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버든
클레어 더글러스 지음, 김혜연 옮김 / 그늘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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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우리 집 뒷마당에서 유골 두 구가 발견되었다.

한 구는 남성, 다른 한 구는 여성. 연령대는 둘 다 30세에서 45세 사이. (P.23)

 

 

경찰은 시체가 파묻힌 건 1970년부터 1990년 사이라고 추정하며, 이 시기에 집에 살았던 모든 사람을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이 가장 먼저 이야기를 해봐야 할 대상은 전 소유주인 로즈 그레이.

 

 

로즈 그레이는 우리 할머니다. (P.24)

두 구의 유골에 대한 진실을 아는 건, 알츠하이머에 걸린 우리 할머니뿐이었다.

 

 

우리 할머니는 정말 내가 아는 할머니가 맞을까?

단 하나의 사건으로 듣게 되는 '엄마'의 이야기.

 

 

선데이 타임즈 베스트셀러 선정

아마존 베스트셀러 선정

독일 슈피겔 베스트셀러 선정

 

 

 

 

 

 

진 버든 | 클레어 더글라스 | 김혜연 | 그늘 | 18,800원

 

 

책은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이다. 500페이지 조금 못 미치는 한 권의 장편 소설. 하지만 작가는 중간에 이야기를 이탈하지 못하게 적절한 템포로 떡밥을 던져주며,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한다.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이라는 책도 있듯, 최근 현대인들은 빠르게 많은 작품들을 접하려고 하기에, 이런 두께가 독자의 진입장벽이 될 수도 있다는 걱정도 드는 한편, 이 정도 분량이 아니면 결말까지의 흐름이 그만큼 탄탄하고 여운이 있었을까 싶다.

 

 

사건의 진상이 조금씩 드러나며 유명한 작품이나 사건 등이 떠오르지만, 그 무엇을 언급해도 스포일러가 될까 조심스럽다. 내가 특히 이 소설에서 떠올렸던 작품은 일본의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가의 작품이기도 하면서, 이를 원작으로 하는 한국 영화인데, 스릴러 영화 좀 봤다 싶다면 누구나 아는 작품이다. (hint. ㅎㅊ)

 

 

이번에도 출판사 '그늘'답게 추잡스럽고 불쾌한 시체의 묘사 없이, 두 구의 유골 만 등장시키는 매우 깔끔한 미스터리·스릴러 작품을 국내에 선보였다. 완독 후에 책 뒤표지의 자신감 넘치는 문구, '반전을 뒤집는 반전, 그 어떤 예측도 빗나가는 감성 스릴러'가 그저 납득만 간다. 두 구의 유골이라는 단서는 미스터리 마니아들에게 어쩌면 싱거울 수 있겠지만, 반전은 결코 싱겁지 않다. 충격적인 진실에 아주 조금씩 다가가는 작품을 좋아한다면, 클레어 더글라스의 「진 버든」은 꼭 만나길 바란다. 완독의 가치가 있다.

 

 

 


 

 

본 서평은 그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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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사랑이 멀리 있어 슬퍼라 - 제임스 조이스 시집
제임스 조이스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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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라는 작품으로 익히 알려진 제임스 조이스는 아일랜드의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며, 그의 작품은 각종 분야 막론하고 영향을 안 미치는 곳이 없다고 한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신화의 힘」의 저자 조셉 캠벨도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 「피네간의 경야(經夜)」에서 고대 신화의 가장 중요한 주제를 읽었다 하니, 책을 읽는다면 그 누구라도 제임스 조이스 작품의 명성이 피부로 와닿을 것.

 

 

그는 사실 가장 처음 썼던 것은 소설이 아니라 시였다. 그 첫 책이자 첫 시집, 「사랑은 사랑이 멀리 있어 슬퍼라(Chamber Music)」가 지난 11월, 아티초크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나는 가름끈이 짧은 탓에, 익히 알려진 작품 보다, 그의 가장 처음의 시집을 먼저 접하게 되었다.

 

 

 

 

 

 

총 36편의 연작시로 이루어진 한 권의 시집. 나는 처음 시를 읽었을 때에는 제목의 '사랑'이라는 단어에 주목했지만 다 읽고 나니 마음에는 '슬퍼라'라는 감정만이 남았다.

 

 

시집의 처음은 프라고나르의 화풍을 연상하게 만드는 밝고 기쁜 분위기로 사랑을 노래한다.

'흥겨운 노래', '바람', '봄철의 푸른 숲', '감미로운 햇살' ...

 

 

 

▲ 프라고나르, 「그네」

 

 

 

하지만 시집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수록 점점 무언가 상실한 듯, 사랑을 찾아다니는 화자의 모습에 내 마음까지 뭔가, 커다란 조각 하나가 빠져버린 것 같다.

 

 

/

오월의 바람이 바다에서 춤추네,

기쁨에 들떠 고랑에서 고랑으로

둥글게 돌아가며 춤추고

거품은 날아올라 화환 되어

은빛도 둥글게 공중에 걸쳐 있는데,

내 진실한 사랑 어디에 있는지 보셨나요?

아, 슬퍼라, 슬퍼라!

오월의 바람이 있어 슬퍼라!

사랑은 사랑이 멀리 있어 슬퍼라!

 

─ 9(IX), 제임스 조이스

/

 

 

가랑비에 옷 젖는지도 모르는 듯, 잔잔히 스며드는 애수의 감정은 이런 서평 몇 줄 보다 직접 페이지를 넘겨가며 음미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넘기면 넘길수록

시에서,

문장에서,

단어에서,

조금씩 배어 나오는 나오는 누군가의 그리움.

 

 

 


 

 

-

왜 이 시집에서는 시 원문을 동시에 제공하고 있을까?

 

 

시 서평을 쓸 때마다, 번역 시의 경우 원문도 같이 제공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늘 있었는데, 이번 시집에서는 영어 원문이 동시에 제공되고 있다. 이런 나의 아쉬움을 알아주시고 원문을 병기하신 걸까 했는데, 원문을 소리 내어 읽어보니, 도드라지는 운율(Rhyme)이 느껴진다.

 

 

/

Rain has fallen all the day.

O come among the laden trees:

The leaves lie thick upon the way

Of memories.

 

Staying a little by the way

Of memories shall we depart.

Come, my beloved, where I may

Speak to your heart.

 

─ 31(XXXII), James Joyce

/

 

 

시집 전반에 걸쳐 이런 운율이 자주 등장한다. 역자 공진호 선생님은 이런 것을 의식하시고 수록하신 걸까. 동서양 언어의 차이로 쉬운 작업은 아니었겠지만, 한국어 번역에도 원문이 주는 운율을 최대한 살리려는 노력이 느껴진다.

 

 

 

 

옮긴이의 말에서 제임스 조이스는 이 시들이 노래로 만들어지기를 원했다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Bid Adieu」. 이 노래와 함께 들으니 먹먹한 감정은 더욱 깊어진다.

 

 

 

 

 

 

본 서평은 아티초크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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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를 든 사냥꾼
최이도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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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감이 느껴지는 생생한 묘사가 좋았던 범죄 스릴러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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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를 든 사냥꾼
최이도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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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17일.

서울과학수사연구소에서 일하는 서세현의 앞으로 한 구의 시체가 도착한다.

도시와 시골, 그 사이쯤이라고 할 수 있는 소도시 용천에서 새벽에 발견된 20대 초중반 여성의 시체.

심하게 훼손된 시체를 부검하는 세현은 처음 보는 시체에서 익숙함을 느낀다.

 

 

살인마는 사체를 절개한 뒤, 실로 꿰맸다.

이를 본 순간, 세현의 머릿속에 한 명이 떠오른다. 이런 방식을 쓰는 살인마는 딱 하나,

바로 서세현의 아버지, 윤조균.

 

 

아빠는 사람을 죽이는 연쇄 살인마였고,

나는 그 시체를 치우는 딸이었다. (P. 36)

 

 

아직도 세현은 아빠가 어떻게 살인을 하는지 생생히 기억한다.

 

 

절단은 무조건 칼날을 직각으로 찔러 넣을 것,

적출할 때는 직접 손을 사용하고,

피부는 보이는 즉시 박리한다. (P. 36)

 

 

분명, 세현은 자신의 손으로 아버지를 죽였는데, 버젓이 살아 살인이라는 방식으로 세현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조균. 세현에 대해 아주 잘 아는 그를, 세현은 먼저 찾아서 죽여야 한다.

 

 

먼저 사냥하지 않으면 그놈의 먹잇감이 되고 만다!

 

 

 

범죄 스릴러 장르에서 자주 보이는 구조가 있다.

범인이 밝혀지는 것을 작품의 가장 뒤에 넣기, 그리고 범인을 작품이 시작하자마자 던져주기. 범인이 미리 제시되는 작품의 경우, 어떤 목적을 위해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사건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가 중요해진다.

 

 

최이도의 「메스를 든 사냥꾼」은 작품이 시작되자마자 범인을 알려주고 시작한다. 바로, 주인공인 법의관 세현의 아버지라고. 그러면서 동시에 세현의 드러나선 안될 과거도 이야기한다. 세현은 바로 그런 연쇄 살인마 아버지의 곁에서 시체를 치우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이미 누군지 아는 범인, 하지만 분명 아버지를 죽였다고 하는 세현의 말에 처음 갸웃하게 되고, 이를 시작으로 헛발질 추론을 하며 책을 읽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전개가 끝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

과연, 자신의 딸을 잘 아는 아버지는 사냥할 것인가, 사냥당할 것인가.

 

 

저자 최이도는 대학에서 경찰행정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나는 경찰행정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얼핏 봐도 작품의 장르와 연관이 있어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용천 경찰서에서 연쇄살인을 수사하는 방식이나, 부검실의 풍경 등 관련되지 않았다면 알기 힘든 디테일한 묘사와 설정이 작품에서 돋보인다.

 

 

 

 

 

 

세현이 부검할 때의 시체에 대한 표현도 디테일하지만, 피부가 어쩌니 신경이 저쩌니 하는 건 잘 몰라서 어려웠던 부분을 제외하면 모든 페이지가 아는 한도 내에서 생생하게 그려졌다. 이런 일부 묘사에 대한 상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아쉬움은 잠시, '출간 전 영상화 확정'이라는 띠지의 문구가 OTT 오타쿠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마침 장르적인 부분에서도 한국이 잘하는 게 또 범죄 스릴러 계열이 아닌가. 읽으면서 내심 상상했다. OTT는 어디로 갈지, 등장인물은 누가 될지 같은 것들 말이다.

 

 

매력적인 인물이면서도 소시오패스 기질이 있는 법의관 세현에는 누가 좋을까,

그런 세현을 묘하게 신경 쓰는 용천 경찰서 경위 정현에는 또 어떤 배우가 이미지가 맞을까.

그리고, 연쇄 살인마 아버지는 누가 좋을까.

 

 

영상화까지의 기다림이 아쉬워지는 한 권의 소설. 작가가 앞으로 이런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을 살려 다양한 작품을 내주길 기대하게 된다.

 

 

 

본 서평은 해피북스투유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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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너의 색상 명명법 - 현대 색상 표준 체계를 세운 세계 최초의 색 명명집
아브라함 고틀로프 베르너.패트릭 사임 지음, 안희정 옮김 / 더숲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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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우리에게 수없이 다양한 색이 보인다. 특히, 디자인이 중요한 분야에서는 더욱 치밀하고 세심하게 색을 나누고 선택한다. 팬톤이라는 미국 뉴저지 소재의 회사는 오로지 색만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기업으로 매년 올해의 컬러를 공개하기도 한다.

 

그런 색의 세계에 시조새 격인 책이 있다. 아브라함 고틀로프 베르너와 패트릭 사임이 공저한 「베르너의 색상 명명법」. 1814년, 베르너와 사임이 110가지의 색을 구분 짓고, 이름을 붙이며 색 자료와 함께 자연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례를 함께 수록한 자료집이다.

 

 

 

 

 

 

우리가 오늘날 접하는 수많은 색의 가짓수에 비하면 이 책에 수록된 색의 가짓수가 다소 초라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책이 가지는 의의는 상당히 크다. 일단 세계 최초의 색 명명집이라는 점이 가장 큰 의의를 가지고, 찰스 다윈 같은 박물학자들이 관찰한 동식물 등의 색을 묘사할 때 이 책을 사용했다는 점 또한 의미가 있다.

 

책의 제목은 「베르너의 색상 명명법」이지만, 사실 지질학자인 베르너는 광물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색채와 광택 같은 주요 특징을 교재로 먼저 썼다. 그 후, 미술교사이자 꽃그림을 그리는 화가 패트릭 사임이 베르너의 묘사를 접하게 되며 색의 이름, 색에 대한 묘사, 실제 색표를 되었고, 거기에 광물뿐만 아니라 동식물의 색상 예시를 덧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서 저절로 자연 연구자나 예술가들이 이 책을 적극 활용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색을 소개하기에 앞서, 베르너가 어떻게 색에 이름을 붙이게 되었는지 그리고 색에 대한 묘사는 어떤 식으로 하게 되었는지 그 기준을 보다 보면 상당히 까다롭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른거리고 각도에 따라 달라지기 쉬운 색채는 나타내기 힘들어서 제외했다거나, 하나의 색이 어떤 다른 색과 섞인 경우에는 정도에 따라 기미 incline, 중간 색조 intermediate 등의 용어를 붙였다 한다.

 

 

 

 

 

 

책에서도 명시된 부분이지만 최대한 당시의 색을 복원하려 했음에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어 이 책에 담긴 색은 원래 색과 다소 차이가 있다고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하얀색과 같은 또렷하지 않은 색견본은 거의 차이를 구별해 내기 힘들게 느껴지기도 해서 아쉬웠다. 당시에 색을 칠했던 종이 색의 영향도 어느 정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만 그저 할 뿐이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동식물, 광물 등의 사례, 색 조합 법, 그리고 붙여진 색이름은 의미 있는 색에 대한 자료라고 본다. 오늘은 그 자리를 팬톤이 대신하는 느낌이지만, 처음 색에 이름을 붙인 자들이 어떤 기틀을 세우고 어떻게 색에 이름을 붙였는지는 색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뜻깊은 공부가 될 것이다.

 

 

 

 

 

 

본 서평은 더숲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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