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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서정 - 서양 철학자 강유원의 한시 읽기
강유원 지음 / 라티오 / 2026년 9월
평점 :
보통 한국어로 번역된 시 문장들을 보면 ~로다, ~로구나, ~일세, ... 같은 영탄조의 어미들이 자주 나옵니다. 원래 시인의 의도와 맞아떨어지는 경우보다는, 번역하는 이가 지닌 수사법의 빈약함에 기인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시 읽는 맛을 떨어뜨리죠. 번역이 이러하다면 시인이 구사한 수사법의 묘미를 감상하는 것은 더욱 요원한 일이 돼버립니다.
수사법이야말로 책이 가진 아주 중요한 요소이고 다른 매체와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 아닐까요. 저자의 전작 중 하나인 <에로스를 찾아서>를 읽을 때, 철학 에세이를 넘어서 한국어 표현의 높은 경지를 보여주는 문장독본처럼 느껴졌던 적이 많았습니다.
AI 시대에 우리가 책을 읽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를, 이 책 <고독서정>이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고독' '서정', 고립과 독존에 관한 서정.
"시인은 시인이다"라는 표현은 단어만 떼어놓고 보면 동어반복이지만, 문장 의미는 동어반복이 아니죠. 요즘 AI는 은유적인 문장들도 훌륭하게 번역합니다. 수없이 많은 기존 문장 데이터를 비교 대조하면서 가장 높은 확률로, 이 문구가 시인의 멋진 수사법과 깊이 연관된다는 점을 귀신같이 알아내죠.
그렇지만 번역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서 번역이 필요없어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번역하기까지의 과정이니까요. 결과적인 뜻은 같을지 몰라도, 거기까지 닿은 지적인 경로와 마음의 결은 저마다 다릅니다.
시인이 '초의 심지를 자른다'고 썼다면, 심지를 자르는 모습만 떠올릴 것이 아니라, 왜 야밤에 촛불을 새로이 돋우려는지 생각해 보라는 뜻일 겁니다. 심지를 자르는 모습은 누구나 비슷하지만, 홀로 깨어있는 새벽의 쓸쓸한 마음은 저마다 다릅니다.
"자신이 늙었음을 자각한다는 것은 어려서 떠났음을 떠올렸다는 것이다." (p. 38)
"석양"을 '석양'이라 번역하면 아무것도 안 한 것이 되고만다. 우리말에 그 단어가 있으니 내버려두어도 되겠지만 그대로 하는 데까지 해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의부적"을 "마음이 좋지 않아"로 번역했으니 석양이 그것을 투사한다고 조금 넘겨짚어서 "저녁 볕"이라고 옮기면, 편치 않은 마음에 쓸쓸함을 살짝 덧입힐 수 있겠다. 마음도 좋지 않은데 저녁 볕을 쬐면 신세의 서글픔이 더해질 것이다. (p. 23)
시인이란... "... 그게 아주 흔한 소재라 해도, 온 힘을 다해 대상에 몰입하고 몰입에서 나온 생각을 온갖 정성으로 다듬어서, 잡스러운 것을 몽땅 빼 내는 압축에 그치지 않고 성질의 변화까지 일으키는 응축의 과정까지 거친 것을 내놓는..." (p. 71)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정서에 닿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하지만 오묘한 체험입니다.
'신독'은 홀로 있을 때 스스로 몸과 마음가짐을 삼가는 군자의 덕목입니다. 군자는 언제나 스스로 홀로 결단하며, 지혜로운 이들은 점점 고독과 독존의 세계에 머뭅니다.
"자기연민을 버린 사람이다."
"군자가 되는 것은 자기가 자기의 삶을 결정하는 것, 자결이다."
인문학 공부와 책읽기는 지를 향한 갈망이자, 일종의 고상함 추구입니다. <고독서정>에서는 수사법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호가 짙게 느껴집니다. '책'에 꾹꾹 눌러담은 저자(또는 시인)의 정서를 우리 독자는 잘 풀어헤쳐야 합니다. 이 책에 나온 구절을 활용하여 재구성해보자면, 시 감상이란, 시인이 꾹 참고 내리누른 정서와 공감하기 위해 시 구절의 뜻을 조금 넘겨짚어 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사람마다 느끼는 바는 조금씩 다르겠습니다만, 고상함에는 시대와 맥락을 초월하는 어떤 보편성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게 뭔지 딱히 몇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고, 딱 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지만 <고독서정>의 갈피마다 은은히 풍겨오는 '그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 무엇은 단수형이 아닌 복수형이라서 읽어내려고 하는 만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훌륭함에는 주인이 따로 없다. 훌륭함을 귀하게 여기는 이는 훌륭함을 많이 갖고 천하게 여기는 이는 적게 갖는다.”라고 플라톤이 적은 것처럼 말이죠.
지식과 정보 측면에서 책이 유튜브나 GPT를 이기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긴다는 표현이 좀 우습지만, 가령 책이 유튜브나 GPT를 이긴다면 그것은 언제나 인간의 고립과 독존을 깊이 다룰 때일 것입니다. 고립과 독존에 관한 서정은 알고리즘의 세계도, 확률의 영역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책으로 한시를 감상한다는 것은 또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걸까요? 예컨대 한밤중에 초의 심지를 자르며 시를 읽는데, 불현듯 과거의 어떤 얼굴이 떠오르며 서글픔이 밀려오고, 밤새 잠못이루며 적적함과 쓸쓸함에 사로잡혔던 시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보는 일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