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훔친 가장 완벽했던 것들
김은선 지음 / 포이에시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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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사람들은 대개 아프다. 그러나 노력한다. 치유하는 삶을 지향하고, 살고, 남들과 함께 또는 홀로서라도 남은 삶을 무리 없이 살아내기를 노력하는 성실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아는 이 성실하고 착한 사람들은 대개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문장으로 치유 받고, 문장을 통해 사람들을 치유해주고자 한다. 착한 사람들이다. 



이번에 마주한 이 책 역시 그렇다. 

<내가 훔친 가장 완벽했던 것들> 흥미로운 제목의 이 작품 역시 그 면면을 채운 문장들 속에 작가의 선한 영향력이 그대로 담겨 있다. 나는 그것이 좋았다. 


출판사 'Poiesis'가 펴내고, 작가 김은선이 쓴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다.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일면식 없는 작가이지만, 그의 글에서 그의 선함을 느끼면 그 잠깐이 평온해진다. 


곁에 좋은 사람을 두고 사는 사람들이 평화로움을 느끼듯, 그와 유사하게 나는 선한 문장을 곁에 두고 평온함을 얻는 셈이다.



이방인




이방인이라고 생각하면 만사형통이다


이방인으로 걸으니 차림새가 신경 쓰이지 않는다

이방인으로 먹으니 혼자여도 쓸쓸하지 않다

이방인으로 일하니 최저시급도 감지덕지다

이방인으로 기도하니 어느 신이건 상관없다

이방인으로 사랑하니 사랑도 사랑이 아니다


너는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고 

나도 너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고

아무 말이나 막 하고 살아갈 수 있다

실수를 하면 이방인이 되어 사과하고

범죄를 저지르면 이방인으로 감옥에 간다


보험을 권하는 사람에게도 이방인이라 하면 무적이다

부친상을 당한 사람도 이방인에게는 부고를 넣지 않는다


미친 월드컵이나 선거도 이방인으로는 안전하다

폐를 끼칠 수도 없고 책임질 길도 없고 흥분할 일도 없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숨 죽인 채 그저 조용한 하루를 살아가면 된다



이방인이니까

이토록 좁고 불편하고 낮은데

비로소 자유롭다

이방인이니까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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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190호 - 2020.겨울
창작과비평 편집부 지음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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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면 나는 집 안으로 자꾸만 숨고 싶어지는 사람이다. 


그런데 올해 겨울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그랬다. 사람들이 아팠고, 우리는 그 몇의 사람을 곁에서 잃었다. 그것을 바라만 보는 일은 생각보다 힘겨웠다. 내가 그랬고, 또 다른 나와 같은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다.


긴 겨울을 보내는 동안 가장 필요한 것은 그래서 '위로'다. 나는 첫 째도 위로, 둘째도 위로라고 하고 싶다. 우리가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 나와 같은 고독한 인간의 손을 잡아주는 것 외에 또 할 수 있는 적극적인 행동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긴 겨울은 그 두 손을 따뜻하게 잡아줄 수 있는 그 곁 조차 내어줄 수 없다는 것이 나를 아프게 만들었다.


그렇게 아픈 사람들을 위해, 아픈 사람들이 쓴 글이 모인 단행본이 바로 창작과 비평 2020년 겨울호다. 


이번 호에는 특집으로 <시, 새로운 공동체를 향하여>가 실렸다. 시인과 시민이 어떻게 만날 것인지를 고민했고, 우리 살아이쓴ㄴ 언니들의 시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또 지금 여기의 리얼리즘 시인들에 대한 내용도 함께 실렸다.


볼거리가 풍부한 것은 두꺼운 단행본 한 권에 시와 소설, 대화, 논단, 문학평론, 작가 조명, 현장 등 우리 시대 문학의 방향과 현재 모습 등이 단단하게 실려 있다는 점이다. 


편식하지 않는 독자라면 누구나 한 권 비치해놓고 외로울 적마다 몇 페이지 씩 읽어내려가기 좋은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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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진
이동은.정이용 지음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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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고통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만 목청껏 함꼐 노래를 부르는 일이다."


나이도 직업도 다르지만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사는 진아와 수진, 두 사람의 살아가는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는 사실 한 동안 만화책을 멀리해왔다. 멀리해왔다는 표현보다는 단 한 번도 만화책에 심취해본 경험이 없는, 그야말로 만화에는 문외한인 사람이었다. 


만화라면 쉽고, 가볍고 쉬이 넘겨 읽을 수 있는 것들을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알았던 편견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던 탓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처음 경험한 만화책 <진, 진>은 그야말로 매운 맛이었다. 쉬웠지만, 쉽게 읽어낼 수 없는 우리 사회 현실을 그대로 담아냈기에 한 장 한 장을 읽어내는 맛이 쓰고 매웠다. 


함께 읽은 모친께서도 쉬이 읽기 힘들었다는 말로 단행본에 대한 평가를 대신했다. 


작가 이동은과 정이용은 누구 하나 쓰러지는 일이 없도록 조금씩 몸을 기울여 서로를 떠받치고 있는 사람들을 그리는 작가들이다. 이 작품 속 젊은 진아는 한 발만 디디면 사회적 안전망이 끊긴 구역으로 실족할 듯하고, 중년의 수진은 연애를 해도 가족이 늘어도 한자일 뿐임을 절감한다. 두 여자는 고시원방처럼 협소한 그림칸 안에서 몇번째인지 모를 삶의 위기를 끌어안고 여닌 돌아눕는다. 카타르시스에 인색한 편인 두 작가는 주인공드렝게 해방이나 대오각성을 베풀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작가의 시선 덕분에 나는 이 작품을 다 읽어낸 직후 어찌어찌 뒤척이고 부딪히다 보면 또 한고비 넘어가 있는 것이 삶이라고 느낄 수 있었다. 작가들 역시 이를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삶은 고통이라고 했던가. 울니느 태어날 때도, 죽을 때도 다른 살마의 삶의 일부를 빌려 태어나고 죽는다. 어머니의 고통 가운데 태어나야 하고, 눅누가에게 부담을 주며 이세상을 떠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삶은 노래한다. 아니, 그래서 삶은 노래한다. 어차피 고통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만 목청껏 함께 노래 부르는 일이다. 


나와 당신의 삶은 노래한다. 지금, 이곳에서"라는 작가의 말이 좋아서 이 책을 머리 맡에 두고 오래 오래 두고 읽는 중이다. 


이 문구가 마음에 와 닿는 나와 같은 독자가 있다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삶은 고통이라고 했던가. 울니느 태어날 때도, 죽을 때도 다른 살마의 삶의 일부를 빌려 태어나고 죽는다. 어머니의 고통 가운데 태어나야 하고, 눅누가에게 부담을 주며 이세상을 떠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삶은 노래한다. 아니, 그래서 삶은 노래한다. 어차피 고통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만 목청껏 함께 노래 부르는 일이다.



나와 당신의 삶은 노래한다. 지금, 이곳에서"라는 작가의 말이 좋아서 이 책을 머리 맡에 두고 오래 오래 두고 읽는 중이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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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바느질 수다 에디션L 1
천승희 지음 / 궁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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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승희 작가의 글과 사진이 오롯이 담긴 책이다. 


책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까지 손으로 만들고 다듬은 바느질 작품들이 가득 담겨 있는데, 집콕 기간, 천 작가의 소소하고 따뜻한 수다와 함께 겯들여 보기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 단행본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그는 바느질 작업에 대해 "한 땀 한 땀 느리더라도 정성스럽게 일상의 바탕을 채워가는 마음"이라고 적었다. 나는 이 표현에서 무릎을 쳤는데, 긴 인생 살이 역시 이와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이었기 때문에 더 마음에 쏙 와 닿았던 부분이다. 


특히 이 책은 출판사 '궁리'가 펴내는 <love my life' 에디션L 시리즈의 그 첫권으로 

내 삶의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주는 그 한 단어를 찾아가는 궁리 출판사의 야심찬 시리즈 중 하나다.


나를 더 사랑하고 아끼게 해준 인생의 키워드를 찾아서, 라는 표어 아래 진행될 시리즈 물에는 

<나의 바느질 수다>를 출발으로 이어서 <편두통, 한없이 예민한 나의 친구>와 <내가 단단해지는 시간, 문학책 읽는 밤>, <청년 도배사 이야기>, <동화가 차려준 밥상>,<강의를 잘하고픈 그대에게> 등의 시리즈가 연이어 출간을 앞두고 있다. 


각자의 삶에는 자신만의 중요한 구심점이 있다. 어떤 이는 바느질을 하면서 인생은 긴 달리기임으 떠올리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도배 일을 하면서 세상으로 난 다양한 창들을 내다보며, 또 누군가는 자신의 아픈 몸을 토닥이며 함꼐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다. 


에디션L 시리즈는 바삐 살다 잠시 여기서, 각자가 골똘하게 바라보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 단행본 시리즈다.


소소하지만, 정감어린 그 마음이 그리운 이 겨울, 더 많은 독자들이 긴 이야기를 함께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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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픈 구두는 신지 않는다
마스다 미리 지음, 오연정 옮김 / 이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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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 작가가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본 것 같아!! 라고 환호성을 지른 책이다. 


제목에서부터 나의 20대를 떠올리게 했던 작품이라서 고민없이 가장 먼저 진열대에서 집어들었던 책이기도 하다. 


<이제 아픈 구두는 신지 않는다> 이 제목 앞에서 무릎을 탁 치고 싶은 독자라면 한 번 쯤 책의 구석구석에 담긴 작가의 섬세한 감성에 귀 기울여볼만하다. 


심각한 내용보다, 작은 서점에서의 일, 여행지를 가기 위해 방 밖으로 벗어나는 시도를 했던 일 등 소소하고 일상적인 글들이 편안한 감성을 더해 책 속 곳곳에 숨어 있다. 


작가가 이야기 하듯, 이 책은 몇 년 전의 나(작가)가 쓴 에세이로, 가나자와, 삿포로, 오키나와 그리고 한국 등 간식을 먹고 걷고 편안한 여행을 했던 기록들이 일상적인 감성과 섞여 또 다른 편안한 문장들로 연결돼 있다. 


혹시, 아직 아픈 구두를 신고 콩나물 시루같은 열차에 몸을 싣고 매일 아침과 저녁 출퇴근 길에 긴 시간을 소모할 수 밖에 없는 독자라면, 사실 이 모습은 몇 해 전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그런 독자가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면, 그 출퇴근 길을 당장 그만두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고단한 출퇴근길을 동행하는 책 한 권으로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제법 가벼운 재질로 만들어진 이 책은 그 무게와 달리 큰 위안이 되어 줄 것이다.


내 마음에 쏙 든 책의 제목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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