을 몽실이는 알게되었다. 마을 처녀들은 양공주가 되었다. 양공주들은 검둥이 아기를 쓰레기통에 내다 버렸다. 몽실이는 죽은 아기들을 끌어안고 쓰레기 더미에서 울었다.

전쟁이 끝났다. 군대에 간 아버지는 포로로 잡혀 있다가 절름발이가 되어 돌아왔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살아야 한다’라고 몽실이는 다짐했다. 몽실이는 깡통을 차고 장터거리에 나가서 구걸을 했다. 댓골로 시집간 친어머니 밀양댁은 아기를 사산한 후 심장병으로 죽었다. 몽실이는 배가 다른 동생들과 씨가 다른 동생들을 다 함께 데리고 살았다. 몽실이는 구걸질을 열심히 했다. 아버지의 병은 점점 깊어져갔다. 몽실이는 아버지를 자선병원에 맡기려 했다. 아버지는 병원 문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다가 죽었다. 동생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몽실이는 다시 흩어진 동생들을 찾아 나선다.

삼십 년이 지났다. 몽실이는 구두수선쟁이인 꼽추 남편과 결혼해서 남매의 어머니가 되었다. 배다른 동생 난남이는 폐결핵으로 요양소에 입원해 있었다. 몽실이는 닭찜을 싸들고 한 달에 한번씩 이 요양소로 난남이를 찾아간다.

 

 

 

 

 

 

 

 

 

 

오마이뉴스(04. 08. 05) <몽실 언니> 작가 권정생 선생님을 찾아

지난 7월 28일, 여름휴가를 맞아 안동에 계시는 권정생 선생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권 선생님은 <강아지 똥> <몽실언니>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 <우리들의 하느님> 등 수 많은 주옥같은 작품들로 우리 시대의 강퍅해진 영혼들을 일깨우는 작업을 해 오신 원로작가이십니다. 그 분을 작품을 통해 알게 된지 십 수 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기회가 닿지 않아 직접 만나 뵙진 못하고 간간이 연락만 드리다가 이번에 큰 용기를 내어 찾아간 것입니다.

이젠 많이 알려져서 하도 여러 사람들이 찾아오니 편찮으신 몸으로 몹시 시달리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걸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대로 가다간 생전에 한 번도 못 뵙고 말 것 같아 무례를 무릅쓰고 방문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우리가 동네 어귀에 도착했던 바로 그 시간에 동네 앞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에 일 보러 떠나셨습니다. 그래서 한 두어 시간 동안 마을 앞 팔각정에서 쉬면서 선생님이 돌아오시기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물어 물어 찾아간 선생님이 사시는 집은 신선한 충격 자체였습니다. 대문도 없는 데다 마당엔 풀만 무성하게 자라있고 집은 쓰러질 것 같은 작은 움막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느 사람들이 보아서는 거의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아직 선생님이 도착하지 않으셨을 때, 집 앞 고추밭에서 일하시던 동네 할머니 한 분을 통해 사시는 형편을 대강 들을 수 있었습니다. 거의 외출도 안하시는데, 오늘 틀림없이 우체국에나 가셨을 것이니 금방 들어오실 거라고 하시면서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하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조금 있으니 선생님이 작은 보따리 하나를 들고 당도하셨습니다. 원체 힘이 없으신지 걸음걸이마저 몹시도 힘겹게 보였습니다. 달려나가 선생님의 보따리를 받아들며 인사를 드렸더니, 예상대로 선생님은 우리의 방문이 그다지 반갑지 않으신 눈치였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그냥 돌아가라고 쫓아내시지는 않으셔서 문간에 잠시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래 내용은 그때 나눴던 이야기를 녹취하여 편집한 것입니다.

선생님의 사진은 '그런 거 다 부질 없는 거'라고 한사코 거절하셔서 찍을 수 없었습니다. 이 대담기록도 자칫 선생님께 누가 될까봐 기사로 다룰까 말까 망설이다가 반전평화를 외치는 선생님의 생생한 목소리를 널리 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오늘에야 정리한 것입니다.

- 지난번에 월간 <작은책>에 선생님이 쓰신 글, "승용차를 버려야 파병도 안 할 수 있다"를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말씀처럼 사시니까 선생님 글을 제가 동의하고 또 그래야 된다고 생각은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가 아닌가?'라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그 사람들 그렇게 생각하면 할 수 없는 거지요. 우리가 좀 불편하게 살아야 해요. 가난하게 살아야 되고 힘들게 살아야지 안 그러고 편하고 풍요롭게 산다는 건 그건 안 됩니다. 그렇게 살면 누군가는 힘들게 살아야 하잖아요. 세상의 모든 물질이 한정되어 있는데, 몇 사람이 풍요롭게 살면 나머지는 가난하고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잖아요. 뭐 도와준다고 몇 푼 갖다 준다고 그거 가지고 됩니까?"

- 삶의 방향을 바꿔야 된다. 방법을…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네요.

"그건 제 주장이고요, 각자 생각해서 살아야 되지요. 남의 말 듣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거지."

-(웃음) 그래도 좋은 생각들이 나와야 반성을 하고 다들 생각을 조금이라도 고쳐먹지 않겠어요?

"그렇게 하면 데모할 필요도 없잖아요. 석유 때문에 싸움을 하고, 환경오염이 되니까 또 공해를 줄이기 위해서… 뭐 누구나 다 아는 거잖아요, 뻔하게. 실천을 안 하니까 그렇지. 그래서 저는 승용차 타고 우리 집 오면 절대 오지 말라고 그래요. 그 뭐 할라고 몇 백 리를 승용차 타고 기름 때가면서 그렇게 와서 뭐합니까."

- 지금 건강이 많이 안 좋으셔서 밖에 나다니지도 못하고 그러시지요?

"오늘 28일이지요? 지난날 8일에 갔다가 꼭 20일만에 우체국 갔다왔네요. 바쁘게 편지 부칠 건 있고 해 가지고. 어디 계시더라도 좀 힘들게 살더라도 가난하게 살아야 됩니다. 그건 이상도 아니고 꿈도 아니고 현실이잖아요. 아프리카 아이들 불쌍하다느니, 이라크 아이들 죽어 가는 것 뭐 어쩌고 걱정하고 몇 푼 가지고 보태주는 것 그거 가지고는 안 됩니다. 미국의 인구가 전세계 인구의 한 5%도 채 안 되거든요. 그런데 전 세계 모든 자원의 한 50%를 다 미국이 소비하고 있거든요. 저건 안 되지요. 저건 악마지요. 우리도 미국 따라 그렇게 해서는 안 되잖아. 제발 미국한테 기대가지고 그 비싼 무기 사다가 괜히 우리끼리 저렇게 죽이고 하지 말고. 아이구, 고등학교 대학에서 그런 거 안 배웁니까? 도대체 대학에서 무얼 배우는 줄 모르겠어.(깊은 한숨)"

- 저는 기독교 목회자다 보니까 교회를 생각하게 되는데, 오늘 한국교회 현실이 너무 답답합니다. 어떻게 믿는다는 사람들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저렇게 친미집회를 하고…."

"그러니 죽은 김선일씨도 교회에서 괜히 이야기하는 대로 이라크 불쌍하니까 선교하러 간다고 갔는데, 그거 그럴 필요 없어요. 그 사람들 나름대로 종교를 가지고 있고 오히려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순수하게 살고 있는데, 아랍인들 계율이 엄격해 가지고 아직까지 퇴폐적인 건 없거든요."

- 한쪽에서는 그래도 순교자라고 김선일씨를….

"바꿔 놓고 생각해봐요. 우리가 만약 이라크처럼 당했다고 하면 가만있겠어요? 안중근 의사가 처음에 프랑스 선교사한테 굉장히 많은 자기 고민을 이야기했어요. 어떻게 나라는 이렇고, 하느님 뜻은 어떻고.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그 프랑스 선교사가 '당신이 알아서 해야지, 당신 나라니까 당신 나라가 중요하면 나라를 위해서…' 라고 말했어오. 그래서 간도 독립 운동하는 데 가 가지고 군대 조직해서 싸우다 보니까 사람을 죽여야 하잖아요, 죽이는 것도 일본 졸병들 아무리 죽여 봤자 그거 소용없거든요. 정말 무고한 목숨만 죽이는 거지. 그래서 생각한 것이 우두머리를 죽여야겠다 해 가지고 이등방문을 죽인 것이지."

- 근데 그것도 테러라면 테런데, 그러한 방식이 어떻게 보면 또 해방을 이루어내지는 못했지 않습니까? 저는 김선일씨를 죽인 알 자르카위, 그렇게까지 하는 거 심정은 이해 가지만 그 방식에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거든요.

"그렇게라도 하기 때문에 미국이 많이 주춤하고 있잖아요. 미국시민들도 어느 정도 반성 분위기가 서고 그렇지요. 독일의 디트리히 본 회퍼 목사가 히틀러 죽이기 위해 암살단을 조직해서 활동하다가 붙잡혀 감옥에서 죽었는데 그 목사가 그래요. '내가 아무리 신학박사 학위를 받아봤자 뭔 소용이 있느냐?' 그래 가지고 미국에서 공부하다 돌아와 가지고 그랬거든. '미친 사람 하나 죽여야 된다'고."

- 예수도 그런 상황이었으면 그렇게 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거든요.

"예수도 그렇게 했잖아요. 무모하게 그랬잖아요. 로마한테 대들었잖아요."

- 대드는 거야 대들었지만 대드는 방식에 있어서 그렇게 폭력적인 방식으로 사람을 죽이고 살상하고 그렇게 저항하진 않은 것 같거든요.

"아니 그 보다 더 무서운 저항이 어디 있어요. 예수의 방법이 달라 그렇지."

- 그렇죠. 미국에 저항은 해야된다고 생각은 하는데, (알 자르카위 같은 테러단체의) 방법이 온당치 못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태복음에 나왔을 거예요. 예수님은 오리를 가 달라하면 십리까지 가줘야 된다. 적극적인 방법이지요. 그게 맞습니다.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마저 들이대라. 그게 간디가 그렇게 했거든요."

- 글쎄요. 그러니까 간디나 예수의 방식은 어찌 보면 어폐가 있지만 비폭력 저항방식이었는데, 지금 알 자르카위나 이런 사람들은 테러 방식으로 해서 사람을 죽이고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켜서 자기 나라를 건져야 되겠다. 이렇다보니까….

"그건 어쩔 수 없어요. 안중근이가 이등방문을 안 죽였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겠어요? 그 당시에 김구 선생이 가만히 있었으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그건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새끼 빼앗긴 엄마 닭은 적한테 자기 목숨 내놓고 달려듭니다."

- 그러니까 선생님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라고 보는 거네요.

"교회 목사님들은 괜히 그렇게 사람 죽여서 되겠느냐고 그러는데, 예수님처럼 살지도 못하면서 그래요."

- 그렇게 말씀하시면 할 말이 없지요. (웃음)

"안 그러면 남 안 죽이더라도 예수님처럼 철저하게 살든지."

- 선생님 이렇게 여기서 지내시는 것이 편안하셔요?

"이 세상 편한 데가 어디 있습니까? 아이고 참."

- 전에 어디서 모시고 가려고 했는데, 이오덕 선생님 댁이었나요? 불편해서 다시 돌아오셨다고…. 여기 동네 아이들은 좀 있습니까?

"없어요. 전부 다 도시로 나가고…."

- 계속 아동문학 작품을 쓰시고 그러시는데, 애들을 좀 직접 접해 보시고 그러는 것이 도움이 되실 것 같아서요.

"요즘 아이들은 옛날 아이들 같지 않아서요. 요즘 아이들은 별로 정이 안가요. 어머니들이 잘못 키우고 있어요. 전부다 자기 아이만 대단한 것처럼…."

- 그럼 작품 쓰실 때 어디서 주로 아이디어를 얻으셔요?

"아이디어는 얻는 것 없어요. 그대로 다 이야기니까 사람 살아가는… 이라크가 지금 겪고 있는 거 우린 벌써 5~60년 전에 다 겪었잖아요."

- 요즘 저희 도서관에는 '동화 읽는 어른모임' 사람들도 와서 활동을 하고 그러는데, 예전에 비해 어린이 책 시장이 굉장히 넓어져서 책들이 많이 쏟아져 나옵니다.

"어린이 아동문학이 상업화가 돼 가지고 책이 귀한 줄을 모르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면 좋은 책이 나오긴 나오겠지만 아이들한테 별로 좋지는 않은 것 같아요."

- 책이 귀한 줄 알고 여러 번 읽고 그래야 하는데….

"또 매출이 많이 줄어들어요. 한 번은 저것도 큰 코 다치겠지요!"

- 선생님은 여러 책들을 많이 쓰셨는데, 그 중에서 <몽실언니>를 가장 아끼십니까, 아니면 아끼시는 다른 책이 있습니까?

"<초가집이 있던 마을>이요. 그건 가톨릭 출판사에서 잡지에다 쓰다 보니 제재를 받지 않았어요. 거기서 복식인가 그 애는 입대를 거부하고 자살해 죽어요. 아버지는 월북하고 이런 아이입니다. 요새 양심적 병역거부가 이야기되고 그럽니다만. 그게 몽실이보다 한 3년 앞서 썼지요."



- 지금도 교회에 다니고 그러셔요?

"요즘은 안 다녀요. 몸도 그렇지만. 목사님들이 너무 친미를 하고요. 너무 축복받고 이래 살아야 한다니까 우리 같은 사람은 그렇게 안 됩니다."

- 신앙을 버린 것은 아니시고요?

"그럼요. 저는 예수님을 기독교의 교주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냥 깨끗하게 순수하게 불의를 마다하고 저항하다가 저렇게 돌아가신 분이지 기독교라는 어떤 종교를 만드신 교주는 아니라고 봐요. 더군다나 부시라는 사람이 정의의 하느님을 앞세워 가지고…."

- 그러니까 어떤 종교가 되었든 그러한 근본주의자들은 해악을 미치는 것 같아요.

"굉장히 갈등이 심했어요. 처음에 이걸 어떻게 하나. 남아 있으면 나도 같은 족속이 될 수밖에 없고. 나갈라니까 거기에 같이 있던 사람들 버려 두고 나 혼자 나온다는 것이 비겁한 것 같고, 그렇다고 교회는 고쳐지질 않으니까 '나'라도 그러면…."

- 그런 부분에 대해 담임 목회자와 이야기를 많이 하셨나요? 왜 그렇게 생각을 하시는지….

"이야기를 해도 그 사람들 뭐냐 그러냐면 대중들이 구하는 게 기복신앙이지 않느냐 이러 거든요. 그건 맞아요. 그러나 그거는 목사님들이 편하거든요. 기도해야 복 받는 거. 그렇게 하면 목회가 편합니다. 바치는 것만큼 몇 배 얻는다. 기도한 만큼 얻는다. 두드리라 얻는다. 이러면 (사람들이) 찾아오지요.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처럼 힘들더라도 이 세상에서 있어야 될 것 없어야 될 것 구분해 가지고 떳떳하게 물리칠 것 물리치고 그렇게 살아야 된다 이러면 안 옵니다. (웃음)"

- 저희 교회는 조그마한 교회입니다만, 그런 생각을 바르게 좀 하자는 차원에서 책읽기를 해요. 예배 후에 같이 식사하고 오후에는 책을 선정해서 이미 말씀드린 오강남 교수의 <예수는 없다> 같은 책도 다뤘고, 최근에는 해방신학자 구띠에레즈의 <우리의 우물에서 생수를 마시련다> 이런 책들을 읽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시간만 좋다고 나오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교회는 안 다녀도 꼭 교인들만 이게 필요한 게 아니다고 이야기하면서 자기도 다 동감한다며….

"그래요. 그 시간 좋다고 하면 그 시간 나오게 하고 어떤 경계를 안 만드는 게 좋아요. 불교, 기독교, 가톨릭…. 그래 가지고 항상 개방해 놓고 교회에 와서 주무시고 갈 사람 있으면 자고 가라고 그러고. 제가 교회 옆에 흙집에서 한 십육 년인가 살았거든요. 거기 있으면 밤이고 낮이고 애들이고 뭐고 찾아와요. 겨울에 눈이 오면 지나가다가 자고 가는 스님도 있고 비오면 비 피해 가고. 그런 사람 오면 마음대로 다 이야기해요. 어떤 청년은 와 가지고 '어제 대구 갔다 왔는데 뭐 하러 갔다 왔는지 압니까?' '내가 어이 아나?'라고 하면, '색시 집에 가서 자고 왔십니더. 나이 서른 넘은 놈이 장가를 못 가니까 한 달에 한 번씩은 갔다 와야 합니더' 그런 이야기도 해요."



- 강문필 선생이지요? 농사 지으시는… <하느님 개구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책 쓰신 분이. 그 분도 교회를 다니시다가 교회에서 목회자가 가르치는 부분들이 마뜩치 않아서 끝내는 교회에서 떠나셨더라고요. 저는 선생님이나 그런 분들이야말로 틀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좀 깨우쳐주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야 하는 데 하는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해 주지 않아도, 누구라도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혜가 그런 분별을 다 주셨어요. 그런데 그것이 용기지요. 용기일 겁니다. 그리고 겁이 나잖아요. 내 기득권을 다 잃어버리는데. 장로님 장로님 하고, 권사님 권사님 하고 그랬는데, 그거 다 버리자면 그렇잖아요."



- 선생님의 책, <우리들의 하느님> 그거 보면서도 가슴이 많이 찔렸습니다. 너무 직설적이고 솔직하게 말씀을 하시니까.

"기도를 해도… 철야기도를 했거든요. 몸이 아프고 그럴 때. 겨울에는 하다보면 기도가 안 나와요. 아이고, 추워라, 추워라 그러지. 한참 하다보면 입에서 그냥 다른 기도가 안 나오고 추워라, 추워라만 하지요. 그리고 그렇게 밤새 앉아 있다는 그 의지력 자체지 그건 하느님한테 구한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거든. 자기가 얼마 만큼 의지력으로 견디느냐 그거지."

"다른 거보다도, 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이런 아이들이 정말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어른들이 만들어 놓고 죽어야지요. 맨 첫째로 이 세상에 전쟁 만큼은 없애 놓고 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거는 뭐 목사님들이 더 깊이 생각하고 연구해 보셔야 해요. 전쟁 만큼은 없어져야 해요. 핵무기는 자꾸 불어나고 언제 어떤 나쁜 군주가 들어서면 그거 한 방이면 다 날아가는 데. 그런 거 해 보셔야지요. 우리는 다 살았으니까. 목사님의 연배 되는 사람들 모여 가지고 스님도 좋고 수녀님도 좋고 누구도 좋으니까 같이 고민할 수 있는 사람들 모여서 해결 방법을 찾아가야지요."

- 근데 너무 우리가 무력해요.

"그때 하느님한테 기도의 힘을 얻어야지요. 다른 힘을 얻는 거보다도….'

- 파병반대와 전쟁반대를 외치지만 국회에서 또는 정부에서 이렇게 강행을 하니까.

"그래도 종교인들, 스님들과 목사님들, 신부님들이 한 목소리로 그렇게 반대하면, 미국한테 대고 항의를 하면 저건 어느 정도 될 겁니다. 그런데 목소리 각각 다 다르니까 그게 문제지."

- 선생님 평생에 걸쳐서 이 책만은 꼭 읽어 봐라 할 만한 추천할 책 다섯 권만 소개를 해 주십시오.

"이미 다 읽어 보셨을 텐데. 신채호요. <조선상고사> 신채호 선생님 글은 다 좋아요. 우리 한국 사람은 신채호, 그 다음에 장준하 선생님이 직접 쓴 <돌베개>라는 거 있습니다. 일진 깊이 갔다가 달아나 가지고 독립군 찾아가는 과정을 적어 놨거든요. 그건 정말 돌베개입니다. 야곱이 고향 찾아가는 그 과정보다 더 힘들었지요. 김창숙이라는 사람 책하고, 리영희, 강만길 같은 분들 책들 모두 좋습니다. 다섯 권만이 아니라…. 역사 인물로서는 허균이라는 사람 전기를 될 수 있으면 구해 보시고…. 그 다음에 생각이 안 나서 그러는데 또 있어요. 우리가 약소국가였기 때문에 그때그때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살펴보면 좋은 사람 많습니다."



- 주로 역사 관련한 책들을 권하시네요.

"구약성서가 이스라엘 역사잖아요. 함석헌 선생 책 <뜻으로 본 한국역사> 같은 거, 함석헌 선생님 책들도 다 좋아요. 누가 썼는지 모르지만 <사람의 아들>이라는 책 그거 보면 예수님에게 누구 어머니인지 '그런 불한당 같은 놈이 자식들 데려다가 다 버려 놓는다!'고 욕한 어머니가 거기 나와요. 제자 된 사람 가운데 한 어머니인데, 집에서 열심히 일하는 착한 애를 데려다가 저놈 자식이 다 베려 놓았다고 그런 장면이에요. 나사렛 그 목수 놈의 아들 자식이….(웃음)"



- 제가 부족하지만 <오마이뉴스>라는 인터넷 뉴스에다 책 소개하는 연재 기사를 쓰고 있어요. 그래서 선생님께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는 건데….

"다들 잘 알 겁니다. 강만길, 리영희, 송건호… 이런 사람들 책은 다 고전이니까. 판소리, 신재효입니까? 그 만들어 놓은 거 <춘향전>이나 <가루지기타령>이라는 거 있어요. <변강쇠전>이나 그거 정말 눈물겹지요."

- 요즘 아이들이 책을 잘 읽지 않습니다. 그림책도 잘 안 읽으려고 하는 데, 우리 도서관을 하다 보니까 답답해 죽겠어요.

"애들은 그냥 안 읽어도 됩니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그냥 놀게 하고 그 다음에 중3학년이나 고등학교 되면 자기가 읽어야 돼요. 정신 차려 가지고 누가 읽어라, 읽어라 하지 않아도. 그 다음부터는 자기 인생을 살아야하기 때문에 선배들 어떻게 살았나 하면서 책을 읽겠지요."

- 선생님도 중학생 그 정도 연배 때에 책을 많이 읽었나요?

"책을 읽었는데 잘 못 읽었어요. 열일곱 열여덟 살 때, 이광수 책을 그 땐 베스트셀러라고 해 가지고 또 그땐 책이 없어서 헌책방에 가서 구해 읽었는데, 이광수 그 사람 우리 역사를 많이 왜곡시켜놨어요. <단종애사> 같은 거. 그런데 김동인의 <젊은 그들>이라는 건 괜찮아요. 박종화의 <금산의 피>라든가. 또 현진건의 <무영탑> 같은 거도 괜찮아요. 그런데 이광수 책은 아주 안 좋아요. 그리고 우리 작가들도 좋은 책 많지요. 그 누구지요? 채만식의 단편들…."

- 선생님, 요즘도 독서 열심히 하시지요?

"건강 때문에 많이 못 읽지요."

- 요즘엔 어떤 책들을 읽으세요?

"요즘은 좋은 책이 안 나오잖아요. 옛날에 나왔던 책들이나 좀 보고…. 찾아보시면 좋은 책들이 있어요. 본 회퍼 전기 같은 거. 김교신이라는 사람 수기, 일본의 누구지요? 우찌무라 간조 그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요. 또 누구지요? 노동운동 했던 사람, 일본 사람… 그 사람이 나중에 변절을 해 가지고 일본군국주의 협조를 하고 그래가지고 나쁜 사람이 되어 버렸는데 그 전에까지는 괜찮아요. 어떻든지 헌책방 다니셔 가지고… 부산이나 광주 이쪽으로 아니면 서울 가시거들랑… 헌책방 다니셔 가지고 책을 모으세요. 아이구 목회하는 분들도 힘들 겁니다. 그러나 기성교회 따라가서는 안돼요."



- 따라 가지 말자고 하는데 그게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하다 보니 진짜 아는 것도 짧고 내가 경험에서 우러나야 하는 데 그것도 아직은….

"앞으로 열심히 살면 되지요. 아이고, 이제 가시지요. 제가 힘들어 안 되겠네."

- 네, 그럼 선생님, 그만 물러 가보겠습니다.(정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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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물만두 >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읽고 듣기

 제 1막: 아일랜드에서 콘위르로 항해하는 배의 갑판.
이 제 1막의 전주곡은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의 내면적인 진정을 표현한 것으로 사랑의 고백과 탄식과도 같은 것이다.
희망과 두려움, 탄식과 희망, 기쁨과 슬픔 등이 표현되어 힘찬 박력으로 음악이 고조되었다가는 몸부림치듯 궁극의 해결점을 갈구한다. 그 모든 것을 바다에 쏟아 버리려는 몸부림 끝에 힘이 다하여 동경의 세계속으로 빠져 버린다.
갑판 위에 천막이 쳐 있고 거기에 이졸데가 누워 있다. 선원들의 노래가 끝나자 이졸데가 일어나 시녀에게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
배는 이미 콘워르 해안에 이르렀고 그 해안에는 남편이 될 마르케 왕이 기다리고 있다. 이졸데는 상륙하고 싶지 않다고 고함치며, 폭풍이 불어 배가 침몰했으면 좋겠다한다.
트리스탄이 배의 키를 잡고 있다. 이졸데는 트리스탄에 대한 사랑의 괴로움을 말하고 시녀에게 트리스탄을 불러 오라한다. 그러나 트리스탄은 키에서 떠날 수 없다고 한다.
이졸데는 지금까지의 모든 사실을 시녀에게 이야기하고 나서 그이도 죽이고 자신도 죽을 결심으로 독이 있는 술을 시녀에게 준다.
선원들이 노래하며 배가 육지에 도착한 것을 알린다. 이졸데는 트리스탄이 와서 사죄하지 않으면 내리지 못하겠다고 버틴다.
죽음을 각오한 이졸데는 시녀에게 독주가 든 잔을 준비시키고 시녀와 이별한다. 이 때 트리스탄이 나타난다. 트리스탄은 이졸데에게 그녀의 약혼자였던 모롤드 경의 원수인 자기를 죽여 달라고 한다. 이졸데는 마르케 왕의 용감한 부하인 트리스탄을 죽일 수 없다고 대답한다.
두 사람이 사랑의 이야기를 나누진 않지만 오케스트라가 사랑의 모티브를 연주하여 분위기의 효과를 낸다.
트리스탄이 이졸데가 들고 있는 잔을 빼앗아 마신다. 이졸데는 그것을 다시 빼앗아 남은 반잔의 술을 마신다.
그러나 실제로 이 잔에는 독약이 들어 있지 않았다. 시녀가 독약 대신에 사랑의 묘약을 넣은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 이름을 부르며 포옹한다. 이 때 선원들이 콘워르 만세를 부르는 소리와 육지에서 부는 환영의 트럼펫 소리가 들린다.
제 2막: 마르케 왕 궁전의 정원.
먼저 서곡이 연주된다. 이졸데 방으로 통하는 돌계단이 있고, 횃불이 어두운 밤을 밝혀 주고 있다.
마르케 왕은 사냥을 나갔다. 이졸데는 시녀에게 트리스탄을 만나겠다고 한다. 시녀는 이졸데 공주에게 왕의 부하가 나쁜 술책을 쓰고 있으니 주의하라고 한다.
불을 끄고 트리스탄을 부르라고 시녀에게 시키나 시녀는 주저한다. 그러자 이졸데 자신이 불을 끄고는 수건을 흔들어 트리스탄에게 신호한다. 그는 달려와 서로 껴안고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이 때 고금의 명 2중창인 "아! 우리들을 묶어라. 사랑의 밤이여"를 부른다. 기쁨이 절정에 이르른 그들은 "죽자"하고 고함친다.
얼마 후 탑 위에서 망을 보던 시녀가 소리쳐 경고한다. 그러나 사랑에 취한 그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트리스탄의 부하가 알릴 때는 이미 늦어 왕과 부하들이 나타난다. 아내와 부하에게 배신당한 왕은 비통한 기분으로 서 있다. 왕의 힐책에 트리스탄은 아무 대답도 앖는다. 이졸데는 이제 트리스탄과는 절대 떨어질 수 없다고 한다.
왕의 부하가 칼을 빼어 덤비자 트리스탄은 칼을 버리고 그 부하의 칼에 상처를 받고 자기 부하의 팔에 넘어진다. 이것을 본 이졸데는 트리스탄의 가슴에 몸을 던진다.
제 3막: 브리타니에 있는 트리스탄의 집 정원.
부상을 당하여 집에 운반되어 온 트리스탄. 사랑의 고민을 나타내는 음악이 이 3막에 최고조로 연주된다.
조용한 탄식과 같이 서곡이 연주되고 멀리서는 목동의 피리 소리가 한층 처량하고 구슬프게 들려 온다. 얼마 후 목동들이 나타나 트리스탄의 괴로움을 보고 근심스런 빛으로 사라진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트리스탄은 사랑의 꿈과 차츰 인식되는 현실과의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이졸데와의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부하는 이해하지 못한다.
트리스탄을 사랑하는 이졸데의 배가 이 곳으로 오고 있지만 트리스탄이 숨지기 전에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그의 부하는 생각하고 있다. 트리스탄은 그 부하를 보초탑으로 보낸다. 이 때 목동들의 즐거운 피리소리가 들리는데 이것은 배가 도착했다는 신호이다.
트리스탄은 아픈 상처를 잊고 일어나려고 하며 기쁨의 노래를 부른다. 트리스탄을 부르는 이졸데의 소리도 들린다.
트리스탄은 이졸데와 포옹하고는 곧 숨진다. 이졸데가 실신하여 그 시체 위에 쓰러진다.
그 때 한 척의 배가 해안에 도착했다고 목동이 피리로 알린다. 마르케 왕이 그의 부하들과 이 곳에 온 것이다. 트리스탄의 부하는 이들과 싸워 한 사람을 죽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부상을 입히고는 트리스탄 시체 옆에 넘어져 죽는다.
그러나 마르케 왕은 이들을 해치러 온 것이 아니었다. 이졸데의 시녀로부터 사랑의 술에 관한 이야기등을 듣고 두 사람을 결합시키기 위해 이 곳에 온 것이다.
잠시 정신을 회복한 이졸데는 저승에서 그와 만나 행복하게 지낼 것을 믿으며 환희속에 트리스탄의 시체 위에 쓰러져 죽는다. 이 때 부르는 "사랑의 죽음"이란 극적인 노래는 유명하다. (3시간 40분)

 최고의 출판사, 미술 전문가 집단의 참여
이 시리즈의 원전을 출간한 라루스 출판사는 영국의 파이돈 출판사, 독일의 타쉔 출판사와 더불어 세계 3대 미술 출판사로 꼽힌다. 특히 ‘라루스 세계대백과사전’이 증명하듯이 라루스 출판사가 가진 전문적 필진과 방대한 자료, 계속하여 증보되는 정보의 신속성 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문화의 수도랄 수 있는 프랑스의 지적 역량이 발휘된 라루스 미술사 시리즈는 현재 시대사를 완간하고, 양식과 분야별로 세분화된 시리즈로 확대하여 종합적인 미술 백과사전의 모양새를 갖춰가고 있다. ‘생각의 나무 라루스 서양미술사 시리즈’에 참여한 필진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로서 수 권의 저작을 출간한 바 있는 전문 미술사가(美術史家)들이다. 따라서 미술의 본고장에서 직접 예술사를 관찰하고 분석한 해설은 믿을 만하고, 생생하다.
단순한 미술사를 넘는 서양 예술사까지
원저의 시리즈명인 ‘이해와 인식’이 반영하듯 ‘생각의 나무 라루스 서양미술사 시리즈’의 저자들이 각 시기를 다루는 방식은 종합적이면서 또한 분석적이다. 단순히 화가의 연대기나 작품 해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사의 흐름과 문화사를 전반적으로 살피는 가운데, 해당 미술 조류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 심성사와 경제 사회사를 언급함으로써 그 변화의 맥락을 소개한다. 각 시기의 타 예술의 움직임까지 포괄한 풍부한 기술은 이 시리즈가 미술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화사교양서로서 충분한 함량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당연히 그 내용의 수위는 학생에게는 참고서로, 일반 예술애호가들에게는 교양서로서 넉넉한 품을 갖추고 있다.
최초의 완벽한 서양미술사 시대사별 시리즈
국내에 소개된 서양미술사 관련 도서는 90년대 이후 폭증하여 많은 출판사에서 다양한 형태로 출간한 상황이다. 생활의 질과 문화에 대한 강조를 반영한 미술 관련 서적은 총서 형태로도 여럿이 선보인 바 있는데, 아쉽게도 그것들은 각 양식, 화가, 시기가 뒤섞인 백화점식 기획이었다. ‘생각의 나무 라루스 서양미술사 시리즈’는 중세로부터 시작해 르네상스, 고전주의와 바로크, 낭만주의, 19세기, 근대, 현대로 이어지는 서양미술사의 역사적인 흐름을 좇아 본격적으로 해제한 시리즈로, 국내 미술수업의 교과서 역할을 해온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가 건너뛴 행간을 채워줄 것이다.
화려하고, 정선된 도판과 알찬 해설
무엇보다도 이 시리즈의 특징은 해당 시기의 주요 작품을 제대로 보여주자는데 있다. ‘생각의 나무 라루스 서양미술사 시리즈’는 소량의 자그마한 도판, 게다가 익히 보아왔던 식상한 대표작 위주의 컬렉션을 지양하고, 작품의 특장을 보여줄 수 있게끔 크고 화려한 도판, 이제껏 만나 보지 못했던 작품의 대량 삽입을 통해 예술사에 대한 새로운 개안(開眼)으로 안내한다. 또한 각 작품에 대한 핵심적인 해설은 창작 배경과 형식적 특질을 놓치지 않고 있어 여느 미술서적 여러 권을 감당할 만하다.
새로운 미술서적 편집 디자인의 실험
‘생각의 나무 라루스 서양미술사’는 미술책은 미술책다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수록된 작품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에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림과 글로 아름답게 꾸민 종이 위의 미술관으로 시각적 만족감을 고양시킬 것이다. 

 클래식 감상서는 많이 나와 있다. 초심자를 위한 친절한 안내서부터 천 페이지가 넘는 백과사전식 안내서도 있다. 이 책들의 역할은 아마도 독자가 책을 읽는 중에, 또 읽은 후에 귀담아듣고 싶은 음악이 생기게끔 하는 것일 게다. 그러나 기존 책들이 하나같이 훌륭한 책이라 말하긴 힘들다. 왜냐하면 상투적인 극찬과 목록의 나열은 강제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음악 관련 형용사가 '훌륭하다' '걸작이다' 등 8개 정도에 불과한 기존 책들을 보고 '열받아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내 영혼의 음악』은 초보자용 입문서와 부피가 다소 부담스러운 명반 백과 사이의 간극을 메워줄 만한 '음악 감상서'다. 음악만의 언어, 그것을 활자 언어로 바꾸어내는 일… 시인에게 이보다 더 흥미로운 과제가 어디 있겠는가. 또 이 책은 음악을 소재로 한 예술 산문으로 읽힐 수 있다. 페이지를 후루룩 넘겨가며 7부 150항목으로 구성된 제목을 읽어 보라. 미묘한 연결감이 마치 한 편의 장시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의 각 꼭지 제목은 그의 시집 『해가 뜨다』에 실은 그의 시 「바닷속Sea-depth」의 구절들이다. 

  우리에게는 고급예술의 대명사, '예술을 위한 예술'의 대표쯤으로 여겨지는 오페라이지만, 위대한 작품의 대부분은 그것이 탄생했던 시대 상황과 촘촘하게 얽혀있으며, 사회의 모순과 불합리성에 대한 저항의 표현이었다. 이 책은 꾸준한 저작활동을 통해 삶과 예술의 통합을 지향해온 저자가 사회사적인 입장에서 오페라의 역사에 접근한 책이다. 오페라를 음악의 정치성과 사회성이 가장 잘 드러난 장르로 보는 저자의 날카로운 시각과, '음악 노동자'로서 지난한 삶을 마다하지 않았던 옛 작곡가들에 대한 애정이 드러난 노작이다.오페라에 대한 책 속에는 오페라 정신이 없다.
음악의 정치성과 사회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오페라이다.
이 책은 오페라를 그 시대, 그 정치, 그 사회의 산물이자 반영으로 파악한다. 이는 문학이나 미술이 그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처럼 음악이 그렇다는 점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예술 전체에 대해 그런 사회적 이해는 아직도 충분하지 않지만.
오페라가 대중화되려는 경향인지 우리나라에도 오페라에 대한 책들이 과거보다는 많이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책들은 하나같이 작곡가의 생애나 작품의 내용(줄거리) 및 초연의 역사, 또는 가수나 지휘자에 대한 에피소드, 그리고 음반에 대한 소개에 그치고 있다. 그 사회현실에 대한 설명이나 작품의 사회사적 의의는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 이는 오페라만이 아니라 음악에 대한 모든 책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즉 음악 자체의 역사만 있지 음악을 둘러싼 현실의 역사가 없다.
그야말로 음악가와 음악 작품의 역사뿐이고 근대사를 움직인 계몽, 혁명, 민족, 자유, 국가, 민중, 여성, 현실, 민주주의가 등장하지 않는다. 게다가 음악가의 반 이상은 독일인이고 그 음악가란 불멸의 악성이니 하면서 화려한 에피소드, 특히 연애의 주인공(그것도 불멸이다)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오페라에 대한 어떤 책은 아예 '오페라는 사랑 이야기이다' 라는 명제로 시작하여 그런 이야기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페라는 시대정신을 투철하게 반영한 참된 예술이다.
우리에게 음악은 여전히 어떤 천재 음악가의 절대정신이나 순수의지로 표상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현대에 이르는 음악은 단지 천재적인 작곡가 개인의 순수한 영감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다른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음악은 순수한 정신의 소산임과 동시에 사회적 체험의 표현이며, 공통의 행위를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다. 따라서 음악은 순수한 정신의 지배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사회라는 환경의 제약을 받는다.
모차르트에서 비롯되는 현대 오페라는 시대정신을 투철하게 반영한 참된 예술이다. 모차르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예술가라면 그의 시대정신을 이해해야 하고, 자신이 사는 시대의 정신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참된 오페라가 가능해진다.
오페라를 하고 보는 사람들이 자기 시대를 비판적으로 이해하지 않는 한 18세기의 모차르트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위대한 오페라의 비판적 사회이해를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 따라서 특권계층이 즐기도록 그들을 위해 하는 오페라는 모차르트로부터 비롯된 모든 위대한 오페라 예술가들을 배반하는 짓이다.
저자는 그러한 배반을 자라는 아이들만은 더 이상 저지르지 않도록 하고자 이 책을 쓴 것이다. 오페라를 제대로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그 정신을 알고 그것을 우리 시대에 되살려 우리 시대를 좀더 인간다운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오페라 관계자는 물론 그 애호자도 당연히 우리 시대에 대해 비판적인 안목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이 책은 무엇보다도 오페라를 제대로 즐기자는 목적으로 쓰여졌다. 그래서 저자가 오페라를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어려움을 다른 사람들이 마찬가지로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특히 노동자들이 오페라를 즐기게 하기 위해 이 책을 쓴다. 오페라가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의 하나라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동자들도 당연히 즐길 권리와 의무가 있다. 아니 무엇보다도 우리 노동자들도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자질이 있다.
오페라 속의 계몽, 혁명, 민족, 자유, 국가, 민중 ……
이 책은 작곡가나 작품 중심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오페라 사회사이므로 그 기본개념을 계몽, 혁명, 민족, 자유, 국가, 민중, 여성, 현실, 민주주의라는 9개로 정리한다. 그리고 계몽은 모차르트, 혁명은 베토벤, 민족은 19세기 전반 이탈리아의 로시니와 도니제티 및 벨리니, 자유는 베르디, 국가는 바그너, 민중은 19세기 체코의 스메타나와 러시아의 무솔그스키 및 차이코프스키, 여성은 19세기 프랑스의 비제와 상상스, 오펜바하 및 마스네, 현실은 19세기 후반 이탈리아의 마스카니와 레온카발로 및 푸치니, 민주주의는 20세기의 야나체크, 베르크, 바일, 거쉰, 달라피코라, 브리튼 및 번스타인의 작품들로 연결된다.
오페라는 흔히 말하듯이 뚱뚱한 작곡가가 맛있는 요리를 먹으며 작곡하고, 마찬가지로 뚱뚱한 남녀 가수들이 부르는 감미로운 사랑의 비현실적인 매혹의 화려한 노래 잔치가 아니다. 반드시 모든 작품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위대한 오페라도 대부분 그 시대에서는 반역이었다. 현대 오페라의 시작인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부터 그랬다. 지금은 그것이 감미로운 연애 오페라로 이해되지만 사실은 당시의 지배층이었던 귀족계급에 대항하는 서민계급의 투쟁을 그린 반체제의 작품이었다.
저자는 예술의 민주화를 꿈꾸고 있다. 그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우선 음악가나 노동자나 함께 음악을 즐기는 것이고 음악가와 노동자를 친한 동무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음악가에게서 노동자성을 발견하고 노동자에게서 그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음악성을 발견하게 하여 둘을 잇는 것이다.

 신들의 소리를 훔친 다섯 명의 음악가 이야기!
음악이 인간의 감정에서 피어나는 꽃이라고 한다면 음악 애호가야말로 삶이 베푸는 즐거움의 한 부분을 잊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다. 애호가들은 음악 자체에 대한 의무에서 벗어나 오로지 음악을 위한 음악 즐기기를 할 뿐, 그것이 삶의 무게가 되지는 않는다.
이 책은 이러한 '전문 음악인'이 아닌 '음악 애호가'인 저자가 자유로운 틀안에서 기발하고 재치있는 생각, 감미로운 문체와 해박한 지식들을 한껏 동원해 만들어낸 한권의 맛있는 음악 이야기이다.
푸치니, 모차르트, 베토벤, 바그너, 베르디 등 수많은 음악장르중 이들의 오페라를 선택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문학과 미술이 함께 하는 종합예술로서의 오페라의 재미는 물론 음악가의 인격과 삶과 죽음, 인생관과 여성관, 그리고 예술관을 함께 담고 있다.
보다 열린 시각으로 쉽고 재미있게 음악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한 것인 만큼 이 책은 글의 형식이 일정한 틀에 묶여있지 않고 무척 다양하다.
푸치니의 음악은 선율미가 풍부한데다 오페라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의 역할이 두드러짐에도 그들 대부분이 죽는 것으로 처리되어있어 이를 보다 드라마틱하게 묘사하기 위해 소위 판타지소설의 기법을 빌려 서술하고, 모차르트편과 베토벤편은 에세이로, 바그너는 희곡 형식을 빌린 대화체로 그리고 베르디편은 대부분 서간체 형식으로 꾸며졌으며, 문체 역시 자유롭고 다양하게 쓰여져 문장의 흐름을 때로는 운문조로 엮고있다.
특히 각 편마다 써놓은 음악에 관한 테마별 주제시는 읽는 사람의 정서를 자아내는데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부산의 목요학술회에서 발간하는 <시민시대>에 연재됐던 것을 모아 다시 엮은 이 책은 음악(오페라) 평론이면서 음악가의 전기서로써 전문음악가에게는 참고를, 음악 애호가에게는 즐거움을, 음악을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교양을 넓혀 줄 것이며 학생에게는 음악지식 외에도 글쓰기의 한 방식을 보여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주는 책이다.

 신화에 등장하는 여러 가시 신비로운 물건과 수많은 마법 도구 중 흥미진진한 물건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법의 물건에 숨겨진 신비로운 힘과 이에 얽힌 전설을 소개하기도 하며 어찌하여 물건들이 전설 속에서 '비밀의 보물'로 묘사되어 있고, 이 물건들이 구현하는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해 개별적인 분석을 시도한다.
각각의 물건은 그것이 상징하는 신비로운 힘에 따라 다섯장으로 나누어 소개되고 있다. 제1장은 지식에 관련된 보물로, 이 보물의 소유자에게는 신의 뛰어난 지혜나 금단의 지식이라는, 사실상 온갖 숨겨진 세상의 진짜 모습을 간파해내는 열쇠가 주어지는 것이다. 제2장에는 왕권의 상징이나 지배자에게 신성한 권위를 주는 비밀의 모물이 속한다. 이것을 소유한 자는 그 신성한 힘으로 인해 왕이 되도록 정해지며 대부분 신의 의지에 따라 소유자게 건네진다.
제3장은 인류의 영원한 꿈인 끝나지 않는 생명을 주는 비밀의 보물을 소개한다. 일반적으로 부를 가져다주는 물건이나 그 자체로 희소성 있는 보물이기 때문에 손에 넣으려 하는 것들이 마법의 도구이다. 제4장에는 옛날이야기나 민간 전승, 그리고 현실 세계와 가장 가까운 마법의 도구들이 모여 있다. 제5장에 모여 있는 것들은 성배, 성궤, 모세의 지팡이 등 이것을 통하여 신의 위대한 힘이 직접 발현되는 신성하고 강력한 물건들이다.

 이야기 뒤의 이야기
이 책 <무대 뒤의 오페라>에는 시간을 초월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27편의 걸작 오페라가 소개되어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여느 오페라 해설서와는 다르며, 오페라에 관한 책이라기보다는 오페라를 낳은 여러 거장들과 주변의 인물들에 관한 책이다. 오페라는 먼저 이야기이다. 그리고 각각의 오페라가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이야기 뒤에는 현실의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 이 현실의 이야기들이 종종 오페라라는 상상의 이야기보다 훨씬 더 흥미로우며 감동적일 때가 있다. 이 책에 나오는 26가지 이야기는 이러한 사실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예로서 27편의 걸작 오페라를 탄생시켰던 현실의 드라마틱한 상황을 때론 날카롭게 때론 애전과 존경이 어린 시선으로 조명하고 있다
19세기 오페라의 황금 시대 유럽을 무대로 한 인간 극장
이 책에 시대 순으로 정리되어 있는 26가지의 오페라 이야기는 "앞뒤로 수십 년을 포함한 19세기 전체"의 유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의 등장 인물들은 당시 실존했던 오페라 작곡가, 가수, 대본 작가, 연인, 황후, 극장감독, 흥행사이며, 그들이 우리 눈앞에 펼쳐 보이는 드라마는 호화찬란한 무대 위에서 오페라의 영웅들이 들려주는 상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와 다름없이 살과 피로 이루어진 인간들의 너무나 인간적인 이야기들이다. 이 현실의 주인공들은 바라는 바를 얻기 위해 헌신하지만 한편으론 상처받고 패배의 쓴잔을 마시기도 하고 또 파렴치한 행위, 나아가 남을 해칠 수 있는 음모까지 서슴지 않는다.

 세계사의 가장 결정적인 장면에서 충돌하는 천재들의 대결과 그 이면의 역사!
이들은 왜 공존하지 못하고 충돌해야만 했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 종교, 군사, 예술, 문학, 철학 등의 분야에서 라이벌들의 명승부는 항상 화제가 되어 왔다.
本書《세계사의 명장면-그 이면의 역사》는 세계사의 결정적인 장면에서 만나 격렬한 투쟁을 벌이며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 천재들의 대결을 그린 것이다. 이러한 장면의 이면에는 우리가 간과하거나 알지 못했던 흥분을 불러일으킬 만한 사건과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이들이 왜 공존하지 못하고 충돌할 수 밖에 없었는가를 저자 골트슈미트 옌트너는 아주 새롭고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영혼의 우정을 나눌 수 있었으나 지상에서는 화해할 수 없는 적이었던 카이사르와 브루투스, 바그너와 니체. 처음부터 화해할 수 없는 적이었던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혹은 '스스로 역사를 움직일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이 움직인 역사를 조종하기라도 해야 한다.'는 메테르니히의 말처럼 역사의 결정적인 사건에 참여함으로써 위대성을 획득한 경우도 있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예수와 유다를 등장시킨다. 이들은 인물 자체가 가지는 중량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대결의 결과가 인류에게 가장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기에 세계사의 가장 결정적인 장면으로 설정한다.
브루투스는 왜 카이사스를 죽여야만 했는가? 지금까지 우리들이 갖고 있던 등장인물들에 대한 지식은 이 책으로 상당 부분 수정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지상의 길에서 스스로에게 부과한 사명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어떠한 희생과 투쟁을 벌여야만 했는지 공감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카이사르나 나폴레옹, 괴테 등의 전기는 많이 번역되어 나와 있지만, 브루투스나 메테르니히, 클라이스트 등의 전기는 거의 없다. 이런 점에서 본서는 기존 전기의 결함을 메우고, 이로써 좀 더 객관적으로 그들의 삶에 대하여 판단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며 좀 더 진실에 가까운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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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니르바나 > 入門用이라굽쇼!

     

       

지난 겨울부터 다시 고전음악을 듣기 시작하면서 선택한 품목들은 이랬습니다.

친절하게도 입문하는 사람들이 선택하면 만족할 만한 곡들이 다 들어있다고 설명하고 있었으니까요.

       

   

두 메이저 음반사가 내놓은 소위 입문반들 중에 겹치는 것은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작곡가들이니까

무방하다고 여기고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음반들을 몰아서 듣다보니 음반을 소개하는 글 중에 입문용이라고만 자리매김한 내용이

목에 가시처럼 걸리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정말 입문용이라구라구라구요?

 

이왕지사 듣기 시작하면서 선택한 목록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이쯤되면 참고로 뒤지기 시작한 고전음악 입문해설서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마련한 책과 도서관에서 대출 받아 읽은 책은  이것입니다.

         

 

음악과 책의 만남 이후에 수순이라면 지휘자 두 사람의 음악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Arturo Toscanini    &     Wilhelm Furtwangler

 

 

 



수없이 많은 두 마에스트로의 작품을 모두 찾아 듣는 일이 이모저모로 어려운 일이어서

비용이 저렴한 기획씨디를 구해 듣고 있습니다.

싼 맛에 찾게 되는 편집 앨범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들어 보면 각 음악을 무리하게 이어붙이다 보니 연주할 당시의 음반상태에 따라

천차만별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싼게 비지떡이란 말이 맞는 말이라고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 일도 생깁니다.

그래서 앞에 언급한 입문용 음반을 다시 보고 듣게 됩니다.

 

이 음반속에는 저명한 연주자와 오케스트라를 무수히 만나지만 각 음악간의 소리들이 잘 조정되어 있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하게 소리의 세계로 빠져들게 합니다.

이 뿐 아니라 유명한 연주인의 협주곡도 함께 들을 수 있는 잇점도 있습니다.

 

이쯤되면 입문반으로만 규정한 리뷰를 고쳐 적어 넣어야 하지 않을까요.

책은 개론서가 중요하고, 음반은 입문용이 중요하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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