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 이루카 엮고 옮김 | 아티초크
미선나무에서 아카시아까지
시가 된 꽃과 나무
김승희, 에밀리 디킨슨, 퍼시 버시 셸리, E. E. 커밍스, 페르난두 페소아,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알프레드 테니슨, 월트 휘트먼, 토머스 무어,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윌리엄 셰익스피어,
백국희, 남궁벽, 김영랑, 이상, 김소월, 이육사, 노자영, 김명순, 오일도, 한용운,
안토니오 마차도, 윌리엄 워즈워스, 아틸라 요제프, 윌리엄 블레이크,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제라르 드 네르발,
폴 베를렌, 폴 로런스 던바, A. E. 하우스먼, 안나 마골린, 캐서린 맨스필드, 베르톨트 브레히트,
엘라 윌러 윌콕스, 랠프 월도 에머슨, 제인 테일러,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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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나무. 듣지도, 보지도, 말할 수도 없는 이 생명은 저마다의 환경 속에서 저마다의 모양과 빛깔을 띠며 자란다. 우리는 그런 꽃에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아스팔트를 뚫고 뿌리를 내리는 질긴 생명력에 경이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모든 이들이 식물을 바라보며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하지만, 때론 서로 상반된 느낌을 가지기도 한다. 시인들은 꽃과 나무를 보며 어떤 것을 느끼고, 시로 승화했을까. 평소 이 의문을 품고 살았던 건 아니지만, 이 책을 처음 마주했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교문학을 공부하고 여성과 소수자 문학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번역가 이루카가 김승희부터 요한 볼프강 폰 괴테까지, 37명의 국내외 시인들의 꽃과 나무 시를 이 책 한 권에 엮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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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가 곱다고
꺾어보니까
꽃포기마다
가시입니다
사랑이 좋다고
따라가 보니까
그 사랑 속에는 눈물이 있어요
그러나 사람은
모든 사람은
가시의 장미를 꺾지 못해서
그 눈물 사랑을 얻지 못해서
섧다고 섧다고 부르는구려
─ 「장미」, 노자영
꽃과 나무는 사랑도, 죽음도, 쓸쓸함이라는 감정도 알지 못한 채 그저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겠지만, 시인들은 그런 꽃들 속에서 이를 읽어낸다. 그리고 그 시들에 경탄하며 읽는 건 내가 마음이 흔들리기 쉬운 '사람'이라 그런 것이겠지.
대체로 (그런 시들이 많긴 하지만) 꽃에 쓸쓸함이나 사랑을 담아 노래한 시에 눈이 머물게 된다. 내가 그런 상태여서 그런 걸까?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그저 추하고 쓸쓸한 인간인 채로의 나였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인생을 꽃과 나무의 시로, 예쁜 꽃으로라도 꾸밀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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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꽃 속에 나 자신을 감춰요
당신의 꽃병에서 나와 시드는데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당신은
나를 외로운 사람으로 느끼는군요
─ 「꽃과 함께」, 에밀리 디킨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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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주고 싶은 책 · 가장 받고 싶은 책에 딱, 걸맞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꽃과 나무라는 공통된 키워드의 시에 맞게 매 페이지마다 그려진 식물 일러스트들이 참 예쁘다. 이 시인들도 식물에게서 아름다움을 보고, 영감을 얻기도 하며 시를 썼는데, 그런 꽃과 나무를 누가 과연 싫다고 마다할 수 있을까. 평소 시를 좋아하던 이에게도 선물하기 좋겠지만, 시를 잘 모르는 이에게라도 주기 좋을 것 같다. 누군가가 이 책으로 시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면, 좋아하는 시인이, 호기심이 가는 시인이 생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 역시 알고 있던 시인도 있었지만,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된 시인도 꽤 있었다. 참 꽃과 나무에 대한 시를 많이 쓴 듯,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자주 보이게 되는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라던가, 얼마 전 읽었던 김연수 작가의 단편 「사랑의 단상 2014」가 문득 떠오르는 시 「미선나무에게」를 쓴 김승희 시인이라던가... 또 이 책을 통해 새로 마음에 남기려고 애쓰고 싶어지는 시는 얼마나 많은지, 『자기 신뢰』라는 책을 쓴 랠프 월도 에머슨의 시도, 영화 『올드보이(2003)』으로 알게 된 엘라 윌러 윌콕스의 카네이션에 대한 시도... 우리는 구체적인 이유는 잘 알지 못한 채, 관습처럼 꽃에 의미를 담아 선물하는데, "죽지 않는 사랑과 정열이 여기 잠들어 있어"서, 우리는 카네이션을 부모님께, 스승님께 전달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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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시인들과 시를 다루다 보니, 책 끝에 시인들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있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 그들의 생애는 어땠는지, 그들의 글은 세상에 어떤 영향력을 끼친 사람인지, 시를 통해 시인에 대한 호기심으로 확장될 때 참고하기 좋은 페이지. 엮은 책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본 서평은 아티초크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